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남자, 그들은 누구인가
천관율 기자 입력 2019.04.15. 14:02 수정 2019.04.15. 14:27
<시사IN>과 여론조사 전문기업 한국리서치는 올해 1월부터 ‘20대 남자 현상’을 주제로 심층조사를 기획했다. 준비를 시작하자마자, 우리는 어려운 질문에 마주쳐야 했다. 대체 ‘20대 남자 현상’이 뭐지?
20대 남자 현상이 존재하는 건 분명하다. 20대 남성은 지난해부터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유난히 빠졌던 집단이다. 청와대 내에서도 이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대책을 검토했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에서 이 주제로 보고서를 만들었다가 페미니즘 비하 표현이 들어가는 바람에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올해 2월에는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가 20대 남성의 마음을 헤아리겠다며 사과했다. 온라인에서는 ‘메갈리아’가 탄생한 2015년을 기점으로 5년째 젠더 전쟁이 끊이지 않고 벌어진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여기까지다. 이 현상의 원인은 고사하고 정체가 무엇인지부터가 뚜렷하지 않다. 젊은 보수 세대가 탄생하는 중인가? 페미니즘 물결에 대한 반작용인가? 여성혐오가 확산되는 사회심리 현상일까? 성별 권력관계가 이미 역전되었는데 사회가 그 현실을 못 따라가기 때문인가? 공정성에 유난히 민감한 ‘공정세대’가 등장했나? 입시와 취업 전쟁으로 이어지는 ‘시험 공화국’이 낳은 결과물일까? 저성장이 이 세대를 좌절시켰을까? 이제 주류가 된 386 세대에 대한 젊은 세대의 저항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 온라인에서 보이는 소수의 극단주의자가 그저 과대평가된 것일까? 지금까지 제기된 설명만 모아도 목록이 꼬리를 문다.
2019년 3월. 몇 번인가 기획 미팅이 도돌이표로 끝난 어느 날, 기자는 한국리서치 정한울 연구위원(정치학 박사)과 마주 앉아서 푸념을 늘어놓고 있었다. 현상의 원인을 찾아도 모자랄 시간에, 현상 자체가 무엇인지부터 검증해야 할 판이었다. 보수화 가설도, 공정세대 가설도, 시험 공화국 가설도, 반(反)페미니즘 가설도, 여성혐오 가설도, 세대갈등 가설도 증거가 부족해 보였다. 묵묵히 듣고 있던 정한울 연구위원이 간명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정말 그렇네요. 그러면 다 물어보죠 뭐.” 기자는 처음에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뭘 다 물어본다고요?” “그거 전부 다요.”
그래서 전부 다 물어보기로 했다. 떠올릴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최대한 다 집어넣은 질문지를 짰다. <시사IN>과 한국리서치가 공동 기획한, 질문 숫자가 208개에 이르는 초대형 여론조사는 그렇게 탄생했다. 이런 방대한 조사는 전화로는 불가능하다. 질문 208개를 듣기 한참 전에 거의 모든 응답자의 인내심이 고갈될 것이다. 대안은 온라인에서 응답자들이 답변을 클릭하는 방식의 웹조사다. 문항이 방대해지더라도 응답률이 별로 떨어지지 않는다. 한국리서치는 웹조사용 패널 44만명을 확보하고 있다.
3월20일부터 3월22일까지 사흘 동안,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20대 여론을 정교하게 보기 위해, 20대(여론조사 단위로는 19~29세이나, 이 기사에서는 편의상 20대로 부른다) 응답자만 500명을 확보했다. 즉, 이번 조사의 응답자는 20대 남녀 500명, 그 외 연령대의 성인 남녀 500명이다. 전체 결과를 합산할 때는 연령별 가중치를 계산하여 인구 비례에 맞췄다. 조사 요청을 보낸 사람은 1만2385명, 조사에 참여한 사람은 1303명이다. 이 중 303명이 중도에 조사를 포기했고 1000명이 최종 응답했다. 조사 요청 대비 응답 비율은 8.1%, 조사 참여자 대비 응답 비율은 76.7%다.
20대 남자 현상의 백미는 단연 젠더 문제다. 노동시장 성차별 문제, 연애·결혼 시장의 성차별 문제, 그리고 페미니즘 문제에 이르기까지, 20대 남자는 젠더 문제에 가장 일관되고 강력하게 반응한다.
“남성 차별 심각하다” 68.7%
한국 사회의 여성 차별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물었다(<표 1-1> 참조). 20대 남자 중 60.8%가 “심각하지 않다”라고 답했다. 그런데 이것은 20대 남자 현상이 아니다. 30세 이상 남자들의 평균 응답도 20대와 다르지 않다. “심각하지 않다”가 59.7%다. 여성 응답은 어땠을까. 20대 여자는 “심각하다” 쪽으로 단연 쏠린다. 85.4%다. 30세 이상 여성도 여전히 여성 차별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심각하다”가 65.8%다. 여성 차별에 대해서는 전 세대에 걸쳐 남녀의 인식 격차가 크다.
20대 남자 현상은 그다음 문항에서 드러난다. 한국에서 남성 차별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물었다(<표 1-2>). 20대 여성은 “심각하지 않다” 56.2%로 미적지근했다. 30세 이상 여성은 더 시큰둥하다. “심각하지 않다” 70.1%다. 남성 차별이란 아직 한국 사회에서 낯선 개념이다. 남자들도 30세 이상은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심각하지 않다”가 60.3%로, 오히려 20대 여성보다도 높다. 그런데 20대 남성으로 오면 아주 다른 결과가 나온다. “심각하지 않다”는 26.8%로 추락하고, “심각하다”가 68.7%까지 치솟는다. “매우 심각하다”라는 강한 응답만 따로 봐도 30.5%나 된다.
이것으로 흥미로운 차이가 드러난다. 20대 남성은 여성 차별 문제를 가볍게 평가한다는 점에서는 특별하지 않다. 이 대목에서 20대 남성은 기성세대 남성과 일치한다. 20대 남성이 진정으로 특별한 집단이 되는 것은 남성 차별 문제를 무겁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차별받고 있다는 인식은 일관된 분노와 강한 결집력과 지치지 않는 지구력을 만들어낸다. 이것은 기성세대 남성에게서 찾기 어려운 인식이다.
그런데 어떤 차별일까? 20대 남성은 어느 대목에서 차별받았다고 느끼나? 노동시장, 연애·결혼 시장, 법 집행 등 어느 영역에서 차별 인식이 등장하는지 실체를 추적해봤다. 노동시장부터 보자. 취업 기회가 대체로 공정하다고 보는지, 남녀 중 어느 한쪽에 불리하다고 보는지를 물었다(<표 2-1>). 전체 응답자 평균은 “여성에게 불리하다” 49.1%, “공정한 편” 31.2%, “남성에게 불리하다” 13.7%다. 여성이 불리하다는 인식이 다수인 가운데, 공정하다는 인식도 만만치 않다. 30세 이상 남자의 응답도 이 순서다. “여성에게 불리” 42.8%, “공정” 36.6%, “남성에게 불리” 16.4%였다. 그런데 20대 남자로 오면 순서 자체가 뒤집힌다. “공정” 45.9%, “남성에게 불리” 29.2%, 그리고 맨 마지막이 “여성에게 불리” 16.9%다.
다음으로 승진·승급 기회가 공정한지 물었다(<표 2-2>). 이 영역은 특히 여성에게 불공정하기로 악명이 높다. 전체 평균 응답도 한쪽으로 크게 기운다. “여성에게 불리” 응답이 67.1%다. 30세 이상 남자도 동의한다(“여성에게 불리” 64.2%). 20대 남자는 이번에도 예외다. “여성에게 불리” 응답이 31.6%로 크게 떨어지고, “공정” 응답이 더 우세해진다(41.5%). “남성에게 불리” 응답도 제법 나온다. 16.8%다.
한국 노동시장이 여성에게 불공정하게 기울었다는 인식은 공감대가 넓다. 취업은 대체로 그렇고, 승진과 승급은 더 선명히 그렇다. 그런데 20대 남성만은 두 영역 모두 “공정”하다고 인식한다. 노동시장에서 20대 남성은 차별 피해를 적극 주장하지는 않는다. 다만 다른 세대 여론과 동떨어진 채로 노동시장에 여성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연애·결혼 시장은 온라인에서 젠더 전쟁의 단골 소재다. ‘김치녀’라는 말은 ‘연애와 결혼에서 이기적으로 구는 한국 여성’을 뜻하는 멸칭으로 출발했다. 남녀 중에 누가 연애·결혼 상대에게 더 순수하고 헌신적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표 3-1>). 이 주제로 온라인 공간에서 매일같이 벌어지는 젠더 전쟁을 떠올려보면, 성별에 따라 응답이 극적으로 갈리리라고 우리는 예상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별 차이 없다”는 응답이 50.8%로 가장 많았다. 어느 한쪽이 일관되게 순수하고 반대쪽이 일관되게 이기적이라는 인식은 온라인에서 보는 것만큼 보편적이지 않다. 오히려 이런 식의 성차 논쟁에 가장 시큰둥한 세대·성별 집단이 20대 남자다. 20대 남자 중에서 “별 차이 없다” 응답은 61.1%로, 모든 세대·성별 중에서 가장 높다.
다른 방식의 질문에서도 이 결과는 그대로 유지된다. “한국 여성은 연애와 결혼에서 남성에게 이기적으로 군다”라는 말에, 20대 남자의 54.4%가 동의했다. 30세 이상 남자의 52.3%와 사실상 차이가 없다. 연애·결혼 시장에서 여성의 태도를 평가하는 문제로 보면, 20대 남성은 특별히 유난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미묘한 차이가 있다. 20대 남자들은 여성이 이기적이라고 특별히 더 강하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연애와 결혼이 여성에게 더 유리한 게임이라고는 특별히 더 강하게 생각한다. “한국의 결혼 문화가 여성에게 더 유리하다”라는 문장을 제시하자(<표 3-2>), 동의하는 여성은 19.8%에 그쳤다. 30세 이상 남성은 48.2%(동의) 대 47%(동의 안 함)로 팽팽하다. 그런데 20대 남성은 이 말에 66.3%가 동의한다. 셋 중 두 명이 ‘결혼은 여자한테 유리한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사회 평균은 물론이고 기성세대 남성의 인식과도 꽤 떨어져 있다.
그러니까 20대 남자의 눈에는, 연애와 결혼 게임의 상대보다는 이 게임의 규칙이 더 나빠 보인다. 20대 남자는 여자들에게 유난히 화가 나 있는 남자가 아니다. 이 대목에서 이들은 적어도 기성세대 남자와 비슷한 정도만 화를 낸다. 대신 20대 남자는 게임의 규칙에 유난히 화가 나 있다.
다음 조사 결과와 함께 보면 더 의미심장해진다. ‘법 집행’이 남녀 어느 한쪽에 유리하다고 보는지를 물었다(<표 4-1>). 여성들은 30.2%가 “여성에게 불리”하다고 응답했다. 20대와 30세 이상 여성의 차이도 거의 없다(20대 여성 30.1%, 30세 이상 여성 30.2%). 30세 이상 남성도 “남성에게 불리” 응답은 26.7%에 그친다. 자신이 속한 성별을 법이 불공정하게 취급한다는 믿음은 어느 세대·성별에서도 셋 중 한 명을 넘지 않는다.
강력하게 내재된 ‘반(反)페미니즘’
이번에도 20대 남자는 예외다. “남성에게 불리” 응답이 절반을 넘는 53.6%다. 30세 이상 남성은 26.7%만 이렇게 생각한다. 20대 남자는 기성세대 남자보다, 법 집행이 남자에게 불공정하다는 인식이 두 배 높다. 남녀 간 공정성 문제를 다룬 모든 문항 중에서, 법 집행에 대한 태도가 가장 극적으로 갈렸다. ‘20대 남성 현상’의 핵심은 남성이 차별받는다는 인식이고, 이 인식이 가장 두드러지게 확인되는 주제는 법의 집행 영역이었다. 초·중·고교 교육제도, 대학 입시제도, 재산과 소득 분배, 연애와 결혼시장 등 어느 영역에서든 20대 남성은 대체로 튀는 응답을 내놓는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법 집행’ 문항에서 튀는 정도가 유난히 컸다.
20대 남성들은, 연애·결혼 시장이건 국가정책이건 간에, 게임의 법칙이 불공정하다고 인식한다. 분노의 핵심은 남성 차별이고, 차별론의 핵심은 (‘이기적인 여자들’이 아니라) 게임의 법칙이 왜곡되어 있다는 인식이다. 정부의 양성평등 정책은 게임의 법칙을 왜곡하는 원천이다. 그러므로 단호하게 반대한다. 정부의 양성평등 정책을 “매우 잘못하고 있다”라고 응답한 비율은 20대 남성에서 54.2%로 단연 높다(<표 4-2>). 다음으로 높은 성별·세대는 30세 이상 남성인데, 22%에 그친다.
숫자는 일관되게 하나의 방향을 가리킨다. 이것은 권력의 문제다. 20대 남성은 여성에게 화가 나 있다기보다는 권력구조에 화가 나 있다. 우선 정치권력에 화가 나 있지만(“문재인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잘못 한다”는 의견은 응답자 전체에서 48.8%인데, 20대 남성은 62.9%다), 그게 전부는 아니다. 정치권력은 권력구조의 한 갈래일 뿐이다. 20대 남성은 결혼시장과 같은 사회문화적 권력관계에서도 남자가 약자라고 느낀다(<표 3-2>). 법 집행은 정치권력의 노선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권력관계를 반영하기도 한다. 페미니즘 물결 이후로 법 집행이 “남자에게 불공정”하다는 인식이 20대 남성들에서 폭발했다. 이른바 ‘곰탕집 성추행 사건’으로 대표되는 ‘남성 차별적 법 집행’에 대한 분노가 20대 남자들 사이에 쌓여가고 있다.
이렇게 해서 우리 시대에 진정으로 새로운 현상인 ‘남성 마이너리티’ 자의식이 탄생했다. 기성세대에게 ‘역차별’이라는 말은 남성 우위 사회에서 펼치는 여성 우대 정책이 과하다거나 선을 넘는다는 정도의 의미였다. 그러니 역차별이란 남성 우위의 권력구조를 전제로 쓰는 말이었다. 이게 20대 남성의 인식세계로 오면 근본적으로 뒤집힌다. 남성은 약자다. 재능과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20대 남성은 업무 능력이나 사회생활에서 남성이 더 유능하다고 응답했다), 권력의 문제다. 그러니 지금 벌어지는 현상은 역차별이 아니다. 그냥 차별이다.
권력의 문제이므로 권력 게임의 상대, 즉 ‘주적’이 있을 것이다. 유력한 후보가 있다. ‘페미니즘’이다. “페미니즘은 남녀의 동등한 지위를 이루려는 운동이다”라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에 대체로 부합하는 문장을 제시하고 찬반 의견을 물어봤다(<표 5-1>). 모든 세대·성별에서 동의 의견이 절반을 넘겼는데, 20대 남성은 정확히 반대로 움직였다. “동의하지 않는다”가 62.3%에 달했다. 그중에서도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라는 강한 거부가 44.5%였다.
20대 남성에게 페미니즘은 무엇보다 권력의 문제였다. 이들에게 페미니즘이란 남성을 권력의 약자로 만드는 기획이다. “페미니즘은 여성 우월주의를 주장한다”라는 문장을 제시하고 찬반 의견을 물었다(<표 5-2>). 20대 남자는 78.9%가 동의했다. 30세 이상 남자(57.1%)보다 20%포인트 이상 높다. 페미니즘이 여성 우월주의 기획이라는 것은, 페미니즘이 남성 차별이라는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낸 주역이라는 의미다.
다음 문항의 응답은 더 극적이다. “페미니즘은 한국 여성의 지위 향상에 기여해왔다”라는 문장을 제시하고 찬반 의견을 물었다. 이것은 페미니즘에 대한 찬반이나 호불호를 묻는 질문이 아니다. 페미니즘이 끼친 영향력을 평가해달라는 질문이다. 그러므로 페미니즘이 남성 차별이라는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낸 힘이라고 믿는 20대 남성은, 이 문장에 가장 많이 동의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틀렸다. 20대 남성은 이 문장에 가장 많이 반대한다. 64.8%가 동의하지 않는다(<표 5-3>). ‘전혀 동의 않는다’는 강한 응답도 41.6%로 단연 많다. 이 숫자는 보기보다 더 묘하다. 페미니즘을 싫어하기로 치면 30세 이상 남자도 크게 뒤지지 않는다(“페미니즘에 거부감이 든다” 20대 남성 84.1%, 30세 이상 남성 64.2%). 그런데 30세 이상 남자들은 페미니즘이 여성 지위를 향상시켰다는 데 57.1%가 동의한다.
20대 남성은 페미니즘을, 그 어떤 긍정적인 표현(‘여성 지위 향상’)과도 연결시키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결심한 것처럼 보인다. 분석을 총괄한 한국리서치 정한울 연구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반(反)페미니즘이랄까, 그런 인식이 강력하게 내재화되어서, 어떤 질문을 받더라도 그걸 기준으로 일관되게 답하는 집단이 20대 남성 중에 두드러져 보인다. 20대 남성의 응답이 튀는 젠더 관련 문항 거의 대부분은 이 집단이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 같다.” 이 집단에 젠더 문제는 거의 자동 스위치처럼 작동한다. 이를테면 20대 남자는 “지하철 임신부석은 비워둬야 한다”라는 문장에 반대하는 비율도 가장 높다(전체 평균 38.2%, 20대 남자 47.3%).
20대 남성 중 일부는 ‘마이너리티 정체성’이 형성된 단계까지 나아간 징후가 있다. 정체성이 형성되었다는 것은, 이 집단이 앞으로도 한동안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과 연대의식과 여론 주도력을 보여줄 것이라는 의미다. 이슈에 따라가는 여론 반응은 일시적일 수 있다. 하지만 정체성은 장기 지속한다. 이번 조사가 포착한 20대 남성 현상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이 남성 마이너리티 정체성이다.
정치적 보수화의 징후는 없다
이런 정체성 집단은 몇 가지 논리적 난점을 노출한다. 승진·승급 기회에서 성차별 문제가 있는지는 20대의 경험이 기성세대의 경험보다 아무래도 부족하다. 하지만 20대 남성은 승진·승급 기회가 여성에게 불리하지 않다는 믿음이 두드러지게 강하다. 승진·승급 기회가 남성에게 불리하다는, 한국 노동시장 현실에서 좀처럼 지지받기 어려운 인식도 16.8%나 된다(<표 2-2>). 남성 마이너리티 정체성 집단의 크기를 대략 짐작해볼 수 있는 숫자다. 비슷한 사례를 하나만 더 보자. 한국의 결혼 문화가 여성에게 유리하다는 데 20대 남성의 66.3%가 동의했다(30세 이상 남성은 48.2%로, 둘의 격차는 18.1%포인트다). 그런데 20대 남자 응답자 중 결혼 경험자(기혼·사별·이혼 합산)는 4.3%다.
이번 조사는 20대 남성 현상을 설명하는 다른 대안 몇몇을 기각했다. 20대 남성이 정치적으로 보수화되었다거나, 유난히 여성혐오 성향이 폭넓게 퍼졌다거나, 공정성에 대한 애착이 커서 작은 손해에도 민감하기 때문이라는 등의 설명이 제기된 바 있다. 이번 조사에서 이런 태도가 20대 남자의 유난스러운 특징이라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시장 개방에 대한 태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태도, 복지국가에 대한 태도 등 정치 성향을 보여주는 여러 질문에서 20대 남자는 정치적 보수화의 징후를 보여주지 않았다. 20대 남자들이 연애·결혼 시장에서 여성의 태도를 평가하는 관점은 기성세대 남성과 차이가 없다. 공정을 중시하는 것은 20대 남성 특유의 정서가 아니다. 이 정서는 전 세대·성별이 공유하고 있다. 20대 남성 여론이 유일하게 일관되고 뚜렷하게 차이를 보이는 분야는 젠더와 권력이 만나는 영역이었다. 20대 남성 현상의 특징은 젠더도 권력도 아니다. 둘의 결합이다. 둘 중 하나만 사라져도, 여론지형에서 20대 남성의 특수성이 따라서 사라진다.
이제 우리는 겨우 반환점을 돌았다. 남성 마이너리티 정체성이란 문제의 답이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문제 그 자체다. 기성세대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런 독특한 정체성이 어떻게 성립할 수 있었는지 설명해야 한다. 남성이 실제로 약자가 되었기 때문인가 그저 허위의식인가? 만약 남성이 실제로 약자가 되었다면, 그것은 재능과 노력에서 여성에게 뒤졌기 때문인가 부당한 권력이 작동해서인가? 만약 허위의식에 더 가깝다면, 그런 허위의식은 왜 어떤 경로로 이토록 공고하게 형성되었나? 젠더 권력 문제를 넘어서는 이 문제의 기원이 존재할까?
이런 질문들에 답하는 가설도 그동안 여럿 제시되었다. 우리는 같은 방법을 쓰기로 했다. 그냥 전부 물어봤다. 208개 문항 중 이번 기사에 등장하지 않은 나머지 대부분은 이 현상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더듬더듬 탐색하는 시도였다. 제605호에서 그 결과를 검토한다.
천관율 기자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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