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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史記 全 130 編 -

ngo2002 2018. 1. 9. 14:43

- 史記 全 130 編 -

 

 

 

[本記 12編&三皇本記]

 

五帝本紀夏本紀殷本紀周本紀
秦本紀始皇本紀項羽本紀高祖本紀
呂后本紀孝文本紀孝景本紀孝武本紀


 


 

[表 10編]

 

三代世表

十二諸侯

年表

六國年表

秦楚之

際月表

漢興以來

諸侯王年表

高祖功臣

侯者年表

惠景間侯

者年表

建元以來

侯者年表

建元巳來王子侯者年表漢興以來將相名臣年表


 


 


[書 8編]

 

禮書樂書律書歷書
天官書封禪書河渠書平準書

 

 




[世家 30編]

 

吳太伯

世家

齊太公

世家

魯周公

世家

燕召公

世家

管蔡蔡

世家

陳杞

世家

衛康叔

世家

宋微子

世家

世家

世家

越王句踐世家

世家

世家

世家

世家

田敬仲完世家

孔子

世家

陳涉

世家

外戚

世家

楚元王

世家

荊燕

世家

齊悼惠王世家

蕭相國

世家

曹相國

世家

留侯

世家

陳丞相

世家

絳侯周勃世家

梁孝王

世家

五宗

世家

五宗

世家


 

 


 

[列傳 70編]

 

伯夷

列傳

管·晏

列傳

老子·

韓非

列傳

司馬穰?列傳

孫子·

吳起

列傳

伍子胥

列傳

仲尼

弟子

列傳

商君

列傳

蘇秦

列傳

張儀

列傳

樗里子·

甘茂

列傳

穰侯

列傳

白起·

王?

列傳

孟子·

荀卿

列傳

孟嘗君

列傳

平原君·虞卿

列傳

魏公子

列傳

春申君

列傳

范雎·

蔡澤

列傳

樂毅

列傳

廉頗·

藺相如

列傳

田담

列傳

魯仲連·鄒陽

列傳

屈原·

賈生

列傳

呂不韋

列傳

刺客

列傳

李斯

列傳

蒙恬·

列傳

張耳·

陳余

列傳

魏豹·

彭越

列傳

?布

列傳

淮陰侯

列傳

韓信·

盧館

列傳

田담

列傳

樊·麗·

膝灌

列傳

張丞相

列傳

麗生·

陸賈

列傳

傅·근·

괴成

列傳

劉敬·

叔孫通列傳

季布·

欒布

列傳

袁담·

晁錯

列傳

張釋之·馮唐

列傳

萬石·

張叔

列傳

田叔

列傳

扁鵲·

倉公

列傳

吳王비

列傳

魏其·

武安侯列傳

韓長孺

列傳

李將軍

列傳

匈奴

列傳

衛將軍·驃騎

列傳

平津侯主父

列傳

南越

列傳

東越

列傳

朝鮮

列傳

西南夷

列傳

司馬相如列傳

淮南·

衡山

列傳

循吏

列傳

汲·鄭

列傳

儒林

列傳

酷吏

列傳

大宛

列傳

遊俠

列傳

?幸

列傳

滑稽

列傳

日者

列傳

龜策

列傳

貨殖

列傳

太子公自序

 

 



 

▶ 사기 70 열전 (史記 七十 列傳) 개략(槪略) ◀
 

 

열전(列傳)의 사전적 의미는 敍列人臣事跡傳於後世(인신의 사적을 서술하고 열거하여 후세에 전한다)이다. <사기>하면 열전을 떠올릴 정도로 사기의 대명사로 자리매김되어 있고 분량도 제일 많다. 사마천의 명성을 빛내게 한 불후의 역작이 바로 열전이다.

 

 

열전은 시간적으로 첫편에 나오는 백이와 숙제로부터 한무제까지 각양 각층의 인물군이 망라되어 있다. 귀족, 관료, 장군, 유세가, 자객, 토호, 은자(隱者)와 군왕의 총애를 받았던 여인에 관한 열전도 있다. 뿐만 아니라 흉노, 조선등 중국을 둘러싼 이민족의 풍속과 교화도 포함되어 있어 중국전체의 광범위한 역사를 다루고 있다.

 

 

사마천은 열전의 전(傳)이 의미하는 전기(傳記)가 생애의 모든 것을 기록하는 통상적인 의미와는 달리, 해당인물에 대한 특징적인 면모를 골라 기록했다. 이는 자신이 처한 특수한 입장에서 해당인물을 선정하고 자신의 역사관과 가치관에 따라 평가하고 해석한 독특한 인식에 기인 된 것이기도 하다.

 

 

그 가치판단과 인식의 기준은 도덕성과 선(善) 그리고 의(義)다. 그는 백이열전을 열전 서두에 올려놓고 자신의 논설과 심경을 대변하고 있다. 무릇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은 벌을 받는 것이 하늘의 도리이고 이치인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또 「하늘의 뜻은 편애하는 일 없이 언제나 착한 사람의 편에 선다」(天道無親, 常與善人) 라고 했는데 실제로는 하늘이 악한 사람편에 서는 일이 많아, 과연 하늘의 도리라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天道是耶,非耶)을 묻고 있다.

 

 

이는 옳은 일 하려다 궁형까지 받은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하늘에게 묻고 이를 어찌할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그는 백이와 숙제가 세상에 알려진 것도 공자에 의해서이고 안연이 공자의 칭찬을 받아 두드러진 것 처럼 자신도 구차한 목숨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 있는 것은 세상에 사기를 내놓기 위함이고 사기로 말미암아 기구한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놓아 평가받고 싶은 심정을 대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열전은 70편으로 되어 있으며 그 내용을 순서적으로 개략을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 1. 백이열전 (伯夷列傳) - 열전 중 첫번째 편으로 고죽국(孤竹國)의 공자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의 인품을 적고 있다. 그러나 백이숙제의 기록은 간단하고 대부분 사마천 자신의 논설을 다루고 있다. 천도(天道)에 대한 의문은 곧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간접적으로 원망하고 있다. 

 

▶ 2. 관. 안 열전 (管·晏列傳) - 관중(管仲). 제 환공을 패자로 만든 명 재상이다.포숙아와의 관포지교(管鮑之交)로 유명하다. 관자(管子)로도 불린다.  안영(晏영). 관중이 죽은 지 100년 후에 나타난 명 재상으로 안자(晏子)라고도 불린다. 안자춘추(晏子春秋)를 지었다. 

 

▶ 3. 노자. 한비열전 (老子·韓非列傳) - 도가의 일인자인 노자(老子)와 형법학의 일가를 이룬 한비자(韓非子)의 전기이다.그 외 신불해(申不害)와 장자에 대해서도 기록하고 있다. 장자는 노자사상에 근거한 유가파로 묵가를 비판한다. 

 

▶ 4. 사마양저열전 (司馬穰저列傳) - 사마양저는 제나라 병법가로 당시 유명한 재상인 안영의 추천으로 장군에 임명되었다. 사마양저병법을 지어 보급시켰다. 

 

▶ 5. 손자. 오기열전 (孫子·吳起列傳) - 손자는 본명이 손무(孫武)로 제나라 출신이다. 오왕 합려때 등용되어 오자서와 함께 楚를 무찔렀다. 병법서로 손자13편이 전해진다
오기는 위(衛)나라 사람으로 오자(吳子)병법서를 남겼다. 초나라 도왕(悼王)때 재상을 지냈
다. 연저지인의 고사로 유명하다. 

 

▶ 6. 오자서열전 (伍子胥列傳) - 오자서는 초나라 사람으로 초평왕이 부친과 형을 죽이자 복수하고자 오나라로 망명한다. 오왕 합려때 등용되어 손무와 함께 초를 격멸한다. 그러나 부차가 왕위에 오르자 모함을 당해 자살하게 된다. 

 

▶ 7.  중니제자열전 (仲尼弟子列傳) - 공자와 그 제자 73인에 관한 내용이다. 

 

▶ 8. 상군열전 (商君列傳) - 상앙은 전국시대 진(秦)나라 법가를 대표하는 정치가다. 병제, 세제, 법제를 정비하고 토지제도와 군현제를 시행하는 대개혁을 단행했다. 진이 중국을 통일하는데 기초를 다졌지만 지나친 개혁이 관료들의 반발을 사 정작 그는 거열형에 처해지고 말았다. 

 

▶ 9. 소진열전 (蘇秦列傳) - 소진은 귀곡자로부터 배워 종횡가가 되었다. 전국시대에 진(진秦)에 맛서 6국을 연합하는 합종책을 유세하여 6국의 재상을 지냈다.  15년간 중원에 평화를 가져왔으나 동문인 장의의 등장으로 결국 비명횡사하게 된다. 

 

▶ 10. 장의열전 (張儀列傳) - 장의는 소진과 함께 배운 종횡가다. 진(秦)나라 재상이 되어 소진의 합종책에 대항하여 연횡책(連衡策)으로 후에 진이 천하통일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 

 

▶ 11. 저리자. 감무열전 (樗里子·甘茂列傳) - 진나라의 대표적인 종횡가로 진시황이 여섯나라를 통일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종횡가 저리자와 감무의 전기를 다룬 것이다.  저리자는 무왕때 재상을 지냈으며, 감무는 저리자와 감무의 추천으로 혜왕때 장군이 되어 천하의 일을 언급하였으나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된다. 

 

▶ 12. 양후열전 (穰侯列傳) - 위염은 전국시대 중기 진 소왕(昭王)의 숙부로 누이가 섭정할 때 실권을 잡았다. 장군으로 임명되었다가 큰 공을 세워 양후에 봉해졌다,  재상이 되어 백기를 장수로 삼아 한 위 제 초국을 차례로 무찌러 세번이나 재상이 되었으나, 세력이 너무 커 범수의 비방을 듣고 결국 불운에 처하여 죽었다. 

 

▶ 13. 백기. 왕전열전 (白起·王전列傳) - 백기는 전국시대 진나라 장수로 공손기(公孫起)라고도 하며, 용병술에 뛰어났다. 소왕(昭王)때 무안군에 봉해졌으며, 그 유명한 장평전(長平戰)에서 조나라 군사를 대파하여 포로 40여만명을 산채로 묻어버렸다. 후에 범수의 시기를 받아 칼을 받고 자결했다.  왕전은 진시황 시대의 장수로 그 아들 왕분과 함께 진이 통일하는데 한몫했다. 그러나 진시황에게 어진 행실을 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손자가 재앙을 입었다고 사마천은 말한다. 

 

▶ 14. 맹자. 순경열전 (孟子·荀卿列傳) - 맹자는 유가사상을 계승 발전시킨 노나라 사람이다.제 선왕(宣王)때 벼슬에 나섯으나 그의 사상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맹자 7편의 저서가 있다.  순자는 전국시대 말기 사람으로 맹자사상을 더욱 발전시킨 인물이다. 초의 춘신군에 의해 장관직에 올랐다. 제자로는 재상을 지낸 이사(李斯)가 있다. 

 

▶ 15. 맹산군열전 (孟嘗君列傳) - 전국시대 4공자의 한사람인 맹상군은 이름이 전문이다. 제나라 왕족으로 평소 3천명의 식객을 두었으며 계명구도(鷄鳴狗盜)의 고사로 유명하다. 

 

▶ 16. 평원군. 우경열전 (平原君·虞卿列傳) - 평원군 조승(趙勝)은 조나라 공자로 혜문왕(惠文王)과 효성왕(孝成王)때 재상을 지냈다. 모수자천의 고사로 유명하다.  우경(虞卿)은 같은 시대에 상경을 지내면서 조나라에 충성한 전략가다. 

 

▶ 17. 위공자열전 (魏公子列傳) - 전국 4공자의 하나인 위나라 공자 무기(無忌)는 신릉군으로 불리었다. 4공자중 가장 어질고 능력있는 인물로서 많은 인물들을 배출했다.  조나라 평원군과는 의형제로 조나라를 도와 楚·趙·韓·燕나라와 연합하여 진군을 크게 격퇴했다.  위공자병법이 전해지고 있으며 진나라의 이간으로 위왕의 미움을 사 술로 지내다 술독으로 죽었다. 

 

▶ 18. 춘신군열전 (春申君列傳) - 황헐(黃歇)은 4공자의 한사람으로 변설에 뛰어났다. 진나라에 불모로 갔다가 자신을 담보로 태자를 귀국시킨 공로로 왕이 된 고열왕 아래서 20년간 재상을 지내면서 합종책을 추진하여 진에 맛섰고 노나라를 멸망 시켜 초의 국위를 떨쳤다.  말년에 신하인 이원의 음모에 휘말려 살해되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 19. 범수. 채택열전 (范雎·蔡澤列傳) - 범수는 위나라 사람이고 채택은 연나라 사람으로 모두 고향에서 불우하게 살다가 진나라에 들어와 재상이 되어 출세한 인물들이다.  범수는 진나라 소왕을 도와 원교근공책(遠交近攻策)을 세웠고, 양후의 권한을 빼았았다(위후열전 참조)  채택은 공을 세운 후에는 물러나는 것이 최상의 도라고 재상인 범수를 설득하여 물러나게 한 후 재상이 되었다. 후에 그도 스스로 물러나 평안한 말년을 보냈다. 달도 차면 기운다는 월만즉휴(月滿則虧)의 유명한 말을 남겼다. 

 

▶ 20. 악의열전 (樂毅列傳) - 악의는 전국시대 저명한 연나라 장군으로 소왕(昭王)을 도와 趙·楚·韓·魏나라 연합군 을 이끌고 제나라를 징벌하여 성 70개를 함락시키는 큰 공을 세운 인물이다.  제나라 첩자의 이간으로 실각되었으나 혜왕의 부름에 그 유명한 보연왕서(報燕王書)를 지었다. 제갈량의 출사표가 여기서 취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본 소설가 가 쓴「악의」5권이 국내에 번역되어 있다. 

 

▶ 21. 염파. 인상여열전 (廉頗·藺相如列傳) - 염파는 조의 장군이고 인상여는 재상이다.  인상여가 진나라 사신으로 가 화씨의 벽을 되찾아오는 데 공을 세워 재상의 자리에 올랐다. 이를 시기한 염파를 자기편으로 끌여들여 부형청죄(負荊請罪) 로 문경지교(刎頸之交)가 된 고사는 유명하다.  진나라와의 싸움에서 첩자에 속은 조의 효성왕이 조괄의 아들 조사를 염파대신 내세워 대패했다. 염파는 말년에 타국 객지에서 멈돌다 초나라에서 죽었다. 

 

▶ 22. 전단열전 (田單列傳) - 전단은 제나라 전씨일족의 한사람으로 연의 악의가 연합군을 이끌고 제의 70여개의 성을 함락시켰을 때 전단만이 즉묵성(卽墨城)을 지키며 저항했다.  이 열전은 전단이 지혜와 재능으로 연을 깨뜨리고 제를 지키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 23. 노중련. 추양열전 (魯仲連·鄒陽列傳) - 노중련과 추양은 전국시대 제나라 사람으로 언변이 뛰어났으며 명예와 부를 경시하고 명예를 높이 여겨 의를 추구한 선비의 상을 사마천이 높이 평가하고 있다. 

 

▶ 24. 굴원. 가생열전 (屈原·賈生列傳) - 노중련,추양과 마찬가지로 굴원과 가생의 고고한 삶을 추적했다. 굴원은 이름이 굴평으로 초 회왕때 관리를 지냈고 역사적으로 유명한 시인이다. 탁탁한 세상을 한탄하여 회사(會沙)의 부(賦)를 짓고 멱라에 몸을 던져 죽었다.  가생은 이름이 가생(賈生)으로 높은 식견으로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 했으나 여의치 않아 슬픔속에 죽었다.굴원이 죽은 지 백년이 지나 상수에서 시를 짓고 굴원을 추모했다. 

 

▶ 25. 여불위열전 (呂不韋列傳) - 여불위는 韓나라 상인으로 진 공자 자초를 매수하여 후에 진시황 때 상국이 되어 진나라 통일에 큰 공을 세웠으며 불후의 명작 여씨춘추를 남겼다.  奇貨可居(귀한 물건은 사둘 가치가 있다)란 말을 남겼다. 

 

▶ 26. 자객열전 (刺客列傳) - 춘추전국시대의 5명의 자객인 조말(曹沫),전제(專諸),예양(豫讓),섭정(?政),형가(荊軻) 에 대한 이야기이다.  노나라 조말이 제 환공을 위협하고, 오나라 전제가 오나라 왕 요를 죽이고, 진(晉)나라 예양이 조 양자를 찌르고, 지의 섭정이 한나라 재상 협루를 찌르고, 연나라 형가가 진나라 왕 정(政: 진시황)을 찌른 것을 적고 있다. 

 

▶ 27. 이사열전 (李斯列傳) - 이사는 진시황을 도와 진의 법치주의 기반을 확립하는데 큰 기여를 한 사람이다.  이사는 진시황이 죽자 조고의 음모를 돕다 결국 다섯가지 형벌을 받아 죽었다. 

 

▶ 28 .몽염열전 (蒙恬列傳) - 몽염은 진 통일후 북방을 지키면서 이민족을 징벌하고 만리장성을 쌓았다. 그러나 진시황이 죽자 조고와 이사의 음모로 동생 몽의와 함께 죽게 된다. 

 

▶ 29. 장이. 진여열전 (張耳·陳余列傳) - 장이와 진여는 전국시대 말 조나라의 「목이 달아나도 변치않는」  친구지간 이었지만, 후에 정치적 격변속에 각자 다른 나라로 가 구적(仇敵)이 되어 장이는 유방에게로, 진여는 조왕을 옹립하여 대립하게 된다.  진여는 장이를 깨뜨려 조나라에서 대왕(代王)이 되었으나, 후에 장이가 한나라에 투항하여 조나라를 멸망시키고 진여를 죽이고 조나라 왕으로 봉해졌다.  전국시대 말기의 혼란과 격변속의 대립을 친구간인 두사람을 통해 조명하고 있다. 

 

▶ 30 .위표. 팽월열전 (魏豹·彭越列傳) - 위표는 초한전쟁시 위왕에 봉한 항우를 배반하고 유방에 투항하였다가 한나라가 패하자 다시 한나라에 반기를 들어 유방은 한신을 보내 위표를 잡아 죽였다.  팽월은 양나라에서 유방의 군대에 합류한 장군으로 초나라의 보급로를 차단하여 배후에서 항우를 괴롭혔다. 한나라 건국 후 여후는 팽월이 모반을 꾀했다하여 그와 일족을 죽이고 나라도 없어졌다. 

 

▶ 31. 경포열전 (鯨布列傳) - 경포는 본명이 영포(英布)로서 진나라 법에 연좌되어 경형(?刑)을 당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초한전 때 항우를 도와 구강왕(九江王)에 봉해졌으나 유방이 반간계를 써 한나라에 투항해 회남왕에 봉해졌다.  유방이 개국공신 한신과 팽월을 죽이는 것을 보고 한나라에 반기를 들었으나 싸움에 져 죽임을 당했다. 

 

▶ 32. 회음후열전 (淮陰侯列傳) - 과하지욕의 주인공인 한신(韓信)에 대한 전기이다.  진나라 말 항우에게 의탁하려 했으나 여의치 못하자 유방에게로 달아났으나 소하의 추천으로 장수가 되었다. 후에 항우와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워 초왕에 봉해졌다가 반역죄로 회음후에 강등되어 멸족의 화를 당하게 된다. 

 

▶ 33. 한신. 노관열전 (韓信·盧館列傳) - 회음후 한신과 이름이 같아 구별하기 위해 한왕신((韓王信)으로 일컫고 있다.  한왕신은 한나라 양왕(襄王)의 후손으로 유방을 도와 천하를 평정하여 공로로 한왕에 봉해졌다. 흉노에 투항했다가 잡혀 죽게 된다.  노관은 유방과 같은 마을에서 자라 후에 유방을 도와 장안후(長安侯)에 봉해졌다 후에 연왕(燕王)이 되었다.  진희의 반란때 반역죄로 몰려 흉노에 투항해 동호(東湖)의 노왕(盧王)으로 살다 그 곳에서 죽었다. 

 

▶ 34. 전담열전 (田담列傳) - 전담은 제나라 왕 전씨의 후예로 그의 사촌동생 전영,전횡이 차레로 왕이 되었다가 패망하는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전영은 항우의 논공행상에서 반발하여 독립하여 제왕이 되었으나 항우에게 패해 죽는다. 전횡은 전영의 동생으로 전영의 아들 전광을 왕으로 세우고 자신은 재상이 되어 국사를 도맡았다. 후에 싸움에 져 섬으로 도망갔으나 한나라 왕의 부름을 받고 치욕스럽게 느껴 목을 찌르고 자살했다. 

 

▶ 35. 번.역.등.관열전 (樊·역·膝·灌列傳) - 한나라 개국공신이며 장수인 번쾌(樊?) 역상, 하우영(夏侯?), 관영(灌?)의 행적을 서술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미천한 출신이었으나 시대의 조류에 편승하여 영웅이 되었다.

 

▶ 36. 장승상열전 (張丞相列傳) - 漢나라 명재상인 張蒼과, 강직한 성격으로 죽음도 불사하고 황제에게 직간을 잘하여 蕭何,曺參도 두려워 할 정도의 재상 周昌을 다뤘다. 그러나 황제도 아량을 보임으로서 군신간의 보이지 않는 신뢰를 엿볼 수 있다.  그 외 任敖?申屠嘉등 재상을 지낸 인물들을 기록했다. 

 

▶ 37. 역생육고열전 (麗生·陸賈列傳) - ?客편으로, 한고조의 모사 역생 이기(食其)과 육고(陸賈), 초나라의 모신 주건(朱建)의 사적을 담고 있다.  역이기는 패왕 항우를 설득시킬 정도의 담력과 지력의 소유자다. 

 

▶ 38. 부근.괴성열전 (傅·革斤. 괴成列傳 - 한고조의 측근 장수 세사람의 전기이다. 부관(傅寬)은 齊를 평정하여 陽陵侯에 봉해졌고, 信武侯 근흡과 괴성후 주설도 높은 관직에 올랐다. 

 

▶ 39. 유경.숙손통 열전 (劉敬·叔孫通列傳) - 한나라 건국초기에 나라를 안정시키는데 큰 공을 세운 인물들이다. 劉敬은 長安천도를 진언한 인물이고, 叔孫通은 秦나라 학자로 항우를 따랐다가 유방에게 투항한 인물로 예법을 관장하여 유방으로 하여금 황제의 고귀함을 깨우쳐준 인물이다. 시세와 형세의 변화에 맟추어 자신을 황제에게 알리는 고도의 처세술로 유방의 신임을 얻었다. 

 

▶ 40 계포 난포열전 (季布·欒布列傳) - 계포는 항우의 사람으로 유방이 현상금까지 걸었으나 어떤 사람의 도움으로 살아나 고조가 벼슬까지 내렸다. 후에 명성을 얻어 "황금 백근을 얻는 것보다 계포 말 한마다 듣는 것이 더 낫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난포는 팽월과 친구지간으로 팽월이 사형당했을 때 황명을 무릅쓰고 그의 시체를 거둔 의협심을 사마천이 기렸다. 

 

▶ 41. 원앙조조열전 (袁앙·晁錯列傳) - 원앙은 지나치게 간언을 잘하고 강직하여 주위에 많은 적을 만들어 결국 죽음을 당했으니 太 强 卽 折(태강즉절 - 너무 강하면 부러진다)의 본보기가 된 인물이다  조조는 상앙의 형법학을 배워 기지가 있고 총명스러웠으나, 원앙과 견원지간으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원앙을 죽이려다 오히려 원앙때문에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권모에 앞장 서지마라, 재앙을 입게된다"는 말은 바로 이 두사람을 두고 한 말이다. 

 

▶ 42. 장석지. 풍당열전 (張釋之·馮唐列傳) - 장석지와 장탕은 文帝때 벼슬을 지낸 사람들로, 직간으로 황제의 실정을 바로잡고 현군으로 만들었다. 

 

▶ 43. 만석 장숙열전 (萬石·張叔列傳) - 석분(石奮)은 충성심과 근면으로 만석의 재산을 받아 만석군이라는 호를 얻었다.   그 외 장탕,위관, 직불의,주인의 사적을 실었다. 周仁은 입이 무겁고 검소하여 황제가 다른사람의 좋고 나쁨에 대하여 물으면 항상 "폐하께서 직접 살피십시오" 라 말하여 남을 헐뜻으려 하지 않았다. 무제가 그를 중히 여겨 노후를 편안하게 보냈다. 

 

▶ 44. 전숙열전 (田叔列傳) - 달도 차면 기울며, 사물은 성하면 쇠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나아갈 줄만 알고 물러날 줄을 모르며, 오래도록 부귀를 누리게 되면 화가 쌓여 해독을 끼치고 만다. 사마천은 범려가 후세에까지 이름을 길이 남기게 된 것을 빗대어 후인들을 경계하고 있다. 

 

▶ 45 . 편작. 창공열전 (扁鵲·倉公列傳) - 神醫 편작과 창공의 사적에 대한 기록이다.  두 사람 모두 하늘이 내린 의술을 지녔으나 남의 시기를 받아 화를 입었다. "여자는 아름답든 못생겼던 궁중에 잇으면 시샘을 받고, 선비는 어질고 어질지 않든 간에 조정에 들어가기만 하면 의심을 받는다" 사마천이 이 두사람을 두고 한 말이다. "아름답고 좋은 것은 다 좋지 못한 불길의 그릇이다" (美好者不祥之器) 

 

▶ 46. 오왕 비열전 (吳王 비列傳) - 오王 劉비는 한고조의 형인 유중(劉仲)의 아들이다. 경제가 제후들의 봉토를 깎는 것에 불만하여 난을 일으켰다가 실패하여 멸족을 당한다. 그 후 "오랑캐와 사귀어 자기집안을 멀리하지마라"는 말이 생겨났다. 

 

▶ 47 .위기 무안후열전 (魏其·武安侯列傳) - 위기후 두영(竇영)은 한문제 두왕후의 사촌조카로 7국의 난을 평정하여 위기후에 제수되었고, 성품이 깨끗하여 황제가 주는 하사금도 받지 않았다.  무안후 전분은 효경제 황후(왕태후)의 친동생으로 귀한 신분이 아니었으나 위기후에 빌붙어 온갖 아부로 재상지위에 오르자 축재하고 위기후의 재산까지 취하려는 인물로, 사마천은 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사람을 비교하여 군자와 소인배를 나타나고자 했다. 

 

▶ 48. 한장유 열전 (韓長孺列傳) - 어사대부 韓安國은 字가 長孺다. 그는 재물을 좋아하고 탐하기는 하였으나, 자신보다 청렴하고 현명한 선비들을 추천하여 선비들이 그를 칭찬하고 앙모하였다. 황제도 그를 재목으로 여겨 무안후가 죽자 승상의 자리에 임명하려 했으나 다리를 심하게 절어 다른사람을 기용했다. 그 후 지위도 떨어지고 소원해져 우울하게 지내다가 피를 토하고 죽었다. 

 

▶ 49 .이장군 열전 (李將軍列傳) - 명궁수 출신의 李廣은 문제,경제 무제때 70여차례에 걸쳐 흉노와 싸워 공을 세워 飛將軍으로까지 불린 장수이다.  그러나 그의 재주를 시기하는 조정대신들에 의해 궁지에 몰려 결국 자진(自盡)하게 된다. 백성들도 울고 남녀노소 모두 그를 슬퍼했다고 한다. 사마천이 변호하다 화를 당하게 된 장수 이릉이 이광의 손자다. 사마천은 이광의 경우를 보고 "복숭아나 오얏은 말을 하지 않지만 그 밑에는 절로 길이 난다"고 평한다. 

 

▶ 50. 흉노 열전 (匈奴列傳) - 본래 한나라와 동족인데 오랜 세월이 흘러 적대관계에 있는 흉노족에 관해 적었다.  사마천은 어진 장수를 가려 쓰는 방법을 논하였고, 흉노를 포용하고 화해 정책을 쓰지 않는 것은 사람들이 권세를 얻기 위해 아첨하여 자기 주장이 채택되도록 하는 편견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라고 사마천은 말한다. 

 

▶ 51. 위장군표기열전 (衛將軍·驃騎列傳) - 大將軍 위청(衛청)과 표기(驃騎)장군 곽거병(郭去病)이 흉노정벌에 혁혁한 공을 세운 공적을 객관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무제의 외척이었기에 드러나는 문제점을 무제의 딸이 부정한것을 들어 비판하고 있다. 

 

▶ 52. 평진후 주보열전 (平津侯·主父列傳) - 당대의 유학자인 평진후 공손홍과 주보언의 사적을 적었다.  공손홍은 曲學阿世라는 평을 듣고 있듯이 그의 처세술은 가히 일등급이다. 겉으로는 너그러우나 속은 각박하고 남을 의심하고 시기심이 많아, 주보언을 죽이고 동중서를 쫒아냈다. 그러나 검소하여 남에게 다 나누어주고 집에는 남은 것이 없었으니 이 또한 처세의 달인이 아닌가? 그러나 사마천은 공손홍을 긍적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주보언은 어려운 환경에서 벼슬에 오르자 뇌물을 긁어모아 주위에서 이를 책하자 五鼎食을 먹기 위해 해는 저물고 갈길이 멀다 하였다. 남의 약점과 사생활을 들추어 내는데 공이 많아 벼슬이 높아졌으나 결국 그때문에 일족이 몰살당했다. 

 

▶ 53. 남월열전(南越列傳) - 남월은 진시황, 한무제 때 중국에 편입된 지역으로 진시황이 조타를 내세워 나라를 세우는 과정과 중국과의 관계등을 서술했다.   사마천은 이 외에도 주변의 여러 소수민족에 대해서도 상세히 언급하고 있다. 

 

▶ 54. 동월열전 (東越列傳) - 동월은 남월의 동쪽으로 민월이라고도 한다. 월왕 구천의 후손으로 한나라 때 무저를 민월왕에 봉하고, 요를 동해왕에 봉했던 두 사람이 다스린 지역이다.  지금의 복건성 지방이다. 

 

▶ 55. 조선열전 (朝鮮列傳) - 조선은 지금의 한국지역으로 한나라 때 위만이 난을 일으켜 평양에 도읍을 세웠는데, 한무제가 군대를 보내 복속시키고 한사군을 설치하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 56. 서남이열전 (西南夷列傳) 서남이는 지금의 운남,귀주 사천성으로 중국의 서쪽지역이다. 촉의 남쪽에 있는 수십 여개국의 흥망을 적었다. 

 

▶ 57. 사마상여 열전 (司馬相如列傳) - 사마상여는 字가 長卿으로 책읽기를 좋아하고,인상여(藺相如)의 사람됨을 흠모 하여 이름을 相如로 바꾸었다.  사마상여는 子虛賦,大人賦등을 지었다. 사마천은 그를 평하기를 "그의 문장이 너무 곱고 과장된 것이 많으나 그 주가 되는 뜻은 검소와 절약이다"라 하여 시경에서의 풍간에 비유하고 있다. 

 

▶ 58. 회남 형산열전 (淮南·衡山列傳) - 이 편은 한왕실에 반란을 꾀하다 멸족당한 한고조의 막내아들인 유장과 그의 아들들을 서술한 것으로, 세가에 포함되지 못하고 열전에 편입하였다.  포악한 성격의 회남의 여왕 유장과 백성을 위하고 성품이 착한 그의 아들 유안의 성격을 대조시켜 서술하고 있다. 유장은 회남왕 경포가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평정하여 회남왕에 봉해졌는데 늘 교만하고 법을 어겼다   형산왕은 유장의 둘째아들로 5초7국의 난 때 한나라를 지켜 황제에게 상을 받았으나 그의 아들 사(賜)가 반역을 꾀하여 멸족당하였다. 

 

▶ 59. 순리열전 (循吏列傳) - 순리란 법을 잘 지키고 청빈한 관리란 뜻으로, 이편에 수록된 순리 5명은 모두 선진 때의 관리들이다.  초의 손숙오(孫叔敖), 정의 子産, 노의 公儀休, 초의 재상 石奢, 그리고 晉나라 문공 때의 옥관 李離등 5명이다. 

 

▶ 60. 급정열전 (汲·鄭列傳) - 한 무제때에 구경을 지낸 급암과 정당시에 대한 기록이다.  두사람 모두 청렴하고 직간을 잘하여 한자리에 오래 붙어있질 못했다. 급암은 자가 長孺이며 품행이 바르고 직간하기를 좋아하여 황제 앞에서 황제가 욕심이 많으면서 겉으로만 인의를 베푼다고 직언할 정도다.   정당시는 자가 莊이며 협객을 자처하여 남을 대하는데 공평하고 베풀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벼슬을 잃자 빈객들이 모두 떨어져 나간 세태를 사마천은 꼬집고 있다. 

 

▶ 61. 유림열전 (儒林列傳) - 유학의 발전사와 전승관계를 유림 53명에 통해 기술하고 있다. 그 중 39명이 한무제 때 인물이다. 사마천 자신이 춘추사상에 바탕을 둔 황로 사상을 중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림 중 공손홍과 동중서를 비중있게 서술했다. 

 

▶ 62. 혹리열전 (酷吏列傳) - 한나라 초기의 포학한 관리 12명의 혹리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그 중 10명이 무제 때의 인물이다. 사마천이 순리열전을 기록하고 이어 혹리들을 서술한 것은 그가 예의와 도의를 중시여기고 폭정에 반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서두에 공자와 노자의 인의정치를 인용하고 있다. 

 

▶ 63. 대원열전(大宛列傳) - 대원은 서역지역으로 중국과의 교역으로 중국통일과 경제발전에 도움을 준 대원,대월지,대하,강거등의 서역지방에 대한 풍속과 장건의 교류과정을 상세히 열거하고 있다. 

 

▶ 64. 유협열전 (遊俠列傳) - 본래 의협은 춘추전국시대에 출현했던 부류로 사마천은 비록 정의에 부합되지 않더라도 자신을 희생하며 말과 행동에 믿음이 있어 댓가를 바라지 않고 다른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의협이라 보고 있다.  사마천은 봉건적 질서와 도덕을 중시하면서도 불의에 맞서 목숨을 바쳐가며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는 서민협객의 현실을 인정하고 있다.  사마천은 의협 곽해의 행적에 대해 상세히 언급하면서 멸족된 것에 대해 애석해 하고 있다. 

 

▶65. 영행열전 (영幸列傳) - 황제곁에 붙어 아부로 영달을 꾀하던 환관과 외척등 권력 주변인물들의 속성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부침은 오로지 최고 권력자의 마음 하나에 달려 있으니 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이연년이 그러했고, 미자하가 그러했다.  사마천은 백세 후에도 그런 운명을 가진 자들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라 단언했다. 

 

▶ 66. 골계열전 (滑稽列傳) - 사마천은 기지와 해학이 넘치는 인물까지 골라 열전에 포함시켰다.  이들은 대부분 왜소하고 볼품없으며 지위도 없지만, 말 재주와 풍자가 뛰어나 여러사람들을 즐겁게하고 웃겼다.  순우곤,우맹,우전등 세사람의 열전이다. 

 

▶ 67. 닐자열전 (日者列傳) - 日者는 길흉을 점치는 易者로, 제왕 곁에 있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정도였다. 과학이 일천했던 옛날에는 천지와 일월성신의 운행에 국사를 의지할 정도로 이들의 역할은 중요했다. 

 

▶ 68. 구책열전 (龜策列傳) - 이 편은 앞의 일자열전의 자매를 이루는 편으로 거북껍질로 점을 치는 것을 말한다. 옛날에는 우주의 순행과 자연의 변화와 이치에 순응하는 세계관이 있어 점술가와 태복이라는 직업이 생겨났고 세습했다.  문장이 조잡하여 후세에 보록한 것으로 보고 있다. 

 

▶ 69 화식열전(貨殖列傳) - 화식(貨殖)은 글자 그대로 재산을 늘리는 것으로 당시에 의식주가 경제생활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춘추 말기부터 한라 초까지 상업으로 치부한 사람들의 활동을 기록한 것이다.    사마천은 부를 얻는데는 상업이 최상이고 부유해지는데는 직업의 귀천이 없다고 하면서도 범려같이 깨끗하게 돈을 벌어 가난한 사람과 주위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부자의 상도를 말하고 있다. 이것이 이른바 "부유하면 그 덕을 행한다(富好行其德者) 는 것이다. 

 

▶ 70. 태사공자서 (太史公自序) - 태사공자서는 열전의 맨 마지막에 놓여 있지만 사기 전체에 대한 서문이다. 사기 130편에 대한 간단한 해제가 붙어 있고 집필의 동기와 구성 체제를 적기하고 그가 궁형을 받고 사기를 집필하게된 동기등이 포함되어 있다. 자서편은 크게 7단계로 서술되어 있고 명문장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