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0억원..中서 가장 비싼 '치바이스' 키운 거장들
오현주 입력 2019.01.21. 00:12 수정 2019.01.21. 07:39
20세기 중국화단 최고 거장 치바이스
영향 주고받은 선후대 문인화가 동반
중국국가미술관 국보급 소장품 116점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팔대산인 주탑은 평범함과는 멀고, 오창석은 쇠년에도 재주가 남달랐네. 나는 죽어서라도 주구가 되어, 그들의 문하에서 돌아다니고 싶네”(제목·연도미상의 치바이스 시).
중국미술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치바이스(齊白石·1864∼1957)다. “시진핑은 몰라도 치바이스는 안다”는, 중국인이 떠받들기를 자처한 20세기 중국화단 최고의 거장. 그런 그가 뭐가 아쉬워 누군가의 사냥개(‘주구’)가 되겠다고 했을까.
2017년 가을 때아닌 열기로 미술계를 달궜던 치바이스만으론 답하기가 어려웠나. 치바이스의 걸작이 다시 한국에 내렸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 펼친 ‘같고도 다른: 치바이스와 대화’ 전이다. 지난 전시가 ‘거장 치바이스를 아느냐’에 뒀다면 이번 전시는 ‘거장은 거장이 만든다’에 뒀다. 오롯이 치바이스만을 조명했던 방식에서 비켜나 그를 만들어낸 주위에까지 눈을 돌린 셈이다.
중심은 치바이스의 걸작으로 세웠다. 그 위로는 명말청초 문인화 전통을 혁신했다는 팔대산인 주탑(1626∼1705), 전통 문인화가의 봉우리라 불리는 오창석(1844∼1927)을 올렸다. 아래에는 중국현대미술계에서 산수·인물·유화·조소 등 각 분야를 막론하고 선구자 격인 우쭈어런(1908∼1997), 리후(1919∼1975), 진상이(85), 장구이밍(1939∼2014), 우웨이산(57)이 포진했다. 중국 문인화 계보를 총총히 박아낸 셈이다. 작품 수도 간단치 않다. 치바이스의 대표작 80여점을 비롯해 팔대산인의 7점, 오창석의 14점, 인물조각으로 경지를 넘었다고 평가받는 우웨이산의 조소 8점 등 116점이 몰려왔다. 이 모두는 중국에 하나뿐인 국가미술관이란 중국국가미술관의 소장품. 국보급 미술품이 한꺼번에 외유에 나선 것도, 이들을 온전히 한국에 들인 것도 처음이다.
△“난 죽어 그들의 개가 되겠소”
전시명의 ‘대화’는 그림이 대신하는 것으로 했다. 가령 팔대산인의 ‘물고기’(1694)를 치바이스의 ‘물고기 떼’(1917)와 마주보게 하고, 오창석의 ‘대나무’(1902)를 치바이스의 ‘대나무’(1927)와 한 기둥에 나란히 거는 식. 이뿐인가. 오창석의 ‘홍국화와 황국화’(1907)와 치바이스의 ‘국화’(1947), 오창석의 ‘세 가지 색의 모란’(1918)과 치바이스의 ‘모란’(1952) 역시 같은 듯 다른 ‘합’을 말한다.
그렇게 이들이 나누는 대화를 엿듣자면, 치바이스는 자신이 이룬 과업을 선대 문인화가의 가르침으로 돌리고 있다. 차갑고 초월한 듯한 팔대산인의 냉일화풍을 답습했고, 풍부한 구도와 필묵, 화사한 색채를 뿌린 오창석의 붓길을 따랐다 고백했으니. 모두들 규격화한 틀을 먼저 벗어던진 대가가 아닌가. 휘둥그레 뜬 눈을 달고 버둥대는 몸체를 입은 동물·물고기, 또 생동하는 화초가 나왔다. 치바이스가 그랬듯 ‘오마주’는 대물림한 듯하다. 특히 우웨이산. 오로지 치바이스만 바라본 듯 그가 빚은 ‘화가 치바이스’ 한 점 한 점은 청동·점토덩어리에 영혼까지 심어놓는 ‘신들림’을 보여준다. 이들의 계보를 굳이 문자로 표현하자면 ‘사의’(寫意)란다. 뜻을 그린다는 의미다. 형태를 똑같이 본뜨는 ‘형사’(形寫)는 버리겠다는 말이다.
누가 뭐래도 치바이스의 특징이라면 생명력과 현장감이다. 새우·게·물고기·새 등 슬쩍 스친 붓끝의 먹은 순식간에 튀어나올 듯 꿈틀대는 생물체가 된다. 배추·호박·조롱박 등에 색을 입히면 어느 새 단단해진 열매가 뚝뚝 떨어지고. 현대적 장치로 말하자면 애니메이션 효과라고 할까. 인물은 또 어떤가. 초상화라면 으레 떠올릴 경직된 표정과 포즈는 하나도 없다. 조롱박을 끌어안은 익살(‘두 손으로 조롱박을 받쳐 든 도인’ 1944), 늙은 관료의 곁눈질(‘오뚝이’ 1953), 꽃 한 송이 꺾어 든 부처(‘염화미소’ 연도미상) 등.
가난한 농부 출신이란 이력이 작용했을 거다. 책상 앞에서 고고한 상상력으로 매란국죽을 뽑아내고 발 한번 들이지 않은 산수에 신선을 모시는 따위의 선비문인화가와는 격이 달랐던 거다. 치바이스의 표현 그대로 “온통 채소냄새로 가득”한데 기품이 있다. 핵심은 ‘생략’. 가지 치듯 번잡한 수식은 지워버리고 본질만 끌어내는 기법이다. 하지만 본질의 디테일은 놓치지 않았다. 유영하는 새우가족을 족자에 가둔 ‘새우 떼’(1937·1951·연도미상)를 보자. 몸을 덮은 갑각이며 긴 수염, 집게발, 촉수까지, 감히 흉내낼 수 없는 생생함이 뒤엉켜 있다.
△“여든이 돼서야 그림다운 그림을”
중국 후난성의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화가. 생계를 위해 목공일을 했고 목장·조장·화공으로 옮겨다녔다. 하지만 결국 시·글씨·그림·전각의 길이 그의 일생 아니 중국예술계를 뒤바꾸는 대전환이 됐다. 덕분에 중국인민예술가의 반열에 오르는 드라마틱한 스토리는 늘 따라붙는 덤이 됐고.
사실 ‘치바이스’란 이름이 중국을 벗어나 세상에 나온 건 얼마 되지 않는다. 한·중·일 문인화단의 큰 스승으로 모실 정도라지만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소개한 것도 최근 몇 년이니. 그 결정적 계기는 2011년 중국서 연 ‘춘계경매회’에서 ‘송백고립도·전서사언련’이란 작품이 4억 2550만위안(당시 약 714억 5000만원)에 낙찰되면서다. 그해로 따져 피카소나 클림트를 제친 최고가였다. 얼마 가지 않았다. 2017년 12월 베이징 ‘바오리 추계경매’에서 ‘산수십이조병’으로 다시 사고를 쳤으니. 9억 3150만위안(당시 약 1530억원)에 낙찰되며 세계서 가장 비싼 중국미술품으로 등극한 거다.
아흔셋의 짧지 않은 생이었다. 세상을 뜨기 석 달 전까지도 붓을 놓지 않았다는 그가 남긴 작품은 수만 점이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옛 고생을 보상받듯 말년에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는 것. 하지만 회오리치듯 했던 중국근현대사에서 일개 예술가의 ‘대접받는 위치’란 게 신통했으려나. “여든 즈음에야 그림다운 그림을 그렸다”던 자조가 달리 들린다. 전시는 2월 17일까지.
오현주 (euanoh@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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