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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대한민국 판사는 누구인가 - ③ 여성 법관들의 과거와 현재

ngo2002 2018. 8. 2. 09:30

나는 여성 판사가 아니라 그냥 판사입니다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seirot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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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대한민국 판사는 누구인가 - ③ 여성 법관들의 과거와 현재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2018년 현재 전국의 법관 가운데 29.8%(2935명 중 875명)가 여성이다. 젊은 법관일수록 여성의 비율이 높아 경력 15년 안팎 이하 평판사들 중 39.8%(1748명 중 695명)가 여성이다. 여성 판사들은 “나는 여성 판사가 아니라 그냥 판사”라고 말한다. 남성으로만 이뤄진 과거 법원과 절반 가까이가 여성인 지금 법원이 같을 수는 없다. 여성 판사의 등장은 법원을 분명하게 바꾸었다. 법원이 원칙에 더욱 충실하게 됐다는 평가도 있고, 판결문에 현실감각이 줄었다는 비판도 있다.

한국 사회 최고의 엘리트라는 법관, 이 가운데 여성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헌법에 따라 법관들은 사법부의 구성원이 아닌 독립된 헌법기관이다. 하지만 현실은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잠을 줄여가며 기록을 넘기는 초장시간 노동자다. 이런 시간 싸움에서 여성 법관들은 출산과 육아를 기점으로 뒤처진다고 입을 모은다. 주말까지 근무를 하도록 요구받는 대법원 재판연구관 지원을 포기하고는 펑펑 눈물을 쏟는다고 한다.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다. 30년 전에는 여성 법관을 한 사람의 법관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지방근무를 보내지 않고 영장심사와 즉결심판을 맡기지 않으면서 이를 혜택이라고 했다. 대신 주요한 시국사건을 처리하는 형사재판에는 보내지 않았다. 

이제는 법원을 떠난 원로 여성 법관들은 “여성을 집단으로 묶어 평가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며 “여성 법관은 여성이기에 앞서 법관이다”라고 말한다. 

◆육아 부담에…선망의 ‘재판연구관’ 지원 포기하고 눈물 쏟아 

여성 법관 수가 한 자릿수를 넘은 것은 1985년이다. 부장판사도 없이 평판사만 11명으로, 전체 법관 887명의 1.24%였다. 전직 여성 법관들은 “혜택과 불이익이 모두 있던 시절”이라고 회고했다. 하지만 이들의 말을 잘 들어보면 혜택으로 보이는 것도 실은 모두 차별에 불과한 것이다. 여성은 법관으로 인정하지 않아 나온 호의 아닌 호의였다. 

여성 판사는 재판부에 배치되는 것부터 어려웠다. 전직 법관의 회고다. “재판부에 들어가고 나서 들어보니 내가 배치되는 것부터 말이 많았더라. 부장판사들이 여성 배석을 받지 않으려고 했다고 한다. 여성과 함께 일하는 것 자체가 불편했던 거다. 그런 상황에서 어느 부장이 나를 받겠다고 했다. 그런데 뒤늦게 입회사무관이 여성을 받으면 안된다고 반대를 했다. 검증이라도 나갈 때면 배석과 사무관이 같이 가는데 그것부터 싫다는 이유였다. 결국 부장판사가 검증은 자기가 가겠다고 타협책을 내놓아서 내가 재판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 사무관도 같이 일해보니 여성이라고 별다르지 않더라고 했다고 한다.

혜택이라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지방근무를 보내지 않은 것과 영장심사와 즉결심판을 맡기지 않은 것이다. 영장심사는 지금과 같은 영장전담판사가 생기기 전이어서 당직을 가리키고, 즉결은 새벽에 나가 경찰이 넘긴 사람들을 처리하는 일이다.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라는 이유로 여성은 면제시켰다. 지방근무 역시 인천, 성남, 수원 등에서 일하는 것으로 갈음해줬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혜택인지는 애매하다. 외견상으로는 고된 일을 빼준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형사재판에서 배제한 것이기 때문이다. 판사들이 형사재판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이른바 출세를 위해서는 형사재판을 거쳐야 한다. 이 때문에 형사재판 배제는 결국에는 불이익이 된다. 

군사독재 시절이던 당시는 주요 형사사건을 처리할 서울형사지법(현재 서울중앙지법 형사부)에 믿을 만한 사람을 보냈다. 이 무렵 법원 자체를 서울형사지법과 서울민사지법으로 나눈 이유부터 정권에 비협조적인 판사들을 형사재판에서 배제하기 위해서라는 얘기가 많았다. 양승태 대법원에서 주로 법원행정처 출신들을 서울중앙지법 형사부 재판장으로 배치한 것과 같은 식이다. 여성은 능력이 부족한 판사로 취급해서 형사지법에 되도록 보내지 않았다. 그래서 이 무렵 임관한 여성 법관들은 형사재판 경험이 별로 없었다. 1988년 첫 여성 부장판사로 이영애 판사가 전보됐을 때 프로필 기사에 이철희·장영자 어음사기 사건 주심이라는 내용이 나올 정도였다. 

여성 판사를 지방에 보내지 않은 것은 기관장인 지원장을 시키지 않으려는 이유도 있었다. 아파트가 아닌 당시 지원장 관사는 낡고 담장도 낮은 집이었는데 여성 혼자 살기에 위험하다는 등의 이유도 법원행정처는 들었다. 남성 중심의 법원으로서나 여성들로서나 단기적으로는 이익인 구조였다. 하지만 이는 여성 법관을 배려의 대상으로만 파악한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능력을 기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80년대 영장심사·즉심 업무 제외 
‘승진 코스’ 형사재판 기회 안 주고
지역근무 배제, 능력 쌓을 길 막아 
‘혜택’ 줬다지만 실제로는 불이익

재판연구관 중 여성은 10~20%뿐 
“휴일·밤낮 없이 토론할 일 많아
지원 안 한 게 아니라 못하는 것” 
기획법관 등 ‘선호직’에도 소수
법원 내부 여성 판사 차별 여전
 

첫 여성 지원장은 2005년에야 나왔다. 공주지원장에 취임한 김소영 현 대법관이다. 김 대법관은 부친도 남편도 검사였다. 

여성 법관을 제도적으로 차별하던 대표적인 사례가 판결문을 대신 써주는 일이다. 법원 합의부는 부장판사가 맡는 재판장과 우배석, 좌배석 판사 3명으로 구성된다. 두 배석판사는 사건을 절반으로 나눠 각자 판결문 초고를 쓰고 재판장이 수정한다. 그런데 여성 판사가 출산 휴가를 가면 남은 남성 판사가 판결문을 대신 썼다. 법정에서 선고할 때는 대직(代職)이라고 해서 옆 재판부 판사가 앉아 있었다. “시스템으로 해결하지 않고 동료 판사에게 부담을 지워 처리했다. 이렇게 하면 여성이 문제인 것으로 치환되지 않나.” 전직 법관은 이런 배려는 배려도 아니고 마음 편한 일이 아니었다고 했다.

30년이 흐른 2018년 현재에도 여성 법관에 대한 차별이 있을까. 물론 판사가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보다야 낫지만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불이익에서 예외는 아니다. 대표적으로 재판연구관에 여성이 아주 적다는 점이 꼽힌다. 재판연구관은 대법원에 100명 정도가 있다. 판사들 모두 가고 싶어 하는 자리다. 요새 신문에 자주 등장하는 법원행정처의 경우 대법원장의 비서조직으로서 판사들이 대외활동을 하면서 대법원장을 보좌하는 특별하고 예외적인 업무를 한다. 이에 비해 재판연구관은 15년 안팎 경력의 판사들이 자신의 실력을 검증받고 키우는 곳이다. 

1심 지방법원 배석판사와 2심 고등법원 배석판사를 거친 판사들이 3심 법관인 대법관을 보좌해 하급심을 점검한다. 실력과 체력이 정점인 30대 후반~40대 초반에 대법관의 재판을 이론적으로 돕는 것이다. 판사들 설명을 들으면 이해가 더 쉽다. “내가 배석판사이던 시절에도 재판연구관을 거친 부장판사를 다르게 봤다. 두 개의 하급심을 사후에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것은 다른 안목을 갖게 만든다. 사건을 입체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을 얻을 수 있다.” 여기에 인사에 직간접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법관을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것도 기회다. 

이 자리에 가는 법관 중 여성 비율은 10~20% 수준이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몇 해 전 열린 재판연구관 환영회에서 “지금 보시다시피 여성 재판연구관이 적다. 하지만 당초 지원자 가운데 여성이 적으니 그러는 것 아니냐. 힘든 일 하기 싫어서 지원하지 않아 놓고 불평을 하면 되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 있었던 당시 재판연구관은 “양 전 대법원장 말이 맞다. 지원을 적게 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다들 가고 싶어 하는 자리를 여성들이 단지 힘들다는 이유로 지원을 안 했겠냐. 근본적인 이유는 보지 않고 그렇게 말씀하시니 답답했다”고 전했다. 

판사들 얘기를 들어보면 여성 판사들이 재판연구관 지원을 망설이다 결국은 포기하고 눈이 빨개지도록 울었다는 얘기가 적지 않다. 이후에도 재판연구관으로 뽑힌 여성 판사들을 부러워해 2~3년 동안은 연락도 전처럼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재판연구관을 거친 여성 법관의 이야기다. “나는 어떻게 지원을 했지만 지원하기가 너무 어렵다. 업무량이 살인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육아를 하면서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다는 걸 법원 안에서는 다 안다. 지원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이다.”

이 여성 판사는 재판연구관으로 있는 동안 남성 판사들만큼 좋은 보고서를 쓰지 못했다고 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토요일과 일요일 모두 출근할 수는 없었다. 하루는 쉬어야 했다. 그런데 보고서라는 게 기록을 얼마나 꼼꼼히 집중력을 가지고 읽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재판부 시절 같으면 기록을 집으로 싸가서 어떻게든 일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법원에서는 연구관들이 밤낮으로 모여 토론을 한다. 물리적으로 육아를 하는 입장에서는 좋은 결과를 내기가 어렵다. 남성 판사들도 아이들과 서먹해지는 것은 물론이다. 이런 상황을 여성이 더 버텨내기 힘든 것은 부정하지 못한다.”

그 밖에 전체적으로 기피 부서인 형사부 가운데 유일한 예외인 서울중앙지법 형사부나, 그동안 선망의 대상이었던 법원행정처 심의관에 여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 역시 마찬가지 차별로 꼽힌다. 지방법원의 한 여성 판사는 “이른바 혜택이라 불리던 것은 다 사라졌는데 불이익은 그대로”라고 했다. 그는 “법원마다 수석재판부에 기획법관이라는 자리가 있는데, 외부 사람들도 만나고 이런저런 행정업무를 하는 자리다. 일도 적고 그럴듯해서 선호하는 자리이다. 여기에 여성 법관이 상대적으로 적다. 주로 사법시험 일찍 붙어서 군법무관을 마친 남자 법관이 간다. 법원장이나 수석부장 말 잘 따르고 문제제기 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여성 법관들은 현재 자신들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어느 여성 대법관이 ‘내가 롤모델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하더라. 자신은 시부모님 모시고 살면서 휴가를 받아서는 수백포기 김장하고, 아이 재워놓고 판결 쓰고 해서 버텼는데 이런 비정상적인 희생을 버텨내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잘못된 법원의 업무 방식,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라는 얘기였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8020600055&code=210100#csidx1b6851323a55238aa97f6b54bb4f6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