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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한국과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30년 시차를 두고 비슷한 하향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일본 경제가 장기 불황 초입에 들어선 1990년대 일본은 경제의 기초체력을 보여주는 잠재성장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일본은행에 따르면 일본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1985~1989년 4.2% 수준이었으나 이후 2.8%(1990~1996년), 0.3%(1997~2003년)로 떨어졌다. 한국도 비슷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잠재성장률은 2000년대 초반 5% 수준이던 것이 2010년대 들어 3.4~3.7%로 떨어졌고 2016년 이후엔 2.8% 수준까지 떨어졌다.
양국 경제성장률도 약 2%포인트 차이가 있긴 하지만 30년의 시차를 두고 비슷한 하향 추세를 그렸다. 일본의 실질 GDP 증가율은 1970~1980년대 평균 4.5%에서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된 1990년대 1.3%대로 하락한 뒤 2000년대는 0.7% 선, 2010년대는 1.0% 선을 기록했다. 이 같은 패턴은 최근 들어 한국에서 비슷하게 반복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 2010년과 2011년 각각 6.8%와 3.7%를 기록한 이후 2012년 2.4%로 처음 2%대에 진입했고, 지난해에는 2.7%를 기록했다. 올해 성장률은 2%를 넘기 힘들다는 전망도 다수 나오고 있다. 이 경우 성장률이 1%대에 머무르는 저성장이 고착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일본의 경제 활력을 급속도로 떨어뜨린 인구구조 변화 역시 판박이 흐름을 보이고 있다. 오히려 우리가 더 심각하다. 일본은 1970년 고령화사회(65세 이상 비율 7%)에서 1994년 고령사회(65세 이상 비율 14%)로 접어들었다. 이후 1999년 경제활동인구 비중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우리나라 생산연령인구(15~64세) 비중은 2012년 정점을 찍은 이후 계속 하락하고 있다.
여기에 한국은 일본에 비해서도 고령화 속도가 더 빠르다.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로 접어드는 데 일본은 24년이 걸렸지만 한국은 17년 만인 2017년 고령사회에 접어들었다.
경제성장 동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물가까지 낮아지는 상황이 겹친 것도 심상치 않은 대목이다. 일본 물가상승률은 1992년 직전 해(3.4%) 대비 급락한 1.5%를 기록하며 1%대에 접어들었다. 이후 3년 뒤인 1995년 마이너스 물가(연 -0.1%)를 경험했다. 한국도 올해 들어 8개월 연속 0%대 물가 상승률을 기록했으며 지난달에는 1965년 통계 작성 이래 처음으로 마이너스 물가 상승률(-0.04%)을 기록했다.
수출 경쟁력 하락도 좋지 않은 시그널이다. 한국 수출은 지난해 12월부터 9개월 연속 감소했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무역이 힘을 잃으면서 생긴 것인데 한국도 현재 수출이 고꾸라지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국 각종 지표들이 20년 전 일본과 닮은꼴 형태를 보이는 만큼 시급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2010년대 초 `일본화` 조짐이 보였지만 현재는 점점 더 강해지고 빨라지고 있다"며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경기 변동을 넘어선 차원의 현상으로 경기 불황과 동시에 여러 성장동력이 꺼지면서 발생한 현상이다.
박상준 와세다대 교수도 "일본처럼 강한 거품 붕괴를 통한 불황은 아니란 차이가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미 한국이 일본식 불황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일본식 불황을 여전히 미래 일로 얘기하고 대응책을 마련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현재진행형으로 생각하고 당장 대응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장기 불황 초입에서 전무후무한 상황을 겪다 보니 1998년까지도 일시적 상황이라고 판단해 대응이 늦어지면서 장기 불황의 골을 벗어나는 데도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는 설명이다.
<시리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