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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대한민국 판사는 누구인가 - 여성 법관 둘러싼 편견과 오해여성이 나서는 것 꺼리는 ‘남초’ 직장, 법원도 다를 바 없다

ngo2002 2018. 8. 2. 09:32

여성이 나서는 것 꺼리는 ‘남초’ 직장, 법원도 다를 바 없다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seirot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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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대한민국 판사는 누구인가 - 여성 법관 둘러싼 편견과 오해

여성이 나서는 것 꺼리는 ‘남초’ 직장, 법원도 다를 바 없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법관은 1952년 제3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한 황윤석이다. 1954년 판사로 임관했지만 1961년 32세 젊은 나이에 숨졌다. 앞서 1951년 제2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이태영이 합격했다. 하지만 정치인 정일형의 부인이라는 이유로 판사 임용을 포기하고 변호사가 됐다.

황윤석 임관 이후로는 19년 만인 1973년 강기원, 황산성, 이영애 판사가 임관해 여성 법관의 맥을 이었다. 그 뒤로 1977년 전효숙(이후 헌법재판관), 1978년 전수안(이후 대법관), 1980년 이선희, 1981년 김영란(이후 대법관)이 임관했다. 

여성은 이후에도 오랫동안 소수여서 2000년대 중반까지도 ‘여성 첫’이란 수식어를 달았다. 보직을 중심으로 보면 1981년 여성 첫 재판연구관 이영애, 2002년 여성 첫 법원도서관 심의관 김소영(이후 대법관), 2005년 여성 첫 지원장 김소영, 2005년 여성 첫 법원행정처 심의관 윤승은 판사로 이어졌다.

법원 고위직도 마찬가지여서 1995년 여성 첫 고등법원 부장판사 이영애, 2004년 여성 첫 법원장 이영애, 2003년 여성 첫 헌법재판관 전효숙, 2004년 여성 첫 대법관 김영란이 탄생했다.

여성 법관 비율이 크게 늘어난 것도 2000년대 후반에야 나타난 현상이다. 20년 전인 1998년만 해도 6.4%에 불과하다가, 10년 전인 2008년에 21.1%가 됐다. 이후 급격하게 늘던 여성 법관 비율은 2013년을 기준으로 꺾여 2018년 현재 29.8%로 30%를 넘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이때부터 사법연수원 성적순 임용을 없애서라는 설명이 많다. 2012년까지는 오로지 사법연수원 성적으로만 법관을 선발했다. 일부 시국 전과나 장애를 이유로 임관이 좌절되기도 했는데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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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013년에 법조인으로 일정 기간 경력을 거친 사람을 면접 등으로 뽑는 법조일원화가 시작됐다. 2013년 3년 이상 법조인을 대상으로 시작, 2026년부터 10년 이상 법조 경력자만 선발하는 제도다. 이해부터 여성 법관 임관이 절반 이하로 줄어 20%대로 추락했다. 법원 관계자는 “갑자기 여성 판사 임용이 줄어든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없다”면서 “면접에서 의도적으로 거른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여성 지원자가 줄어서라는 얘기도 있지만 갑자기 줄어들 이유가 있나 싶다”면서 “만약 그렇다고 해도 선발기준이 여성에게 불리하다는 얘기가 돌기 때문 아니겠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서는 양승태 대법원장-박병대 법원행정처장 라인에서 여성 법관을 선호하지 않았다는 평가가 있다. 두 사람은 노무현 정부에서 입안한 법조일원화 시행 당시 대법원 책임자였다. 양 전 대법원장은 2011~2017년 재임했고, 2011년 대법관이 된 박 전 처장은 2014~2016년에 처장을 지냈다. 두 사람뿐만 아니라 차관급으로 불리는 고등법원 부장판사를 비롯한 법원 고위층이 대체로 여성 법관이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첫 여성법관 1954년 임용 황윤석 
2000년대 후반에야 20%대 넘어
성적순 임용 없앤 뒤 비율 ‘급감’ 
‘면접서 의도적 배제’ 의문 제기

“외부 활동 적고, 힘든 부서 기피” 
여성 법관들의 특징으로 규정
수직 관계 이용…성희롱 발언도
 

가령 2010년 5월 서울에서 세계여성법관대회가 대법원 지원으로 열렸다. 당시 96개국의 대법원장과 대법관 등 여성 법관 4400여명이 참여한 세계여성법관협회(IAWJ)의 행사로 2년마다 개최한다. 당시 고위 남성 법관들은 “왜 여성 법관을 위한 행사를 대법원 예산을 들여서 하느냐. 여성 대법관들도 참여하는 모양인데 대법관이 그래서야 되느냐”며 못마땅해했다고 한다. 이에 여성 고위 법관들은 “우리 여성 법관들에게 세계적인 흐름을 보여줘 동기 부여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성 법관들은 법원 바닥을 깔아주는 존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종의 교육”이라고 했다.

여성이 나서는 것 꺼리는 ‘남초’ 직장, 법원도 다를 바 없다

여성 법관과 남성 법관은 차이가 있을까. 지방법원의 한 여성 부장판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여성 배석판사, 남성 배석판사와 함께 일하고 있다.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우리 재판부나 주변을 봐도 여성의 경우 남성보다 만나는 사람이 적은 것 같다. 남성 배석을 보면 행정부 공무원, 대기업 직원, 검사, 의사 등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는 것 같았다. 반면에 여자 배석은 (대학이나 연수원에서부터 알던) 판사나 변호사 정도인 듯 보였다. 결혼해서 직업이 없는 친구도 적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이 반드시 성차에서 비롯된다고는 단정하기 어렵다. 외부와 접촉이 많은 변호사 출신의 여성 법관은 연수원 출신 남성 법관보다 만나는 사람이 오히려 많다.” 

남성 법관들이 사회적이라 하더라도 재판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어쩌면 방해가 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남성 판사가 시야가 넓다고 하는데 그들의 인간관계를 한 번 봐라. 행정부 공무원, 대기업 직원, 언론사 기자, 법무부 검사 누구 하나 잘나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해서 재판하는데 무슨 도움이 되나. 사법부는 다수가 되지 못하는 소수자를 보호하는 곳이다. 그런 인간관계를 쌓아봐야 이른바 정무적 판단만 하고 결국 재판거래 의혹까지 사는 것 아니냐.” 법원 안팎의 활동에 적극적인 여성 법관의 얘기다. 

그렇다면 좋은 재판이 무엇이고 여성과 남성이 처한 현실에서 비롯되는 특성이 어떤 영향을 미칠까. 양측이 제출한 기록을 성실히 보는 판사가 결국 법리에 맞는 바른 재판을 한다는 설명과 사회적인 안목이 있는 판사가 현실적으로 타당성이 있는 결론을 내린다는 의견으로 나뉜다. 전자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법리 존중이 사회가 사법부에 부여한 역할이라고 얘기하고, 후자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론은 바뀌게 마련이므로 시대를 살펴야 한다고 한다. 이 논쟁에는 별다른 답이 없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무튼 이런 주장을 근거로 법리 우선은 여성에게 유리하고, 현실 우선은 남성에게 유리하다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좋은 재판이 무엇이든 한국 사회에서는 여성에게 불리하다는 것이다. 결혼을 하지 않은 복수의 여성 법관의 얘기는 이렇다. “결혼해서 출산하고 아이를 기르면서 여성 법관이 불리해지는 것 같다. 결혼하지 않은 내 경우에는 딱히 재판에서 처진다는 생각을 못해봤다. 여성 법관들 전용 게시판을 보면 정말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얘기들이 많다. 판사쯤 되면 누가 애들 다 봐준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아이를 키우는 여성 법관들은 이렇게 말한다. “지난달에 경향신문에서 ‘대한민국 판사’ 시리즈 첫 회에 그린 판사들 머릿속이 크게 화제가 됐다. 그런데 여성 법관들은 왜 육아가 빠져 있느냐고 했었다. 아무리 주변에서 누가 애를 봐준다고 해도 육아에 관해 여성이 더 많은 책임을 지고 있다. 판사들이라고 해서 한국 사회의 예외가 아니다.” 

여성 법관들이 직업을 대하는 태도가 남성 법관만큼 절실하지 않다는 얘기도 법원에선 나온다. “최근에는 형사부를 전반적으로 기피하지만 남성 판사들은 어쨌든 거치려고 한다. 하지만 여성들은 배석판사 생활이 끝날 때까지도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형사부 배석판사 경험도 없이 단독판사가 되어서 처음 형사재판을 하는 일이 생긴다.” 민사와 형사를 두루 거친 남성 부장판사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그런 경향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이 여성 법관의 특징인지 아니면 젊은 판사의 특징인지 구분이 안된다. 요새 임관한 판사 가운데 여성이 많으니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고 수도권 법원의 고위 법관은 말했다. 

특히 여성 법관을 상대로 한 성희롱 발언이 법원 내부에 잦다는 지적은 취재 과정에서 만난 거의 모든 여성 법관에게서 나왔다. “판사 사회가 좁은 데다 사람이 유난스럽다는 평가가 나오면 불이익이 심한 곳이다. 그래서 참고 넘어가는 경우를 수없이 봤다. 일반 사회보다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 않을 것이다. 고위 남성 법관들 사이에는 도리어 그런 성희롱 발언을 받아쳐야 사회성이 있는 법관으로 인정해주는 분위기마저 있다.” 이런 일은 법관들 사이의 관계가 독립적이라고 정한 헌법과 달리 수직적이라서 일어난다고 여성 법관들은 지적했다. 

전직 최고위 여성 법관은 여성 법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여성 법관을 하나로 묶어서 사고하던 시절에 판사를 시작했다. 내가 잘못하면 여성 법관 전부의 문제가 되는 거였다. 나는 다 해내야 했다. 법원은 이런 문제들을 시스템으로 해결하지 않고 여성의 문제로 취급했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해결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여성 법관은 여성이기에 앞서 법관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8020600065&code=210100#csidx3558d4f78da2f27a97ec4b17a006a8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