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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의 길]차가운 꽃은 잠깐만 향기를 피운다

ngo2002 2012. 8. 24. 09:50

[신정일의 길]차가운 꽃은 잠깐만 향기를 피운다

소소한 다툼과 분열이 끊이지 않는 게 세상사요 인간사다. 그 원인은 고래로 구조적인 모순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로지 높은 곳을 열망하는’ 인간의 속성에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유자(劉子)는 “세 사람이 같이 있다가 두 사람이 다투게 되면, 다투지 않는 사람에게 의뢰해 피차의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려고 한다. 허나 그 다투지 않은 사람이 꼭 공평한 것이 아니고, 서로 다투는 자가 반드시 편파된 것도 아니다. 그런데 다투는 자의 마음은 모두 자기가 옳다는 심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세상 사람들은 어떤 일에 직면하면 오직 이기는 길을 찾기에만 힘쓴다. 그리하여 서로 다투지 않는 자에게서 시비(是非)를 판단하기를 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다투지 않는 사람을 다투는 사람으로 보고 그를 믿지 않는다. 이것은 그 지혜가 말한, 같은 방에 있는 사람들만 못한 것이다. 그리하여 거의 다툼은 그칠 날이 없으니 어찌 슬프지 아니한가.”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실린 글이다. 이수광의 글을 읽다 보면 사람 사는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샘과 다툼이 결국 한 개인의 일생이나 역사를 진보시키는 힘이 될 수도 있지만, 자기 영혼을 조금씩 갉아먹는 치명적인 것일 수도 있다. 조그마한 다툼이라도 생기면 그것은 이해당사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전염병이나 바이러스처럼 옆으로 번져 세상을 오염시키고 분열시키기 때문이다.“차가운 꽃이 다만 잠깐 향기를 피운다”는 두보의 시 구절처럼 잠시 살다가 가는 것이 인생이다. 이처럼 짧은 우리네 삶, 가엾지 않은가. 그렇다면 어떤 사람을 만나고 살아야 할 것인가?“도량이 넓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 이 세상에서 사람에게 품격을 주는 유일한 것이지, 여보게, 인간에게는 두 계급밖에는 없다네. 즉 도량이 넓은 인간과 그렇지 못한 인간 말일세. 나도 이제 웬만큼 나이가 들었으니 내 노선을 정해서, 좋아할 사람과 멸시할 사람을 결정짓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만 머물러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며 낭비한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죽을 때까지 그들 곁을 떠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네. 운명은 이미 결정되었네. 난 도량이 넓은 사람만을 사랑하고, 넓은 도량 속에서만 살기로 결정했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말이다. 남은 생애는 되도록 ‘먼 산을 바라보듯 그렇게 살면서’ 도량이 넓은 사람을 만나고, 가끔씩 기대고 나누면서 살고 싶은 것이 나의 소망이다.<신정일 | 우리땅걷기 대표·문화사학자>


 

입력 : 2012-08-23 21:10:00수정 : 2012-08-23 21: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