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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인 뉴스 <61> 국제 원조 [중앙일보]

ngo2002 2010. 5. 29. 14:36

2009.12.15 08:14 입력 / 2009.12.15 08:18 수정

한국이 북한 도와주는 것은 국제원조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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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산하 개발원조위원회(Development Assistance Commit, DAC)는 한국의 회원가입 신청을 공식 승인했습니다. 국내에선 진짜 선진국이 됐다며 좋아했고,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도움 주는 나라로 변모한 유일한 사례에 국제 사회도 반겼습니다. 그런데 국제원조에도 절차와 원칙, 전략과 기구가 있습니다. DAC 가입을 계기로 한국의 국제원조 역사와 구조에 대해 정리해 봤습니다.

글=최현철 기자
일러스트=강일구 ilgoo@joongang.co.kr

연말이면 서울 한남동의 유엔개발계획(UNDP) 한국사무소가 문을 닫는다. 1963년 문을 연 지 46년 만의 일이다. 대신 UNDP 서울 정책사무소가 곧 설립된다. 같은 UNDP 소속이지만 하는 일은 정반대다. 문을 닫는 한국사무소는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농업과 과학기술, 교육 분야의 원조 사업을 감독했던 곳이다. 반면 서울 정책사무소는 다른 개발도상국 역량 개발에 기여하는 지식센터로서 기능을 수행한다. 한국이 원조 수혜국을 졸업한 데 이어 원조를 하는 나라들의 모임인 DAC에 가입이 확정된 데 따른 조치다.

OECD 개발원조위(DAC) 가입은 진정한 선진국 의미

일러스트=강일구 ilgoo@joongang.co.kr
DAC는 개도국 원조 활동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1960년 설립됐다. OECD에는 25개의 전문분야별 위원회가 있는데 이 중 DAC의 활동이 가장 활발하다. 연간 개최되는 공식 회의만 15회가 넘는다. DAC의 권고는 일반적인 신사협정 수준을 넘어서는 구속력을 가질 정도로 위상이 높다.

회원 가입 조건도 까다롭다. 우선 공적개발원조(ODA) 규모가 국민총소득(GNI)의 0.2% 이상이거나 연간 원조액이 1억 달러를 넘어야 한다. 또 적절한 대외원조 조직과 정책·제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조건을 충족하더라도 실사와 회원국들의 비공개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부자 나라라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야 끼워주겠다는 의미다. 선진국 모임인 OECD의 30개 회원국 가운데 23개국(EU집행위 포함)만 DAC의 정회원이다. 한국도 OECD에는 1996년 가입했지만 내년 초에야 비로소 진짜 선진국 클럽에 가입하게 되는 셈이다.

물론 가입으로 모든 게 끝나는 것이 아니다. 당장 원조를 대폭 늘려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해마다 원조현황 보고서를 내야 한다. 보고서에는 DAC의 권고를 이행한 실적, 자기 나라 원조 정책을 세울 때 DAC의 지침을 반영한 내역이 담긴다. 개별 회원국들이 DAC의 권고나 지침을 제대로 이행하는지 4년 주기로 다른 회원국들로부터 상호평가도 받는다. 명예로운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져야 하는 부담도 상당한 셈이다.

ODA, 유상이든 무상이든 자국 이익 위한 조건 걸어

국가 간 원조는 아주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 그러나 현대적 의미의 ODA는 1947년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으로 피해를 본 서유럽 16개국에 대한 원조계획인 마셜플랜을 시초로 본다. 이후 유엔이 창설되고 각종 경제협력기구들이 생겨나면서 본격화됐다.

냉전 종식 후 시들하던 ODA는 2001년 9·11 테러 발생 이후 다시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개도국이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 세계 안보에 도움이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덕분에 공산 국가들이 무너진 뒤 줄곧 줄어들던 ODA 규모는 2003년부터 증가세로 돌아섰고, 2005년에는 처음으로 1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지난해에는 1년 전보다 160억 달러가 늘어나 1198억 달러를 기록했다.

가장 많은 돈을 내는 나라는 미국(260억 달러)이다. 독일(139억 달러)·영국(114억 달러)·프랑스(109억 달러)·일본(93억 달러) 등이 뒤를 잇는다. 하지만 GNI 대비 ODA의 비율은 스웨덴(0.98%)·룩셈부르크(0.92%)·노르웨이(0.88%)·덴마크(0.82%) 등 북유럽 국가들이 가장 높다.

ODA는 크게 양자 간 원조와 다자 간 원조로 구분된다. 양자 간 원조는 원조 자금을 갚을 의무가 있느냐에 따라 유상과 무상으로 나뉜다.

상환의무가 없는 무상원조는 기술협력이나 개발식량원조·긴급재난구호·채무탕감 등이 대표적이다. 또 개도국의 개발을 목적으로 한 비영리단체(NGO)를 지원하는 것도 무상원조에 포함된다.

반면 유상원조는 차관 제공이나 주식취득 형식으로 이뤄진다. 이 경우에도 전체 차관의 25% 이상은 무상으로 제공하는 등 일반적인 상업금융보다 유리한 조건이어야 한다. 다자 간 원조는 세계은행(Word Bank)과 UNDP 등 국제개발기구에 대한 출자 및 분담금을 의미한다.

원조를 주는 나라는 원조가 자기 나라에도 이득이 되길 바란다. 그래서 유상이든 무상이든 일정한 조건을 다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ODA를 준 나라 기업의 물건을 사도록 사용처를 제한하거나, 돈을 받은 나라에서 발주한 공사나 용역에 제공국 기업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는 식이다. 하지만 DAC는 가능하면 원조 형태는 무상 위주로 하며, 조건도 달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다.

원조 받던 나라가 원조 주는 나라 된 건 한국이 처음

한국은 1945년 해방 이후 국제사회로부터 127억7600만 달러의 원조를 받았다. 1959년까지는 무상원조가 대부분이었다. 이 중 31억 달러를 미국으로부터 받았는데 현재 화폐가치로 따지면 600억 달러에 이른다. 1954~1960년 한국 경제는 연평균 4.9%씩 성장했고, 연평균 11.8%의 투자율을 기록했다. 국내에 자본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당시 투자 재원은 무상원조가 대부분이었다. 60년대에 들어서면서 무상원조는 차관으로 바뀌었다. 원조를 주는 나라도 미국 외에 다른 선진국으로 다변화됐고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국제기구의 돈도 끌어왔다. 한국 정부가 경제개발계획을 의욕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자금줄이 있어 가능했다.

한국은 1995년 세계은행의 개발차관을 받은 것을 마지막으로 원조 받는 나라에서 공식 졸업했다. 그러나 2년 뒤 외환위기가 닥쳤고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ADB로부터 협력기금을 긴급 수혈받아야 했다.

90년대 중반까지 원조를 받는 와중에도 다른 한편에선 우리도 꾸준히 원조를 했다. 63년 다른 개도국 연수생을 초청해 경험을 나누는 사업이 시작이었다. 하지만 70년대 중반까지는 주로 유엔기구 등의 자금을 받아 한국이 시행하는 식이었다. 진짜 우리 돈으로 원조를 하기 시작한 것은 77년부터다.

80년대 이후 경제 규모가 커지고, 아시안게임과 올림픽까지 치러낸 뒤에는 원조 규모도 늘어났다. 국제사회의 압력도 커졌지만 개도국에 원조를 하는 것이 수출이나 기업 진출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계산도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원조를 체계적으로 시행하기 위해 대외협력기금(EDCF)과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만들었다.

특이한 점은 남북관계의 특수성 때문에 북한에 대한 지원은 ODA에 포함되지 않는다. 물론 다른 나라가 북한을 도와주는 것은 ODA로 계산된다. 1998~2007년 북한에 지원한 돈은 2조7304억원이다. 이 돈이 모두 ODA로 잡혔다면 GNI 대비 ODA 비율은 두 배로 뛴다는 게 외무부의 설명이다.

한국은 원조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거듭난 유일한 나라다. 국제사회로서는 한국의 성공스토리가 반가울 수밖에 없다. 국제 원조가 지속되려면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아니라 실제로 개도국 경제에 실제 도움이 된다는 증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제도 많다. 우선 규모를 늘려야 한다. 지난해 한국의 대외원조 규모는 7억9700만 달러지만 GNI 대비 비율은 0.09%에 불과하다. 유엔이 권고한 0.7%는 물론이고 DAC 국가들의 평균인 0.3%에도 턱없이 모자란다. 정부는 2015년까지 0.25%로 늘린다는 계획을 세우고 내년에도 관련 예산을 올해의 두 배로 늘렸다.

양도 문제지만 원조의 질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 2001~2007년 DAC 회원국들이 지원한 ODA 중 무상원조 비율은 87%인 반면 한국은 59%에 머물고 있다. 원조를 주면서 조건을 다는 ‘구속성 원조’의 비율도 DAC 회원국들은 0%에 가깝게 줄여나가고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높은 편이다. 대외 원조 정책의 목표와 방침을 정한 ‘ODA 기본법’이 몇 년째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는 점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다.




무상원조는 국제협력단, 유상원조는 대외경제협력기금서 담당

국내에서 공적개발원조(ODA)를 담당하는 곳은 크게 두 기관이다. 외교통상부의 지휘를 받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기획재정부의 위탁을 받아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을 운용·관리하는 수출입은행이다. 이 밖에도 각 정부부처가 독자적으로 수행하는 대외원조가 있긴 하지만 미미한 규모다. 그래서 무상원조는 KOICA, 유상원조는 EDCF가 각각 전담한다고 보면 된다.

KOICA는 1991년 외교부 산하 정부출연기관으로 설립됐다. 외부에는 해외봉사단 파견을 담당하는 곳 정도로만 알려져 있지만 의외로 하는 일이 많다. 전문인력 파견, 인프라 건축, 물자지원, 국내초청연수, 개발조사, 비정부기구(NGO) 지원, 해외재난구호 등이다. KOICA의 사업은 한정된 재원 때문에 전략적 협력대상국을 정해 집중적으로 지원한다. 프로그램은 한국이 비교우위를 가졌다고 평가되는 7개 중점분야(교육·보건의료·행정제도·농촌개발·정보통신·산업에너지·환경과 여성)를 중심으로 도움을 받는 나라에 적합한 내용을 정하게 된다. 특히 빈곤퇴치에 성공한 경험을 전수하는 사업은 선진국들이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어서 개도국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유상원조를 책임지는 EDCF는 1987년 만들어졌다. 무상원조와 마찬가지로 EDCF의 운용 원칙도 선택과 집중이다. 재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와 경제교류가 많거나 경제협력이 이뤄질 가능성이 큰 국가를 선별하다 보니 70%가 아시아 지역에 집중돼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이 5000달러가 안 되는 나라가 지원대상이지만, 너무 가난해 상환능력이 없는 나라는 제외한다.

지원 분야는 대상국의 경제사회 기반시설과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보건·교육·환경이 주축이다. 그래도 우리 입장에서 수출효과가 크고 시장 파급효과가 높은 분야를 중점적으로 고르게 된다.

EDCF 차관은 크게 네 가지 형식으로 제공된다. 댐이나 도로·병원 등의 건설자금을 지원하는 개발사업차관, 기자재 조달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는 기자재차관, 개도국의 금융기관을 통해 특정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기금전대차관, 한국으로부터 물자를 수입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빌려주는 물자차관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