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건물 있어도 편의점 마음대로 못 연다?! [김현주의 일상 톡톡]
김현주 입력 2018.12.07. 06:03
그렇다보니 점주들은 최소한의 수익도 내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최근 편의점들은 최저임금 상승, 경기 부진 등으로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어 정부가 일정 수준의 가이드를 제시해줬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만합니다.
다만 이번 자율규약이 사실상 기존 사업자들에게 유리하도록 진입장벽을 세웠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퇴직 후나 전직을 통해 새로운 밥벌이 수단을 찾는 예비 창업주에게 편의점을 열 기회를 박탈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습니다.
일부 편의점 본사가 점주협의회와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내년도 상생안을 발표해 개별 점포에게 서명을 강요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이번 규약의 순기능은 충분히 살리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보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편의점이 아닌 빵집이나 치킨점 등 다른 민생분야로 창업 희망자들이 몰리는 풍선효과가 발생해 가뜩이나 심각한 자영업자들 간의 경쟁이 더 치열해져 수익만 악화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편의점산업협회 소속 5개 업체(CU·GS25·세븐일레븐·미니스톱·씨스페이스)와 이마트24는 50∼100m 거리 출점 제한, 위약금을 감경하는 '희망폐점'을 골자로 하는 자율 규약에 4일 합의했다. 전체 편의점 96%(3만8000여개)가 영향권이다.
근접 출점을 제한하고 폐점을 상대적으로 쉽게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이번 편의점 자율규약안에 대해 업계와 점주들은 대체로 환영하는 모습이다.
전국의 편의점 수가 4만개를 넘어섰고, '한 집 건너 한집'이 편의점이라고 할 만큼 과도한 출점이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공정거래위원회와 함께 마련된 이번 자율규약이 과밀해소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브랜드 편의점 가맹점주로 구성된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는 4일 성명서를 내고 "일반적으로 편의점은 진입장벽이 낮아 부실점포가 양산돼 사회적 문제가 됐다"며 "이로 인해 기간을 만료하지 못하고 계약을 종료할 경우 각종 위약금이 발생하는데, 감면이나 면제라는 방향을 제시해 준다는 측면에서 환영한다"고 밝혔다.
편의점산업협회는 "출점 자체를 자제하는 내용을 담은 상당히 실효성 있는 대책"이라고 평가하며 "편의점 업계가 이제는 패러다임을 출점에서 내실 경영으로 바꾸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가 개입해 '자율'이라는 명분하에 반시장적인 규제를 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특히 이번 대책은 소상공인을 보호하는 게 아닌, 기득권 세력을 위한 조치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정부가 개입한 자율 규제? 기득권 보호하는 조치라는 지적도"
그동안 점주들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가 부담스럽다"며 심야 영업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해왔다.
이번 규약에는 부당한 영업시간 구속을 금지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직전 3개월간 적자가 났을 경우 심야시간대(자정~오전 6시) 영업강요를 하지 못하도록 했다. 질병치료 등 불가피한 사유가 있을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다만 심야영업 금지를 적자가 난 경우로 한정하고 있어 24시간 영업을 강제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점주들의 요구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자율규약을 편의점에 제한하기 보다는 빵집이나 치킨집 등 자영업 전반에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에 대해 정부는 업종 특성이 다른 만큼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즉답을 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국은 앞으로도 최저수익보장이 현실화할 수 있도록 다양한 협력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하지만 가맹본사는 일방적인 확대 적용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일부 점주들은 12년간 일정 수익을 보장하는 '일본식 최저수익 보장제'를 도입하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본사 측은 일본의 사례를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반박한다.
◆일부 점주 "日 편의점처럼 12년간 일정 수익 보장해달라"…현실적으로 가능할까?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4일 "과밀화 해소를 위해 편의점 업계가 합의한 자율 규약으로 편의점 시장에 숨통이 트일 것"으로 내다봤다.
김 위원장은 이날 오전 서울 중소기업중앙회에서 한국편의점산업협회 주최로 열린 편의점 자율 규약 제정 선포식에서 격려사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1989년 최초 출점 이후 편의점은 지난해 4만개를 돌파했지만, 과도한 출점 경쟁으로 이어졌다"며 "과잉출점은 가맹점주의 수익성 악화와 '제 살 깎아 먹기' 식의 무모한 경쟁으로 편의점 경쟁력을 악화시켰다"고 지적했다.
이어 "다행히 업계에서 이를 개선하기 위해 지혜를 모아 자율 규약을 마련했다"며 "규약 내용에는 과밀화를 해소하려는 방안들이 잘 포함돼 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김 위원장은 "신규 출점 희망자에게 타 브랜드를 포함한 인근 점포 현황 등을 충분히 제공하기로 해 포화지역에 대한 성급한 진입은 사라질 것"이라며 "무리한 출점 경쟁을 지양하고 합리적인 출점을 약속함에 따라 출점경쟁이 아닌, 상품이나 서비스 차이로 승부하는 품질경쟁을 기대하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책임 없는 사유로 경영 상황이 악화한 가맹점주는 위약금 감면으로 보다 쉽게 편의점 시장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며 "이에 따라 과밀화한 편의점 시장도 숨통이 트일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자율 규약을 충실히 이행하는 업체가 상생협약 이행평가에서 우수한 등급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한편, 표준계약서도 규약 내용을 반영하도록 개정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개점·운영·폐점 등 모든 단계에서 종합적 접근을 통해 업계 스스로 규약을 마련했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며 "가맹점주의 경쟁력 강화를 통한 수익증대는 가맹본부의 성장으로 이어져 편의점 시장의 발전을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낙관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선포식에서 규약 내용의 성실한 이행을 약속하는 6개 업체의 확인서를 직접 받았다.
◆편의점 업계 경쟁 치열해질 듯…가맹브랜드 갈아타기 늘어날까?
NH투자증권은 편의점 출점 거리를 50~100m 정도 제한하는 편의점 업계의 자율규약이 시행되는 것과 관련해 "향후 담배권 이슈로 편의점주들의 동일 브랜드 양수·양도가 어려워질 수 있어 유리한 조건으로 가맹브랜드를 갈아타거나 폐점이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지영 연구원은 "편의점 자율규약에 따라 담배권 내에는 편의점 중복 출점이 어려워지고, 가맹계약 해지시 가맹점주의 영업위약금이 감경되거나 면제된다"며 "양수·양도가 어려워지고 브랜드 전환 및 폐점이 늘어날 경우 점포 순증의 둔화를 가져올 수 있고, 가맹본사들은 타 브랜드 점주를 유치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 연구원은 "최근 정부는 소상공인 지원책으로 카드수수료율 인하를 단행했으며 카드매출 세액공제 확대도 검토하고 있다"며 "이들 안이 모두 시행될 경우 편의점 점주는 평균적으로 연간 215만원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늘어난 점주 비용부담이 연 480만원이라고 감안했을 때 45% 상쇄가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편의점 수익이 어느정도 보장되면 기존 점포의 가치가 상승하고 가맹점주들의 협상력이 높아질 수 있다"면서도 "협상력 상승의 대부분은 높아진 진입장벽으로 기인한 것으로 내년 최저임금 상승에 따른 점주 수익성 하락은 여전히 진행형"이라고 말했다.
이어 "편의점 가맹본사 입장에서는 점포 확장 비용만 증가할 뿐 여전히 상생 이슈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말하기에는 이른 단계"라고 분석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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