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분양은 절대선일까, 필요악일까"
아파트를 짓고 나서 분양하는 ‘후분양제’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가올까? 후분양제 논의가 본격화하면서 실현 가능성에 건설업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자금력이 넉넉한 대형 건설사가 아니면 사실상 후분양에 나서기 어려워 신중한 사전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1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이르면 다음달 제2차 장기 주거종합계획 수정안을 확정 고시하면서 후분양 로드맵을 담아 발표할 예정이다. 공공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후분양제를 단계적으로 의무화하고, 민간에 대해서는 의무화 대신 자발적인 후분양을 유도하기 위해 각종 인센티브를 지원할 것으로 전망된다. 인센티브로는 주택도시기금 대출 이자와 한도 기준을 완화하고, 분양보증 요건도 풀어주는 안이 검토되고 있다.

일정대로면 오는 16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후분양을 의무화하는 내용 등을 담은 주택법 개정안 심사가 이뤄질 예정이다. 다만 각종 현안을 둘러싼 여야의 이견 탓에 4월 임시국회가 표류하고 있어 실제 열릴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후분양제 도입 논의가 가시화되면서 넘어야 할 장애물도 있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현재 공사대금 대부분을 분양자가 먼저 내고 그 돈으로 아파트를 지어 분양하는 선분양제와 달리, 후분양제는 사업자가 자체 자금이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로 조달해야 한다는 게 업계로선 부담이 되는 부분이다.
분양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금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상환 리스크가 커지고, 분양 성공 여부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PF 대출심사도 까다롭게 이뤄질 수 있다. 대형사들은 큰 문제가 없겠지만, 이들보다 신용도가 낮은 중견·중소 건설사들은 대출을 일으키기 어려워 주택 분양사업이 사실상 막힐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올해 1월 주택금융공사의 주택금융리서치에 실린 ‘후분양제도와 보증기관 리스크 관리’ 보고서를 보면 건설업체의 총사업비 대비 차입 비율이 후분양인 경우 87.2%로 크게 늘어난다. 선분양 때는 28.0% 수준이다.
후분양 시 사업비 자체가 늘어난다는 분석도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지난해 10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민홍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주거복지 향상을 위한 주택금융시스템 발전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에 80% 공정율을 조건으로 후분양을 도입하면 선분양보다 매년 35조~47조원 정도가 더 들어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교통부의 장기주택종합계획에 따라 2022년까지 매년 8만6600가구를 짓는 것을 전제로 한 보고서 내용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시공능력평가 100위 이내 건설사들이 2009년부터 3년간 공급한 주택물량은 3만2354가구인 반면, 100위권을 넘어가는 중소건설사들이 같은 기간 분양한 물량은 10만9197가구로 세 배 가까이 많았다. 공급물량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소건설사들의 자금줄이 막히면 향후 주택 수급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김대철 한국주택협회 회장도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후분양을 하면 우량·비우량 회사 간 자금 조달 능력에 차이가 있어 중견 업체들이 충격을 크게 받을 것”이라면서 “언젠가 하더라도 단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후분양제 아래에선 소비자가 계약금과 중도금 대부분을 단기간에 마련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다. 선분양제의 경우 2~3년에 걸쳐 계약금과 중도금, 잔금을 나눠 내지만 후분양제는 6개월~1년 안에 수억원의 목돈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도 강화된 대출규제 탓에 자금력이 큰 사람들만 청약할 수 있는 구조이긴 하지만, 앞으로 후분양제가 도입되면 이런 구조가 더 굳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봉수 한국신용평가 수석애널리스트는 “중도금 대출과 같은 금융상품이 제공되지 않을 경우 계약자의 자금 부담이 가중될 수 있으며, 분양계약 체결 이후 단기간 내에 입주 시점이 오기 때문에 분양자는 주거 계획을 수립하거나 실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면서 “관련 금융상품 개발 등 수분양자를 위한 제도 보완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후분양제의 장점도 만만치 않다. 대부분 완성된 주택을 보고 살 수 있기 때문에 ‘깜깜이 분양’이 어려워지고, 분양 이후 시세차익을 기대하기 어려워 ‘로또 아파트’ 논란은 잠재울 수 있다.
전문가들은 시장 충격을 줄일 수 있는 보완책을 더하고, 선분양과 후분양을 건설사들이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성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주택보급률이 100% 넘어가는 상황이라 점진적으로 후분양제로 가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면서 “건설금융 등 후분양에 필요한 환경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변창흠 세종대 교수는 “후분양이 전면 도입되면 중소건설사들이 주택 사업을 하기 어려워지고, 기대보다 소비자 선택 폭이 넓어지지 않을 수 있다”며 “그런 만큼 건설사와 청약자들이 선분양과 후분양 모두를 고려해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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