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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1. 18:01514 읽음 비밀글
오늘 같은 완전한 세계화 시절에는 고학력 엘리트 인력 이라면 더 나은 조건을 찾아 선진국가로 이동할 수 있지만, 대다수 인력은 그렇지 못하다. 값싼 노동력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국가는 그만큼 열악한 조건을 내걸고 있고, 이익이 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문을 열지 않는다. 그렇게 수탈에 시달리고 무능한 정부 아래에서 희망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은 선진국가로 목숨을 건 잠입을 시도한다.
하지만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람들이 국가를 바꿔 벌이가 좋은 곳으로 가기란 더 어렵고 어려운 일이 됐다. 미국의 국경 수비는 무장이 강화됐 고, 유럽의 경계도 사나워졌다. 하지만 자본은 값싼 시간제 임금을 찾아 국경이나 세금 장벽에 상관없이 이곳저곳으로 흘러 다닌다. 그렇기 때문에 자긍심 높았던 1990년대 한국 선박 노동자는 21세기에는 값싼 필리핀 노동자에게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은 구조조정이 이루어진후 필리핀으로 공장을 이전한 다음에야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발랄한 새댁 역시 공공시설 좋고 물가 안정된 선진국 주부가 아니라 장바구니 물가가 춤추고, 학원비 부담에 뒷바라지 못해준 자식들이 가난해질까봐 불안에 시달리는 중년주부가 되었다. 돈이 되는 곳으로 촘촘히 흘러드는 세상의 거대 자본 권력은 빵집으로 극장으로 구멍가게로 갈래갈래 스며 들었다.
이에 서구의 지성들은 자원을 고갈하고 인간의 정을 메마르게 하는 세계화의 물결에 저항해야 하는 이유를 우리에게 호소했다. 지금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이 문명의 풍요가 지속 가능하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번 장에서는 서구의 학자들에 이어 동양의 저항을 조직하며 세계 속에서 대안을 제시하는 원톄쥔 인민대학 교수를 만난다.
현재 문명의 중심축이자 오랜 역사와 문화의 저력을 갖고 있는 아시아의 입장에서 시대를 살펴보고자 한다. G2라 불리며 우리의 관심을 받는 중국이지만, 과연 우리가 아는 중국은 어디까지인지 가늠해볼 수 있는 기회도 될 것이다. 우리와 밀접한 문화를 공유하는 지역의 학자이기에 또 다른 상상 력의 싹을 틔워주지 않을까 싶다. 원톄쥔과의 대담은 5월 22일 베이징 인민대학교 연구실에서 진행됐다.
농업 전문가인 원톄쥔에게 농업정책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한국은 농촌 경제를 살리고자 성장정책을 쓴다. 농산물 가공품 생산과 관광상품까지 연계하여 1차, 2차, 3차 산업을 한 공간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하자는 농업 산업화를 위한 방안을 추진하는데, 이는 비단 한국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그에게 오늘날 현대 문명 속에서 생산력과 식량권을 확보하기 위한 농업정책에 대해 물었다.
“ 가족 중심 농업이야말로 식량주권을 위한 길입니다. 가족농은 국제 시장을 위한 농사가 아니니까요. 브라질의 경우 세계 최대의 농장을 갖고 있지만 모두 초국가 기업이 관장합니다. 풍작을 이뤄도 농부들이 먹고사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아요. 국제 시장으로 갈 농산물들이니까요. 기업 농장 고용인으로 일하는 농장 노동자들 가족은 기아에 허덕입니다.
브라질 노동당이 권력을 잡았을 때, 룰라 대통령이 이렇게 말했죠‘. 나의 임무는 굶주림을 없애는 일이다. 세상에서 제일 큰 농사를 짓고, 천연자 원의 보고인 이 땅에 사는 사람은 우리이기 때문에 말할 권리가 있다’라 고요. 국제 농산물시장의 패권을 쥔 초국가 기업들과 투기 자본을 향한 외침이었습니다. 주권을 갖겠다는 선언이죠.”
농부도 화폐를 지녀야 자녀 교육과 기본적인 물질문명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이다. 또한 소비사회에서 농부에게 금욕적인 삶을 강요하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그가 우려하는 지점은 비즈니스 논리로 농사를 사고하는 점이다. 시장경쟁에 뛰어들면 그때부터는 산업 사회의 거대 기업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거기서 살아남을 확률은 매우 희박 하다는 충고다. 그러하기 때문에 국가적 차원의 사고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농부는 비즈니스맨이 아닙니다. 농부는 역사적·문화적으로 식량주 권에 복무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땅에 사는 누구나 농사에 대한 책임의 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에게 대한민국은 식량자급률은 23퍼센트이지만, 언제라도 교역을 통해 식량을 수급할 수 있기 때문에 식량주권이 확보되었다고 간주된다고 말하였다. 그는 농산물 자급자족 없이 교역을 바탕으로 유지하려면한 가지 전제가 있어야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한 식량권이 위협을 받지 않으려면 생활과 산업 전반에서 자급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는 북한의 예를 들며 우려를 표했다. 자연스럽게 농업 산업화에 대한 이야 기와도 연결된다.
“1980년대에 북한에서 기아가 발생했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나요?
그때까지 그들은 풍족했어요. 석유가 공급되었으니까요. 그들은 세계에서 비교적 일찍 농업 산업화를 이루었습니다. 북한 인구의 70퍼센트가 도시에 살며, 농장을 계획적으로 현대화시켜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 30퍼 센트만으로도 기계와 비료를 이용해 필요한 생산을 완수했습니다. 모든 자원은 소련으로부터 조달해왔어요. 그러다 1991년 소련이 무너지자 그누구도 북한에 기름을 주지 않았던 거죠. 미국은 북한을 고립시켰어요.
1980년대에 비축했던 농산물은 곧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저는 당시 농업 전문가로 유엔개발계획 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me, UNDP 의 요청을 받고 북한에 갔습니다. 북한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분석을 해달라고했습니다. 제가 발견한 문제점은 과도한 농업 생산 현대화였어요. 이데 올로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많은 기계를 사용했는데, 자원 자립이 안되니, 보유하고 있던 석유가 떨어지자 멈춰버린 거죠. 기계가 멈추니 생산이 멈춘 겁니다.”
북한의 기아 발생 배경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산업화, 기계 화, 현대화라는 모델을 밀고나갈 경우 자원 자립도가 약한 나라라면 마주할 수 있는 위험 요소이다. 앞서 웬델 베리 편에서 보았듯이 기계와 비료에 의존하는 단일작물 생산은 단기적 수확은 늘릴 수 있지만, 그만큼 토질을 파괴하고 토양 손실을 야기한다.
농기계, 종자, 비료 제조자들의 권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시장에서도 농부의 권리와 이익은 불안해진다. 원톄쥔은 종속적인 관계를 위태롭게 바라보았다. 그가 말한 사고의 전환은 새로운 시대정신을 강조하는 것보다는 이미 3000년 전부터 우리가 이어오던 땅과 인간을 외경하는 바로 그 정신을 깨워내자는 ‘가치의 복원’인 것이다.
“시골에 농사를 짓는 30퍼센트가 도시에 사는 70퍼센트의 사람들을 먹여 살릴 수 있을까요? 이것은 쉬운 산수입니다. 3명이 나머지 7명을 포함해서 10명을 먹여 살리기는 힘듭니다. 이 상황이 북한에서 일어났어 요. 농업을 기계화한다고 해도 가족농 중심의 논밭에 사용하는 기계와 거대 농장의 기계는 다릅니다. 문제는 북아메리카식 거대 농장인데요.
중국의 경우도 거대 농장의 70퍼센트가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중국의 주류 세력들 가운데 바보 같은 공무원들은 미국에서 배워온그 방식을 아직도 밀어붙이려고 합니다. 이는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중국의 경우는 70퍼센트가 가족농이며, 수십 년 동안 식량 자급을 완수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10년간 최고의 수확을 올렸다고 한다. 그 가치를 지키고자 새로운 소비자 운동이 시작되었다. 특히 중류층, 중하위층을 중심으로 마음이 달라지고 있다. 주류를 향하던 관심과 욕망이 스스 로의 식량안전 시스템을 만들려는 방향으로 돌아서면서 그들이 땅으로 돌아오고 있다.
“많은 젊은 학생, 중하층 시민이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모였습니다. 농촌 재건이라는 이름을 걸고 거대한 플랫폼이 이뤄졌죠. 수천 명의 사람 들이 함께하고 있어요. 안전한 음식, 안전한 공동체를 갖고 싶은 그들은 틈나는 대로 모여 농사를 짓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조직화했어요. 스스로 한다는 그 속에 가장 강한 힘이 깃듭니다. 노인 세대까지 가족이 함께 모이죠. 여기에는 어떤 투자도 필요 없어요. 큰 주류 자본 테두리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니까요.
거대 자본이 가는 길에서 이탈한 사람들이 죠. 중국의 13억 명의 인구 중에서 10퍼센트만 다르게 움직여도 대단한 무리가 됩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농촌으로 가고 있어요. 이들은 농업을 비즈니스라고 생각하지 않고, 역사라고 생각하죠. 농업은 문화이고, 교육입니다. 또한 사회고요. 지금 우리의 운동은 세계화의 물결을 돌려 내는 사회적 재생운동입니다.”
인터뷰 도중에 밝은 미소를 띤 30대 여교수가 들어왔다. 원톄쥔은 그녀도 주말 농부라고 소개했다. 그녀는 어린 딸에게 자연이 무엇인지 알게 하기 위해 주말 농장을 시작했다고 한다. 아이들이 스스로 살아가는 기본 지식을 갖추게 하려고 밭을 일군다고 한다. 우리 인간이 스스로를 먹여 살려온 그 전통을 교육하는 일이다. 대한민국에서도 지역 사회 속에서 번져가는 운동이고, 뉴욕이나 런던, 베를린에서도 시민들이 도심한 모퉁이라도 허가를 내어 만들어나가는 도시농부 운동이다.
“주류는 당신에게 주류로 가라고 몰아갑니다. 그들은 더 많은 사람이 주류로 가도록 몰아요. 그리고 마침내 큰 위기를 창조하죠. 우리에게 쓰라린 교훈을 주었고, 그 결과 몇몇의 사람들을 돌아 나오게 만들었습니 다. 하지만 다수는 언제나 매우 게으릅니다. 변화를 원하지 않죠. 그저 따라갈 뿐입니다. 그래서 또 커다란 위기를 맞게 됩니다. 즉 대량 실업을 초래하죠.
이때 떨어져 나온 사람들은 어디로 갈까요? 작은 변화를 꿈꾸 면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어요. 아마도 10~15퍼센트 정도는 주류에서 이탈하겠죠. 이것이 혁명입니다. 우리에게 주류와의 논쟁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결코 주류학자들과 논쟁하지 않아요. 우리 스스 로가 변화하는 데 주목해야 합니다. 제가 변하면 어떤 사람들은 이 변화에 동참할 거예요. 그러면서 대안적인 사회를 만들어나가게 됩니다. 우리는 무엇이 지속 가능한 것인지 생각하고, 그렇게 만들어갈 거예요. 거대 자본과 그 주변은 계속 주류가 가는 방향으로 운행해가겠죠. 그 종착 점은 위기입니다. 바로 몰락이죠.”
그는 몰락이라는 단어를 썼고, 현대 인간이 이룬 문명을 최악이라고 덧붙였다. 긴 호흡을 하자고 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한 유명한 연설 가운데‘우리는 변화를 만들 수 있다’라는 말을 언급하며 거들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변화의 시작은 우리 안에서부터입니다.
대통령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에요.
어떤 대통령, 어떤 정치인도
대안적 요구를 하는 세력을 위해
뭔가를 바꾸겠다고 나서지 않습니다.
필요를 느끼지 않으니까요.
이는 우리의 일입니다.
원톄쥔(溫鐵軍, 1951년생)은 중국인민대학 교수이며‘, 농업 및 농촌발전대학’ 학장이다. 중국경제개혁회 사무차장과 중국 거시경제연구재단 사무차장, 제임스 옌 농촌 재건기관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1983년 중국인민대학 신문학과를 졸업하고 중앙군사위원회 총정치부 연구실, 국무원 농촌발전연구센터, 농업부 농촌경제연구센터, 중국경제체제개혁연구회 등에서 일했다.
1999년에는 중국농업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8년 지역으로 파견된 후 11 년 동안 노동자, 농민, 군인으로 일했다. 20년 넘게 여러 중앙정책 싱크탱크에서 연구했으 며, 30여 개 국가의 국제 조직, 학술집단에서 자문해왔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이른바‘삼 농( 三農 ) 문제’를 처음 제기하여, 중국 최우선의 아젠다로 확립했다.
그 덕분에 농민, 농업, 농촌 관련 문제들이 2000년대 들어서 중국공산당과 정부의 핵심 정책 과제가 되었고, 2003년 CCTV가 선정하는 경제 부문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었다. 2004년에는 두런쉥 재단 최고의 논문상을 수상했다. 현재 중국 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가장 주목받는 지식인으 로서, 국제적으로는 개발도상국의 경제 발전 문제에 조예가 깊다. 국내에 소개된 저서로는《백년의 급진》등이 있다.
22만 리 길을 다니며 세계 지성 11인과의 만남을 통해 그들의 지혜와 지구의 지속 가능에 대한 미래 진단을 이끌어낸 재미 저널리스트. <경향신문>을 통해 소개되었던 ‘문명, 그 길을 묻다’ 를 통해 11인의 석학들과 만나 나눈 이야기를 출간하게 되었다.
대학에서 불어불문학을,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8년 동안 불교방송 PD로 일하며 시사· 교양·음악 프로그램을 제작했고, 한국방송대상 교양 우수작품상(1998), 한국방송대상 연예오락 우수작품상(2000)을 수상했다. 2002년 미국으로 이주한 뒤 서구에 부는 성찰적 기운과 대안 활동을 소개하는 글을 써왔다.
문명, 그 길을 묻다
저자 안희경
출판 이야기가있는집
발매 2015.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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