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마지막 편지](31) 조영남 - 58명 여친 중 한명에게
문제는 58, 쉰여덟이라는 숫자다. 그렇다. 58은 현재 내 여친(여자친구의 준말)의 숫자다. 너무 많아서 놀랄 일도 아니고 너무 적어서 흥분할 일도 아니다.
잘난 척 하려는 게 아니라 나는 평소 여친의 숫자나 헤아리고 앉아 있는 쫀쫀한 스타일의 사람이 아니다. 나한텐 그만한 사연이 있다. 본 신문 칼럼 담당자가 몇주 전 ‘내인생 마지막 편지’를 주제로 한 원고 청탁을 해오는 바람에 ‘그거 재밌겠다’ 하면서, 그럼 나는 누구한테 마지막 편지를 쓸 것인가 궁리하게 되었다. 이런 때 아내가 있었으면 딱 좋았으련만 아내 없이 살아온 지도 꽤나 오래됐고 그렇다면 장차 내 아내가 되어줄 사람한테 쓸까, 뭐 이런 식으로 흘러갔다. 그러다가 급기야 그럼 내 아내는 장치 누가 될 것이냐, 그렇다면 현재 내 여친 중 한명이 되지 않을까에 이르렀고 자연스럽게 현재 여친은 누구누구지? 몇명이지? 뭐 이런 식이 되었다.
바로 이때 나의 여친은 29명이라는 수치가 먼저 나온다. 무슨 소리냐. 2009년 내가 그 유명한 중국의 베이징 798지역 미술관으로부터 초대 전시를 요청받아놓고 무슨 그림으로 중국인들의 시선을 끌까 궁리하던 중 진시황의 그 유명한 병마용갱(자신이 죽었을 때 자신의 시신을 지키라는 뜻에서 수만명의 군대를 흙으로 빚어 놓은 만리장성에 버금가는 고대 유적)이 떠올랐다. 하지만 진시황과 달리 나는 남자들이 내 시신을 지켜주는 건 별 의미가 없고 내 여자친구들이 내 시신을 영원히 보호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그래서 내 여친 용갱이 되어 줄 여친들을 급거 모집하게 되었다. 거기에 응모한 내 여친의 숫자가 바로 29명이었다. 난 내 여친들의 얼굴 사진에 중국 군복을 덧칠해 베이징 전시를 펼쳤다. 그 작품은 지금도 남아있다.
‘29명의 여친용갱’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내가 직접 터득한 건 좀 거창한 느낌이 들지만 역사의 허망함이다. 그게 무슨 소리냐. 그 작품 때문에 역사적으로 ‘조영남은 말년에 29명의 여친을 두고 살았다’라는 기록이 남는다는 사실이다. 웃기는 일이다. 내 여친이 어찌 29명뿐이겠는가. 그 후에도 오빠, 아저씨, 선생님, 왜 내 사진을 뺐어요? 나도 끼워주세요 뭐 이런 소리를 수없이 들어왔다. 그래서 지금쯤 다시 여친용갱을 그린다면 어림잡아 29명은 더 추가되어 29+29=58쯤 되지 않을까. 그래서 생긴 수치가 58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께서는 행여 ‘백제 의자왕의 3천 궁녀’와 조영남의 ‘58명 여친’을 엄밀히 구분해 주시길 바란다. 의자왕은 과장이거나 뻥이지만 조영남의 경우는 백프로 리얼이다. 다만, 큰 차이가 있을 뿐이다. 왕의 궁녀들은 왕이 맘대로 할 수 있지만 조씨의 여친은 조씨 맘대로 할 수가 없다. 아이구, 어림도 없다, 단지 나는 지금 58명 여친 중 누군가 한명에게 마지막 편지를 써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자, 그럼 누구에게 이 중요한 나의 마지막 편지를 보낼 것이냐. 아! 서글프다. 내가 유난히 아꼈던 여친들, 가령 행복전도사 최윤희나 서강대 영문과 교수 장영희나 나와 함께 화투를 즐겨 그렸던 김점선 같은 여친들은 뭐가 급한 지 먼저 세상을 떠나갔고 내가 유난히 아껴왔던 여친들 몇명은 최근에 선을 봤네, 남자친구가 생겼네, 애인이 생겼네 하며 난리도 아니다. 그래도 묵묵한 건 몇몇 기혼녀 여친들이다.
이런 와중에 누가 나의 마지막 편지를 받게 될 여친이냐, 누가 과연 나의 수석 여친으로 남게 될 것이냐, 이것이 관건이지만 좀 딴 얘기지만 나는 몇차례 미리 써보는 유서도 작성해봤다. 그 유서의 하이라이트는 내가 죽을 때 내 옆을 지켜준 여인이 내가 남긴 재산의 4분의 1을 갖는다는 대목이다. 물론 4분의 3은 세명의 내 자식에게 공평하게 나눠갖게 한다.
아! 또 서글퍼진다. 도대체 왜 내 평생 마지막 편지에 재산분배 얘기가 나오고 내 여친이 4분의 1의 재산 권리를 갖는다는 따위의 얘기를 언급해야 하는가. 도대체 왜 엄숙해야할 마지막 편지에 꼭 돈 얘기를 꺼내놔야 하는가 말이다. 의자왕이 그랬을까. 나의 궁과 재산을 3000개로 쪼개어 궁녀 한명에게 3000분의 1씩을 배당한다고.
믿지 않겠지만 나는 두번씩이나 법적 헤어짐의 마지막 서류에 도장을 찍어본 경험이 있다. 지금 쓰고 있는 마지막 편지보다 훨씬 절박했다. 틀림없다. 남녀 사이도 막판에는 꼭 돈 문제로 아옹다옹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또다시 58명 중 단 한명의 여친에게 이 편지를 쓰고 있다.
자! 내 최후의 여친아! 너만은 나를 알아다오. 나는 너를 무진장 좋아하고 내 방식대로만 사랑했다. 내 방식대로만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점 이해해다오. 여기까지다. 두서없는 편지는.
그리고 먼저 떠나간 내 여친들 윤희야. 영희야, 점선아. 내가 곧 너희들 만나러 가마. 기다려라.
<조영남 | 가수>
잘난 척 하려는 게 아니라 나는 평소 여친의 숫자나 헤아리고 앉아 있는 쫀쫀한 스타일의 사람이 아니다. 나한텐 그만한 사연이 있다. 본 신문 칼럼 담당자가 몇주 전 ‘내인생 마지막 편지’를 주제로 한 원고 청탁을 해오는 바람에 ‘그거 재밌겠다’ 하면서, 그럼 나는 누구한테 마지막 편지를 쓸 것인가 궁리하게 되었다. 이런 때 아내가 있었으면 딱 좋았으련만 아내 없이 살아온 지도 꽤나 오래됐고 그렇다면 장차 내 아내가 되어줄 사람한테 쓸까, 뭐 이런 식으로 흘러갔다. 그러다가 급기야 그럼 내 아내는 장치 누가 될 것이냐, 그렇다면 현재 내 여친 중 한명이 되지 않을까에 이르렀고 자연스럽게 현재 여친은 누구누구지? 몇명이지? 뭐 이런 식이 되었다.
‘29명의 여친용갱’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내가 직접 터득한 건 좀 거창한 느낌이 들지만 역사의 허망함이다. 그게 무슨 소리냐. 그 작품 때문에 역사적으로 ‘조영남은 말년에 29명의 여친을 두고 살았다’라는 기록이 남는다는 사실이다. 웃기는 일이다. 내 여친이 어찌 29명뿐이겠는가. 그 후에도 오빠, 아저씨, 선생님, 왜 내 사진을 뺐어요? 나도 끼워주세요 뭐 이런 소리를 수없이 들어왔다. 그래서 지금쯤 다시 여친용갱을 그린다면 어림잡아 29명은 더 추가되어 29+29=58쯤 되지 않을까. 그래서 생긴 수치가 58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께서는 행여 ‘백제 의자왕의 3천 궁녀’와 조영남의 ‘58명 여친’을 엄밀히 구분해 주시길 바란다. 의자왕은 과장이거나 뻥이지만 조영남의 경우는 백프로 리얼이다. 다만, 큰 차이가 있을 뿐이다. 왕의 궁녀들은 왕이 맘대로 할 수 있지만 조씨의 여친은 조씨 맘대로 할 수가 없다. 아이구, 어림도 없다, 단지 나는 지금 58명 여친 중 누군가 한명에게 마지막 편지를 써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자, 그럼 누구에게 이 중요한 나의 마지막 편지를 보낼 것이냐. 아! 서글프다. 내가 유난히 아꼈던 여친들, 가령 행복전도사 최윤희나 서강대 영문과 교수 장영희나 나와 함께 화투를 즐겨 그렸던 김점선 같은 여친들은 뭐가 급한 지 먼저 세상을 떠나갔고 내가 유난히 아껴왔던 여친들 몇명은 최근에 선을 봤네, 남자친구가 생겼네, 애인이 생겼네 하며 난리도 아니다. 그래도 묵묵한 건 몇몇 기혼녀 여친들이다.
이런 와중에 누가 나의 마지막 편지를 받게 될 여친이냐, 누가 과연 나의 수석 여친으로 남게 될 것이냐, 이것이 관건이지만 좀 딴 얘기지만 나는 몇차례 미리 써보는 유서도 작성해봤다. 그 유서의 하이라이트는 내가 죽을 때 내 옆을 지켜준 여인이 내가 남긴 재산의 4분의 1을 갖는다는 대목이다. 물론 4분의 3은 세명의 내 자식에게 공평하게 나눠갖게 한다.
아! 또 서글퍼진다. 도대체 왜 내 평생 마지막 편지에 재산분배 얘기가 나오고 내 여친이 4분의 1의 재산 권리를 갖는다는 따위의 얘기를 언급해야 하는가. 도대체 왜 엄숙해야할 마지막 편지에 꼭 돈 얘기를 꺼내놔야 하는가 말이다. 의자왕이 그랬을까. 나의 궁과 재산을 3000개로 쪼개어 궁녀 한명에게 3000분의 1씩을 배당한다고.
믿지 않겠지만 나는 두번씩이나 법적 헤어짐의 마지막 서류에 도장을 찍어본 경험이 있다. 지금 쓰고 있는 마지막 편지보다 훨씬 절박했다. 틀림없다. 남녀 사이도 막판에는 꼭 돈 문제로 아옹다옹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또다시 58명 중 단 한명의 여친에게 이 편지를 쓰고 있다.
자! 내 최후의 여친아! 너만은 나를 알아다오. 나는 너를 무진장 좋아하고 내 방식대로만 사랑했다. 내 방식대로만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점 이해해다오. 여기까지다. 두서없는 편지는.
그리고 먼저 떠나간 내 여친들 윤희야. 영희야, 점선아. 내가 곧 너희들 만나러 가마. 기다려라.
<조영남 | 가수>
입력 : 2012-07-17 21:29:57ㅣ수정 : 2012-07-17 21:2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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