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봄 날씨가 완연했던 지난 17일. 일본 최고의 번화가인 긴자 거리는 휴일을 즐기러 나온 시민들로 가득 찼다. 긴자 한복판에 위치한 미쓰코시백화점 출입구 앞은 약속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1층 화장품 코너는 화사한 옷차림의 여성들로 파티장을 방불케 했다. 2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는 북적이는 쇼핑객 때문에 10m 이상 줄을 서야 겨우 탈 수 있었다. 5년째 점원으로 일하고 있다는 게이코 씨는 "백화점 일을 시작한 후 이렇게 많은 쇼핑객은 처음"이라며 손님맞이에 바빴다. 일본 경제가 부활의 신호탄을 쏘고 있다. 백화점에는 손님이 넘쳐나고, 긴자의 고급 술집 거리에는 수억 원대 검은 세단이 줄지어 늘어선다. 지난 20년간 줄곧 내리막길을 걸어온 백화점 매출은 올 들어 2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였고, 2월 신차 판매는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주요 대도시 중심가는 초고층빌딩이 새로 건축되는 재개발 사업이 경쟁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교외의 중산층 거주지역은 논과 밭을 단독주택 단지로 탈바꿈시키는 공사가 곳곳에서 벌어진다. 지난해 12월 16일 중의원 선거에서 대승을 거두고 아베 신조의 자민당 정권이 들어선 지 100일이 지났다. 엔화값은 작년 12월 14일 달러당 83.53엔에서 지난 26일 94.19엔으로 10% 이상 떨어졌다. 반면 닛케이지수는 9737.56에서 26일 1만2471.62로 장을 마감해 28%나 급등했다. 아베 정권의 경제회생책을 뜻하는 `아베노믹스`는 짧은 시간에 일본 경제 현장 곳곳을 바꿔놓고 있다. 가장 먼저 훈풍이 불어온 곳은 소비 현장이다. 엔저와 주가 급등이 고가품 소비와 건축 수요를 자극하더니 서서히 중산층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경기 회복의 주역인 기업들의 생산 현장은 기대와 현실이 뒤섞인 복잡한 양상이다. 대기업들이 잇따라 생산계획 증대와 고용 확대에 나서고 있지만 당장의 수출증가율은 여전히 마이너스권에 머물러 있다. 엔화의 약세 전환이 진행된 지 5개월이 지났음에도 수출 효과가 나타나지 않자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엔저 회의론`이 대두될 정도다. 아베노믹스 여파로 한국 경제는 `고통`을 겪고 있다. 엔저로 글로벌시장에서 일본과 경쟁하는 자동차, 일반기계, 철강, 가전산업은 가격경쟁력에서 불리해졌다. 미국 시장에서 한국산과 일본산 일반기계의 가격 차이는 5개월 전까지만 해도 10~20%에 달했다. 최근에는 일본 업체들이 엔저 여파로 판매가격을 낮추면서 한ㆍ일 기계제품 간 가격 차이가 5~9%로 좁혀졌다. 원화가치가 상대적 강세를 보이면서 한국 수출기업의 채산성이 악화되고 수출 물량 감소라는 결과로 이어질 우려도 제기됐다. 일본인 관광객 숫자가 엔저 여파로 급격히 줄어들면서 항공사와 여행업계 실적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 급격한 엔화 약세와 원화 강세가 동시에 발생할 경우 한국의 수출기업들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는 만큼 정부와 한국은행이 환율ㆍ금리 정책을 재점검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았다. 과거 한국의 중소기업들이 대규모 환차손을 입었던 키코(KIKO) 사태가 재발할 수도 있는 만큼 정부와 금융회사들이 환 헤지를 위한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매일경제 취재진은 도쿄, 오사카, 나고야, 후쿠오카, 지바 등 대도시와 지방 소도시인 고텐바까지 6개 지역의 산업과 소비 현장을 둘러봤다. 시리즈 5회를 통해 현지에서 만난 기업, 상인 등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으며 일본 경제 변화의 실상을 파악하고 한국 경제에 던지는 시사점을 찾아볼 예정이다. [도쿄 = 임상균 특파원 / 서울 = 김대영 기자 / 김규식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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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베노믹스 100일, 한국의 선택 ① ◆
지난 24일 후지산이 웅장하게 보이는 시즈오카현 고텐바시에 위치한 아웃렛 매장. 도쿄에서 자동차로 2시간가량 걸리는 이곳은 도쿄 인근의 중산층 가족에게는 관광과 쇼핑을 함께할 수 있는 인기 나들이 장소다. 오전 10시인 개장 시간보다 1시간 일찍 현장에 도착했지만 진입로 2㎞ 전부터 주차장에 들어가려는 차량들로 북새통이다. 30분여를 기다려 어렵사리 차를 대고 매장에 들어서니 인기 점포 앞에는 개점을 기다리는 쇼핑객이 10여 명씩 대기하고 있다. 규슈 지방의 중심도시인 후쿠오카시의 하카타역 지하 식품매장. 지난 20일 수십 개 점포가 밀집한 이곳은 휴일 저녁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식품 매장 빵 점포의 젠 기누에 점원은 "지난 1~2월에 비해 3월 손님이 3% 정도 늘어나는 등 매출이 다소 좋아지는 분위기"라며 "아베노믹스가 이곳 먼 지방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후쿠오카역 주변 호텔에는 손님도 부쩍 늘었다. 후쿠오카R 호텔의 다카하시 하라 지배인은 "올 들어 객실 가동률이 작년보다 5~10% 정도 향상됐다"며 "일본 투숙객뿐 아니라 엔저 영향으로 한국인을 비롯한 외국 관광객도 호조세"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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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노믹스 여파로 일본 소비시장에 훈풍이 불고 있는 가운데 24일 명품 쇼핑가로 유명한 도쿄 긴자의 주오도리가 주말을 맞아 쇼핑 나온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임상균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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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노믹스가 가져온 경기 회복 효과가 가장 뚜렷한 분야는 소비 시장이다. 주가 급등은 부유층의 소비부터 변화를 가져왔다. 자신이 보유한 주식이나 펀드에서 이익을 실현했거나 평가이익이 발생하면서 소비로 연결되고 있다. 일본백화점협회 집계에 따르면 2월 한 달간 전국 백화점 총매출은 4317억엔으로 전년 동월보다 0.3% 증가했다. 2개월 연속 전년 실적을 웃돌았다. 특히 핸드백 향수 화장품 등 해외 명품 브랜드를 비롯한 신변용품 매출이 8.6% 증가했고, 보석 귀금속 미술품 등 고가 사치품 증가율도 8.6%를 기록했다. 신변제품은 4개월, 보석ㆍ귀금속류는 6개월 연속 증가세다. 일본 내 신차 판매대수도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1월 38만4000대(직전월의 13.3% 증가) 판매 실적을 올리더니 2월에는 47만7000대(직전월의 24.2% 증가)로 치솟았다. 20년간 내림세만 보이던 골프회원권 가격도 들썩인다. 수도권인 간토 지역 골프장 회원권의 2월 평균가격은 138만엔으로 최저 수준이던 지난해 12월 이후 약 20% 올랐다. 구매의욕 등을 종합적으로 나타내는 소비자태도지수를 봐도 소비 현장의 들뜬 분위기가 감지된다.
일본 내각부에 따르면 2월 소비자태도지수는 전월 대비 1.0포인트 상승한 44.3을 기록해 2007년 6월 이후 5년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1월에는 사상 최대 상승폭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달 들어서는 중저 가격대의 소비 시장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주식시장 활황은 주식 투자와 직접 관련이 없는 대다수 직장인에게도 긍정적인 효과를 내고 있다. 국민이 가입하는 연금 때문이다. 연금펀드들은 국내외 주식을 일정 비율씩 편입해 놓고 있다. 최근 연금에 인기가 높았던 미국 주식에서는 엔저와 주가 상승 양쪽에서 큰 이익이 났다. 정년을 5년여 남겨둔 대기업 부장 와타나베 히로유키 씨는 "은퇴 후 받을 연금이 크게 불어났다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일"이라며 "최근 양복 한 벌과 아내 목걸이를 구매했다"고 말했다. TV홈쇼핑 업체인 자파넷 타카타의 다카타 아키라 사장은 콜센터를 확장하기 위해 고민 중이다. 그는 "올 들어 상품 판매 방송 후 걸려오는 전화가 늘고 있다"며 "콜센터를 미리 늘려놔야 갑작스러운 거래 급증에 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금융시장 활황에 따른 심리 개선이 소비로 연결되는 징후가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실생활에서는 보다 싼 가격을 찾아다니는 디플레이션 풍조도 여전히 남아 있다. 식음료, 의류, 외식 등 주로 먹고 입는 기본 소비생활에서 뚜렷하다. 일본 슈퍼마켓협회가 집계하는 올 1월 식품슈퍼의 평균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4.7% 감소했다. 11개월 연속 감소세다. 10엔이라도 더 싼 가격으로 제품을 내놔야 하는 극심한 가격 경쟁에다 편의점에 손님을 빼앗긴 결과다. 하라타 에이코우 일본 맥도널드 회장은 최근 자신의 연봉을 절반으로 깎았다. 2012회계연도 회사의 매출액과 이익이 9년 만에 동반 감소하자 자신이 먼저 나서 경비 절감을 호소하기 위해서다. [도쿄·후쿠오카·고텐바 = 임상균 특파원 / 김규식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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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베노믹스 100일, 한국의 선택 ① ◆
엔저 유도로 시작한 일본 아베 정권의 경제 정책이 본격적인 개방 전략으로 확대되고 있다. 금융시장을 통해 분위기 전환에 성공한 아베노믹스가 이제 본격적으로 기업의 수출확대와 규제완화 등을 위한 자유무역체제 구축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지난 100일간 구체적으로 실행에 들어간 경제정책은 아직 뚜렷하지 않다. 13조엔(약 150조원) 규모의 추경예산 확보, 양적완화에 미온적인 일본은행 총재를 일찍 쫓아내고 초강경 완화론자를 신임 총재에 앉힌 일 정도가 굵직한 성과다. 아베 정권은 대신 경제회생을 위한 강한 의지를 시장에 끊임없이 알리는 데 주력했다. 취임 전부터 나온 "일본은행 윤전기를 돌려서라도 돈을 찍어내겠다"는 발언과 재계 단체장들을 모아놓고 던진 "엔 약세 덕에 돈 벌었으니 임금 인상으로 협조해 달라"는 압박성 발언 등이 대표적이다. 이케오 가즈히토 게이오대 교수는 "사회 전반에 `이번은 다르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며 "마인드를 바꾼 것만으로도 아베노믹스는 순조롭게 출발했다"고 평가했다. 뒤집어보면 아베노믹스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첫 테이프는 신임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가 이끄는 금융정책결정회의가 열리는 4월 3~4일이 될 전망이다. 아베노믹스는 금융정책, 재정정책, 성장전략 등 3가지 큰 줄기로 구성된다. 아베 정부는 이를 `3개의 화살`이라고 표현한다. 금융정책은 일본은행의 양적완화다. 시중에 돈을 풀어 엔화가치를 낮추는 것이 목적이다. 재정정책은 공공사업을 중심으로 세출을 늘리는 작업이다. 이렇게 양쪽에서 자금을 공급하면서 기업들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규제철폐, 노동유연성 확보, 각종 지원정책 등을 마련하는 것이 성장전략이다. 올 6월께 마련될 예정이다. 아베노믹스의 성장 전략 중 또 다른 한 축은 대외개방을 통한 기업 성장과 규제완화다.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 참여가 최종 결정됐고, 한ㆍ중ㆍ일 FTA 협상도 26일 개시했다. 아베 총리는 또 25일 밤 헤르만 반롬푀이 EU 정상회의 상임의장과 전화회담을 갖고 경제동반자협정(EPA) 협상 개시에 합의했다. 양국은 다음달 벨기에 브뤼셀에서 EPA 첫 협상을 할 예정이다. 세계 GDP(국내총생산)의 25%를 점하고 있는 EU는 일본이 강점을 갖고 있는 자동차, 전자기기 분야에서 고관세를 유지하고 있어 EPA 체결을 통해 시장이 개방되면 일본 기업들의 수혜가 클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2단계가 수월하게 진행된다면 마지막 단계인 민간소득 증대와 소비 확대로 연결돼야 한다. 그래서 물가가 오르고 다시 기업들이 제품값을 올리며 실적이 좋아지는 경기회복 선순환 구조에 들어서는 것이 아베노믹스의 최종 목적지다. 이 중 일본은행을 통한 양적완화는 신임 구로다 총재가 공격적으로 나설 채비를 갖췄지만 재정투입과 기업들의 성장을 뒷받침하는 규제완화는 쉽지 않다는 중평이 많다.
[도쿄 = 임상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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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베노믹스 100일, 한국의 선택 ① ◆
2011년 3월 전대미문의 대재앙으로 기록된 동일본대지진. 규모 9.0의 강진과 쓰나미, 후쿠시마 원전 폭발로 전 세계가 경악할 당시 일본의 경제 전문가들을 더욱 당황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
2011년 3월 소비자물가지수가 전달에 비해 0.5% 오른 데 그친 것이다. 4월(0.3%) 5월(0.1%)에는 상승률이 더 줄더니 6월에는 다시 -0.3%로 돌아섰다. 2010년을 100으로 한 물가지수 역시 6월부터 다시 90대로 주저앉았다. 물가지수 산출에 포함되지 않는 야채 과일 등 신선식품 가격은 도리어 떨어졌다. 피해 지역인 이와테ㆍ미야기ㆍ후쿠시마 3개 현은 일본의 대표적인 농산물 산지다. 도쿄에서 소비되는 오이의 60%가 여기서 온다. 피망과 표고버섯은 45%, 토마토는 21%씩 3개 현에 의존하고 있다. 일본의 주력 농수산물 공급지역의 자연재해로 생산과 공급이 중단되고 장기간 복구마저 어려워졌는데도 물가는 내린 것이다. 다카다 하지메 미즈호종합연구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2005년 미국 `카트리나` 피해 때는 주변 소매가격이 3배나 뛰었다"며 "3ㆍ11 당시 물가동향은 일본의 뿌리깊은 디플레이션 심리를 대변한다"고 설명했다. 일본 소비자들이 20년에 걸친 장기불황에 길들여져 있다는 방증이다. 결국 일본 경기 회복의 관건은 이 같은 디플레 심리를 극복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는 셈이다.
[도쿄 = 임상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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