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결권, 미국이 17% 가져 영향력 1위 … 한국은 1.33%로 19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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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호 기자
1944년 7월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튼우즈의 한 호텔에 44개 나라의 대표가 모였다. 이 자리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운 글로벌 경제질서의 틀이 만들어졌다. 달러를 세계의 기축통화로 하는 고정환율 시스템이 도입된 것이다. 이른바 ‘브레튼우즈 체제’의 탄생이다. 이 회의에서 환율과 국제수지를 통제할 국제통화기금(IMF)과 후진국 원조·차관을 담당하는 세계은행(IBRD) 설립도 결정됐다.
영국 대표였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IMF 설립에 적극적이었다. 불황 타개를 위해선 전 세계적 공조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수출을 늘리기 위해 제각각 자국 통화가치를 끌어내리는 악순환이 벌어지면서 모두가 피해자가 됐고 결국 1930년대 대공황으로 이어졌던 과거의 실패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브레튼우즈 회의에서는 영국과 미국의 샅바싸움이 치열했다. 케인스는 새로운 국제통화를 만들기를 희망했다. 새 통화의 이름을 방코르(bancor)로 정해 놓을 정도로 열성이었다. 케인스는 미국뿐 아니라 영국의 영향에서도 자유로운 세계의 중앙은행을 만들고 싶어 했다. 하지만 ‘뜨는 해’였던 미국의 반대로 ‘지는 해’ 영국의 대표였던 케인스의 꿈은 실현되지 못했다. 대신 달러가 기축통화의 권좌에 올랐다. IMF와 세계은행 본부를 금융 중심지 뉴욕에 둬야 한다는 케인스의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두 기관은 미국이 원하는 대로 정치의 중심 워싱턴에 둥지를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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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튼우즈 체제는 1971년 미국이 ‘금 태환(달러를 제시하면 금을 내주는 것)’을 중지하면서 무너졌다. 누구든 35달러를 내밀면 금 1온스를 내주겠다는 미국 정부의 약속은 휴지조각이 됐고, 달러의 위신은 추락했다. 당연히 고정환율제는 폐기됐다.
브레튼우즈 시스템이 유지된 1971년까지 IMF는 그런대로 역할을 했다. 하지만 냉전 시기를 거치면서 IMF가 서서히 워싱턴의 외곽 조직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을 받기 시작한다. 더욱이 1980년대 초 남미 외채위기 때는 월가의 수족 노릇을 했다는 손가락질까지 받았다. 당시 JP모건과 씨티은행 등 월가 금융회사들이 남미 국가의 채무를 재조정해 주는 대가로 IMF와 세계은행을 움직여 월가에 유리한 거시경제 처방을 남미 국가에 강요했다는 시각이 있다. 일찍이 남미 혁명가 체 게바라가 “IMF는 월가로 상징되는 기존 거대 국제경제 질서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비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IMF의 지배구조를 보면 왜 이런 불만이 나오는지 알 수 있다. 미국은 IMF에서 17%의 의결권이 있는 1대 주주다. IMF 의사결정은 전체 투표수의 85%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하는데 미국은 15% 이상의 의결권을 가진 유일한 나라다.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얘기다. IMF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도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물론 대부분 의사결정은 서로 합의해 이뤄지지만 대주주 미국의 입김은 누구도 무시하기 힘들다.
유럽 파워도 강하다. 의결권 상위 20개국에 속해 있는 유럽 국가는 독일·프랑스·영국·이탈리아·네덜란드·벨기에·스위스·스페인 8개국이다. 이들 의결권을 모으면 26%에 달한다. 과거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아시아에 대한 IMF의 처방은 가혹했다는 비판을 들었다. 돈을 빌린 국가는 정책의 자율성을 상당 부분 누리지 못했다. 반면 최근 IMF가 구제금융을 많이 해주고 있는 중부 유럽과 동유럽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관대한 처분이 내려졌다. 돈에 따라붙는 꼬리표(IMF 이행조건)도 확 줄었다. 예를 들면 경상수지 적자에 시달리는 라트비아에 평가절하(통화가치 하락)를 요구하는 대신 통화가치를 묶어둘 수 있도록 허용했다. 외환위기 당시 한국은 IMF의 가르침대로 원화가치를 시장에 맡겼고, 원화 값은 폭락했다. 이 같은 IMF의 이중성 때문에 IMF를 ‘국제통화기금’이 아니라 ‘유럽-미국(Euro-Atlantic)통화기금’으로 부르는 이들도 있다.
그동안 비공식적으로 유럽이 IMF 총재를, 미국은 세계은행 총재를 나눠 가졌다. 하지만 IMF 총재도 미국 입맛에 맞는 사람에게 돌아간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97년 말 한국이 IMF 구제금융을 받을 때 한국에 왔던 프랑스 정치인 출신의 미셸 캉드쉬 총재가 오랫동안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도 미국이 적극 지지했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다. 정책을 담당하는 수석 부총재 자리도 선진국 간 묵계로 미국이 차지한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의 파워는 다소 위축된 반면 신흥국의 목소리는 커졌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 지난 9월 미국 피츠버그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IMF 권한을 강화하기로 했다. G20 정상회의에서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IMF 총재는 IMF를 세계의 중앙은행으로 격상시킨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계획대로만 되면 IMF는 자산 1조 달러를 주무르는 막강한 조직으로 변신한다. 현재 재산 3250억 달러에다 추가 자금 5000억 달러+α달러가 더해질 전망이기 때문이다.
미국도 IMF의 권한 강화를 밀어붙이고 있다. IMF의 힘을 빌려 무역흑자국인 중국 등 아시아 신흥국을 압박해 글로벌 불균형을 해결하고 싶은 거다. 하지만 IMF의 힘이라고 해봐야 무역 불균형 해소에 소극적인 국가를 거론하면서 모욕을 주는 것뿐이라는 게 한계다. 초등학교 교실에서 칠판에 ‘떠든 사람’ 이름을 적는 것과 마찬가지다. IMF의 전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시카고대 라그후람 라잔은 “국가들은 수치심이 없다”며 “IMF엔 무역흑자국을 압박할 도구가 별로 없다”고 지적했다.
미국 등 선진국 위주의 지배구조에는 변화가 예상된다. G20 정상회의에서 2011년까지 신흥·후진국의 몫을 5%포인트 높이기로 합의했다. 현재 IMF 의결권 지분은 선진국 57%, 신흥·후진국 43%다. 중국 등 신흥국은 그동안 지분이 적다고 불평해 왔다.
하지만 추가 증자나 지분 구조 변경이 예정대로 진행될지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자기 지분 대신 유럽의 지분을 줄여 신흥국에 주는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신의 의결권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적고, 유럽 의결권은 과대계상돼 있다고 주장해 왔다. 케인스의 숙원인 ‘세계 중앙은행의 꿈’이 65년 만에 이뤄질 듯한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각국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G20과 IMF가 얼마나 잘 조율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참조: 『자본주의 경제산책』(정운영),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파이낸셜 타임스
국제통화기금(IMF) Q&A
Q IMF는 언제 어떻게 설립됐나
| 1946년 3월 미국 조지아주 사바나에서 열린 IMF 이사회의 정식 출범 행사에서 영국의 존 메이너드 케인스 명예고문(오른쪽)이 미국의 해리 덱스터 화이트 재무부 차관보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IMF 제공] | |
Q 조직 구성은
총회·이사회·사무국과 그 밖에 20개국 재무장관위원회, 잠정위원회, 개발위원회 등이 있다. 이사회가 주요 안건을 결정한다. 이사회 멤버는 24명인데,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일본·사우디아라비아·중국·러시아를 대표하는 이사가 각각 1명이다. 강대국 이사가 8명인 셈이다. 나머지 이사는 여러 나라를 대표한다. 예를 들어 2명의 아프리카 이사는 43개 아프리카 국가를 대표해서 발언한다. IMF는 국제연합(유엔)·세계무역기구(WTO) 등에 적용되는 1국 1표가 아니라 쿼터로 결정되는 의결권으로 의사를 결정한다.
Q IMF는 말 그대로 펀드(fund)인데 돈을 어떻게 조성했나
회원국이 갹출해서 모은다. IMF는 쿼터에 기초한 국제기구(quota-based institution)이다. 이사회에서의 의결권, 자금 이용, 직원 충원 등 모든 IMF 활동은 쿼터 때문에 울고 웃는다. 쿼터는 각 가맹국이 IMF의 자금을 이용할 때 대출한도를 정하는 기준이 된다. 각국의 국제무역 규모, 국민소득 등에 따라 정한다.
Q 설립 목적은 뭐고 주로 무슨 일을 하나
세계무역을 안정적으로 확대해 가맹국들의 고용과 소득을 늘리는 게 최종 목적이다. 이를 위해 환율 안정과 외환제한 철폐에 주력한다. 특히 환율 안정을 중시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각국이 자국 통화가치를 경쟁적으로 떨어뜨려 세계경제를 혼란에 빠뜨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가맹국이 국제수지 적자 누적으로 보유 외환이 모자라는 사태가 발생하면 돈을 빌려주기도 한다. 돈을 빌려줄 때는 ‘IMF 조건’이라는 이름의 단서조항이 따라붙는다. 구조조정, 고금리와 재정 긴축, 민영화, 규제완화 등을 이행해야 한다. 1997년 한국이 구제금융을 받을 때도 그랬다. IMF가 지원국 정책을 쥐고 흔든다는 점에서 ‘IMF 신탁통치’라는 비판도 있지만 한국 스스로 하지 못했던 개혁과제를 IMF가 집도해서 수술했다는 긍정론도 만만치 않다.
Q IMF와 IBRD의 차이점은
IMF는 환율과 국제수지를 중심으로 전반적인 국제금융 체계를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 반면, IBRD는 가난한 나라에 싼 이자로 자금을 지원하는 게 주 업무다. 원래는 2차대전 이후 황폐화된 국가들의 재건 비용을 조달해 주기 위해 만들어진 국제기구였으나 현재는 그 역할이 확대돼 빈곤 상태의 국가들을 구제하기 위한 역할도 수행한다. IMF 회원국은 IBRD에 자동 가입된다. IMF 등 국제기구에 비판적인 이들은 IMF와 IBRD, 세계무역기구(WTO)를 합해 ‘철의 3각형’ 혹은 ‘비신성 삼위일체(Unholy Trinity)’라고 부른다.
참조: IMF 홈페이지, 두산백과사전,『캉드쉬 총재의 웃음』(강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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