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본 대지진 2년](4) 원전 정책방향, 전문가 좌담
ㆍ한국 정부, 사고 전제 ‘원자력규제위’ 신설해야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한국의 원전 정책에도 적잖은 변화를 가져왔다. 대통령 직속의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생겼고 원전 추가 건설이 보류됐다. 그러나 원전사고로 인한 ‘대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는 원전에 대한 근본적인 사고의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 경향신문이 마련한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달라진 한국의 원전 정책’이라는 주제의 좌담회에 참석한 국내외 원자력 전문가들은 “원전 정책은 사고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좌담회에는 김용수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교수(국제원자력기구 원자로재료물성DB센터장), 오다 다쿠지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전 도쿄대 교수), 김익중 동국대 의과대학 미생물학교실 교수(경주환경운동연합 연구위원장)가 참석했다.
▲ 사고는 예측불가 상황서 발생… 한수원 “안전할 것”만 되풀이
안전 자신하며 정보공개 꺼려… 최소한 ‘인재’ 막을 대책 필요
-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일본의 원전 상황은 어떤가.
오다 다쿠지=전체 원전 54기 중 52기가 안점점검을 위해 멈춰 있는 상태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후쿠시마 사고는 예상치 못한 영역에서 발생했다”면서 “반성과 함께 재발 방지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후쿠시마 사고 직후에 일본 원전 정책은 의외로 많이 변하지 않았다는 게 솔직한 생각이다. 원자력규제청(NRA)이 신설되는 등 조직은 바뀌었지만 내용적으로는 거의 달라진 게 없다.
김익중=설문조사에 따르면 일본 국민의 70%가 원전 재가동을 반대하고 있다. 일본 정부도 여론에 따라서 ‘탈원전’을 추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가 탈원전 쪽으로 방향을 바꿀 것이다. 현재 원전을 새로 짓는 나라는 많지 않다. 한국과 중국, 인도 정도다. 미국 등 나머지 선진국은 이미 체르노빌 이후부터 원전을 계속 줄이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위험한 원전을 계속 정지시키고 있다.
- 후쿠시마 사고 이후 한국의 원전 정책은 얼마나 변화했나.
김익중=지난해 11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월성 1호기의 안전상태를 점검하면서 대규모 정전에 대한 대비책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이미 비상전원 시설을 갖추고 있어서 정전은 있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는 대형사고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경주에 건설 중인 방사성폐기물처리장도 마찬가지다. 폐기물 유출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대형사고에 대해 여전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일본 원전사고를 타산지석으로 삼으려는 노력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김용수=원안위가 할 일은 선제적 안전조치인데 늘 뒷북만 치고 있다. 원전 고장 및 사고, 납품비리 등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또 원안위 산하기관인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의 연구기능도 강화돼야 한다. 미국의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규제만 하는 게 아니라 규제를 위한 연구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반면 안전기술원은 예산이 없어 한수원의 연구자료를 참고하고 있는 수준이다. 축적된 지식이 있어야 규제기관에 힘이 실린다.
김익중=국내 원전 규제기관은 ‘원자력규제위원회’가 아닌 ‘원자력안전위원회’다. 일본 등 주요 원전 국가의 안전을 책임지는 기관 명칭에 ‘규제’가 포함돼 있는 것과 대조된다. 지금 원안위는 원전 안전보다는 한수원의 대변인 역할만 하고 있다.
-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원전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다는 비판도 많다.
김익중=정부와 한수원이 갖고 있는 원전 정보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한수원에 정보공개를 청구할 때마다 제대로 된 답변을 듣지 못했다. 토론회나 공청회도 마찬가지다. 원전이 정말로 안전하다고 생각한다면 꺼릴 이유가 없지 않나.
김용수=시민과 정보를 공유하고 학계와도 소통을 강화하면 한수원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알게 될 수도 있다. 안전한 원전 운영을 위해서라면 충분히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다. 일본은 한국보다 원전 정보공개가 투명하게 이뤄지고 있지 않은가. 일부 원전의 운영상황을 폐쇄회로(CC)TV로 주민들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오다 다쿠지=일본도 후쿠시마 사고 이전까지는 지금의 한국처럼 투명한 정보공개가 이뤄지지 않았다.
김용수=한수원이나 원안위로서는 ‘정보를 은폐하고 있다’는 비판이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외부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그렇게 보일 수 있다. 정보공개 수준이 여전히 국민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 원자력안전위, 한수원 대변만… 해외의 규제역할 강조와 대조
전 세계적으로 노후원전 증가… 폐로·해체 당면 과제로 부상
- 원전사고의 근본 원인은 무엇이고 대비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김용수=‘원전사고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여야 한다.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지금까지 일어난 대형사고는 기계적 결함과 기술자의 실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원전 자체의 안전 여부 못지않게 관리하고 운영하는 사람의 능력과 자세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체르노빌 등 지금껏 발생한 대형 원전사고는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검토해 사고에 대비한다고 해도 실제로는 대책이 부족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다.
오다 다쿠지=원전 기술자에 대한 집중적인 교육이 안전을 완전히 담보하지는 못한다. 30~40년 전만 하더라도 일본 원자력 분야는 인기가 많아서 그때 일을 시작한 우수한 인재들이 현재 원전업계를 이끌고 있다. 그럼에도 2년 전에 대형 사고가 터졌다는 것은 아무리 우수한 인재라도 원전 안전을 완전히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김익중=세계에서 원전을 가장 많이 운영하는 국가는 미국이다. 현재 103기를 운영하고 있다. 다음은 프랑스(58기), 일본(50기), 러시아(33기), 한국(23기) 순이다. 이중 미국과 일본, 러시아에서 대형 원전사고가 일어났다. 원전을 많이 운영할수록 대형사고가 터질 확률이 높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결국 원전 개수를 줄여야만 대형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특히 노후 원전은 폐로(수명이 다한 원전의 원자로를 처분하는 것)해야 한다. 후쿠시마 사고 당시 이 지역의 원전 10기 중 30년 이상 운영된 4기에서 사고가 터졌다. 원전 수명연장도 사고의 원인이 된다는 뜻이다.
- 최근에는 체계적인 폐로에도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데. 세계원전안전해체학회도 창립될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용수=한국이나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낡은 원전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지난 후쿠시마 사고는 원전의 안전한 운영뿐 아니라 안전한 해체까지 생각하게 했다.
김익중=앞으로는 원전 건설 시장보다 원전 폐로 시장이 훨씬 커질 것이다. 전 세계에서 운영되고 있는 원전 450기를 언젠가는 없애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폐로 기술을 축적한 국가는 현재 많지 않다. 국내에서 먼저 준비하면 국내 원전 안전은 물론 한국 산업계에도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다 다쿠지=안전과 폐로를 같이 생각해야 하는 시점이니만큼 지금부터라도 구체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유희곤 기자 hulk@kyunghyang.com>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한국의 원전 정책에도 적잖은 변화를 가져왔다. 대통령 직속의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생겼고 원전 추가 건설이 보류됐다. 그러나 원전사고로 인한 ‘대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는 원전에 대한 근본적인 사고의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 경향신문이 마련한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달라진 한국의 원전 정책’이라는 주제의 좌담회에 참석한 국내외 원자력 전문가들은 “원전 정책은 사고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좌담회에는 김용수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교수(국제원자력기구 원자로재료물성DB센터장), 오다 다쿠지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전 도쿄대 교수), 김익중 동국대 의과대학 미생물학교실 교수(경주환경운동연합 연구위원장)가 참석했다.
4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열린 좌담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이 국내 원전 대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 김용수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오다 다쿠지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 사고는 예측불가 상황서 발생… 한수원 “안전할 것”만 되풀이
안전 자신하며 정보공개 꺼려… 최소한 ‘인재’ 막을 대책 필요
-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일본의 원전 상황은 어떤가.
오다 다쿠지=전체 원전 54기 중 52기가 안점점검을 위해 멈춰 있는 상태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후쿠시마 사고는 예상치 못한 영역에서 발생했다”면서 “반성과 함께 재발 방지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후쿠시마 사고 직후에 일본 원전 정책은 의외로 많이 변하지 않았다는 게 솔직한 생각이다. 원자력규제청(NRA)이 신설되는 등 조직은 바뀌었지만 내용적으로는 거의 달라진 게 없다.
김익중=설문조사에 따르면 일본 국민의 70%가 원전 재가동을 반대하고 있다. 일본 정부도 여론에 따라서 ‘탈원전’을 추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가 탈원전 쪽으로 방향을 바꿀 것이다. 현재 원전을 새로 짓는 나라는 많지 않다. 한국과 중국, 인도 정도다. 미국 등 나머지 선진국은 이미 체르노빌 이후부터 원전을 계속 줄이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위험한 원전을 계속 정지시키고 있다.
- 후쿠시마 사고 이후 한국의 원전 정책은 얼마나 변화했나.
김익중=지난해 11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월성 1호기의 안전상태를 점검하면서 대규모 정전에 대한 대비책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이미 비상전원 시설을 갖추고 있어서 정전은 있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는 대형사고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경주에 건설 중인 방사성폐기물처리장도 마찬가지다. 폐기물 유출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대형사고에 대해 여전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일본 원전사고를 타산지석으로 삼으려는 노력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김용수=원안위가 할 일은 선제적 안전조치인데 늘 뒷북만 치고 있다. 원전 고장 및 사고, 납품비리 등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또 원안위 산하기관인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의 연구기능도 강화돼야 한다. 미국의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규제만 하는 게 아니라 규제를 위한 연구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반면 안전기술원은 예산이 없어 한수원의 연구자료를 참고하고 있는 수준이다. 축적된 지식이 있어야 규제기관에 힘이 실린다.
김익중=국내 원전 규제기관은 ‘원자력규제위원회’가 아닌 ‘원자력안전위원회’다. 일본 등 주요 원전 국가의 안전을 책임지는 기관 명칭에 ‘규제’가 포함돼 있는 것과 대조된다. 지금 원안위는 원전 안전보다는 한수원의 대변인 역할만 하고 있다.
-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원전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다는 비판도 많다.
김익중=정부와 한수원이 갖고 있는 원전 정보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한수원에 정보공개를 청구할 때마다 제대로 된 답변을 듣지 못했다. 토론회나 공청회도 마찬가지다. 원전이 정말로 안전하다고 생각한다면 꺼릴 이유가 없지 않나.
김용수=시민과 정보를 공유하고 학계와도 소통을 강화하면 한수원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알게 될 수도 있다. 안전한 원전 운영을 위해서라면 충분히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다. 일본은 한국보다 원전 정보공개가 투명하게 이뤄지고 있지 않은가. 일부 원전의 운영상황을 폐쇄회로(CC)TV로 주민들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오다 다쿠지=일본도 후쿠시마 사고 이전까지는 지금의 한국처럼 투명한 정보공개가 이뤄지지 않았다.
김용수=한수원이나 원안위로서는 ‘정보를 은폐하고 있다’는 비판이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외부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그렇게 보일 수 있다. 정보공개 수준이 여전히 국민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 원자력안전위, 한수원 대변만… 해외의 규제역할 강조와 대조
전 세계적으로 노후원전 증가… 폐로·해체 당면 과제로 부상
- 원전사고의 근본 원인은 무엇이고 대비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김용수=‘원전사고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여야 한다.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지금까지 일어난 대형사고는 기계적 결함과 기술자의 실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원전 자체의 안전 여부 못지않게 관리하고 운영하는 사람의 능력과 자세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체르노빌 등 지금껏 발생한 대형 원전사고는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검토해 사고에 대비한다고 해도 실제로는 대책이 부족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다.
오다 다쿠지=원전 기술자에 대한 집중적인 교육이 안전을 완전히 담보하지는 못한다. 30~40년 전만 하더라도 일본 원자력 분야는 인기가 많아서 그때 일을 시작한 우수한 인재들이 현재 원전업계를 이끌고 있다. 그럼에도 2년 전에 대형 사고가 터졌다는 것은 아무리 우수한 인재라도 원전 안전을 완전히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김익중=세계에서 원전을 가장 많이 운영하는 국가는 미국이다. 현재 103기를 운영하고 있다. 다음은 프랑스(58기), 일본(50기), 러시아(33기), 한국(23기) 순이다. 이중 미국과 일본, 러시아에서 대형 원전사고가 일어났다. 원전을 많이 운영할수록 대형사고가 터질 확률이 높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결국 원전 개수를 줄여야만 대형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특히 노후 원전은 폐로(수명이 다한 원전의 원자로를 처분하는 것)해야 한다. 후쿠시마 사고 당시 이 지역의 원전 10기 중 30년 이상 운영된 4기에서 사고가 터졌다. 원전 수명연장도 사고의 원인이 된다는 뜻이다.
- 최근에는 체계적인 폐로에도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데. 세계원전안전해체학회도 창립될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용수=한국이나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낡은 원전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지난 후쿠시마 사고는 원전의 안전한 운영뿐 아니라 안전한 해체까지 생각하게 했다.
김익중=앞으로는 원전 건설 시장보다 원전 폐로 시장이 훨씬 커질 것이다. 전 세계에서 운영되고 있는 원전 450기를 언젠가는 없애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폐로 기술을 축적한 국가는 현재 많지 않다. 국내에서 먼저 준비하면 국내 원전 안전은 물론 한국 산업계에도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다 다쿠지=안전과 폐로를 같이 생각해야 하는 시점이니만큼 지금부터라도 구체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유희곤 기자 hulk@kyunghyang.com>
입력 : 2013-03-07 22:21:00ㅣ수정 : 2013-03-07 22: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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