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시민, 이탈리아 가서 ‘유럽의원’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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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식 숭실대 교수 chs@ssu.ac.kr
| 유럽의회는 국제 사회의 민주적 운영을 구현하는 무대다. 유럽연합(EU) 27개국 736명의 의원들이 모여 이념에 따라 정당을 조직해 원내 교섭 단체를 구성한다. EU의 비대해진 정책기능을 견제하기 위해서다. 사진은 유럽의회 내부 모습. [중앙포토] | |
EU 시민이면 다른 나라서 투표·입후보 가능
유럽에서는 개별 국가를 뛰어넘는 초국가적 민주주의 실험이 30여 년간 지속돼 왔다. 유럽의회 선거는 바로 이러한 실험의 가장 상징적이고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5억에 가까운 유럽연합(EU) 시민들이 자신의 의사를 대표하고 EU의 행정부 역할을 하는 집행위원회를 견제할 수 있는 의원을 자기 손으로 직접 뽑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유럽의회 의원의 임기는 5년이다. 27개 회원국 유권자들은 올 6월 4일부터 7일까지 유럽의회 의원을 선출했다. 736명의 의원은 각 국가별로 선출됐지만 모두 하나의 유럽의회를 구성하며, 그 의회 내에서는 국가가 아닌 정당별로 원내 단체를 구성해 활동한다. 진정한 하나의 유럽을 대표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유럽 시민은 다른 회원국에서도 투표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입후보할 수도 있다. 일례로 프랑스의 정치학자 뒤베르제와 영국의 자유당 당수였던 스틸은 모두 이탈리아에서 당선됐다.
일반적으로 민주주의는 개별 국가의 틀 속에서 정부를 선택하고 통제하는 방식으로 실현돼 왔다. 그러나 EU는 처음으로 여러 국가를 아우르는 거대한 정치 체제를 만들었고, 이를 민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고심해 왔다. 서로 다른 문화와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국가들을 하나로 묶어서 운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유럽의회는 1952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가 출범할 때 독일·프랑스·이탈리아·네덜란드·벨기에·룩셈부르크 등 6개의 회원국 의회에서 자국을 대표하는 의원을 파견하는 공동의회(Assembly)의 형식으로 시작했다. 1958년에 출범한 유럽경제공동체(EEC)는 60년대와 70년대 경제정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기 시작했고, 교통이나 에너지,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이처럼 유럽의 정책 권한은 강화되는데 이에 대한 민주적 견제는 부족하다는 비판이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그 결과 1979년부터는 유럽의회 의원을 직선으로 선출하게 됐다.
큰 나라 독주 막기 위해 작은 나라 의석 늘려
첫 선거에서는 기존 6개 회원국에 영국·아일랜드·덴마크 등 신생 회원국을 더해 모두 410석의 의원을 선출했고 투표율도 63%에 달했다. 불행히도 투표율은 그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경향을 나타냈고 2009년에는 43%까지 내려앉았다. 이는 유럽의회 선거가 정부나 집권당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투표가 아니기 때문에 대중적 관심을 끄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79년부터 모두 일곱 차례의 유럽의회 선거가 치러졌다. 그사이에 유럽공동체(EC)는 EU로 격상됐고, 회원국의 수도 9개국에서 27개국으로 대폭 늘어났다. 특히 21세기 들어 동유럽 국가들이 대거 가입하면서 유럽의회의 의석 수는 785석까지 늘어났다. 하지만 계속 의원 수를 늘릴 수 없다는 판단에서 올해 선거 땐 736석만 선출했다. 향후 리스본 조약이 발효되면 751석으로 제한할 예정이다.
초국가적 민주주의에서도 대표성을 둘러싼 갈등은 심각하다. 유럽의회 의석 배분은 크게 봐서 인구에 비례하지만, 인구가 많은 대국의 의원 수는 줄이고 소규모 국가의 의석을 늘려주는 원칙이 적용되고 있다. 소국의 이익을 보호하고 대국이 규모로 독주하는 것을 막으려는 장치다.
집행위원회·이사회·의회는 EU를 이끌어 가는 삼두마차다. 이들의 관계를 쉽게 이해하려면 연방국가의 행정부·상원·하원 구조를 떠올리면 된다. 집행위원회는 법안을 제안하는 권한을 독점한다는 점에서 행정부라고 할 수 있다. 이사회는 회원국 대표로 구성돼 연방국가에서 주(州)의 이익을 대표하는 상원 역할을 하며, 의회는 그야말로 전체적인 시민을 대표하는 하원인 셈이다.
EU 집행위 견제·감시하고 이사회와 동등한 권한
|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위치한 유럽의회총회의장. [중앙포토] | |
의회의 또 다른 중요한 역할은 집행위원회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기능이다. 집행위원은 각국 정부가 임명하지만 의회는 이들에 대해 인사청문회를 실시할 수 있으며, 특히 집행위원장은 의회의 신임을 받아야 한다. 또한 93년 발효된 마스트리히트 조약부터는 집행위원장과 집행위원단이 집단적으로 의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절차가 추가됨으로써 의원내각제의 내각 신임과 비슷한 제도가 마련됐다.
의회는 또한 제도적 권한과 별개로 특정 집행위원이나 집행위원단을 사퇴시키는 위력을 발휘한 바 있다. 99년에는 상테르 집행위원회의 일부 위원이 부패와 정실인사 문제를 일으키자 의회는 조사에 돌입했고 이에 집행위원회는 집단 사퇴했다. 또 2004년에는 이탈리아가 임명한 부티리오네 집행위원이 동성애는 ‘죄악’이고 여성은 ‘집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등의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키자 의회는 그를 제외하지 않으면 전체 집행위원단을 불신임하겠다고 공표했다. 이에 바호주 집행위원장은 부티리오네를 배제하는 결정을 내렸다.
유럽의회 내에는 이념과 정책 노선을 중심으로 형성된 다양한 초국가적 정당들이 있다. 중도 우파의 유럽국민당(EPP)과 중도 좌파의 유럽사회당(PES)은 의회 내 대표적인 세력으로 서로 경쟁하고 있다. 또한 중도 우파에 가까운 유럽자유민주연합(ALDE)과 중도 좌파 성향의 녹색당 그룹이 상당한 규모를 자랑한다. 그리고 우파나 좌파 성향의 반(反)유럽적 군소 정당들도 존재한다.
유럽의회의 또 다른 특징은 지리적으로 분산돼 있다는 점이다. 의회의 총회의는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에서 개최하는 반면, 상임위 회의는 집행위원회가 있는 브뤼셀에서 열리며, 의회 사무국은 룩셈부르크에 위치하고 있다.
또 EU는 23개의 공식어를 갖고 있기 때문에 매우 복잡한 동시통역체제를 운영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핀란드 의원이 자국어로 발언을 하면 우선 영어로 통역했다가 다시 그리스어로 통역하는 이중 통역 체제를 거친다. 물론 이는 총회의의 경우이고 상임위는 주로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국제사회의 민주적 운영이라는 큰 실험무대
이처럼 EU는 모든 것을 하나로 통일하고 중앙으로 집중하면서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기존의 국민국가 정치 체제와는 다르다. 특히 유럽의회는 그 구성에서부터 소수에 대한 배려를 보여주고, 운영에서도 효율을 다소 희생하더라도 다양한 이익과 심정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한다. 결국 유럽의회의 실험은 국제사회의 민주적 운영이라는 인류 궁극적 목표의 실현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유럽의회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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