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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Knowledge <110> 음반으로 보는 2009 클래식계 [중앙일보]

ngo2002 2010. 3. 19. 15:28

 2009.12.03 00:03 입력 / 2009.12.03 15:39 수정

LA필 지휘자 오른 28세 두다멜, 61년 만에 무대 내려온 78세 브렌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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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이 지나간다. 올해 세계 음악계에서는 한 거장이 은퇴를 하고, 당찬 신예가 데뷔 작품을 골랐다. 곱슬머리의 남미 지휘자가 미국을 뒤흔들어 놓기도 했다. 신동의 티를 벗은 연주자는 동료의 호흡을 느낄 수 있는 실내악으로 눈을 돌렸다. 올 한 해 음악계의 굵직굵직한 흐름을 10개의 음반으로 돌아봤다.

김호정 기자


1 구스타보 두다멜 취임 실황 DG

베네수엘라의 청년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입성했다. 스물여덟의 구스타보 두다멜은 남미의 열정, 특유의 음악적 재능을 무기로 LA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 자리를 맡았다. LA 시내 곳곳에 붙은 환영 플래카드와 광고 속에서 10월 11일 취임 연주회가 열렸다. 2300석의 월트디즈니홀은 가득 찼고 야외에 마련된 생중계 현장에는 7000여 명이 몰렸다.

두다멜은 거장의 시대를 보내고 스타 지휘자의 시대를 불러들였다. 그가 연주한 말러의 교향곡 1번 ‘거인’은 한 달 앞서 뉴욕 필하모닉에 취임한 앨런 길버트(42) 또한 첫 연주곡으로 고른 작품이다. 미국 현지 언론은 대체로 두다멜의 패기에 더 높은 점수를 줬다. 그는 젊음의 열기로 해석한 음악적 ‘거인’을 그려냈을 뿐 아니라 단원을 치밀하게 움직이는 능숙한 리더의 모습을 보여줘 미국을 놀라게 했다. 이 열기를 고스란히 담은 음반이다.

2 알프레드 브렌델 은퇴 실황 데카

한 시대가 지나갔다. 20세기 주요 피아니스트에 언제나 이름을 올렸던 알프레드 브렌델(78)이 지난해 12월 18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은퇴했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9번을 빈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 찰스 매커라스와 함께 연주했다. 생각이 많은 특유의 연주 스타일, 쉽게 흔들리지 않는 깊이 등이 무대를 떠나는 날까지 그대로였다. 고별 공연 시리즈 중 하나였던 독일 하노버에서의 베토벤 소나타 연주도 음반에 담겼다.

브렌델은 유고슬라비아 태생으로 17세에 데뷔했고, 1960년대 이후 베토벤 소나타 32곡 전곡 녹음을 세 차례 해치우는 기록을 세웠다. 뉴욕 카네기홀에서 3주 동안 여섯 번, 매번 다른 프로그램으로 독주회를 연 것 또한 기록이었다. 이 음반은 그가 30년 넘게 녹음한 앨범 120여 종의 마지막으로 기록됐다.

3 스테판 재키브 데뷔 소니 클래시컬

미래의 스타를 미리 알아보고 싶다면 올해는 바이올리니스트 스테판 재키브(24)의 데뷔 앨범을 고르면 된다. 2000년 에이버리 피셔 커런트상 수상, 2007년 뉴욕 필하모닉과의 데뷔 무대 등으로 세계 무대로의 시동을 걸고 있는 연주자다. 신인의 연주는 날카롭고 정확하다. 거장 연주자 아이작 스턴의 스타일을 떠올리게 한다. 음악에 대한 추상적 해석 대신 확실한 구상을 가지고 연주하는 그는 첫 앨범으로 브람스의 소나타 세 곡을 골랐다.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29) 또한 12월 한국 투어에서 연주하는 작품이다. 둘의 연주를 비교해보는 것은 또 다른 재미가 될 터다.

2년 전 타계한 수필가 피천득의 외손자인 재키브는 “생전에 외할아버지와 음악적 교감을 많이 나눴다”고 한다. 따뜻한 개인의 기억과 음악적 독특함이 조화를 이룬 연주자로 성장할 가능성이 보인다.

4 베를린 필 브람스 교향곡 전곡 EMI

베를린 필하모닉을 맡은 지휘자 사이먼 래틀(54)은 2002년 취임 후 독일 레퍼토리를 소홀히 한다는 비난에 시달렸다. 현대음악 등 새로운 작품에 대해 보인 특별한 관심 때문이었다. 브람스의 교향곡 네 곡을 녹음한 3장짜리 CD는 이러한 비판에 대한 래틀의 답변이기도 하다. 그는 고전적 해석에도 도전하는 듯 경쾌하고 세련된 연주를 펼쳤다. 연주 속도가 올라가고 긴장감이 더해졌다. 작곡가의 표기법을 세심하게 분석한 것과 깨끗한 사운드 역시 합격점을 받을 만하다. 전통의 힘에 기대기보다는 21세기형 오케스트라로 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세계 일류 교향악단의 현재를 점검할 수 있는 음반이다.

5 길 샤함과 세종솔로이스츠 유니버설

작은 손으로 놀라운 연주를 선보였던 ‘영재’의 성장은 시간을 실감하게 한다. 아홉 살에 어린이용 바이올린을 들고 나와 아이작 스턴·나탄 밀스타인 등 당대의 거장 바이올리니스트들을 놀라게 하고 열 살에 데뷔 무대를 열었던 이가 길 샤함이다. 18세에는 갑작스럽게 연주를 취소한 이자크 펄만 대신 무대에 올라 준비된 연주를 선보였다. 지금은 38세. 세계의 웬만한 주요 오케스트라와 수준 있는 공연장에서 연주를 해본 중견 연주자다. 그는 자신의 음반 레이블을 만들고 실내악·현대곡 등으로 관심사를 변화시켜 가며 정체의 위험에서 벗어나고 있다.

미국 줄리아드 음대의 한국계 교수인 강효씨가 만든 ‘세종 솔로이스츠’와의 협연은 샤함의 가장 최근 작업이다. 하이든의 바이올린 소나타 1, 4번과 멘델스존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8중주곡을 음반에 담았다. 2009년에 각각 사망·탄생 200년이 된 두 작곡가다. 12월에 함께 내한하는 샤함과 ‘세종 솔로이스츠’는 이 앨범을 전 세계 중 한국에서 가장 먼저 발매했다.



6 야나체크 신포니에타 소니 클래시컬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은 읽는 사람이 음악을 듣고 싶어지게 만든다. 올해 그의 소설 『1Q84』가 인기를 끌면서 체코 작곡가 야나체크가 따라서 부각된 것도 그러한 효과 덕이다. 야나체크가 1926년 작곡한 신포니에타는 이 소설의 서두를 열고 끝까지 중요한 모티브로 자리한다. 5월 무라카미의 책이 출간된 일본에서 이 앨범은 지난 30년 동안의 판매량인 1만 장이 3주 만에 팔려나갔다.

야나체크는 기존 오케스트라의 편성을 줄이고 여기에 13명의 관악기 주자를 더했다. 1925년 남부 보헤미아를 여행하던 중 들었던 군악대 연주에서 받은 영감 때문이었다. 이듬해 프라하에서 열린 체코의 체조 페스티벌 개막을 위한 팡파르 작곡을 의뢰받았을 때 그는 군악대의 소리를 떠올렸다. 체코의 민속음악에서 영향을 받은 무곡풍의 음악이 주를 이룬다. 무라카미가 책에서 ‘지휘자 조지 셸과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라며 구체적으로 언급한 바로 그 음반이다. 본래는 LP로만 남아 있다가 책 출간에 맞춰 CD로 복원됐다.

7 알리슨 발솜 트럼펫 앨범 EMI

“그녀는 트럼펫으로 어떤 사나운 맹수도 길들일 수 있을 것.” 영국의 음악 전문지 ‘그라모폰’이 2006년 ‘내일의 클래식 스타’ 코너에 적었던 문구다. 트럼펫 연주자 알리슨 발솜(31)은 악기의 한계를 넘어섰다. 목관 악기에 비해 둔하고 다루기 억센 금관의 트럼펫을 아무 힘도 들이지 않는 듯 연주해냈다. 기교는 자연스럽고 호흡은 부드럽다. 피아노·바이올린 등에 비해 ‘마이너 악기’일 수밖에 없었던 트럼펫이 발솜의 도전적 실력에 힘입어 가능성 많은 악기로 뛰어올랐다. 2001년 이후 ‘유명한 트럼펫 음악’ 등을 타이틀로 앨범을 내놨던 그가 트럼펫의 고전적 레퍼토리인 하이든의 협주곡을 녹음했다. 발솜은 이 곡에서 차분한 고전 스타일에 화려한 음색을 결합했다. 눈부신 기교를 만든 ‘기초’를 엿볼 수 있다.

8 조슈아 벨과 친구들 소니 클래시컬

영향력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42)이 상상력을 바탕으로 친구들을 끌어들인 음반이다. 가수 스팅·조시 그로반은 물론 트럼펫 연주자 크리스 보티와도 호흡을 맞춰 각각의 조합에 가장 적합한 음악들을 녹음했다. 1943년 세상을 떠난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까지 등장한다. 미국의 젠프 스튜디오는 라흐마니노프의 생전 녹음에서 연주 스타일을 분석해 프로그램으로 만들었다. 이 기계로 살아난 라흐마니노프의 타건에 벨이 그리그의 바이올린 소나타 3번의 2악장을 연주한다. 16세기의 사랑 노래, 영화 ‘시네마 천국’의 주제가, 피아졸라의 ‘오블리비온’ 등 듣기 편한 곡 16곡에서 뮤지션들의 진한 우정이 느껴진다.

9 요요마 30주년 기념 박스 소니 클래시컬

첼리스트 요요마(54)의 모든 녹음이 들어 있는 박스다. 지난 1월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에서 연주한 음악까지 포함됐다. 여기에 미공개 사진들, 그간 나왔던 음반들의 해설이 그대로 들어간 312쪽짜리 책자가 포함됐다. 테너 로버트 화이트, 피아니스트 새뮤얼 샌더스와의 앙상블로 1979년 첫 녹음한 것부터 총 90장의 CD가 수록됐다. 오래된 음원은 손질을 거쳐 선명하게 살아났다. “과학이 요요마를 복제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다면 음악에 큰 공헌을 하게 될 것”이라며 시작하는 피아니스트 에마누엘 악스의 소개 글에 동감하는 요요마의 팬이라면 탐낼 만한 음반이다. 그의 흠잡을 데 없이 매끄러운 해석과 원숙함이 완성된 30년의 시간을 추적할 수 있다.

10 랑랑 트리오 DG

클래식계의 ‘스타 드림팀’이 나왔다. 랑랑(27·피아노), 미샤 마이스키(61·첼로), 바딤 레핀(38·바이올린) 등 각 악기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는 연주자들이 모였다. 이들은 라흐마니노프의 엘레지 1번과 차이콥스키의 ‘위대한 예술가를 그리며’ 트리오를 선택했다. 랑랑의 튀어 오르는 듯한 연주와 마이스키의 명료한 해석, 레핀의 정열적인 스타일을 담는 ‘한 그릇’으로 적당한 작품이다. 특히 랑랑은 러시아의 애수 가득한 정서를 잘 이해했다. 독특한 해석, 기교에 치중하는 연주 등으로 비판을 찬사만큼 많이 받았던 랑랑이 첫 실내악 녹음에서 ‘앙상블’에 대한 능력 또한 증명한 셈이다. 그는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에서 마이스키와 레핀이 연주를 시작하면 다른 세계로 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고 설명했다. 세대, 출신 지역이 모두 다른 연주자들이 서로의 음악을 타고 넘나든 여행과도 같은 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