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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장점을 자랑하지 마라(無說己之長)
남에게 베푼 건 기억하지 말고(施人愼勿念)
은혜를 받은 것은 잊지 마라(受施愼勿忘).’
후한(後漢) 시대 학자 최원(崔瑗)이 쓴 좌우명(座右銘)의 시작 부분이다. 그는 서예로 이름을 날렸지만 어려서 부모를 잃고, 또 형을 살해한 사람을 법의 심판대에 세우기보다는 자신이 직접 처단해 옥에 갇히는 등 굴곡 많은 삶을 살았다. 그런 연유로 그는 ‘자리(座)’의 ‘오른쪽(右)’에 일생의 지침이 될 좋은 글을 ‘쇠붙이에 새겨 놓고(銘)’ 생활의 거울로 삼았다. 좌우명이 세상에 퍼지게 된 유래다.
그러나 좌우명의 시작은 원래 문장(文章)이 아닌 술독이었다고 한다. 춘추오패(春秋五覇)의 하나였던 제(齊)나라 환공(桓公)에겐 묘한 술독이 있었다. 비어 있을 때는 비스듬히 기울었다가 반쯤 차면 바로 서고, 가득 차면 엎어졌다. ‘가득 차면 뒤집힌다’는 ‘만즉복(滿則覆)’이라는 말도 여기서 나왔다. 환공은 이 술독을 늘 자리 오른쪽에 두고 교만을 경계하고자 했다. 훗날 환공의 묘당(廟堂)을 찾았던 공자(孔子)가 이를 보고 제자들에게 이르기를 “공부도 이와 같다. 자만하면 반드시 화(禍)를 초래할 것”이라고 했다.
최근 차기 한국은행 총재의 유력한 후보 중 한 명으로 거론되는 김중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재 대사가 밝힌 좌우명 ‘낭중지추(囊中之錐·주머니 속의 송곳)’가 눈길을 끈다. 올해 63세로 현재의 OECD 대사 자리가 14번째 근무처지만 “가고 싶다고 해서 간 적은 없다”고 한다. 묵묵히 열심히 일하다 보면 주머니 속 송곳처럼 자연스레 알려진다는 겸손함이 있다. 아울러 인재는 언젠가는 발탁된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도 엿보인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踏雪野中去)
발걸음 하나도 어지러이 마라(不須胡亂行)
오늘 내가 걸어가는 발자취는(今日我行跡)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遂作後人程).’
김구(金九) 선생께서 즐겨 휘호(揮毫)로 쓴 시구이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좌우명이기도 하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럽지 않은 길을 가려 했던 선인(先人)들의 의지가 배어 난다. 세파(世波)에 파묻혀 하루하루 살기에 바쁜 오늘의 우리에겐 어떤 좌우명이 필요한 것일까.
유상철 중국연구소 소장
유상철 기자 [scyo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