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반

[‘김상조 공정위’에 거는 기대] (1)

ngo2002 2017. 6. 23. 10:40

[‘김상조 공정위’에 거는 기대] (1) “대기업 부당 거래·갑질 논란 없는 ‘공정한 시장’ 복원을”

조형국 기자 situation@kyunghyang.com

ㆍ경제민주화

2015년 11월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 회의실에서 정부와 야당 간 논쟁이 벌어졌다. 당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원청업체가 하도급업체에 비용을 떠넘기거나 계약서에 없는 내용을 부담시키는 등 부당특약이 적발되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적용한다는 법안을 발의했다.

공정위는 “보기에 따라 다르지만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내세웠다. 하도급법을 위반한 약관을 무효화하는 내용의 법안에도 “계약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며 반대했다. 야당 의원들은 “하도급 거래의 문제가 있다면 이를 바로잡는 게 공정위 업무 아니냐”며 따졌다. 당시 김기식 민주당 의원은 “공정거래위원회는 하여간 다 안된대”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 ‘공정’ 없고 ‘경쟁’만 있던 공정위 

그간 공정위는 ‘경쟁당국’의 역할을 강조해왔다. “경쟁법은 경쟁을 보호할 뿐, 경쟁자를 보호하는 게 아니다”라는 1960년대 미국 대법원 판결은 공정위 직원들에게 금과옥조였다.

그렇다 보니 경쟁 촉진과 무관한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 경제적 갑을관계에서 발생하는 분쟁은 ‘사인 간 다툼으로 민사소송 등 사법영역에서 판단해야 할 사안’으로 미뤄졌다. 보수정권에서 경제민주화 논의가 진전되면서 수직 구조의 불공정 관행이 일부 개선됐지만 공정위 주요 행정은 여전히 ‘경쟁법 집행’에 국한됐다. 대기업·중소기업 간 불공정 행위는 그치지 않았고 재벌의 불법 경영 승계를 방조하는 지배구조도 공고하다. 가맹·유통·하도급 등 민생경제에서 터져나오는 신음은 늘 “과다한 신고 사건” 취급을 받았다. 

정부는 국회가 발의하는 법안에 대해 ‘신중 검토’라는 의견을 밝히는 경우가 많다. 사실상 반대한다는 뜻이다. 공정위는 공익법인의 의결권을 제한해 대기업 총수의 부당한 재산 승계를 막아야 한다는 취지의 법 개정에 대해 꾸준히 반대해왔다. “공익재단 출연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였다.

또 총수 일가 사익편취 제재 대상의 지분 요건을 현행 상장사 30%(비상장사 20%)에서 20% 또는 10% 수준으로 낮춰 사익편취를 강하게 제재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법 시행이 얼마 되지 않아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그사이 기업들은 총수 일가가 계열사 지분을 29.99% 보유하는 방식 등으로 규제를 빠져나갔다. 지난해 11월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은 “2013년 이 법이 처음 논의될 때 지분율 기준을 20%로 잡았는데 갑자기 상장회사 30%로 바뀌었다. 그때 공정위가 ‘상장회사는 외부 주주 등 이해관계자로 감시가 잘되므로 완화해도 된다’고 주장했다”며 “현실을 모르고 했던 말”이라고 지적했다. 징벌적 손배제를 확대하자는 논의에도 “공정거래법 전반에 도입하는 문제는 신중해야 한다”는 게 전부였다.

■ 김상조호 공정위는 달라질까 

박근혜 정부의 삼성그룹 특혜 의혹, 대통령 탄핵 국면을 거치면서 공정위의 태도는 확연히 달라졌다. 올 초 임명된 신영선 공정위 부위원장은 지난 3월 “사익편취 지분율 기준을 낮출 필요가 있다”며 “상장·비상장사를 불문하고 소유 지분 기준을 20%로 낮추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반대 입장을 유지했던 징벌적 손배제 확대 역시 찬성 기조로 돌아섰다. 지난 2월 국회 정무위 법안소위에서 가맹본부의 위법행위 중 징벌적 손배제 대상을 늘리는 내용의 법안에 대해 공정위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당초 ‘허위·과장 정보의 제공·보복행위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한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가 논의 끝에 ‘부당한 영업지역 침해 등에도 도입하자’는 데에 찬성 의사를 밝혔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취임하면서 경제민주화 정책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여권에서 나오는 향후 정책방향에는 보수정권 9년간 찾아볼 수 없었던 개혁방안들이 담겼다. 인사청문회에서 김 위원장은 공익법인 의결권 제한을 두고 “공익법인 의결권의 자유로운 행사는 재벌 지배구조 개선에서 심각한 문제”라며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처럼 강한 규제가 필요한 부분을 합리적으로 설정하면 법 취지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승제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9일 국회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일자리가 사라지고 비정규직이 만연한 이유는 정상 시장에서 발생하지 않았을 재벌의 초과이윤을 걷어가는 주체들이 있기 때문”이라며 “훼손된 시장을 복원하는 것이 공정위의 핵심적 과제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성 연구위원은 공정위의 독립성, 중립성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외국 경쟁법 학자들 사이에서는 ‘공정위가 정부정책 돌격대로 쓰이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면서 “공정위가 독립성 없이 정권에 따라서 역할이 바뀌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최인숙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팀장은 “그간 공정위는 경제적 약자의 권리 보호에 소홀해왔다”며 “새 위원장이 임명된 만큼 독립성과 정책일관성을 확보해 민생 보호 역시 공정위의 주된 업무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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