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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 10년.. '사시낭인' 가고 '변시낭인' 오다

ngo2002 2019. 4. 8. 08:55

로스쿨 10년.. '사시낭인' 가고 '변시낭인' 오다

이재 기자 입력 2019.04.08. 03:01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 처음 문을 열고 나서 강산이 바뀌었다. '시험을 통한 선발에서, 교육을 통한 양성으로'를 슬로건으로 도입한 로스쿨이 2009년 처음 신입생을 받은 뒤 배출한 변호사는 지금까지 1만 884명이다. 1963년 1회 시험을 시작으로 '개천에서 용 나는' 신화를 쓴 사법시험도 2017년 59회 시험으로 폐지되면서 로스쿨은 법조인을 양성하는 국내의 유일한 제도로 자리매김했다. 평가는 엇갈린다. 국내 법조계에 '다양성'을 높였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합격자들의 실무능력이 다소 떨어진다는 지적이 공존하고 있다. 로스쿨 10년, 법학교육의 변화와 과제를 살펴봤다.

/Getty Images Bank

◇다양한 전공·배경 갖춘 변호사 배출

로스쿨 10년의 성과로 첫손에 꼽히는 건 바로 다양성 확보다. 2012년 변호사시험을 처음 치른 뒤 지난해 7회 시험까지 비법학 전공자 출신의 비율은 49.49%에 달했다. 지금까지 로스쿨이 배출한 변호사 1만여 명 중 약 절반은 학부에서 법학을 전공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반면 사법시험의 2008년부터 2017년까지 10년간 합격자 가운데 비법학 전공자 출신의 비율은 17.85%에 불과했다. 법학이 아닌 다양한 분야의 경험을 쌓은 전문가를 변호사로 양성한다는 애초 도입 취지는 어느 정도 달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변호사 출신배경이 법학 전공자에서 인문·사회·공학 등으로 다양해지면서 법조계의 변화도 감지된다는 평가다. 김정욱 한국법조인협회장(2009년 입학)은 "로스쿨 입학 동기 가운데 회계사 등 자격증을 취득한 상태에서 입학한 경우도 많았다"며 "로스쿨 도입 뒤 다양한 배경을 가진 변호사가 배출돼 법조계 특유의 카르텔이나 악습도 깨지고 있다"고 바라봤다.

학원과 고시촌 중심의 사교육에서 강의실과 캠퍼스 중심의 공교육으로 전환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과다. 이형규 한양대 로스쿨 교수는 "이전엔 지원자가 사회와 거리를 둔 채 시험공부에만 몰두하는 선발 체계였지만 지금은 관련 부처와 법조단체가 엄격히 관리하는 대학 강의를 통해 체계적으로 육성·관리한다는 점이 다르다"고 덧붙였다.

◇'변시낭인' 꾸준히 늘어 전년 1500명 규모

물론 긍정적인 변화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변시낭인'(변호사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이 늘고 있다는 점은 로스쿨로서는 뼈아픈 지적이다. 로스쿨 도입 배경 중 하나가 사시에만 몰두해 취업도 하지 않는 청년층인 '사시낭인'을 해소하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법무부가 변시 합격률을 25개 대학 로스쿨 입학 정원 2000명의 75% 수준(1500여 명)으로 유지하면서 변시낭인은 빠르게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응시자가 아닌 입학 정원을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에 응시자가 아무리 늘더라도 합격자는 매년 1500여 명 규모를 넘기지 못했다.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이들이 재수생 또는 장수생으로 다음 시험에 응시하면서 응시자가 매년 큰 폭으로 늘어 지난해는 3240명을 기록했다. 로스쿨 학생협의회는 이 가운데 1500여 명을 변시낭인으로 보고 있다. 서완석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변시 합격률이 계속 떨어지면서 사시낭인이 변시낭인으로 이어졌다"며 "이로 인한 사교육 문제도 갈수록 심각해졌다"고 비판했다.

이 때문에 변시 합격률을 입학 정원이 아닌 응시자의 60%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핵심은 변시가 애초 '자격시험'으로 기획됐지만, 현재는 '선발시험'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원안대로 자격시험화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변시에 유리한 과목 선호도↑… 쏠림 현상도 나타나

이렇듯 평가가 엇갈리는 가운데 로스쿨의 교육도 도마에 올랐다. 로스쿨의 교육과정은 크게 이론과 실무로 나뉜다. 이론 교육은 헌법과 민법, 형법 등 기본적인 법률에 대해 이해를 하는 과목이고, 실무 교육은 모의재판이나 고소장 쓰기 등 실제 법조 현장에 진출해 맞닿뜨리는 것을 미리 배우는 교육이다. 당초 사시 체제에서 이론을 공부해 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에 들어가 실무를 익히는 이원화 방식을 로스쿨에선 함께 교육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로스쿨 가운데 이 두 가지를 모두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곳은 거의 드물다.

배경은 다시 변시다. 변시 합격이 어려워지면서 로스쿨 학생들이 다른 무엇보다 변시에 유리한 과목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한 로스쿨 교수는 "변시에 나오지 않는 과목을 가르치거나 내용을 설명하는 것도 미안할 정도"라고 말했다. 특히 변시의 전문 과목, 즉 선택 과목은 쏠림 현상이 심각한 수준이다. 로스쿨협의회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치러진 7회 시험까지 전문과목 7개 중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과목은 국제거래법이다. 무려 42%가 국제거래법을 전문 과목으로 택해 시험을 봤다. 이어 환경법(23%), 노동법(16%), 경제법(9%), 국제법(5%), 지적재산권법(3%), 조세법(2%)이다. 왜일까.

원인은 시험 범위와 난이도다. 변시 수험생을 위해 법무부가 시험 범위를 요약·정리해 배포하는 수험생용 법전을 보면 답을 알 수 있다. 지난해 시험을 기준으로 법무부가 내놓은 수험생용 법전은 총 1943쪽이다. 이 전체가 시험 범위다. 이 가운데 국제거래법 시험 범위는 35쪽이다. 반면 조세법은 810쪽에 달한다. 합격률이 갈수록 낮아지는 가운데 같은 기간에 공부해야 할 시험 범위의 차이가 23배에 달하는 셈이다.

실무 교육도 난항은 마찬가지다. 과거 사법연수원에서 2년간 몰입해 배우던 것을 이론과 함께 배워야 하는 게 문제다. 학습량에 비해 학습시간이 턱없이 모자란 것. 여기에 변시 부담까지 겹치니 실무교육도 ‘맛보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특성화 교육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각 로스쿨은 개원 당시 대학마다 특성화를 이루겠다며 거액을 들여 초빙했던 특임교수들도 학부 교양강의에 투입돼 10명 미만의 학생을 가르치는 촌극까지 빚어지고 있다.

◇‘실무능력 배양’ ‘학문으로서의 법학’ 앞으로의 과제는

실무능력이 떨어진다는 비판은 로스쿨 출신 변호사에겐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인식이다. 이에 실무 교육을 이끌 수 있는 경험이 있는 교수 비율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현재 실무교수 비율은 법적으로 20%가 하한선이다. 단순히 법적 비율을 맞추는 데 급급하지 말고 실무교수 비율을 대폭 확대해 실제 변호사 업무를 교육해야 로스쿨 교육의 질을 더욱 높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로스쿨 출신 한 변호사는 “로스쿨 내 실무 경험이 있는 교수와 그렇지 않은 교수 사이의 갈등이 실무교수 확대를 가로막는 요인”이라며 “로스쿨 교육 발전을 위해선 대학의 자구 노력이 필요한 과제”라고 설명했다.

로스쿨로 인해 학문으로서의 법학이 위축됐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실제 로스쿨 출범 이전 2007년 1만1828명이던 법학과 신입생 수는 2018년 4652명으로 60.7%p 감소했다. 현재 법학교수의 주류를 차지하는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고 나면 학문으로서의 법학을 연구하는 인력이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감을 갖는 이유다. 이런 입장에는 로스쿨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일반대 법학과 교수나 로스쿨 소속 교수 모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렇지만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로스쿨을 졸업해 변호사나 판·검사가 돼 사회 갈등을 직접 다뤄본 법조인이 다시 로스쿨에 입학해 관련한 법학을 연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여기에는 학위만 취득해 교수로 임용되고 법학을 연구한 방식은 학문으로서의 법학 발전에 이바지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깔렸다. 한상희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학위를 딴 교수를 중심으로 이뤄진 그간의 법학 연구는 사회 갈등에 대한 깊은 이해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았다”며 “로스쿨 출신 변호사가 경험을 쌓은 뒤 다시 로스쿨로 입학해 현실을 반영한 법학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순환구조를 만드는 준비에 나서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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