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한국의 10년 후…’ 일본 유통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대형마트에서 일주일치 먹거리를 한꺼번에 사다 쓰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1인 가구 증가 등으로 지금은 가까운 매장에서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구매하는 방향으로 소비패턴이 점차 달라졌다. 그에 따라 대형마트보다는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이 급증하는 등 오프라인 유통의 모습이 바뀌었다. 그렇다면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일본의 현재 소매유통점은 한국의 향후 10년의 모습’이라는 말이 유통업계에 흔하다. 그만큼 한국 기업들은 일본의 사례를 주목하면서 또 그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일본의 현재 소매유통점은 한국의 향후 10년의 모습’이라는 말이 유통업계에 흔하다. 그만큼 한국 기업들은 일본의 사례를 주목하면서 또 그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지난 7~8일 일본 소매유통점을 둘러본 결과 현재 일본 슈퍼마켓의 키워드는 ‘맞춤형 매장 차별화’와 ‘고급화’였다. 소비자 수요에 맞춰 서브브랜드로 특화하거나, 같은 슈퍼마켓도 매장마다 구성을 달리하고 있다.
일본 최대 유통그룹 이온(Aeon) 계열의 고급 슈퍼마켓 마루에쓰는 점포마다 품목 구성이 상이했다. 역세권이자 고급주택, 호텔 등이 위치한 도쿄 신주쿠6초메점은 대규모 간편식 매장이 눈에 먼저 띈다. 샐러드 및 냉채만 30가지 이상이다. 제철과일은 프리미엄 소포장으로 판매한다. 토마토는 산지 및 품종에 따라 15가지를 기획상품으로 모아놨고, 딸기는 10알 정도에 1만3000원쯤 한다. 생리대나 기저귀 제품 수는 10가지 안팎에 불과한 반면 애완동물 관련 용품은 3~4배쯤 많다.
같은 마루에쓰 슈퍼마켓인데 일반 주택 및 학교, 병원이 주변에 위치한 주오(中央)구 쓰쿠다점은 고기·생선·채소 같은 요리재료 비율이 훨씬 높고 간편식 매장은 상대적으로 작다. 딸기는 20알쯤 든 한 팩이 5000원이다. 1ℓ 우유 제품만 18종, 생리대는 100종이 넘는다. 가정용 4ℓ짜리 소주는 신주쿠점에서는 볼 수 없던 제품이다. 물품 카테고리를 줄이고 카테고리 안의 품목은 다양화시키는 셈이다.
프리미엄화도 동시에 진행 중이었다. 7일 고층 오피스빌딩이 즐비한 지요다(千代田)구의 오테마치(大手町)에 위치한 고급 식료품점 ‘에피세리 보네르’(Epicerie Bonheur)에는 점심거리를 사려는 이들이 이어졌다. 젊은 여성 직장인들을 겨냥해 세이조이시이(成城石井) 슈퍼마켓에서 특화한 고급 식료품 매장 브랜드이다. 35평 매장에는 이들이 선호하는 간편식들로 촘촘히 채워놨다. 연어를 넣은 베트남 스프링롤, ‘1일분 녹황색 야채 샐러드’를 비롯해 샌드위치·덮밥 같은 소포장 간편식이 약 150종, 자체 개발한 치즈케이크를 비롯한 디저트가 40여가지라 뭘 고를지 망설여졌다. 집에서 요리를 하지 않는 직장인들은 이곳에서 저녁밥을 사들고 퇴근한다. 이외에도 다양한 종류의 와인과 곁들일 만한 치즈, 올리브와 커피·차 같은 제품들을 구비했다.
일본에서는 프리미엄화에 대한 다양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게 ‘피카드’(Picard)다. 유럽 1위의 고급 냉동 간편식 브랜드로, 가정간편식 확대 및 고급화에 주목한 이온이 2016년 들여와 일본인의 식생활에 적합한 상품과 규격을 테스트 중이다. 미나토(港)구 미나미아오야마(南靑山) 매장에는 달팽이요리 12조각, 3~4인용 라자냐, 마리네이드된 홍합살이 한국돈으로 각 1만원 정도, 180도 오븐에 15분이면 노릇하게 구워지는 크루아상이 10개에 약 6000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연어타르타르, 스페인식 볶음밥, 에클레어를 비롯해 급속냉동 가공된 간편식 및 식재료들이 냉동고에 진열돼 있다.
이처럼 일본 슈퍼마켓 기업들이 여러 실험을 하는 이유는 시장이 그만큼 위기이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일본의 마트·슈퍼 시장 규모는 2014년 13조3699억엔에서 2016년 13조엔으로 감소했다. 편의점과 온라인쇼핑의 증가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이 같은 현상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롯데슈퍼 정원호 상품본부장은 “한국의 슈퍼마켓도 달라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본사에서 물품을 일괄구매하고 배치도까지 그려 매장을 동일하게 구성해 ‘가성비’를 추구했다면, 앞으로는 매장을 찾는 사람들이 살 만한 물품을 파악하고 취향에 맞춰 구성을 차별화하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