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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세계 최고의 행위예술가_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

ngo2002 2020. 6. 8.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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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8. 18:0311,216 읽음 비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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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의식을 깨워 세상을 바꾸려는 현대 미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 치와 예술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이 글에 지금 우리가 느끼는 위협의 실체나 구조의 덫을 파헤치는 이야기는 없다. 다만 모든 사회 변화의 시작이자 완성을 책임지는 구성원 개인의 각성을 이야기할 것이다. 한 생각이 세상을 바꾸는 출발이듯 어려운 시절 한 개인의 각성은 위기를 돌파하는, 보다 지긋한 행동의 동력이 될 수 있으리라 여긴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21세기 세계 대중에게 가장 추앙받는 행위예 술가다. 2010년 뉴욕현대미술관 MoMA 에서 한 작업 <예술가가 여기 있다 Artist Is Present >는 평론가들에 의해 뉴밀레니엄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선정 되었다.

그 작업에서 마리나는 미술관이 열리는 아침부터 문이 닫힐 때까지 꼼짝 않고 앉아 찾아오는 관객과 마주 앉아 침묵으로 소통했다. 716 시간 동안 이어진 퍼포먼스였고, MoMA를 찾은 관객은 뉴욕 시민보다 많은 850만 명이었다. 도시 전체를 작품 속으로 끌어들였다는 평이었다.

예술가 한 명이 이끌어낸 개인들의 변화가 번져가며 거대 도시 뉴욕이 술렁였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의 만남은 2014년 3월 13일 뉴욕 맨해 튼에 있는 그녀의 스튜디오에서 이뤄졌다.

관자놀이에 들이댄 건장한 관객의 총구도 견뎠고, 알몸뚱이 상태에서 배에 유리조각으로 별을 그리며 피를 터트리고, 화염 속에서 질식 직전까지 버텨내며 강렬한 작업을 보였던 그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에게 던진 첫 질문이다.

“ 예술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그녀는 단 1초의 머뭇거림도 없이 답했다.




“ 아뇨. 안타깝게도 못합니다.
요제프 보이스는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있다고 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절대로.

세상은 각성된 개인이 모두 실천할 때만 변화될 수 있습니다. 예술이 세상이 나아갈 길 정도는 보여줄 수 있겠죠. 하지만 의식의 변화는 개인이 이루는 겁니다.”




그렇다면 예술가의 몫은 무엇일까?
마리나는 예술가 역시 스스로 인식하도록 깨어나야 할 개인이라고 못 박았다. 그런 다음 여러 방식으로 세상을 보도록 대중의 인식을 열어내는 몫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자신이 할 일을 밝혔는데‘, 예술은 에너지’라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녀가 오래도록 연마하며 얻은 답은 바로‘예 술은 오직 에너지다’이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자연의 에너지와 연결되었던 끈을 놓쳐버렸습니다.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도 관계를 잃었어요. 테크놀로지와 스피드가 지배하는 도시에 살면서 자신의 내면과는 소통하지 않습니다. 완전하게 단절되었죠.

예술가로서 제 목적이 바로 그 관계를 회복하도록 창작하는 겁니다. 제일 먼저 관객이 현재 그 순간에 깨어 스스로를 바라보게 만드는 거죠. 모든 가치가 물질로 수렴되어 덩어리진 오늘날, 예술가는 전사 warrior 가 되어야 합니다. 전사는 새로운 영역을 정복해야 하는데, 이는 스튜디오 아트로 충분하지 않아요. 사람들 속에서 작업하는 공적 역할로 인류의 의식을 바꾸는 영역을 정복해야 해요. 이것이 오늘날 예술가의 몫입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40년 넘는 시간을 세계 여러 문화권을 다니며 내면으로 가는 의식의 과정을 살피고 공부해왔다. 그녀는 동방정교회의 전통 속에서 자랐다. 유고슬라비아에서 그녀의 부모는 건국일꾼이었다.

티토 Josip Broz Tito 와 함께 일한 아버지, 미술관장을 하는 어머니는 늘 바빴다. 어린 마리나는 할머니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았고, 교회로 기도하러 가시는 할머니와 동행하곤 했다. 향유 내음이 밴 성전에서 거듭 마주 하게 되는 러시아, 그리스, 세르비아 정교회의 이콘 회화는 어린 그녀의 마음속에 길을 내주었다. 그 속에 담긴 내면의 깨달음으로 향하는 여정에 끌렸다고 했다.

순수한 의식 상태로 도달하는 길, 그 길을 따라 내면의 빛을 생성한 다음 그 빛으로 세상을 밝혀내는 의식의 변화를 그녀도 좇았다.

그녀의 공부는 철저했다. 현대 사회 속에서 의식 변화를 적용시키고자 세계를 다니며 배움의 순례를 했다. MoMA 쇼로 뉴욕을 흔들고 세계의 주목을 받은 뒤에는 곧바로 브라질로 떠났다. 그리고 최근 3년 동안 민중 속에서 치유 의식을 하는 브라질 힐러들과 함께 연구 작업을 했다. 그 내용을 담은 비디오 작품을 2015년 3월 25일에 공개했다.

이미 티베트에서 명상을, 일본과 한국에서 샤먼의 문화를 배워온 그녀다. 인도네시아 에서는 제어된 상태에서 어떻게 육체를 움직이는지에 대해 익혔다. 불위에서 걷기, 바람을 타는 법 등 원시적 의식으로 치부되거나 혹은 문화 인류학적 대상으로 다뤄졌던 내용들을 깊이 존중하며 그들 속에서 온 몸으로 익혔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예술가의 해석으로 돈이 지배하는 물질 덩어리 서구 사회 속에 적용했다.


“사람들은 오로지 자기 자신과 오랜 시간을 마주할 때만 내면의 빛을볼 수 있다는 단순한 깨우침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마리나 프로그램을 만들었죠. 스스로의 내면과 마주하도록 친절한 방법을 제시하는 겁니다.”


예를 들면 이렇다. 타인과 침묵 속에서 마주보기, 한 시간 동안 팔을 떼지 않고 가능한 한 천천히 자신의 이름을 단 한 번에 쓰기, 소리가 차단된 공간에서 시간 보내기 등이다. 마리나는 2010년 MoMA에서 그녀의 회고전을 할 때도 자신의 과거 쇼를 재연할 35명의 행위 예술가들과 함께 같은 프로그램으로 워크숍을 했다. 5일 동안 말하지 않고 먹지 않으 며, 이른 봄 차디찬 새벽 강물에서 몸을 씻기도 하고 침묵의 방에서 의자에 앉아 있거나 모든 소리를 차단하기 위해 헤드폰을 쓰고 오랜 시간 머물기도 했다.

마리나는 이를‘집 청소’라고 부른다. 나는 온갖 기억과 경험, 관계의 흔적을 담고 있는 육신이라는 집을 청소하는 일이라고 이해했다.

그들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함께 각자 자신의 안으로 들어갔으며, 무언가를 발견했고, 증거를 남기는 변화를 이뤘다고 했다. 매우 강렬한 경험을 한 것인데, 이는 마리나가 이끈 것이 아니다. 그곳에 함께 그녀가 함께 있긴 했지만, 실상은 그녀의 존재가 사라진 뒤에 이뤄진 일이다. 모든 외부의 존재가 사라지고 오로지 홀로 스스로와 마주한 그곳에서 발견한 무엇이다.

마리나는 이를‘무색의 방법 the achromatic method ’이라고 불렀다. 나는 이를 색이 없는, 색을 물들이지 않은 본연의 색이 드러나는 발색이라고 받아들였다. 본디 있는 성품이 있던 그 자리를 발견하는 유레카! 그리고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이 모든 방법을 체험할 수 있는 학교를 2013년에 개교했다. 예술가가 아닌 모두와 그 체험을 나누는데‘, 마리나 아브라모 비치 학교 Marina Abramovic Institute ’혹은‘다수의 예술가 학교 Many Artists institute ’ 라고 부른다.



“학교는 뉴욕에서 2시간 떨어진 허드슨에 있어요. 작은 도시이지만, 그래도 뉴욕이 가진 모든 걸 다 갖추고 있습니다. 인종 차별, 빈부격차, 부패한 정치인, 마약…… 모두요. 저는 모든 시민이 우리 학교를 거쳐 가면 좋겠어요. 그 도시의 모두가 스스로를 만나는 법을 익히고 내면의 소리를 들어가며 생활한다면, 나비의 날갯짓처럼 세상을 깨워나갈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곳, 학교에 도착하면 서약을 해야 한다. 최소 6시간은 그곳에 있겠다는 약속이다. 학교는 학생에게서 6시간을 얻고 학생은 그곳에서 경험을 가져간다. 학생은 그 경험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 컴퓨터, 스마트폰, 책, 시계까지 사물함에 넣어둬야 한다. 심심해지는 것이다. 그때부터 시간으로부터 자유를 얻는다.
물 마시는 방, 생전 처음 본 사람들과 마주하고 서로를 바라보는 방 등을 다니며 시간의 다른 개념을 경험하게 된다. 스스로 자신과 만나는 접속을 일궈내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2010년에 만났을 때 마리나는 내게 곧 학교를 열 계획이라며 이미 이사회가 준비되었다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때도 그렇고, 2014년 3월에 마주하며 학교 이야기를 듣는 동안에도 나는 이 학교를 거쳐가는 그‘아무 나’모두는 예술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아티스트로 활동할 배움을 얻는 곳이라 여겼다. 학교니까. 그녀가 레이디 가가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이제 레이디 가가 역시 이 프로그램을 마쳤으니 마리나 아브라모비 치와 함께 콜라보 공연을 하겠구나 여겼다.

마리나에게 레이디 가가의 공연이 언제냐고 물으니, 아직도 예술가들의 학교가 예술가를 양성하는 학교로 여기냐며 “노, 노, 노 No, No, No ”를 연발한다.


“아니에요. 저는 더 많은 아티스트를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여긴 문화적 스파 spa 예요. 사람들이 스스로를 앎으로써 인식을 얻고 그것으로 자신의 생활 속에서, 자신의 일터에서 성찰하는 경험을 만들어내도록 힘쓰는 거죠. 레이디 가가도 학교에서 저와 함께한 경험을 자신의 음악에 쏟아 부었을 겁니다. 그녀가 새로운 행위예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기 일, 자기 음악 공연을 한 거죠.”

그렇다. 한참 동안 마리나가 설명한 학교 프로그램은 학교 홍보도, 학교 소개도 아니었다. 바로 사람들과 나누고자 하는 그녀의 자기 성찰에 이르는 안내 길인 셈이다. 굳이 마리나의 학교에 가지 않아도 우리는 이를 그냥 한 번 따라 해보면 된다.

6시간 동안 책도 시계도 스마트폰도 컴퓨터도 없는 시간. 같은 경험을 나누면, 바로 마리나가 원하는 스스로 한번쯤 자신과 마주한 사람이라는 그 경험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한 번도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타인을‘탓’하며 애써 개인과 개인의 연결을 거부해온 시간과는 다른 질에 다다를 것이다. 적어도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그 순간에 한층 더 깊이 집중하지 않을까?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프로그램의 작동 원리는 현재 속에 사는 것이다.

현재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가는 겁니다. 우리는 과거도 미래도 만질수 없어요. 과거는 이미 벌어졌고, 미래는 아직 벌어지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나 현재는 벌어지고 있습니다. 현재야말로 우리가 관련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에요. 보세요. 이 세상에는 순간마다 얼마나 많은 나쁜 일이 벌어집니까. 우리가 스스로에게서 완전하게 차단되어 있기 때문이에 요.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문제의 원인이 이 지점으로 모입니다.

더 이상 도덕성이 없습니다. 책임감, 정직이 사라졌어요. 불안하기 때문 이죠. 탐욕이 전쟁을 만들고, 지금도 서로를 죽이고 있어요.

21세기인데, 왜 변하지 않고 있나요? 삶에 대해, 우리 자신의 가치관을 바꾸는 가능성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작 필요한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 이 지구를 다양한 방식으로 죽여가고 있습니다. 일본 후쿠시마에서 벌어진 일, 시리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모든 곳이 미쳐 돌아가고 있습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 1946년생)는 21세기를 대표하는 현대미술 작가이다. 구 유고연방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빨치산 전사로 유고 건국에 앞장선 국민영웅인 어머니와 아버지 슬하에서 태어난 마리나는 1960년대 유고슬라비아에서 아티스트로 두각을 나타냈다. 1970년대 들어 유럽 전역으로 활동의 폭을 넓혔고, 반세기 가까이 기존의 시각을 깨는 적극적 행위예술 활동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녀는 행위자와 관객 사이의 관계를 탐험해왔고, 그 소통을 통해 물질에 압도당하는 세상에서 생명의 존엄을 자각하도록 관객을 이끌었다. 1997년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상했으 며, 2010년 MoMA(뉴욕현대미술관) 회고전 이후 세상의 더욱 많은 관심을 받으며 더 깊어진 사유를 예술로 펼쳐 보이고 있다.


 

22만 리 길을 다니며 세계 지성 11인과의 만남을 통해 그들의 지혜와 지구의 지속 가능에 대한 미래 진단을 이끌어낸 재미 저널리스트. <경향신문>을 통해 소개되었던 ‘문명, 그 길을 묻다’ 를 통해 11인의 석학들과 만나 나눈 이야기를 출간하게 되었다.

대학에서 불어불문학을,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8년 동안 불교방송 PD로 일하며 시사· 교양·음악 프로그램을 제작했고, 한국방송대상 교양 우수작품상(1998), 한국방송대상 연예오락 우수작품상(2000)을 수상했다. 2002년 미국으로 이주한 뒤 서구에 부는 성찰적 기운과 대안 활동을 소개하는 글을 써왔다.


 

문명, 그 길을 묻다

저자 안희경

출판 이야기가있는집

발매 2015.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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