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의 길]‘밥사’가 그리운 세상
떡을 잘 먹는 떡보도 있고, 술을 잘 마시는 술꾼도 있고, 밥을 잘 먹는 먹보도 있다.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교사나 박사도 있지만 법을 잘 다루는 판검사나 변호사도 있다. 그런데 우리땅걷기모임의 도반 중에 제일 이색적인 별칭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사람이 있다. 여자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명예퇴직을 하신 광주의 서화자 선생님이다. 이분은 자신을 교사도 박사도 아닌 ‘밥사’라 칭하며 만날 때마다 밥을 사 주신다. 연금을 너무 많이 받아 쓸 데가 없다고 말하지만, 어디 연금이 많아서겠는가. “마음으로 통하는 으뜸가는 길은 밥통이다”라는 속담처럼 그분은 밥으로 보시를 하며 사람을 맞는다. <해동잡록> 제4권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세 유생이 모여 책을 읽는데, 어떤 사람이 쌀을 보내왔다. 한 사람은 술을 좋아하고, 한 사람은 밥을 좋아하고, 나머지 한 사람은 떡을 좋아했다. 세 사람이 글을 지어 승부를 가리기로 했다. 떡을 좋아하는 사람은 “사온 술은 먹지 않고 밥은 때 아니면 먹지 않는다”고 하고, 밥을 좋아하는 사람은 “술은 위의(威儀)를 손상시키며 떡은 배를 채울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말했다. “어린애가 떡 달라 울고, 굶주린 사람이 밥을 찾는다. 옛날 요 임금은 천 사발의 술을 마셨고, 순 임금은 백 잔의 술을 마셨으며, 우 임금은 그 술을 마시고 달다 했고, 고종은 단술을 만들도록 명령했으며, 강숙(주공의 동생)은 덕이 커서 취하지 않았다. 공자는 유주무량(有酒無量)이고, 진나라 평공은 술잔을 날랐으며, 위나라 문제(조비)는 벌주를 마셨으며, 백륜(죽림칠현의 한 사람인 유영의 자)은 주덕송을 지었으며, 낙천(백거이)은 술의 공을 찬양하고, 초화는 주보를 지었으며, 서막은 성(성은 청주, 현은 탁주)을 말했다. 뿐만 아니라 하늘에는 주성이 있고, 땅에는 주천(酒泉)이 있으며, 고을에 주향이 있고, 신선에 주선(酒仙)이 있으니 예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모두 술을 찬양했지, 떡과 밥에 관한 말은 한마디도 없다.” 그러고는 술을 사 좋아하니, 떡을 좋아하는 사람은 냄새만 맡고 취했으며, 밥을 좋아하는 사람은 잔을 잡더니 쓰러지고,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가득 찬 잔을 당겨 술기운이 오르도록 마시며 몹시 즐거워했다. 요즘 세태는 어떤가. 여기저기 술집이 즐비하지만, 술을 사는 ‘술사(酒士)’는 드물고, 땅을 보는 ‘술사(術士)’만 넘쳐난다. 서화자 선생님 같은 ‘밥사’가 더욱 그리운 것은 세상이 너무도 각박하기 때문이리라.
<신정일 우리땅걷기 대표·문화사학자>
<신정일 우리땅걷기 대표·문화사학자>
입력 : 2012-09-06 20:59:52ㅣ수정 : 2012-09-06 20:5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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