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시대 몰락 부르는 1.0집착증
2010년 5월7일
역사발전 단계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대부분은 환경이 같은 패러다임 안에서 변하는 시기이다. 가끔 환경의 본질 자체가 변하는 패러다임 전환이 발생하는데 게임의 룰이 바뀌는 대변혁기이다. 바로 그런 역사적 패러다임 전환이 현재 진행 중인데 현대 산업사회가 등장한 이래 100여 년 만의 대변혁이라고 한다. 세계화, 글로벌 경제위기, 월가의 붕괴 그리고 GM, 도요타, 소니 등 초우량 기업의 추락은 패러다임 전환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역사학자 칼 폴라니는 19세기 말 현대 산업사회의 등장을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대변혁으로 규정하면서 이를 기준으로 현대와 과거가 구분된다고 했다. 거대 대량생산 기업이 등장하면서 생산성이 수십 배 폭증했고 중앙집권적 정부조직을 중심으로 한 현대국가 모형도 이때 정립됐다. 20세기 100년을 풍미한 현대 산업사회의 원리를 패러다임 1.0으로 부르곤 하는데 이는 최근 등장한 21세기형 환경인 패러다임 2.0과 대비하기 위해서다.
패러다임 1.0의 특징은 주어진 과업의 효율적 수행을 강조하는 효율성 지상주의, 조직과 사회를 과업달성 도구로 보는 기계론적 세계관, 각자 맡은 분야에 선택과 집중하는 전문화, 공식 권한에 기반을 둔 엄격한 상하 질서, 보상과 처벌에 의한 구성원 통제이다. 지난 100년간 사기업과 비영리 공공부문 할 것 없이 패러다임 1.0의 원리를 구현한 피라미드형 거대 조직이 주도했다.
100년 지배했던 효율지상주의
현재의 대변혁은 패러다임 2.0으로의 근본적 전환을 요구한다. 주어진 과업의 효율적 수행이 관건이던 1.0시대와 달리 2.0시대는 끊임없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창조적 혁신이 핵심이다. 또한 시스템보다 개인의 창조성을 강조하고 조직은 기계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는 생명체로 인식하며 한 분야에 집중하지 말고 다양한 분야를 경계 없이 넘나드는 것을 권장한다. 또 2.0시대는 수직적 권위보다는 수평적 협력을 중시하고 경제적 인센티브가 아니라 창조적 혁신에 대한 열정과 몰입을 강조한다.
패러다임 전환기에는 기존 패러다임을 지배하던 강자가 무너지는데 게임의 룰이 바뀌며 강점이 오히려 약점이 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강자는 기존 강점에 더 강하게 집착하다 몰락하며 근본적으로 다른 패러다임을 가진 새로운 강자가 떠오른다. 최근 GM 등 기존 강자가 무너질 때 애플과 구글이 급부상한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1.0집착증에 빠진 것 같아 우려된다. 외환위기 이후 받아들인 서구형 시스템이 실은 그 즈음 막 무너지기 시작한 패러다임 1.0이었다. 지난 10여 년간 우리 사회를 휩쓴 연봉제적 단기 성과주의는 모든 것을 경제적 인센티브에 연결시키고 작은 실패에도 불이익을 줌으로써 과감한 창조적 혁신 시도를 억압하는 1.0시대의 잔재이다.
비용효율성 극대화를 명목으로 국민의 절반 이상을 비정규직으로 만들어버린 극단적 효율성 지상주의도 1.0 사고방식이다. 비영리 공공부문의 경우도 서로의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사사건건 대립하는 정치권의 이념적 편 가르기나 평생 걸작 몇 편만을 남긴 아인슈타인이나 케인스는 당장 업적 미달로 쫓겨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많은 논문을 질적 수준에 상관없이 상품 찍어내듯 쓰도록 강요하는 대학의 양적 성장주의도 1.0집착증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시대착오적 1.0집착증은 단기적으로는 경쟁력에 기여하는 것 같으나 창조적 혁신을 요구하는 21세기에는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다. 한때 세계 시장을 주도하다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위기에 빠진 우리 이동통신 산업이나 인터넷 강국이라고 자랑하다 무선인터넷 시대의 후진국이 되어버린 사례가 그 예이다. 패러다임 전환기에는 모든 것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하며 새 시대에 맞지 않는 것은 단기성과에 얽매이지 않고 과감히 버려야 한다.
변혁 동참 않으려면 비켜서라
프랑스 혁명기를 다룬 걸작 ‘두 도시 이야기’에서 찰스 디킨스는 격변기에는 최악의 위험과 최선의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했다. 2.0시대로의 전환도 마찬가지이다. GM이 무너질 때 단숨에 세계 정상에 오른 애플과 구글의 예가 보여주듯 무한한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와 기업의 전략은 1.0게임에서 선진국을 따라잡는 일이 아니라 선진국을 앞질러 2.0게임의 주도권을 선점하는 것이어야 한다. 패러다임 2.0은 선진국에도 낯선 것이므로 충분히 가능하다. 포크록의 전설 밥 딜런은 변혁기에는 변화에 동참하지 않으려면 방해라도 하지 말고 비켜서라고 외쳤다. 급속하게 진행되는 100년 만의 대변혁기에서 2.0시대의 발목을 잡는 1.0집착증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21세기 창조사회에서 한국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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