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마지막 편지](26) 구경미 - 카멜레온 K에게
1993년이었어. 우리가 처음 만난 게. 가을축제 때 공연할 연극 때문이었지. 나는 연주자로, 너는 조연배우로. 연주자라니까 되게 쑥스럽네. 글벽이라고 기억나니? 고작 회원 네 명이 전부인 국문과 소설 동아리. 그때 우리 네 명이 사물놀이를 배우고 있었거든. 연출을 맡은 선배한테 징발된 거지. 연극연습 때문에 아마 두 달 가까이 매일 저녁마다 모였을 거야. 그때 처음 알았어. 네가 시를 쓴다는 거. 그것도 꽤 잘 쓴다는 거. 어느 날 저녁 시 노트를 보여주며 봐달라고 했었잖아. 네가 시를 쓰지 않았다면 글쎄, 지금처럼 이렇게 친해졌을까. 내 친구들이 소외감을 느끼고 네 친구들이 질투할 정도로 오랜 시간 둘이서 문학 얘기만 했었으니까.
함께 서울로 온 것도 문학 때문이었지. 내겐 소설을 쓰는 동료가, 네겐 시를 쓰는 동료가 필요했어. 아, 그 빨간색 티코 기억나니? 사람 타기도 비좁은 차에다 바리바리 짐을 쟁여 넣고 함께 서울로 왔던. 고속도로를 달리는 내내 네 발밑에서는 밥솥이 덜컹거리고, 옆 차선 운전자들은 동물원 원숭이 구경하듯 쳐다보고, 뒷좌석 짐들은 자꾸만 앞으로 쏟아질 것 같아서 조마조마했던. 그래도 참 재밌었어. 그렇지? 집도 직장도 없이 맨몸뚱이로 상경하면서도 불안은커녕 마치 친구 집에 놀러가듯 태평하고 자신감에 차 있었어. 그런 터무니없는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서 생긴 걸까. 지금 생각하면 참 무모한데 그땐 무모하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지. 20대여서 가능했던 걸까. 그 시절이 새삼 그립다.
그런데 넌 왜 시를 포기했니? 상경 후 한동안은 퍽 열심이었잖아. 물론, 너의 다양한 재능과 다채로운 꿈이 너를 시만 쓰게 내버려두지 않았다는 건 알아. 그래도 아쉬웠어. 카멜레온처럼 변신하길 좋아하는 네 성격과 안 맞을지도 모르겠지만. 넌 언제나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어. 아니, 오히려 즐겼던 것 같아. 단순히 직장을 옮기는 게 아니라 직종 자체를 바꾸곤 했지. 새로운 직종에 필요한 능력을 갖추기 위해 학원에 다니고, 영국으로 유학가고, 꽤 늦은 나이에 또 다른 전공 공부를 위해 대학원에 다니고…. 일일이 거론하기도 입 아프다. 그런데 너의 변신이 정작 나한테 더 큰 도움이 되었다는 거 아니? 넌 변신 과정에서 겪은 경험과 새로운 환경, 새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줄곧 들려주었어. 때로는 조언을 구하며, 또 때로는 소설의 소재로 쓰라며. 박씨 물어오는 제비처럼. 그럼 난 그걸 배고픈 흥부처럼 부지런히 키워냈고. 물론 흥부네 박에서처럼 금은보화가 쏟아지지는 않았지만(박씨가 부실해서가 아니라 농사꾼의 역량이 부족한 탓이야) 어쨌든 소설가로서의 명맥을 유지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됐어. 내 소설의 10분의 1은 너에게 빚지지 않았을까.
그런 주제에 내가 또 너에게 큰 짐을 지웠더구나. 벌써 잊었을 줄 알았는데 며칠 전 통화에서 네가 그 얘기를 꺼내는 걸 보고 조금 놀랐어. 어린 날의 치기 비슷한 말이었는데 아직도 그걸 기억하고 있다니. 어떻게 지내냐고 물어서 내가 말했지. 이러이러한 글을 써야 하는데 누구한테 쓸지 고민 중이라고. 그랬더니 네가 말했어. 당연히 나한테 써야지! 왜? 내가 물었고. 선배 죽으면 화장해서 지중해에 뿌려달라며. 그런 중요한 역할을 맡긴 사람한테 쓰는 게 맞지. 농담인 줄 알면서도 고맙고 미안했어. 그런데, 정말 나를 지중해로 데려갈 거니? 농담이야, 농담.
늘 멀리 떨어져 있어서 더 그립고 보고 싶은 K. 훌쩍 필리핀으로, 또 훌쩍 영국으로, 일본으로, 지금은 머나먼 남도에서 한 남자의 아내이자 한 아이의 엄마, 한 사람의 직장인으로 맹렬하게 살아가고 있는 K. 여전히 꿈꾸기를 좋아하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K. 너를 만난 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었어.
지금까지처럼 열심히, 그리고 행복하게 살길 빈다.
<구경미 | 소설가>
그런데 넌 왜 시를 포기했니? 상경 후 한동안은 퍽 열심이었잖아. 물론, 너의 다양한 재능과 다채로운 꿈이 너를 시만 쓰게 내버려두지 않았다는 건 알아. 그래도 아쉬웠어. 카멜레온처럼 변신하길 좋아하는 네 성격과 안 맞을지도 모르겠지만. 넌 언제나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어. 아니, 오히려 즐겼던 것 같아. 단순히 직장을 옮기는 게 아니라 직종 자체를 바꾸곤 했지. 새로운 직종에 필요한 능력을 갖추기 위해 학원에 다니고, 영국으로 유학가고, 꽤 늦은 나이에 또 다른 전공 공부를 위해 대학원에 다니고…. 일일이 거론하기도 입 아프다. 그런데 너의 변신이 정작 나한테 더 큰 도움이 되었다는 거 아니? 넌 변신 과정에서 겪은 경험과 새로운 환경, 새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줄곧 들려주었어. 때로는 조언을 구하며, 또 때로는 소설의 소재로 쓰라며. 박씨 물어오는 제비처럼. 그럼 난 그걸 배고픈 흥부처럼 부지런히 키워냈고. 물론 흥부네 박에서처럼 금은보화가 쏟아지지는 않았지만(박씨가 부실해서가 아니라 농사꾼의 역량이 부족한 탓이야) 어쨌든 소설가로서의 명맥을 유지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됐어. 내 소설의 10분의 1은 너에게 빚지지 않았을까.
그런 주제에 내가 또 너에게 큰 짐을 지웠더구나. 벌써 잊었을 줄 알았는데 며칠 전 통화에서 네가 그 얘기를 꺼내는 걸 보고 조금 놀랐어. 어린 날의 치기 비슷한 말이었는데 아직도 그걸 기억하고 있다니. 어떻게 지내냐고 물어서 내가 말했지. 이러이러한 글을 써야 하는데 누구한테 쓸지 고민 중이라고. 그랬더니 네가 말했어. 당연히 나한테 써야지! 왜? 내가 물었고. 선배 죽으면 화장해서 지중해에 뿌려달라며. 그런 중요한 역할을 맡긴 사람한테 쓰는 게 맞지. 농담인 줄 알면서도 고맙고 미안했어. 그런데, 정말 나를 지중해로 데려갈 거니? 농담이야, 농담.
늘 멀리 떨어져 있어서 더 그립고 보고 싶은 K. 훌쩍 필리핀으로, 또 훌쩍 영국으로, 일본으로, 지금은 머나먼 남도에서 한 남자의 아내이자 한 아이의 엄마, 한 사람의 직장인으로 맹렬하게 살아가고 있는 K. 여전히 꿈꾸기를 좋아하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K. 너를 만난 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었어.
지금까지처럼 열심히, 그리고 행복하게 살길 빈다.
<구경미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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