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SOS]
문서 작성 않고 말로만 한 약속
증여계약 없던 일로 할 수 있어
“잘못 또 하면 전 재산 포기” 각서
혼인 중에 수십 장 썼어도 무효
문서로 작성했다고 법원에서 무조건 효력을 인정하는 것도 아니다. 부부싸움을 한 뒤 반성문처럼 쓰는 ‘각서’가 대표적이다. 배금자 변호사(해인법률사무소 대표)는 “이혼 상담하러 온 부부가 빠짐없이 들고 오는 게 각서다. 수십장씩 가져오는 사람도 많다”고 말한다. 그는 “상당수 각서가 ‘또 한 번 잘못하면 이혼할 때 전 재산을 포기한다’는 내용”이라며 “이 각서가 법적 효력이 있는지를 궁금해한다”고 들려줬다.
혼인 중에 쓴 재산분할 포기 각서는 법적인 효력이 없다. 공증을 받았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재산분할 제도는 부부가 혼인 기간 모은 실질적인 공동재산을 분배하는 게 목적이다. 따라서 재산분할 청구권은 부부가 갈라설 때 비로소 발생한다. 이 권리를 혼인 중에 미리 포기할 수는 없다.
각서도 제대로 쓰면 효력이 있다. 부부 계약 취소권 제도가 2012년 사라졌기 때문이다. 방 변호사는 “과거에는 부부간의 계약은 언제든지 취소할 수 있었다. 수북이 각서를 써도 효력이 없었다”고 말한다. 이 제도가 폐지되면서 부부간 각서도 일반적인 계약과 똑같아졌다.
다만 불공정한 법률행위를 내용으로 하는 각서는 여전히 종잇조각에 불과하다. 예컨대 ‘한 번만 더 술을 마시고 외박을 하거나 바람을 피우면 배우자에게 거액을 준다’는 식의 각서를 쓰는 경우가 있다. 이때 액수가 지나치게 크면 각서 효력을 인정받기 어렵다. 강요나 협박에 의한 각서도 무효다. 배 변호사는 “이혼 조건 없이 증여 계약서 쓰듯 구체적으로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단순히 ‘아파트 명의를 넘겨준다’ 식이 아니라 증여 시기, 부동산 증여에 필요한 모든 비용, 계약을 어길 시 조건 등을 상세하게 적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각서는 공증 절차를 거쳐야 할까. 방 변호사는 “공증은 판결문이 아니라 법률행위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해주는 절차”라며 “공증을 받더라도 법적 원칙에 어긋나면 각서는 효력이 없다”고 설명했다. 배 변호사는 “각서는 자필로 서명하고 인감도장을 받으면 공증을 받지 않더라도 인정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