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대한민국 판사는 누구인가 - ②재판의 독립성과 여론 사이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양승태 사법농단으로 드러난 ‘권력’
선출되지 않은 사법, 통제 거부 도마
재판은 여론을 반영한다. 지난달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처벌하는 병역법에 헌법불합치를 결정했다. 시대와 여론의 영향을 받은 결과다. 대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계속해서 유죄를 선고하는 것이 옳은지 8월 공개변론을 연다.
법관의 절대 영역이라는 형사범죄의 양형도 여론을 반영해 바뀌어 왔다. 2000년대 들어 성폭력 범죄 평균 양형이 살인죄 양형에 육박하면서 생명이 최고의 법익이라는 형법교과서 이론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미필적 고의’라는 법학자들이 발명한 알쏭달쏭한 개념은 국민참여재판에서는 번번이 부인된다.
대통령, 국회의원과 달리 단 한 사람의 지지자도 없이 판사들은 법복을 두른다. 우리 헌법은 사법이 다수 의견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며 선출되지 않게 했다. 여론의 근시안적인 압력을 이겨내고 불변의 올바름을 추구하라는 당부다. 그렇지만 현실은 다르다. 사법권력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입법과 행정을 자발적으로 추종했고, 사법관료의 소왕국을 건설해 내부 통제를 벌인 사실도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 농단 의혹 사건에서 드러났다.
법관들은 모바일 여론의 부당한 공격이 전에 없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우려를 나타낸다. 시민들은 법관들이 복잡한 법리의 세계로 숨어 민주적 통제마저 거부한다고 비판한다. 일부에서는 상징적으로라도 법관을 선출하자고 주장하고, 재판에서 법리적용이 아닌 사실확인은 시민에게 이양하라고도 한다.
법관과 시민의 유일한 접점인 여론을 두고 법관들은 이렇게 말한다. “사법은 독립과 책임이 모두 주어져 있다. 당연히 사회적 공감이 곧 여론이라면 장기적으로 따라야 한다. 하지만 인터넷의 댓글 몇 개가 사법을 좌우할 여론은 아니다.” 법관에게 여론이란 과연 무엇일까.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거래 의혹의 핵심인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사건 항소심에서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한 법관이 김상환 부장판사다.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문건을 보면 대법원은 2015년 당시 김상환 서울고법 부장판사의 동향을 파악해 청와대와 정보를 교환하고 대책에 나섰다. 김 부장판사의 판결이 올라오자 대법원은 별다른 이유도 없이 대법관 전원일치로 파기했다.
용기와 소신의 상징으로 꼽히는 김 부장판사는 2010~2011년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였다. 검찰의 구속 청구를 적잖게 기각했고 그때마다 여론은 그를 비난했다. 이러한 여론의 영장판사 공격은 이후 상태가 심각해져 구속 청구가 기각만 되면 기다렸다는 듯 비난을 퍼붓는다. 영장판사 가족의 신상정보까지 찾아내 인터넷에 공개할 정도다. 김 부장판사는 여론의 공격을 받던 당시 사석에서 “열 명의 도둑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죄인을 만들어서는 안되는 것이 판사의 본분”이라고 심경을 토로했다.
판사들이 최근 여론의 공격을 자주 언급하는 것은 과거와 달리 지금은 이겨내는 데 꽤 힘이 들기 때문이다. 오히려 검사들의 비난이나 읍소는 무시하기가 쉽다고 한다. 영화에 나오듯 전화 한 통으로 영장을 얻어낼 수 있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수도권 어느 영장판사는 최근 검찰의 구속 청구를 기각했는데 일과 이후 지청장이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영장판사가 뒤늦게 부재중 전화를 확인해 통화가 됐는데, 검찰에서 갑자기 식사나 하자고 해 그냥 알았다고만 하고 연락하지 않았다. 무엇인지 빤한데 만나서 뭐하겠냐는 것이었다.
현재 서울중앙지법 민사수석인 김상환 부장판사는 판사와 여론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댓글을 안 보고 신문을 안 본다고 해도 여론을 모를 수가 없다. 대법원이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는 것과는 다르다. 하지만 법관은 당대의 높은 파고에 파묻히기 쉬운 의견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다수의견에 묻혀 있는 보석 같은 가치를 놓쳐서는 안된다. 과거사 재심 사건들은 선배 판사들이 그렇게 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다. 형사절차에서는 재벌도 권력자도 차이가 없어야 한다. 다른 기준이 있어서는 안된다.”
영장을 기각하는 판사들은 왜 하나같이 “증거를 없애거나 도망할 염려가 없다. 범죄가 소명되지 않았다. 다툼의 여지가 있다” 같은 빤한 소리로 비난을 자초할까. 이런 무성의 때문에 검사들이 판사가 근거를 밝히지 못했다고 비난하고 여론을 동원하지 않을까. 검찰은 이렇게 적힌 영장 기각 사유를 기자들에게 보여주며 “이것 봐라. 판사가 제대로 이유도 밝히지 않았다”고 말해 언론을 부추긴다. 피의자의 변호사가 판사 출신 전관이란 얘기도 빠뜨리지 않는다. 여기에 호응한 언론은 법원이 검찰 수사의 걸림돌이라는 본말이 전도된 기사를 내놓는다.
영장판사들의 설명을 들어보면 이렇다. “어떤 이유로 영장 청구를 기각했는지 밝히라고 한다면 구체적으로 논증해줄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적잖은 문제들이 발생한다. 우선 검찰이 기소한 다음 시작되는 본안재판을 선취(先取)하게 된다. 영장심사는 억울한 구속을 막으려는 제도인데 유무죄 판단으로 바뀌는 셈이다. 영장심사가 헌법과 법률이 예정한 것보다 심각한 의미를 갖게 된다. 비공개 재판에서 사실상 유무죄가 가려지는 셈이다. 수사의 기본인 밀행성을 무너뜨려 그야말로 수사도 방해하는 셈이 된다.”
오히려 유무죄를 가리는 본안재판 비판이라면 수긍할 수 있다고 판사들은 말한다. “영장심사는 비공개이기 때문에 피의사실을 사실상 판사만 안다. 여론이 참고한 정보와 판사가 아는 정보의 차이가 엄청나게 크다. 검사가 영장심사에 가져온 정보가 언론에 알려진 것과 다를 게 별로 없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이런 상황에서 영장판사는 (부당한) 형법적 비난과 정치적 비난을 모두 떠안고 있는 셈이다. 본안재판은 공개재판이라서 재판부가 확보한 정보와 여론이 언론기사를 통해 파악한 정보의 차이가 상대적으로 작다.”
주요 사건 관련자 구속영장 심사
기각 경우엔 ‘판사 신상털이’ 일쑤
모바일 시대 공격의 강도 더 세져
매번 ‘증거인멸·도주 우려 없다…’
판사들 “구체적 이유 밝히기 곤란”
본재판에 앞서 유무죄 판단하는 셈
판결문 있는 본안재판도 비판 외면
‘기록도 안 보고…법리 이상무’ 이유
시민은 물론 변호사의 비판도 차단
‘기록’과 ‘법리’ 딱 잘라 구분 안돼
사실 확정과 법적 평가 서로 얽혀
‘재판 독립 대 주권의 통제’ 새 국면
판결문이 있는 민사·형사 본안재판에 대한 비판은 바람직한 것으로 생각하고 수긍할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헌법학 교과서에 등장하는 학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공부한 판사들의 수사(修辭)일 가능성이 크다. 판사들은 판결을 비판하거나 당하는 것에 너그럽지 않다. 토론에 익숙하지 않은 법원 분위기는 내부의 학술적인 비판조차 원천 봉쇄한다. 학계나 언론의 비판은 처음부터 무시 대상이다. 판결의 무오류성이라는 조작된 신화를 만들고 유지하는 전가의 보도가 “기록을 보지 않은 비판”과 “법리적으로는 문제없다”는 두 문장이다.
이런 태도를 보여주는 사례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집행유예로 풀어준 서울고법 판결에 대한 어느 판사의 언론 코멘트가 있다. “기록도 보지 않고 다른 재판부의 사건을 언급하는 것은 법관들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금기시된다.” 이 얘기대로 기록을 봐야만 비판할 수 있다면 가능한 사람은 해당 사건의 하급심 재판부 판사뿐이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법원에 있었다. 2012년 대법원이 횡성한우 사건을 무죄로 뒤집어 파기하자 이 사건 항소심 재판장이던 김동진 수원지법 부장판사가 판결을 비판했다. 다 자란 소를 횡성에 데려와 한두 달 체중을 불리다가 도축하는데 어떻게 횡성한우가 되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구체적인 사건을 논평할 때의 유의점을 정해둔 법관윤리강령을 위반했다”며 경고를 내렸다.
사건기록을 보지 않은 것은 판결을 비판하지 못할 이유가 아니라고 법조계에서는 지적한다. 판결문은 판결의 정당성을 입증할 유일한 수단인데 아무리 읽어도 설득력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고, 판결문에 적힌 사실과 논리를 모두 받아들여도 최종 결론인 양형이 납득되지 않기도 해서다. 그렇다고 사건기록을 재판부가 판결 이후에라도 보여줄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기록을 안 봤으면 비판을 자제하란 태도는 비판 자체를 거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만약 기자가 별달리 설득력 없는 기사를 써놓고 취재 과정을 모르면 비판하지 말라고 하면 독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수도권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사회적으로 주요한 사건에 대해 단순히 기록을 보지 못해 언급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것은 그럴듯해 보이는 변명에 불과하다”고 했다.
나머지 판결 비판 봉쇄 방법은 “법리를 비판하라”는 것이다. 이런 얘기는 일반시민은 물론이고 법리에 판사만큼 밝지 못하다고 판사들이 평가하는 변호사들의 비판까지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 이재용 부회장 항소심 재판장인 정형식 부장판사는 선고 직후 “법리는 양보할 수 없는 명확한 영역이었고 고민할 사안이 아니었다”고 했다. 하지만 사실상 무죄가 된 이유는 법리가 아닌 사실에 있었다. 그가 “포괄적 현안으로서 피고인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작업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결문에서 밝힌 부분이다. 경영권 승계작업이 없었다고 사실을 정하는 순간 법리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또 민형사 재판 대부분은 사실 확정에서 판가름 난다. 그런데도 이렇게 법리를 언급하는 것은 판결을 지상에서 천상으로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다.
요즘 재판에서 다뤄지는 사건은 기록(사실 확정)과 법리(법적 평가)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법리를 통해 사실이 확정되기도 하고 사실을 판단하는 데 법리가 필수적인 경우도 많다고 판사들은 설명한다. 판사들로서는 여론이 하나만 시비해도 재판 전체가 흔들리는 것이고, 시민들로서는 하나만 언급하지 못하게 돼도 재판을 전혀 통제하지 못하는 셈이다. 막연하고 추상적이던 재판의 독립과 주권의 통제라는 길항 관계가 모바일 시대를 맞아 새로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