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7년 《한겨레》 대담에서 “김정일 체제 인정 전제돼야” 주장
⊙ 2000년과 2007년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따라 방북訪北… “(남측의) 남북 연합과 (북측의) 연방제의 접점에서 찾겠다는 것 역시 새로운 발상의 전환이라 하겠다”고 평가
⊙ 2000년 7월 《한국경제》 기고문서 “김정일 미화美化, 문제 삼을 필요 없어”
⊙ 노무현 정부서만 다섯 차례, 모두 여섯 차례 방북… 해외학자 통일회의, 남북경협 방안, ‘6·15 기념도서관’, 남북한 열차 시범운행 등 ‘전천후 대북對北 창구 역할’
⊙ 2003년 8월엔 “미국의 일방적 행보에 제동 걸어야” 주장
⊙ 2004년에는 “(6·15 때 합의한) 낮은 단계의 연방제 방식으로 이뤄질 수도 있다”
⊙ 2005년엔 “북한의 핵 보유가 한반도뿐 아니라 세계 평화에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북핵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더니 2006년에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의 본질을 볼 필요가 있다”고 말 바꿔
⊙ 2008년 금강산에서 북 군인의 박왕자씨 살해에도 ‘미국의 우회적 대북 압력’ 우려
⊙ ‘천안함 폭침’에 대해 “한 편의 초현실주의 영화 보는 것 같아”
⊙ 미국엔 비판적, 중국엔 긍정적인 시각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세 대통령의 신임을 받으며 이른바 ‘햇볕정책 전도사’란 별명으로 잘 알려진 문정인 특보(전 연세대 정외과 교수)는 그동안 언론과 다수의 인터뷰를 가졌고, 여러 편의 칼럼을 써왔다. 이러한 자료들은 문 특보의 성향과 문재인 정부의 대북·대미 정책의 기조를 가늠할 수 있다.
1997년 7월 12일 자 《한겨레》는 “‘황장엽 북 도발 경고’ 전문가 진단”이란 코너를 마련했다. 그해 2월 귀순한 황장엽(2010년 사망) 전 노동당 비서는 7월 10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남한을 겨냥해 전쟁 도발을 할 수 있음을 시종일관 경고했다. 이에 당시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황씨가 언급한 북한의 전쟁 수행 능력에 대해서는 수긍할 수 없다”며 다음과 같은 주장을 폈다.
같은 해 8월 12일 《한겨레》의 “평화체제 구축이 최우선 과제”란 제하의 대담에서 문정인 교수는 “평화체제 문제와 통일문제 중 민족생존이 최우선이라는 점에서 평화체제 문제가 중요하다 ”며 “문제는 북한체제를 인정하는 것인데 이 ‘뜨거운 감자’에 대해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 교수는 “남북합의서 재가동을 위해서는 김정일 체제 인정이 전제돼야 한다”면서 “이게 안 되면 4자회담이 자칫 식량난 등 당장의 아쉬운 문제 논의가 중심이 되고 북미 주도의 평화협정 체결 입장을 강화해 주는 무대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 이틀 후인 6월 21일 《동아일보》에 기고한 칼럼에서는 “이번 공동선언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제1항의 자주와 민족공조 원칙에 대한 합의라 평가해도 무방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교수는 “지난 50년간 주장해 왔던 ‘반외세’ 조항을 제외시킴으로써 남북한 간의 민족 공조와 주변 4강과의 국제 공조 간에 실질적 조율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의 순기능적 측면에 공감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6·15 남북공동선언 1항(‘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한다’) 역시 논란의 소지가 있는 항목이었다. 북한의 대남 선전·선동의 하나인 외세를 배격한 ‘우리 민족끼리’ 통일이란 결국 주한미군 철수, 더 나아가 한미동맹의 와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현재까지 이 노선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입력 : 2018.02.10 [출처] 지난 24년간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가 쏟아낸 말, 말, 말|작성자 솔로
“김정일 미화美化, 문제 삼을 필요 없어”
《한국경제》(2000년 7월 17일 자) 기고문에서 문정인 교수는 “김정일 위원장의 미화를 문제 삼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밝혔다. 1차 남북정상회담 직후 우리 사회에서 불었던 이른바 ‘김정일 열풍’에 거부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요지였다. 이어지는 내용이다.
김정일에 대한 지나친 비판이 자칫 한반도의 평화 분위기를 깰 수 있다는 논리였다.
노무현 정부 출범 후 문정인 교수는 다섯 차례 방북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2003년 3월 제6차 남북 해외학자 통일회의의 참석을 위해, 2004년 7월 말 남북경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각각 북한에 갔었다. 이어 2005년 3월 ‘6·15기념도서관’ 건립 합의를 위해 금강산을, 2007년 5월 남북한 열차 시범운행을 앞두고도 방북했었다. 1·2차 남북정상회담까지 합하면 총 6차례 북한에 갔던 것이다.
문 교수는 2003년 3월 방북 후 일본 《마이니치 신문》과 인터뷰를 가졌다. “핵문제에 대한 태도는 어떤가”란 질문에 문정인 교수는 “우리는 북한에 사찰 요구를 받아들여 핵개발 폐기를 선언하라고 거듭 요구했다”면서도 “북한 측은 이라크가 사찰을 받아들여 무기를 폐기했는데도 공격을 받았다고 반론을 폈다. 미국에 대한 강한 불신감이 느껴졌다”고 밝혔다. 그는 “노 대통령은 핵문제의 평화 해결을 위해서는 강고한 한미동맹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해 미국을 지지하고 파병을 결단했다. 하지만 북한 측은 ‘미국에 경사된 게 아니냐’는 불만을 나타냈다”고도 했다.
같은 해 4월 초 《뉴욕타임스(NYT)》도 방북을 마치고 돌아온 문정인 교수의 멘트를 전했다. 이 매체는 문 교수의 발언을 인용해 “위기를 피하기 위해서는 핵연료 재처리와 플루토늄 수출,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 ‘금지선’을 넘지 말라고 북한 측에 조언했다”면서 “아직까지 북한은 괄목할 만한 자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마이니치 신문》과 《뉴욕타임스》 보도 내용으로 비춰보아, 문 교수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방북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미국의 일방적 행보에 제동 걸어야”
그러나 4개월 후인 2003년 8월 27일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반핵·반전 원칙 지키라’)에선 “미국의 일방적 행보에도 제동을 걸어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썼다.
이에 윤덕민(전 국립외교원장) 교수가 “강석주 부부장이 나와서 우라늄 핵개발 계획을 처음 밝혔는데, 그때 군인이 옆에 배석했다”고 반박하자 문 교수는 “한국도 이번 회담 대표단에 현역 대령이 한 명 포함돼 있었지만 사복을 입고 후방석에 앉혔다”며 말을 이어나갔다.
<중국, 러시아, 일본 모두 이런 부분에 신경을 썼는데, 유독 미국만 국방부 인사를 전진 배치시켰다는 겁니다. 이건 도발적인 행동이 아니냐. 북한에선 이렇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건 결국 미국이 북핵 문제를 안보 사안으로 본다는 것을 의미해요. 물론 북핵 문제는 다른 나라들에도 안보 사안이지만 어디까지나 외교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입장이었죠.>
‘북한이 핵 포기를 할지 안 할지 선택의 기로에 있다’는 사회자의 말에 문 교수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겠느냐, 지금 상태라면 당연히 안 한다”며 이렇게 주장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게 바로 외교입니다. 따라서 명분을 주지 말아야 해요. 지금은 미국의 강경파 네오콘들이나 북한의 강경파가 모두 상대에게 명분을 주고 있는 상황이에요. 나머지 4개국이 할 일은 이 악순환을 깨고 신뢰 구도를 만드는 겁니다.>
문 교수가 “인간관계만 해도 얘기해 보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를 불신하면 신뢰가 생길 수 없다. 부정적인 점이 있어도 시도를 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자 사회자는 “굉장히 낙관적이시군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문정인 교수는 “미국도 오산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미국의 네오콘들은 PSI(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를 하면서 북한에 대해 다중적이고 다면적인 압박을 가해 고립・ 봉쇄하면 길어봐야 1년 이상 버티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1년 동안 한편으론 협상하면서 다른 한편 북한을 고립시키면 체제 변화가 올 수 있다”고도 주장했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 방식으로 이뤄질 수도 있다”
2004년 7월 방북 직후인 그해 8월 말에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수행했던 특별수행원들이 만든 모임인 ‘주암회’가 방북을 추진, 김정일과 면담을 가지려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주암회 회원들은 6월 16일 서울에서 열린 6·15 남북정상회담 4주년 기념 국제토론회 만찬장에서 북측 대표단에 김정일과의 면담을 제의해 긍정적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주암회’에는 2004년 6월 동북아시대위원장에 임명된 문정인 교수(주암회 간사)를 비롯해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 이봉조 통일부 차관, LG그룹 구본무 회장, 삼성그룹 윤종용 부회장,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 강만길 상지대 총장, 시인 고은씨 등 정치·경제·사회·문화계 주요 인사들이 소속돼 있었다. 그러나 북한은 탈북자 집단 입국 등의 이유로 ‘무기한 연기’를 통보해 주암회 멤버들의 방북은 불발됐다.
북한의 이러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문정인 교수의 ‘대북 유화론’은 해를 넘긴 2005년에도 계속 이어졌다. 문정인 위원장은 2005년 1월 13일 열린우리당 싱크탱크인 열린정책연구원 주최로 열린 ‘동북아 평화·번영 국제심포지엄’의 사회를 맡았다. 문 위원장은 “김정일 정권이 없어지면 북한이 붕괴된다는 것은 지나치게 흡수통일론 시각에서 본 것”이라며 “주권국가로서 북한이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문 위원장은 “흡수통일은 하나의 방법일 뿐 반드시 단일화 방식의 통일일 필요는 없다”며 “우리 정부는 흡수통일 유일론식의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합의에 의한 중장기적 통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 붕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북한 전문가가 아니고 ‘아마추어 제너럴리스트’들”이라며 “남북한 통일은 공동체 통합 방식이 될 수도 있고, EU(유럽연합)처럼 남북연합이 될 수도 있고, 낮은 단계의 연방제 방식으로 이뤄질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 헌법이 명령하고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과 사실상 상충되는 주장을 한 것이다.
같은 해 3월 3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아시안 리더십 콘퍼런스’에서 문정인 위원장은 애슈턴 카터(Ashton Carter) 하버드대 교수(전 국방장관)와 공방을 벌였다. 먼저 카터 교수는 “6자회담은 완전 실패했으며 이에 대한 책임은 미국, 한국, 중국 3개국이 져야 한다”며 “특히 한국의 대북정책은 혼란스럽게 비친다”고 비판했다.
이에 문 위원장은 “북한의 핵 보유가 한반도뿐 아니라 세계 평화에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북핵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명확히 했다”고 반박했다. 문 위원장은 “미국은 좀 더 다른 국가들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며 “북한이 좋지 않은 정부이고 지도자가 좋지 않은 지도자일 수는 있지만 협상 대상자로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있기에 최악의 시나리오가 있을 수 있는데 이를 피해야 하기 때문에 미국이 좀 더 북한을 이해하는 입장을 취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어 “북한의 입장은 수사적인 표현, 체면 차리기가 더 중요할 수 있으며, 북한의 상황을 북한의 맥락에서 살펴보면서 접근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했다.
3월 22일 자 《한겨레》는 문정인 위원장과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의 대담을 보도했다. 이 자리에서 문 위원장은 미국과 일본에 비판적인 시각을 내비쳤다. 그해 2월 2일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언론은 마이클 그린(Michael Green) 미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의 주발언을 인용해 ‘북한이 리비아에 핵물질인 6불화우라늄을 수출했다’는 사실을 통보했다고 보도했다. 문 위원장은 이 사실을 거론하며 “상황이 악화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고 온 왕자루이(王家瑞) 대외연락부장이 밝혔듯이 미국 쪽은 성실성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위원장은 “일본에 납치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게 북핵 문제”라며 “북핵 문제가 해결되면 북일관계 개선과 납치자 문제 등의 현안 해결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문 위원장은 “일본이 납치 문제에 연연해 대북 강수를 두면 일본의 역할이 제약된다”면서 “일본이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 미국에 밀착하면 지역과 국제사회에 공헌할 기회를 잃게 된다”고도 했다. 납치자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도 일본은 미국보다 북한과의 관계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논리였다. 북한은 그동안 일본인 수십 명을 납치, 공작원 등으로 활용해 왔다. 일본 정부는 내각 산하에 ‘납치문제대책본부’를 두고 납치자 송환 문제 해결에 힘을 쏟고 있다.
문정인 위원장은 2005년경부터 ‘동북아 균형자론’을 설파했다. 문 위원장이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동북아 균형자론의 의미는 이러하다.
<균형이라는 것을 중용이라는 개념과 견주어서 보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중용이라는 건 어느 한쪽에 쏠림이 없는 것이다. 중용이 있으려면 그 바탕도 있어야 한다. 그 바탕은 한미동맹이다. 한미동맹을 기본 축으로 해서 한쪽으로 쏠리지 않고 동북아의 안정성이 보장될 수 있도록 균형적 실용외교를 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을 균형자로 보면 된다.>
이에 대해 미 의회조사국 래리 닉시(Larry Niksch) 박사는 4월 13일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통화에서 동북아 균형자론이 남한의 정책으로 굳어질 경우 미국은 주한미군의 공군력 감축을 고려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의 마이클 오핸런(Michael O'Hanlon) 박사도 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동북아 균형자론’은 남한의 선택지를 미리부터 스스로 제약해 버리는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지적이 일자 문정인 위원장은 2005년 4월 14일 국회에서 열린 열린우리당 제2정책조정위원회(위원장 김성곤 의원)와의 정책간담회에서 “동북아 평화질서를 이루고, 안보공동체를 만드는 데 선도적 촉매자 역할을 하는 의미의 균형자”라고 주장했다. 문 위원장은 “미중 간의 균형자가 아니라 중일 간 갈등구조가 나오는데 우리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이며, 자기 힘을 기반으로 균형을 강제하는 게 아니라 균형의 촉진자(facilitating balancer) 역할을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동맹의 성격을 전환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문 위원장은 “미국도 아시아에서 배타적 동맹이 아니고, 포용적 동맹을 추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동맹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한미동맹이 한국의 국가 이익을 저해한다면 동맹을 교정할 필요는 분명히 있다”고 전제하면서 “한미동맹이 배타적 동맹이 아니고 중국, 북한, 러시아까지 포함하는 내포적 동맹이 된다고 한다면 잘 맞아들어갈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동북아 균형자론이 비현실적’이란 비판에 대해 그는 “일본과 중국 간의 관계를 새롭게 조율하고, 불협화음을 최소화하는 역할은 한국이 더 적합하다고 본다”고 반박했다. ‘시대착오적’이란 비판에 대해서도 “참여정부의 외교발상이 협력적 자주국방과 실용적 균형외교 측면에서 보면 시대착오적인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미국엔 비판적, 중국엔 긍정적인 시각 피력
두 달 뒤인 5월 16일 《한겨레》가 마련한 좌담에서 문정인 교수는 이노구치 다카시(猪口孝) 일본 주오대(中央大) 교수와 마주 앉았다. 이 자리에서도 미국에 대한 문 교수의 비판은 이어진다. 그는 이노구치 교수에게 “동북아에서 미국의 두 가지 모순된 이미지를 볼 수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도덕적 절대주의, 패권적 일방주의, 공격적 현실주의를 띤 부시 독트린이라는 기본적 이미지다. 이는 중국을 위협으로, 북한을 주된 표적으로 만든다. 미국이 이런 정책을 추구하는 것은 대립과 불신에 기반한 질서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미국에는 유럽에서 한 것과 같은 또 다른 선택지가 있다. 협력과 통합에 바탕한 새 질서의 추동자가 돼 한국·일본과 협력하듯이 중국·북한·러시아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문정인 교수는 “2차 대전 이후 미국은 150차례 이상 군사적 개입을 해왔다. 아프간과 이라크에서만 성공을 거뒀다. 이들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인가. 명분과의 불일치가 있다”고도 했다. 문 교수는 중국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도 피력했다. 그는 “중국은 ‘중국위협론’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평화적 부상(화평굴기)을 강조했다”며 이런 주장을 펼쳤다.
<중국은 계속해서 발전하고, 에너지·환경 문제를 풀고, 부자와 빈자나 시골과 도시의 격차 등 중국 사회의 모순을 줄여가고 싶다는 말이다. 평화적 부상을 자세히 보면, 중국은 전쟁이나 패권경쟁, 약탈적 행동, 팽창주의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시, 북핵 문제 해결 위해 충분한 노력 했다고 보지 않아”
문 교수는 2005년 중순 이른바 ‘행담도 사건’에 휘말리면서 동북아시대위원장직을 내려놓고 외교부 국제안보대사 직함을 달았다. 2006년 6월 29일 《한겨레》는 문정인 대사와 미첼 리스(Mitchell Reiss) 윌리엄앤메리(William and Mary)대학교 부학장과의 대담을 보도했다. 리스 부학장은 콜린 파월 국무장관에 의해 발탁돼 1기 조지 부시 행정부에서 최연소 국무부 정책실장(2003~2005)을 지낸 인물이다.
이 대담에서 리스 부학장은 “부시 행정부는 6자회담을 통해 핵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해 왔다. 지금까지는 성공적이지 않았지만, 이는 북한이 협상에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문정인 대사는 “부시 행정부가 핵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핵문제를 먼저 푼 뒤에 미사일이든, 생화학무기든, 위폐 문제를 포함한 이른바 ‘불법행동’이든 해결에 나서야 하지 않았을까”라고 반문했다. 리스 부학장은 “한국은 대북 포용정책을 추구하고 있지만, 북한에 투명성이나 상호주의 원칙을 요구하지 않고 있다. 2000년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 대가로 얻은 게 뭔가”라고 물었다. 이후 문 대사와 리스 부학장 사이에 오간 대화 내용이다.
<■ 문정인: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않았나?
■ 미첼 리스: 지난 몇 년 동안 뭐가 달라진 건가? 북한은 핵 보유고를 크게 늘렸다. 이는 미국이 강요한 게 아니라, 북한 스스로 결정한 것이다. 한국 정부가 ‘평화를 위한 비용’을 지불하는 사이 북한의 핵 무장 규모는 서너 배 커지고, 미사일은 발사대에 올려져 있다. 한국 정부의 포용정책으로 안보상황이 나아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문정인: 부시 행정부가 북핵 문제의 평화적·외교적 해결을 위해 충분한 노력을 했다고 보지 않는다. 4차 6자회담 전까지만 해도 미국은 소극적이고, 때로는 비협조적인 태도마저 보여왔다. 한국 정부는 미국이 외교적 노력을 충분히 했음에도 북한이 그에 호응하는 정책을 취해 오지 않는다면 미국과 보조를 맞추겠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2006년 7월 5일 북한은 대포동 2호를 비롯한 미사일 7발을 동해상으로 발사했다. 그 닷새 후인 7월 10일 문정인 대사는 CBS 라디오 프로그램 <열린 세상 오늘, 장성민입니다>에 출연, “북한은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일원이 아니다. 그리고 자위적 입장에서 미사일 시험발사는 할 수 있다고 보긴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만) 북한의 그런 미사일 시험발사가 주변 국가에 위협을 느끼게 만들고 안전에 대한 사전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상당히 유감”이라고 덧붙였다. 문 교수는 언론에 대한 비판도 했다.
<우리가 한 가지 착각하는 부분이 있다. 북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핵문제이지 미사일 문제가 아니다.… 미사일이라고 하는 것은 핵탄두를 실어 나르는 운반 수단에 불과하다. 핵문제가 해결되면 미사일 문제는 크게 문제가 될 게 없다. 그런데 최근 언론들의 보도 태도를 보면 오히려 북핵보다 미사일 문제가 더 중요한 것처럼 부각됐다.>
그는 “북한의 이번 미사일 발사의 본질을 볼 필요가 있다”며 이렇게 주장하기도 했다.
<북한이 이번 대포동 2호 미사일을 발사했지만 실패했다. 스커드 단거리 미사일과 노동 1호 중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는데 이 두 가지는 과거에도 계속 시험발사 한 사실이 있다, 과거에도 시험발사 한 사실이 있는 하나의 해프닝을 보고 대통령이 일일이 나서 설명하고 비판한다면 만약 북한이 2~3일 후에 하면 또 해야 하나.>
북한의 이 같은 도발에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한동안 침묵으로 일관했었다. 문 대사는 이런 노 대통령을 옹호하는 입장을 취하기도 했다. 문정인 대사는 “부시 대통령이나 고이즈미 총리는 북한의 미사일 문제를 정치적으로 확산하려는 의도가 분명히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보지만 우리 대통령 입장에선 만약 북한 미사일 문제를 하나의 안보위기로 간주한다면 옛날 60년대 말, 70년대 초에 있었더라면 사재기하고 한국 떠나는 남북위기 같은 것이 크게 고조가 됐을 것이다. 노 대통령이 이런 것을 고려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 대사는 “(노 대통령 침묵의) 두 번째 배경엔 이런 것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북측의 미사일 발사에 과민한 반응을 했을 때 우리 스스로가 북한의 볼모로 잡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때에 따라서는 전략적 모호성도 유지할 필요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선 너무 (북한을) 몰아치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도 했다.
“평양이 풍요로워 보인다”는 문정인씨 주장은 사실인가?
2007년 5월 방북한 문정인 대사는 평양 양각도 호텔에서 《한겨레》(5월 19일 자)가 마련한 좌담회에 참석했다. 이봉조 당시 통일연구원장, 강재홍 한국교통연구원장도 함께했다. 남북 열차 시험운행을 위한 방북이었던 만큼 이날 좌담회의 주제는 철도와 경협 문제가 주를 이뤘다. 이 자리에서 문 대사는 남북경협, 미국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북한의 전향적인 입장을 요구했다.
그는 남북한 철도 연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북도 앞으로는 좀 더 성의 있게 나와야 한다. 협력을 하려면 진정한 마음으로 협력해야 하는데, 북쪽 관료들이 국방위원장의 진심을 알고 하는지 회의적”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정말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북쪽도 원칙론만 고집하지 말고 신축적 자세에서 사태를 풀어가야 한다” “북이 얼마나 전향적으로 나오는가에 달려 있다”고도 말했다. 그런데 평양에 대해선 이런 소감을 남겼다.
<5번 방북했는데, 큰 변화를 느낀다. 이번엔 평양이 그렇게 풍요로워 보일 수 없다. 과거 전기가 다 꺼져 있는데, 지금은 아직 환한 저녁 7시면 아파트에 전기가 다 들어오는 것 봤다. 비가 많이 내려서 그런지 나무들도 신록이 무척 싱그럽게 느껴졌다. 공장을 갔더니 온통 경쟁 경쟁 경쟁이다. 소학교를 방문했을 때도 보니 매주 성적을 순서대로 공개하고 있었고, 비누공장도 사회주의 경쟁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경쟁의 기본이 상금, 보너스라고 한다. 엄청나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세종연구소 보고서 “평양, 일부 구역만 제외하고는 심야에만 전기 공급”
2011년 7월 ‘세종연구소’는 <경제지수 변화로 추정한 북한경제 현황>이란 보고서를 펴냈다. 보고서의 핵심은 북한 경제를 10가지 지표를 통해 객관적으로 산출한 것인데, 그 결과, 104.7로 2007년의 경제 성과가 제일 높았다고 한다. 문정인 대사가 방북했던 그 시점이다. 그러나 보고서는 이 같은 성과가 나온 이유에 대해 “북중 무역의 증가와 한국의 대북지원에 힘입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이런 해석도 덧붙였다.
<만성적인 에너지 부족으로 북한 주민들은 상당한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현재 평양 이외의 일반 가정에서는 새벽이나 저녁에 약 1~2시간 정도만 전기를 공급하고 있고, 최근에는 이나마 자주 중단되고 있다. 평양도 일부 구역만 제외하고는 심야에만 전기를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주민들에 전력 공급 중단은 전력도 김일성 동상을 비롯한 기념물, 군수공장, 제철소 등의 국가사업에 우선되고, 그 후 권력기관에 우선 배치된다. 탈북자들은 광범위한 지역에서 상당수의 일반 주민이 1년 동안 전혀 전기를 사용하지 못한 사례도 증언하고 있다.>
위 보고서의 내용으로 비춰보았을 때 문정인 교수는 공산주의 폭압체제에 가려진 평양의 극히 피상적인 부분만 본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한나라당에는 이런 축복 없을 것”
2007년 8월, 노무현 정부는 북한과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평양에서 갖기로 합의했다. 그 직후 《한겨레》는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과 문정인 교수의 대담을 마련했다. 문 교수는 2차 정상회담에서 ▲정상회담 정례화·각료연석회의 개최 ▲군사공동위와 국방장관회담의 정례화 ▲남북 공동특구 연구위원회 설치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등이 논의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대담 말미에서 문 교수는 “2차 정상회담은 다음 정부를 누가 맡든 보다 발전된 남북관계를 넘겨주는 ‘아름다운 가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는다면 남북관계를 복원하려면 몇 년이 걸릴 수 있는 문제다. 한나라당에겐 이런 축복이 없을 것이다. 이번에 두 정상이 합의해 놓으면 (다음 정권에서) 부분 조정은 있겠지만 합의는 계속되는 것이다. 이번 합의를 정치적 계산으로서가 아니라 정치적 상생으로 볼 필요가 있다.>
10·4 남북공동선언 합의문 4항의 비밀
2007년 10월 8일 자 《서울신문》은 2차 남북정상회담의 의의를 되돌아보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방북한 문정인 교수와 인터뷰를 가졌다. 이 자리에선 2차 남북정상회담 합의문 4항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오갔다. 합의문 4항의 전문은 아래와 같다.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 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해 6자회담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되도록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하였다.>
정상회담 뒤 국내 언론은 이 조항을 둘러싸고 ‘3자와 4자가 각각 어느 나라를 지칭하는지 모호하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남북정상선언에 종전선언의 주체가 ‘3자 또는 4자’로 표현되면서 혼선을 빚은 것이다. 이날 《서울신문》과 문정인 교수가 주고받은 문답의 일부를 옮겨본다.
<■ 남북정상선언에 종전선언의 주체가 ‘3자 또는 4자’로 표현되면서 혼선과 논란을 빚고 있다.
비핵화를 실현하고 정전체제를 끝내자는 부시 미 대통령의 뜻을 노 대통령이 전달한 데 대한 김정일 위원장의 화답으로 3자가 나온 것이다. 다만 6자회담 9·19공동성명에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4자 간 협의’가 언급된 점을 감안, 남북 정상 간 논의와 6자회담의 틀을 선순환 구조로 연결하기 위해 4자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문정인 교수의 위 주장은 어디까지 사실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3자 또는 4자’란 문구가 들어간 것은 김정일의 요구 때문이었다. 평화체제 구축 논의를 할 때 김정일의 의도에 따라 한국이나 중국을 협상 테이블에서 배제하기 위해 이 같은 모호한 문구를 의도적으로 삽입한 것이다. 즉 ‘남북 정상 간 논의와 6자회담의 선순환 구조’를 위해 4자라는 표현을 썼다는 문 교수의 설명은 당시의 상황에 비춰보았을 때 다소 무리가 있다.
당시 외교부 장관이었던 송민순씨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엔 이 문구가 삽입된 구체적인 배경이 실려 있다. 송민순 장관은 북한이 요구한 ‘3자 또는 4자’란 문구 대신 ‘직접 관련 당사자’란 표현을 넣자고, 문재인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현 대통령)에게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송 장관 회고록의 관련 부분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평양 체류 기간 중 현지 팀으로부터 ‘3자 또는 4자 간에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의 초안을 연락받았다. 나는 직통전화로 평양 현지 팀과 교신을 관리하고 있던 문재인 비서실장에게 두 가지를 반영할 것을 요구했다. 하나는 종전선언 앞에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를 통한 한반도 비핵화의 진전’을 강조하는 표현을 먼저 넣고 또 ‘3자 또는 4자’를 ‘직접 관련 당사자’로 바꾸자고 했다. 문 실장(문재인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편집자 주)도 이 문제의 비중을 이해했다. 그런데 종전선언 문장 다음에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의 성실한 이행을 위해 공동 노력한다’는 조항만 넣는 것으로 낙착되었다. ‘3자 또는 4자’는 그대로 남았다.… ‘3자 또는 4자’라는 표현은 김정일이 북한 협상팀에 지시한 사항이라서 변경의 여지가 없다고 하여 수용했다는 것이었다.>
송 장관은 “이 3자라는 말은… 북한이 사정에 따라서 중국이나 한국은 빼겠다는 전술을 구사할 여지를 갖겠다는 것으로 보였다”고 주장했다. 송 장관은 “북한 체제의 속성이 있긴 하지만 ‘김정일의 지시’라고 고집해서 부득이 수용했다는 것도 거북하게 들렸다”고 회고했다.
박왕자씨 피격 사망 후에도, ‘미국의 우회적 대북 압력’ 우려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교체된 후에도 문정인 교수의 대북 유화론은 계속 이어졌다. 2008년 7월, 금강산에 갔던 한국인 관광객 박왕자씨가 북한군 총격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한 달여 후인 8월 6일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한미 정상회담과 어려워지는 남북관계’)에서 문정인 교수는 “부시 대통령이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사건에 대한 유감과 조의를 표명한 것은 이해가 간다”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그 사건의 빠른 해결과 재발 방지를 위해 남북 당국자 간 대화 재개를 촉구한 것과 관련하여, 북한은 이를 미국을 통한 우회적 대북 압력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이는 남북관계를 걷잡을 수 없는 파행으로 내몰 수 있다.>
2008년 9월, 당시 언론은 이명박 정부가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개념계획-5029’를 보다 구체적인 작전계획으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는 요지의 보도를 했다(이후 정부는 이를 공식 부인). 1997년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비해 한미 양국은 연합계획인 ‘개념계획(COPLAN) 5029’를 수립한 바 있다. 개념계획 5029는 북한의 급변사태를 내전, 자연재해, 대량 탈북, 남한 국민 피랍 사태, 대량살상무기 유출 우려 등 5가지 유형으로 나눠 시나리오별 대응책을 담고 있다. 개념계획에는 ‘작전계획’과 달리 작전부대 편성 등 군사력 운용 계획은 들어 있지 않다.
개념계획을 작전계획으로 확대·발전시킨다는 보도가 나오자 문정인 교수는 9월 12일 MBC 라디오 <손석희 시선집중>에 출연해 “엄청난 재앙을 불러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 교수는 “대량살상무기는 6자회담의 틀에서 논의해 북을 제외한 5개국의 공동 행동으로 생각해야지 한미 양자 간에 대북 군사행동을 취하는 것을 조건으로 ‘작계 5029’를 준비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정일 위원장이 건재하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데…”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인 그해 12월 28일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북한 인권과 헬싱키 프로세스’)에서 문정인 교수는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강성 처방’을 지양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문 교수는 “북의 주권과 영토, 무력 불사용, 내정 불간섭 원칙 등을 양자 또는 다자 형식으로 보장해 북한을 안심시켜야 한다”며 “북의 자발적 변화를 모색하는 동시에, 북의 내부적 여건이 성숙되기 전에는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압력 행사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북한 같은 사회에서 인권에 대한 전방위 압박은 실효성이 적을 뿐 아니라 체제 전환의 흡수통일론으로 공격을 받음으로써 군사적 신뢰 구축과 평화공존을 어렵게 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2009년 2월 말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미 국무장관의 방한 이후 기고한 칼럼에서는 “라이스 전 국무장관이 방한한 것 같았다”며 북한에 대한 미국의 입장 변화가 느껴지지 않았다는 요지의 주장을 했다. 그의 칼럼 중 일부다.
<북의 권력 승계에 대한 클린턴 국무장관 발언은 결코 사려 깊지 못했다. 북의 승계 정치에 대한 공식적 언급은 금기시되어 왔다. 정확한 정보가 없는데 그러한 언급을 하는 것이 부적절할 뿐 아니라, 북의 급변사태 또는 붕괴를 기정사실화하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건재하고 국방위원회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북한 지도체제 변화 과정에서의 긴장 고조’ 가능성에 대해 미국 국무장관이 공식 언급한 것은 북미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 교수는 “미국이 압력을 가한다고 우리와 대화에 나설 북이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그럴수록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북의 적개심만 높아지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위태로워질 뿐”이라고도 했다.
PSI 가입 여부 두고 “북의 적대감 고조시킬 필요 있나”
2009년에 접어들자 이명박 정부는 미국이 주도하는 PSI(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에 정식 참여할 뜻을 내비쳤다. 그해 4월 5일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5월 25일 북한의 2차 핵실험에 따른 우리 정부의 대응책이었다. 문정인 교수는 이러한 움직임에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해 4월 7일 자 《한겨레》가 마련한 정종욱 전 주중 한국대사와의 대담에서 문 교수는 “PSI 참여가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한 효과적 제재 수단이 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PSI에 전면적으로 참여해 북의 적대감을 고조시킬 필요가 있나. 게다가 PSI는 오바마 정부의 철학과도 맞지 않는다고 본다” “PSI에서 시리아, 이란이 빠지면 북한과 국제 테러조직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돼 버린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그 닷새 후 보도된 《한겨레》 칼럼에서도 “전략동맹의 관점에서 PSI에 접근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며 미국 정부를 비판하기도 했다.
문 교수는 “PSI는 국제조약도 아니고 부시 행정부의 ‘네오콘’들이 기획한 공세적 일방주의의 산물로서, 유엔 틀 밖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관련 국가들 간의 임의활동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했다.
‘천안함 폭침’ “한 편의 초현실주의 영화 보는 것 같아”
2010년 문정인 교수는 북한이 자행한 천안함 폭침에 대해 “한 편의 초현실주의 영화를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10년 6월 14일 자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그만한 작전 능력을 할 능력이 있느냐에 대한 의문이 여전하다’는 질문에 문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당시에 대규모 한미합동군사훈련을 할 때고, 천안함이 대(對)잠수함 초계 함정이라는 점에서 참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지난 정부에서 대통령 자문 국방발전위원으로 일하면서 남북한 전력에 대해 비교적 소상히 살펴본 적이 있다. 북한군이 그 정도의 침투, 타격 능력을 가진 것으로 보지 않았다. 한 편의 초현실주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그리고 한국 해군이 그렇게 엉터리라고 보지 않는다. 이렇게 깨졌다는 게 너무 어처구니가 없다. 감사원 감사 결과는 더더욱 믿기 어렵다. 한국 해군의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이번 사건에 대해선 집중적으로 조명할 부분이 있다.>
그는 “우리 해군이 그것밖에 안 되는가. 한미 연합 전력이 그것밖에 안 되는가. 그렇다면 우리 대한민국 안보는 어떻게 할 것인가. 앞으로 해군들은 어떻게 얼굴 들고 다닐 것인가”라는 주장도 덧붙였다. 그해 6월 29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문정인 교수는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부의 조사결과에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으로서 이를 믿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문 교수는 이날 발표문에서 “천안함 사건은 참으로 비극적이며, 북한의 만행은 규탄돼야 한다”고 해 사실상 북한 소행임을 인정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직후인 2010년 12월 2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는 “정부가 2007년 10·4 선언과 같은 해 12월 11일 남북총리회담의 45개 합의사항을 그대로 이행했으면 이런 문제가 안 생겼을 것”이라며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이 합의에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구상과 해주에 경제특구를 만들고 공동어로작업을 하는 등의 방안이 명시돼 있었다. 문 교수는 “(이 내용은) 북한에서도 반대했지만 우리 정부가 설득해서 합의한 것인데 그것을 무시하면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연평도 포격이 북한이 아닌 우리 정부의 책임이라는 듯한 주장이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그간의 주장은 일관되게 이어졌다. 2014년 4월 오바마 대통령 방한 직후 《중앙SUNDAY》가 마련한 대담에서 오바마 대통령 방한에 대해 문정인 교수는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게 만든 것은 의미가 있지만 이를 통해 한반도 평화·안정을 다졌다고 보긴 힘들다. 기본적으로 현상 유지다”라고 평가했다.
문 교수는 “새로운 틀을 만들기보다 북한 위협에 대한 대응 차원의 성격이 크다. 기본 점수는 얻었지만 새로운 큰 그림을 그리는 데는 미흡하다. 양국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보면 북한의 퇴로를 차단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핵문제를 얘기할 수는 있지만 인권 문제까지 거론한 것은 안 좋다. 한반도의 평화도 중요하고 북한이 도발적 태도를 보인 것도 문제지만 다음 단계를 생각하면 신중히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2015년 4월 10일 자 《시사IN》에 기고한 칼럼에서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망) 배치와 관련해 박근혜 정부를 비판했다. “‘미국이 요청하지 않았기 때문에 협의하지도 않았고 결정한 바도 없다’라는 사드 문제가 왜 이렇게 불거져 나왔는지 알 수 없다”며 사드 문제에 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내보였다. 문 교수는 “수동적 ‘방패’ 구실밖에 못하는 사드가 마치 최선의 대안처럼 부각되는 것을 묵인하는 정부의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고도 말했다. 북한의 탄도미사일이 자유 낙하하는 과정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요격하는 시스템에 대해 ‘수동적 방패’ 구실이라고 평가절하한 셈이다.
“우리가 수용할 수 없는 독재자라도 북한 정체성은 인정해 줘야”
그는 2016년 6월 7일 인터넷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도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4무(無), 즉 네 가지가 없다”고 비판했다. 문 교수 주장의 요지는 박근혜 정부가 북한에 대해 무지하고, 무능하고, 무책임하고,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을 들어보자.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 ‘대북제재부’가 돼버렸다. 박근혜 정부는 북한이 고통을 느껴서 스스로 셈법을 바꾸게 하겠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 이에 외교부가 가지고 있는 자원 모두를 북한의 행태 변화를 위해 쓰는 것이다.… 북한이 잘못된 행동을 했으니까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건데, 그대로 적당히 넘어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자발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우리가 고통을 줘서 바꾸게 해야 한다는, 즉 ‘가학적 버릇 고치기’라는 측면이 상당히 강하다. 어떻게 보면 박 대통령은 자신이 정한 원칙의 포로가 되어버린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그는 “북한 지도자가 우리가 수용할 수 없는 독재자라 하더라도 대화의 상대로 생각한다면 그만큼 북한의 정체성은 인정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전직 외교관들 “청와대 외교안보특보 해임해야”
지난해 9월 19일 조원일 전 주베트남 한국대사 등 전직 외교관 100명은 성명을 내고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지난 8개월 동안 정권 담당자들의 친북·종북 성향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이 처한 외교안보적 위기상황을 감안할 때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한 정책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은인자중해 왔다”며 문정인 특보의 해임을 요구했다. ‘학자의 탈을 쓰고 종북 행각을 계속함으로써 한미일을 이간시키고 있는 청와대 외교안보특보를 즉각 해임하라’고 한 것. 문정인 특보가 이 같은 움직임에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알려진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