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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67주년 특집]주민등록·CCTV·SNS…‘무한 감시’에 대한 ‘시민 감시’가 필요하다

ngo2002 2013. 10. 25. 11:11

[창간 67주년 특집]주민등록·CCTV·SNS…‘무한 감시’에 대한 ‘시민 감시’가 필요하다

ㆍ대안 : 감시권력을 감시하라

정보통신기기와 네트워크를 타고 사회 곳곳에 그물처럼 뻗어 있는 감시사회의 대안은 있을까. 최희원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수석연구위원은 “지금 시대의 흐름은 감시사회로 가는 것이고 그 흐름을 역행하는 건 어렵다”고 말했다. 통제와 관리라는 정치권력의 이해와 이윤 확보라는 자본권력의 집착이 결합된 감시체제를 해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손놓고 있을 수는 없다. 시민사회는 ‘감시를 감시하는’ 역감시가 필요하다고 권고한다.

주민등록번호 변경을 허용하자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자신만의 공간이다. <1984>의 세계에서 국가는 각 주택에 설치한 ‘텔레스크린’이라는 이름의 감시 장비를 사용해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감청한다. 윈스턴 스미스가 텔레스크린의 감시망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은 거실 귀퉁이의 움푹 들어간 공간이 전부다. 그는 이곳에서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체제에 대한 의문을 노트에 기록한다. 오늘날의 폐쇄회로(CCTV)를 연상시키는 텔레스크린은 오웰이 이 소설을 집필하던 시점인 1940년대 후반 그가 상상할 수 있었던 감시 기술의 최대치였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는 상상력의 산물인 텔레스크린 못지않게 촘촘한 개인식별 제도가 있다. 바로 주민등록제다.

국가 차원의 주민등록제 운영은 국가 통치와 행정서비스 제공을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한국의 주민등록제는 그 중에서도 유별나다. 개인 고유번호인 주민등록번호와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개인 고유번호를 갖는 신분증 제도를 운영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스웨덴의 경우 10자리로 된 식별번호를 부여하기는 하지만 사회보장을 목적으로 하고 있고 의무발급 대상도 아니다. 미국은 연방 차원의 신분증은 존재하지 않고 필요에 따라 사회보장번호를 사용하는데, 사회보장번호는 개인의 요청이 있을 때만 발부한다.

반면 1962년 주민등록법을 제정하고 1968년 주민등록번호제를 도입한 한국은 출생과 동시에 13자리 고유번호가 부여된다. 주민등록번호는 전국적, 전 국민적으로 통일된 체계를 따르는 통일성과 결코 중복되지 않는 유일성, 모든 국민이 의무적으로 따라야 하는 강제성을 띠고 있으며 번호 자체에 이미 나이, 출신지역, 생물학적 성별 등 개인정보가 포함돼 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인터넷 실명제를 실시하고 휴대전화 개통 시 본인 확인을 하도록 돼 있는 정보화된 한국 사회에서 주민등록번호는 개인정보에 접근하는 만능열쇠다. 주민등록번호 유출 및 도용을 방지하는 것은 그러므로 프라이버시 보호의 핵심이다. 문제는 주민등록번호 제도 도입 이후 이미 수십년이 흐르는 동안 그것이 한국인의 일상과 긴밀하게 결합해 있다는 점이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주민등록번호를 없앨 수 없다면 최소한 주민등록번호를 바꿀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처럼 영구불변하며 개인정보가 내장된 주민등록번호 체계는 국가에 의한 시민감시를 용이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터졌을 때 2차 피해에 대응하는 일조차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개명을 허용하는 것처럼 주민등록번호 변경을 허용하거나 번호 체계는 유지하되 지금처럼 개인정보를 담는 방식이 아니라 임의적인 숫자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주민등록번호를 행정이나 신용 등 한정된 용도에만 사용하고 다른 민간 부문에서는 별도의 번호를 쓰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3500만여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네이트와 싸이월드 해킹사건 피해자 20여명은 2011년 8월 주민등록번호 변경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그러나 현행 주민등록법상에는 번호 변경 관련 규정이 없다. 주민등록번호 변경 소송은 원고 패소로 끝났고 서울고등법원에 낸 위헌법률 심판 제청 신청은 각하됐다. 피해자들은 지난 2월 2차 피해방지를 위해 주민등록번호 변경이 필요하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태다.

2004년 8월25일 정부서울청사 뒷문에서 정보인권단체들이 주민등록번호 성별 구분 폐지를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CCTV 꼼꼼하게 따져보자

한국은 영국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많은 CCTV가 설치된 국가다. 2013년 기준으로 영국에는 410만~590만대의 CCTV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한국에도 450만대 정도의 CCTV가 설치돼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추정치에 그칠 수밖에 없는 것은 한국이나 영국 모두 민간 부문 CCTV 설치 현황에 대한 정확한 통계가 없기 때문이다.

CCTV는 감시도구이자 보호장치라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순기능과 역기능 중 어느 쪽이 더 많은지에 대해서는 영국에서도 여전한 논쟁거리다. 다만 역기능을 강조하는 쪽에서도 CCTV에 범죄예방 효과가 아주 없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따져보아야 할 점은 CCTV의 효율성이 시민들이 그 효율성에 대한 대가로 치러야 하는 프라이버시 침해를 상쇄할 만큼 큰가라는 것이다. 2009년 영국 런던경찰청 내부 보고서에 따르면 CCTV 1000대를 설치해야 연간 1건의 범죄를 해결할 수 있었다. 2009년 영국 일간지 가디언 보도를 보면, 범죄예방에 일정한 효과를 보였으나 주로 주차장에 세워진 차량에 대한 범죄를 줄이는 데 효과가 있었다. 게다가 범죄가 줄어든 것은 CCTV 때문만이 아니라 주차장 조명 개선과 경비원 인력 증가도 병행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의 경우 개인정보보호법상 도로, 공원, 지하철역, 백화점 등 열린 공간이 아닌 직원 등 특정인만 출입할 수 있는 사업장, 공장 등에 설치하는 CCTV는 사전에 정보 주체의 동의를 받도록 되어 있지만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01~2012년 CCTV, 휴대전화, PC 등 전자적 수단에 의한 노동감시 침해 사례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CCTV가 481건(70.8%)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전자적 수단에 의한 노동감시 민원은 2008년 57건에서 2012년에는 169건으로 약 3배 늘었다.

안전과 프라이버시 보호 사이의 균형점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이은우 변호사(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원)는 CCTV에 대한 정보 주체들의 동의와 의견 개진 권리 보장, CCTV가 개인정보에 미치는 영향 평가, 정확한 실태조사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현행법상 동네에 CCTV를 설치할 경우 주민 공청회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대통령령에서는 공고로 대체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개인정보보호법 33조는 개인정보 파일 운용으로 인한 사생활 침해 가능성에 대한 영향평가 제도를 두고 있지만 이 또한 제대로 운영되고 있지 않다. 민간 부문 CCTV 현황, CCTV와 범죄예방의 상관성에 대한 실태 조사도 미비하다.

2011년 개인정보보호법 시행과 함께 정보화 시대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를 감독하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출범했지만 권한이 약해 식물 위원회라는 평가가 나온다. 민간 부문에 대한 시정 조치권이 없고 인사권도 안전행정부에 있다. 이 변호사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원장에게 인사권을 부여하는 등 인사 및 예산 독립성을 강화하고, 안전행정부 장관이 개인정보 영향평가 내용을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 반드시 제출하도록 의무화하는 등 위원회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감시를 감시하자

감시사회 문제는 감시 주체인 국가·기업과 그 대상인 시민·소비자 사이에 존재하는 압도적인 힘과 정보의 불균형에서 생긴다. 전문가들은 우리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거나 사용하려는 국가·기업에 그 타당성을 집요하게 따지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상희 교수는 “역감시가 필요하다”며 “안전을 위해 CCTV가 필요하다면, CCTV 뒤에 누가 앉아 있는지 밝히라고 요구하고 내 생활을 감시해도 좋으니 내 허락을 받으라고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성수 교수는 “감시에 대한 통제가 필요하다”며 “감시 주체가 우리를 어떻게 감시하는지 속속들이 알아야 하고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감시 절차를 투명하게 드러내도록 요구해야 한다는 얘기다.

감시 절차 투명화와 관련해서는 서울시 지하철의 사례를 들 수 있다. 지난 7월16일 서울시 시민인권보호관은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가 화재·범죄 예방과 시민 안전을 위해 설치한 CCTV가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며 시정을 권고했다. 이는 진보네트워크센터, 서울지하철노동조합, 서울도시철도노동조합,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 제기한 진정 내용을 검토해 내린 조치다.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는 2012년 6월부터 2호선과 9호선 열차 객실에 모두 1764대의 CCTV를 설치해 운영했다. 조사 결과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는 CCTV 설치 목적과 절차는 준수했으나 CCTV 설치에 대한 시민설문조사는 2호선 66명, 7호선 32명에 불과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CCTV 안내판은 크기가 너무 작아 승객들이 알아보기 힘들었고, 전동차 운전실에서 CCTV를 임의적으로 조작해 여성 승객들의 신체와 속옷이 선명하게 노출되는 위험이 있었다. 서울시 시민인권보호관은 서울시에 관리자·기관사에 대한 인권교육과 임의조작 방지대책을 세우고 승객들에게 CCTV 설치 사실을 알리는 안내방송을 의무화하도록 권고했다.

감시사회의 문제는 감시 주체의 권력의지만이 아니라 시민들이 감시에 자발적으로 동의하는 것도 포함한다. 최희원 연구위원은 “시민들이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자신이 어디서 무엇을 먹고 무엇을 했는지 스스로 노출하고 있다”며 “디지털 시대 프라이버시 노출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감시사회>(철수와영희) 공동저자인 최철웅씨(계간 ‘문화/과학’ 편집 동인)는 “오늘날 감시가 전면적으로 확장되는 동력은 무엇보다 ‘안전에 대한 강박적 집착’”이라고 지적했다. “국가를 위협하는 테러, 간첩행위, 내 가족의 신변과 재산을 위협하는 범죄 위험 등과 같은 공포는 미디어에 의해 조장되고, 그 원인 또한 특정 개인이 아닌 사회적 맥락에서 찾아야 한다. ‘안전’이 더 이상 개인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과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공론화하고 해결해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퍼진다면 지금처럼 제약 없이 감시를 행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게 줄어들 것이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입력 : 2013-10-03 19:37:59수정 : 2013-10-03 19:4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