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편집자주] 파티가 끝나면 청구서가 날아든다. 4인 가구에 100만원씩 나눠준 긴급재난지원금을 국민 99.5%가 한 달 만에 받아가자 올해 나랏빚이 112조원 늘어날 것(관리재정수지 기준)이라는 예측이 뒤따랐다. 여론은 1회성 지원금을 넘어 매달 지급하는 기본소득으로 옮겨갔다. 대권 잠룡들이 동조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증세 밖에는 답이 없다는 결론을 내놓고 있다. 확장적 재정정책이라는 명분으로 정부가 지출을 급격히 늘리고 있지만 누군가는 구멍난 나라 곳간을 메워줘야 균형이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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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의 비전 "모두가 잘사는 나라" 증세 없인 공염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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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국가 비전은 '포용적 복지국가'다. 이를 위해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고 전국민 고용보험 법제화를 추진중이다. 소득보장, 의료보장, 돌봄지원 등으로 경제성장과정에서 소외되는 이들을 최소화해 '모두가 잘 사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목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복지 정책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법제화해 매년 지급되는 '항구적 소요'로 고착화될 경우 재원 마련을 위해서는 증세 외에는 답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안정적 재원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정부가 추진하는 포용적 복지국가는 공염불에 그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아동수당·기초연금…늘어나는 복지지출
문재인 정부 들어 복지지출은 꾸준히 증가해왔다. 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2015년 GDP(국내총생산) 대비 10.7% 수준이던 복지지출 비중은 올해 12.3%로 올라선다. 2030년에는 16.2%까지 늘어나고 2060년에는 26.8%에 달할 전망이다.
월 최대 20만원이던 기초연금액은 2018년 25만원으로 인상되고, 2021년에는 30만원으로 상향 예정이다. 2018년부터 0~5세 아동수당이 월 10만원씩 지급되고, 장애인연금 기초급여도 25만원으로 인상됐다.
건강보험은 선별급여 적용항목이 확대되는 등 보장성이 강화됐다. 2017년부터 15세 이하 아동 입원진료비 본인부담률은 5%로 인하됐다. 첫 3개월 육아휴직급여는 2배로 인상되고 무상교육은 전체 초중고생으로 대상이 확대됐다.
◇올해 적자국채만 97.3조원…쌓여가는 나랏빚
나가는 돈이 늘어나는 데 따라 나랏빚도 점점 늘고 있다. 지난해까지 기획재정부는 국가채무비율 마지노선으로 40%를 지켜왔다. 이는 EU(유럽연합) 가입 조건이었던 마스트리흐트조약의 60% 기준에서 미래의 통일비용과 연금부담을 각각 10%씩 예상해 차감한 수치다.
정부는 코로나19에 따른 3차 추경까지 진행하면서 올해만 적자국채를 97조3000억원 발행한다. 지난해 30조원 수준에서 3배 넘는 규모로 늘어나는 셈이다. 이에 따라 국가채무비율이 급속도로 악화될 전망이다.
지난해말 37.1%였던 국가채무비율은 올해 3차 추경까지 마치면 43.5%로 늘어난다. 나라살림 평가지표인 관리재정수지는 112조2000억원 적자를 기록하게 된다.
◇전문가들 "증세 밖에 답이 없다"
전문가들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복지 재원을 감당하려면 증세 밖에 답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기축통화가 아닌 한국에서 통화를 찍어내는 것도 무리고, 계속 적자국채를 발행해 미래 세대에 빚을 떠넘기는 것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 교수는 "단순 복지 증가뿐 아니라 공무원 대규모 증원 등은 매년 발생하는 지출을 만든다"며 "증세 없는 복지 확대는 성립할 수 없다"고 했다. 안 교수는 "일부 정치인은 세금 더 걷을 필요 없이 소득공제율만 낮추면 된다고 하는데, 그게 바로 증세나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 교수는 "기존 복지정책뿐만 아니라 최근 이야기가 나오는 기본소득 도입 역시 증세를 제외하면 재원 확보가 쉽지 않다"며 "결국 증세를 해야 하는데, 근로소득세를 올릴 경우 조세저항이 생기고 부가가치세율을 높이면 가난한 이들이 더 부담을 느끼는 '소득 역진성'이 발생해 소득재분배 효과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최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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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쓴 돈, 공짜 아니에요” 전세계는 증세 검토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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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가 끝난 뒤엔 국가 재정 구멍을 다시 메워야 한다. 몇년내로 증세나 재정 지출 감소를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소리다”
지난 2일 핀란드의 산나 마린 총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극복을 위한 55억유로(약 7조4300억원) 규모의 네번째 부양책을 발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핀란드는 올해까지 추가로 188억유로(약 25조4000억원)를 추가로 차입해 코로나 이후 경기부양에 쏟을 예정이다. 지금 당장 시중에 풀리는 현금은 곧 세금으로 되 갚아야 함을 의미한 것이다.
전세계 각국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본 소득, 기업 지원 등 천문학적인 돈을 뿌리면서 벌써 구멍난 재정을 막기 위한 방안 찾기에 몰두하고 있다. 이중 가장 유력한 것이 세금 인상이다.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와 리시 수낙 영국 재무부 장관은 의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금 인상을 검토대상에 올려놓고 있다.
지난달말 하원은 존슨 총리에게 소득세, 국민 보험, 부가가치세 등 3개 항목을 검토에서 완전히 배제하라는 요구를 했지만 존슨 총리는 이를 거절했다. 존슨 총리는 “가능한 세금을 최대한 낮게 유지하고 싶지만, 현 시점에선 어떤 것도 예단하고 싶지 않다”면서 “리시 수낙 재무장관은 어떤 제안들을 가져올지 지켜보자”고 말했다. 수낙 재무장관은 기자들에게 “지출 축소나 세금 인상안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영국 언론등은 존슨 총리가 코로나19 지원책을 넘어 내년까지 인프라 투자에 총 3000억파운드(약 456조37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선 증세를 안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스페인에서도 좌파 연립정부가 증세 검토에 들어갔다.
스페인 정부는 빈곤층 230만명을 대상으로 가구당 월 최대 1015유로(약 140만원)씩 기본소득을 지급키로 했는데, 재원을 조달하려면 증세 등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을 위해 필요한 예산은 연 30억유로(약 4조500억원) 수준이다.
이미 스페인 정부는 ‘구글세’로 불리는 디지털 세금안도 통과시켜 연 18억유로(약 2조4300억원)를 조달할 계획이기도 하다. 이밖에 최저임금 추가 인상 등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부유층 증세를 논의 중이다.
미국에서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책과는 반대로 각 도시별로 개별적인 세금 인상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일부 도시들은 내년 재산세 인상 등 투표를 앞두고 있고, 아이다호주에선 소득세를 비롯한 재산세 등에 증세하자는 서명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플로리다주에선 코로나19에 인종차별 시위까지 겹치며 타격이 커지자 각 도시별로 기름값 인상 등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강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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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극복 '증세'가 대세? 獨 "그래도 우린 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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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COVID-19) 사태 이후 전 세계에서 기본소득 등 사회복지 확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이를 이행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는 재원조달인데, 대부분 부자세·부가가치세(소비세) 인상 등 세금 재조정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꼽힌다. 일명 복지 증세다. 반면 코로나19로 경기 침체가 최악으로 치닫는 가운데 세금 인상은 경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부정적인 여론도 적지 않다.
이런 가운데 일본과 독일은 각각 소비세 증세와 감세 정책을 내놓으며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소비세는 재화나 서비스를 구매할 때 부과되는 간접세인데 이를 인하하면 소비 심리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고, 반대의 경우 소비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
이들이 추진하는 조세 정책이 아직 초기 단계이고,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당장 경제적 영향 등을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전 세계 정책입안자들은 이들 국가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日 "사회 보장비, 모두 함께 지지해야"
일본 정부는 지난해 10월 소비세율을 기존 8%에서 10%로 2%포인트 인상했다. 하지만 이는 코로나19와 맞물려 올 1분기 일본 경제 실적에 압박을 가했다는 분석이다.
일본 정부가 발표한 올 1~3월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연이율 환산으로 -2.2%로 감소했는데, 이는 2015년 이후 일본이 경기 침체 국면에 접어든 것을 의미한다고 8일 블룸버그 통신이 보도했다. 이에 일본 여야 정치인들도 소비세율을 다시 5%까지 인하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감세 불가 입장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전 연령대에 걸친 사회 보장 제도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아베 신조 총리는 "소비세 10%를 당장 철회해야 한다"는 여야 의원들의 공세에 "기대에 충분히 부응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소비세 인상은 유아 교육 무상화 등 전 세대형에 대한 사회 보장 개혁을 위해 필요하다"며 감세에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아소 다로 일본 경제부총리 겸 재무대신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독일 정부의 감세와 현 일본의 소비세율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일본 정부는) 인하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기적으로 저출산·고령화가 최대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며 "사회 보장비를 모두 함께 지지하자는 관점에서 소비세가 재원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재생담당 장관도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지금 일본 정부는 소비를 자극하는 대신 일자리 보호와 기업 지원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며 "시기적절하고 유연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감세는 지금 단계에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獨, 소비 증진으로 경기 부양 우선
반면 독일은 이달 3일 27조원 규모의 소비세 인하 카드를 꺼냈다. 소비자 수요를 자극하는 데에는 세금 인하 효과가 가장 확실하다는 판단에서다.
독일의 1분기 GDP는 2.2% 감소했는데, 이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감소폭이라고 연방통계청이 밝혔다. 독일 통일 이후 두 번째로 큰 감소폭이기도 하다.
이에 독일은 1300억유로(약 176조원)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발표하며 일반 부가가치세율을 현행 19%에서 16%로 낮추고, 식료품 등 필수 품목의 부가가치세율은 7%에서 5%로 인하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감세 기간은 다음달부터 6개월간이다.
소비세 감세가 시행되면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기업들에 대한 소비가 증가해 마진이 개선될 것이란 분석이다. 또 감세 조치를 일시적으로 시행함으로써 경기 부양이 빠르게 나타날 수 있도록 유도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독일 KPMG 세무 관계자는 "독일의 감세 정책은 모두가 놀랄 만한 조치였다"며 "지출을 늘려 경제를 활성화 시킬 뿐만 아니라 기업들에게는 세금을 깎아주는 매우 광범위한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자동차 업계가 큰 수혜를 입을 것이라고도 분석했다.
다만 일본에서는 일본과 독일의 조세 정책을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의 경제주간지인 동양경제는 "독일의 소비세 감면은 재정 흑자 환원책의 일환으로 코로나19 이전부터 나오던 이야기"라며 "2008년 실질 경제성장률이 크게 떨어졌을 때도 독일은 소비세 증세 후 이를 인하하지 않고 유지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진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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