이병문 입력 2021. 01. 19. 00:30 수정 2021. 01. 19. 00:48 댓글 17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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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여성은 남성보다 대략 10년정도 오래 산다.
여성은 왜 남성보다 오래 살까? 여성의 식·생활습관이 더 건강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유전적인 기질 탓일까?
의학이 발달하기 전에는 남녀 기대수명이 비슷했다. 출산, 전염병, 잦은 전쟁 등은 모든 사람의 수명을 단축시켰다. 그러나 출산, 전염병, 전쟁의 위험이 줄어들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던 운동장이 기울어지면서 남성과 여성의 기대수명은 격차가 벌어졌고 1970~1990년 가장 커졌다. 최근 들어 의술 발달과 함께 남성이 자신의 건강관리를 시작하면서 여성을 따라잡고 있지만 여전히 격차가 크다.
우리나라의 남녀 기대수명 차이는 6년이다. 통계청이 지난해 12월 1일 발표한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2019년 출생아 기준으로 남성 80.3세, 여성 86.3세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평균 기대수명은 남자 78.1년, 여자 83.4년으로 우리나라가 각각 2.2년, 2.9년 더 높다. 다만 한국인의 건강수명은 2018년 기준 64.4세로, 그 당시 기대수명 82.7세보다 18.3년이나 차이가 났다. 한국인은 64.4세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그 이후로 병치레를 하면서 골골하게 산다는 얘기다.
세계에서 남녀 기대수명 격차가 가장 큰 나라는 러시아로, 11.6년에 달한다. 이는 남성들이 보드카(술)를 좋아하고 과음에 따른 각종 사고와 질병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남녀의 실제 수명차이는 인류의 소망이라는 100세이상 인구를 보면 더욱 뚜렷해진다. 우리나라는 2017년말 현재 100세 이상 인구중 여성 비율이 85.9%(3908명중 3358명·통계청 기준)에 달한다. 그 이전에는 여성의 비율이 더 높다. 2015년 100세인의 여성 비율은 86.5%(3159명중 2731명), 2000년 91.2%(934명중 852명), 1990년 90.2%(459명중 414명)로 거꾸로 갈수록 여성 비율이 압도적이다. 100세인을 성별로 보면 10명중 8~9명이 여성이라는 얘기다. 75세이상 노인 비율이 20%를 넘는 일본은 2019년 8월 100세를 넘는 인구가 처음으로 7만명을 돌파했다.
일본도 100세인의 88.1%(7만1238명중 6만2775명)가 여성이다. 생후 122년 164일 동안 생존해 인간의 최장수 기록을 세운 프랑스 장 칼망(Jeanne Calment)도 여성이다. 국제연합(UN)은 전세계 100세인 인구는 2020년 2월 기준 약 57만 3000명이라고 추산했다.
여성이 오래 사는 이유와 관련해 과학 저널리스트 마르타 자라스카('건강하게 나이 든다는 것'저자·어크로스 출간)는 △생존에 적합한 체형과 강인함 △ 남자(XY)와 달리 유전적 결함을 대체할 수 있는 경쟁력있는 염색체(XX) △면역체계에 도움이 되는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 등을 꼽았다. 자라스카는 규칙적인 운동, 절제된 식습관과 생활습관 등은 건강수명을 늘려줄 수 있지만 절대적이지는 않다고 주장했다. 1846년 11월 미국 시에라네바다산맥의 외딴 호수 주변에서 폭설로 3개월 동안 갇혔던 남녀 81명(도너 일행·오늘날 이들 무리를 이끌던 조지 도너의 이름을 땄다)의 생존과정을 통해 여성이 재난상황을 어떻게 극복하고 남성보다 오래 살아남는가를 보여줬다.
세상과 단절된 채, 식량이 점점 줄어들자 야외에서 생존 기술이 거의 없는 도너 일행은 '먹을 것에 대한 광적인 욕구'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이들은 반려견을 잡아 먹었고 짐승 가죽을 삼킬 수 있는 젤리로 만들었다. 그러다 2월에는 죽은 일행의 시체를 먹었다. 마침내 구조대가 도착했을 때 81명중 35명이 굶주림과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상태였다. 이상하게도 사망자 대부분은 남성이었다. 과학자들은 도너 일행의 남성 사망위험도가 여성의 두배이상이라고 추산했다.
여성이 남성보다 굶주림에서 더 잘 살아남는다는 사실은 1933년 우크라이나와 1845~49년 아일랜드를 포함한 유럽의 많은 기근에서도 확인됐다. 이는 여성이 남성보다 몸집이 작고 기초대사율이 낮으며 피하지방 비율이 높기 때문이라고 과학자들은 설명했다. 즉, 여성은 적게 먹고도 생존할 수 있고, 역설적이지만 복부지방이 몸을 따뜻하게 유지해준다는 얘기다.
여성의 염색체도 남성보다 오래 사는 수수께끼중 하나이다. 여성 염색체는 X염색체를 두개나 가지고 있어 필요한 경우에 결함이 있는 유전자를 대체할 수 있다. 여성 염색체(XX)는 몸안에 모든 유전자의 복제본이나 다름없는 여분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여자 염색체인 XX쌍은 각각의 부분을 교환해서 교정할 수 있는 반면, 남자 Y염색체는 작은 부분 외에는 모두가 보호막에 싸여 있어 X염색체와는 어떤 방식의 교환도 허용하지 않는다. Y염색체는 남자들의 성향과 비슷하게 자기 스스로 보수관리와 교정을 해나간다.
여기에 여성은 남성보다 키가 작아서 애초에 잘못될 세포가 적다. 여성 호르몬도 장수에 한몫한다.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면역체계를 억제하는 경향이 있어 남성은 바이러스와 세균에 더 민감하다. 남자는 여자들보다 인간이 경험하는 가장 보편적인 감염 중 70%이상 걸릴 확률이 더 높다. 에스트로겐과 같은 여성호르몬은 면역체계에 힘을 보태주고 동맥의 나쁜 콜레스테롤(LDL)을 청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 19세기 궁궐에 살았던 내시 수명을 분석한 결과, 이들은 왕을 비롯해 궁궐에 사는 다른 남성들보다 평균 20년을 더 살았다고 알려져 있다. 여성들이 폐경 전후로 심장박동수가 높아지고 말년에 심뇌혈관 질환에 걸리기 쉬운 이유도 호르몬 작용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다.
이같은 남녀의 선천적 요인이 수명에 영향을 주지만, 전문가들은 후천적 요인에 의해 얼마든지 장수를 누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김성권 서울대의대 명예교수는 "선천적으로 남성 수명이 뚜렷하게 짧다면 왜 선진국들은 남녀 수명차이가 작고 저개발국들은 큰 지 설명해주지 못한다. 유전이 수명에 미치는 영향이 7%에 불과하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적이 있다"며 "금연, 절주, 적정 체중유지, 운동, 건강한 식단 등의 후천적 요인의 개선을 통해 수명을 늘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 19세이상 남성흡연율(2017년 기준)은 38.1%로 여성(6%)의 6.4배였고, 음주율은 남성(74%)이 여성(50.5%)의 1.5배나 높다. 특히 고위험 음주율은 남성(21%)이 여성(7.2%)의 2.9배나 된다. 고위험 음주는 한번에 남성 7잔, 여성 5잔 이상 술을 마시는 것을 말한다. 비만율은 남성이 41.6%로 여성(25.6%)보다 1.6배 높다. 남성이 여성보다 유일하게 잘하는 것은 유산소 신체활동 실천이다. 하지만 남성(50.6%)이 여성(46.6%)보다 근소하게 높을 뿐이다.
여자가 남자보다 오래 산다는 것은 남자들이 100세로 가는 길목에서 '낙오자(사망)'가 많다는 얘기다. 남성들은 40~50대 관상동맥질환에 의한 돌연사, 암, 각종 사고 등으로 의외로 많이 죽는다. 중장년 1차 관문을 통과한 남자들은 주로 70~80대 다시 한번 죽음에 노출된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재벌총수, 기업인, 정관계 인사들이 '죽음의 계곡'을 넘지 못하고 세상을 등졌다는 뉴스를 많이 접하게 된다. 실제로 최근 몇년간 사망자 통계를 살펴보면, 전체 사망자중 40~50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 15%, 70~80대는 약 55~60%를 차지한다. 60대는 13~14%, 90대이상은 10~11%에 달한다. 성별로 보면 40~60대는 남성 사망자가 70~75%로 압도적이지만, 70~80대 들어 51~52%로 남녀 사망이 비슷해진다.
미국 콜롬비아 의대 마리안 레가토 교수('왜 남자가 여자보다 일찍 죽는가?'저자)는 "40~50대 남성이 죽는 가장 큰 이유는 혈관이 막히는 관상동맥질환과 암 때문"이라며 "이는 남성이 가족을 부양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위한 스트레스가 또래 여성들보다 관상동맥질환, 고혈압, 당뇨병을 비롯한 온갖 질환에 노출시켜 '성공'과 '생명'을 맞바꾼 것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영국의 한 연구결과 사회 각 분야에서 높은 지위에 오른 남자들은 가장 낮은 지위를 가진 남자들에 비해 심장병 발생률이 4배나 높았다. 관상동맥질환 발생률은 이민자와 같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에게서 매우 높게 나타났다. 젊은 여성들은 남성과 같은 스트레스를 받아도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이 관상동맥질환을 막아주고 염색체(XX형)가 질환을 유발하는 왠만한 유전자변이를 스스로 교정해준다. 관상동맥질환은 심장표면에 위치한 혈관인 관상동맥이 좁아져 심장근육에 제대로 혈액이 공급되지 않아 심장기능이 손상되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인 관상동맥질환은 협심증이나 심근경색이며 돌연사의 주범이다.
관상동맥질환의 발병 요인은 가족력을 비롯해 고혈압, 당뇨병, 과도한 콜레스테롤 수치, 고지혈증, 비만 등이다. 암은 40~50대 목숨을 앗아가는 두번째 요인이다. 우리나라는 35~64세의 경우 유방암·갑상선암으로 인해 여성이 남성보다 암 발생률이 높지만, 남성은 위,대장, 간, 폐암이 많아 사망률이 높다. 미국은 45~54세 남성의 경우 암이 이 연령대 사망의 23%를 차지한다.
이와 함께 남자들이 몸에 이상 현상이 생겨도 무시하거나 설마하는 마음으로 검사를 미루는 것도 목숨을 재촉하는 이유중 하나다. 사소한 질병 따위는 스스로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나 자신은 불운의 예외일 수있다는 요행심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약을 하루 평균 3~5개 복용하는 70~80대 남성이 많이 죽는 이유는 젊은 시절 잘못된 식·생활습관에 의한 '질병의 싹'이 표면화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원광대 장수과학연구소 김종인 교수는 "40~50대 과음 및 흡연, 운동하지 않는 잘못된 습관으로 인해 65~75세에 암을 비롯한 각종 질환이 급격히 발생해 일부는 사망하고, 일부는 병을 나아서 80~90세 넘게 산다"고 말했다.
[이병문 의료선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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