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승 기자 입력 2021. 03. 03. 06:10 수정 2021. 03. 03. 06:20 댓글 135개
이커머스 전국시대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의 소비 전환을 앞당겼다. 온라인에 특화된 유통 기업들이 급성장한 반면 오프라인 강자들은 고전하고 있다. 막대한 자금력과 인프라를 가진 대기업 조차 주춤 하는 이커머스 시장에서 선발주자들의 △유통 관행 △마케팅 방식 △시장 경계를 파괴하며 소비자들을 사로잡은 신생 기업들이 주목받고 있다. 조선비즈는 누적 투자금액 100억원을 넘어선 신생 이커머스 가운데 독보적인 사업 모델과 지속 가능성을 인정받은 혁신기업을 스타트업 관련 기관의 조언을 얻어 선정했다. △식품 △패션·리빙 △물류·배송 분야로 나눠 이들이 시장을 어떤 방식으로 혁신했는지 3부에 걸쳐 알아본다. [편집자주]
매년 3월 봄나물을 찾는 소비자들의 식탁에 오르는 식재료 중 하나인 자연산 방풍나물은 6년 전까지 1㎏당 2만~3만원에 팔렸다. 같은 봄나물과인 취나물이나 냉이, 달래보다 두 배 비싸다. 지금은 7000~8000원이면 구입할 수 있다. 그간 우리나라의 기후나 토양이 크게 달라졌거나 재배 농가 수가 급격히 늘어난 건 아니다. 재배 농가가 고민해 온 복잡한 유통 구조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두팔을 걷어붙인 신생 이커머스 하나가 시장 환경을 바꿔 놓았다.
기존 유통 관행을 파괴한 사업모델로 주목 받는 식품 이커머스 3사. /그래픽=김란희
2014년 설립된 식품 전문 이커머스 퍼밀(permeal) 운영사 '식탁이 있는 삶(식삶)'은 방풍나물 산지인 경남 통영 소매물도 주민들의 요청을 받아 유통구조를 살펴봤다. 주민들이 마진을 거의 남기지 않고 도매상에게 넘기는데 중간 유통과정을 거치며 가격이 3만원으로 치솟았다. 식삶은 2015년부터 자사 온라인몰에서 '청정 섬에서 해풍을 맞고 자란 노지재배 방풍나물'로 이름 붙인 상품을 포장해 1㎏당 7000~8000원에 팔았다.
가격은 3분의1로 내려갔지만 농민들의 수익은 3~4배 늘었다. 방풍나물의 연 매출은 8000만원. 한해 수십억원씩 팔려나가는 초당옥수수, 고구마 등 대표상품과 비교하면 적지만 이런 이색상품을 찾는 소비자 층은 분명히 존재하며 시장을 키울 수 있다는 게 김재훈 대표의 생각이다. 그는 "우리만의 차별화된 상품으로 승부해야 진입장벽이 생긴다"고 말했다.
마켓컬리와 오아시스마켓의 성공 이후 수많은 스타트업이 식품 이커머스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 가운데 사업성을 인정받아 꾸준히 신규 투자를 유치하고 있는 이커머스 세 곳이 옥석가리기에서 살아 남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주인공은 농산물에 특화된 식품 이커머스 퍼밀 운영사 식탁이 있는 삶, 수산물 전문 이커머스 얌테이블, 축산물 전문 유통 기업 정육각이다.
3사는 ‘산지→손질·포장→중간 도매상→소비자’로 이르는 유통 과정을 ‘산지→손질·포장→소비자’ 혹은 ‘산지→소비자’로 단축해 공급자의 마진은 높이고 소비자 가격은 낮췄다. 기존 이커머스가 외형 성장에 집중하느라 후순위로 뒀던 특정 제품군에 특화해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히고, IT 기술로 유통 과정을 효율화 해 경쟁사에 두터운 진입 장벽을 세웠다.
양석준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글로벌경영학회 부회장)는 "국내 소비자들은 그동안 신선식품은 온라인에서 품질을 판별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했지만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됐고 이제는 (구매에) 익숙해 졌다"며 "신선식품 분야에선 특히 소비자의 기대에 부합하지 못하는 회사는 살아남지 못한다. 지난해 성장한 식품 이커머스는 코로나19와 상관없이 성장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 ‘식탁이 있는삶’…쿠팡·마켓컬리에 없는 ‘이색 농산물’ 판매
찌지 않고 생(生)으로 먹어도 단 ‘초당옥수수’. 4~5년 전부터 소셜미디어(SNS)에서 입소문을 타고 방송 프로그램에 소개되면서 인기를 끈 이 농산물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소개한 곳이 식삶이다. 김 대표는 2011년 일본 식품 박람회에서 초당옥수수를 처음 맛본 뒤 종자를 수입해 국내 환경에 맞는 재배법을 개발했다. 수차례 시험 재배 끝에 상품화까지는 꼬박 3년이 걸렸다.
식삶의 전문몰 퍼밀에선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과일·야채와 ‘한끝’ 다른 변화를 준 제품들을 볼 수 있다. 가령 단맛을 극대화 하기 위해 동굴에서 100일 이상 숙성시킨 ‘동굴 속 고구마’, 쪽수는 적고 매운맛이 강한 '의성 한지형 토종 마늘', 일반 방울 토마토보다 당도가 높고 껍질이 얇은 '요요 방울토마토' 등 40여개 상품이 있다. 약간 비싸도 퍼밀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상품들이다. 김재훈 대표는 "전체 판매품목 500개 가운데 20%가 퍼밀에서만 살 수 있는 스페셜티 푸드(특산품)이고 여기서 매출의 50%가 나온다"고 말했다.
김재훈 식삶(왼쪽에서 세번째) 대표가 산지 농민들과 스마트폰으로 퍼밀 온라인 몰을 보며 대화하는 모습. / 식삶 제공
이 특산품들은 식삶이 직영 농장에서 시험 재배를 통해 발굴한 뒤, 전국 190여개 농가와 계약을 맺고 직접 키운다. 식삶이 이커머스이면서 농업 스타트업인 이유다. 갑자기 농업에 뛰어든 사람 이라면 불가능한 사업 모델이지만 김 대표는 경북 의성에서 평생 농사를 지어온 부모님으로부터 물려 받은 땅과 노하우가 있어 가능했다. 창업 초기에는 이색 농산물을 재배하겠다는 농가가 없어 전국 산지를 돌아 다녔지만 초당옥수수가 소위 대박난 이후 식삶을 믿고 계약 재배를 하겠다는 농가가 늘고 있다.
식삶 매출은 2016년 1억2000만원에서 작년 130억원으로 급증했다. 30~40대 주부 고객이 많다. 일주일에 한번 이상 구매하는 충성고객 수가 15만명으로 전년 대비 150% 늘었다. 구매 객단가도 2019년 3만4000원에서 작년 4만4000원으로 증가했다. 김 대표는 "국내 소비자들이 구매하는 식료품 종류가 3000여개인데 이중 15%가 매출 90%를 만들어 낸다"며 "우리만 가진 전략 품목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올해 흑자 전환 하는게 목표"라고 했다.
◇ ‘얌테이블’…갓 잡은 생선, 세척·손질·포장해 새벽배송
신선식품을 잘 한다는 온·오프라인 대형 유통사가 취급에 가장 어려움을 겪는 품목이 수산물이다. 신선도 유지가 쉽지 않고 조금이라도 문제 있는 상품을 팔았다가 브랜드 이미지가 단번에 추락할 수 있어서다. 코로나19가 신선식품 비대면 소비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많이 낮췄지만 여전히 많은 소비자들이 생선 만큼은 직접 보고 사야 한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대형 유통사 온라인몰에서 수산물은 농산물, 축산물에 비해 가짓수가 적고 배송이 상대적으로 느리다.
2017년 서비스를 시작한 얌테이블은 이 시장의 공백을 노렸다. 얌테이블은 본사가 경남 거제에 있다. 대대로 수산업을 하는 집안에서 자란 주상현 대표가 거제, 통영 어민들로부터 물량을 받아 크기, 품질을 선별한 뒤 손질, 세척, 포장을 한 뒤 배송한다. 제철 수산물인 멍게, 딱새우회, 도다리, 생굴 등을 서울, 경기, 인천의 경우 오후 5시까지 주문하면 다음날 오전 7시까지 받아볼 수 있다. 소비자에게 배달하기까지 걸리는 두세 개의 중간 유통단계가 없어진 만큼 평균 가격은 시세보다 20~30% 저렴하다.
경남 통영에 위치한 얌테이블 활어 작업장. / 얌테이블 제공
얌테이블은 자체 온라인 몰과 오픈마켓에서 수산물과 가정간편식(HMR) 약 400여종을 판매해 지난해 460억원의 매출을 냈다. 전년 대비 50% 증가했다. 얌테이블이라는 브랜드를 좀 더 알리기 위해 지난해 서울 강남구 세곡동에 오프라인 매장을 냈다.
주 대표는 "통영, 거제에 3000여평 규모의 수산물 전문 프로세싱(선별·세척·손질·절단·소포장) 센터를 신축할 계획"이라며 "올해 좀 더 쉽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수산물 관련 제품을 만들어 1000억원의 매출을 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 ‘정육각’…육류 제조 공정에 자동화 도입 ‘초신선 돼지고기’ 유통
식삶과 얌테이블이 제품 공급자의 시각에서 시장을 들여다봤다면 정육각은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김재연 대표가 한 명의 소비자로서 ‘더 맛있는 고기를 먹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사업의 시작이 됐다. 두 회사가 산지와의 네트워크 구축을 통한 제품 직배송에 집중했다면 정육각은 육류 가공 공정에 자동화 소프트웨어를 도입해 유통 과정을 효율화 했다.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계란이 주력 품목이다.
통상 돼지고기는 ‘농장→도축장→가공→세절→포장→판매’의 과정을 거쳐 소비자에게 유통 된다. 농장→도축장→가공까진 공급자가 한정돼 있어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 않지만 가공 이후부터 각 단계마다 중간 도매상이 여럿 개입해 과정이 지난해 진다. 소비자에 납품되기 전 창고에서 보관되는 기간이 최대 45일까지 길어진다. 정육각은 가공된 육류를 매입한 뒤 세절→포장→판매를 일괄로 진행한다. 때문에 도축된 지 4일 이내의 돼지고기를 유통할 수 있다.
정육각의 공장에서 돼지고기가 포장되고 있는 모습. / 정육각 제공
정육각은 생산 과정을 효율화 해 고기의 신선도를 유지했다. 또 제품 간 품질을 비슷하게 유지하기 위해 자동화 소프트웨어를 직접 개발했다. 카이스트 출신인 김 대표가 전체 인력의 약 10%를 IT 개발자로 고용했기에 가능했다. 이 소프트웨어는 회사가 원하는 수준의 고기 신선도를 유지하면서 공정 사이의 병목 현상을 최소화 하도록 생산 인력에게 작업 우선순위를 조정해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지난해 정육각의 매출액은 200억원 내외로 전년 대비 5배 이상 늘었다. 다른 이커머스와 달리 자사몰에서만 제품을 판매하는데, 고객 수가 2019년 말 기준 10만명에서 작년 말 40만명으로 급증했다. 김 대표는 "코로나19로 반짝 특수를 누리는 일부 업체들과 정육각은 다를 것"이라며 ‘3회 이상 구매고객의 재구매율이 97%’라는 지표를 공개했다. 정육각 제품을 세번 정도 구매한 고객은 충성 고객이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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