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

따로 노는 국부펀드 ②

ngo2002 2012. 5. 24. 13:58

노르웨이, 연기금-중앙銀 찰떡공조 세계 2위 영향력 막강
1998년부터 연기금 돈 중앙銀에 위탁 운용
유럽위기에도 올 1분기 자산 36조원 `껑충`
기사입력 2012.05.23 17:06:24 | 최종수정 2012.05.23 18:12:30 트위터 미투데이 블로그 스크랩
◆ 따로 노는 국부펀드 ② ◆

노르웨이 오슬로에 있는 금융 중심지 방크플라센 거리. 이곳에는 노르웨이 중앙은행인 노르게스방크(Norges Bank)가 자리 잡고 있다. 1816년 설립된 노르게스방크는 유서 깊은 전통 외에도 색다른 실험으로 전 세계 투자자의 주목을 끌고 있다. 바로 국부펀드 운용 단일화다. 노르게스방크는 1998년부터 우리나라 국민연금에 해당하는 노르웨이 정부연기금(GPFG)으로부터 운용자금을 위탁받아 자체 보유하고 있는 외환보유액과 묶어 전 세계 자산에 투자하고 있다. 투자자인 GPFG는 정부 산하기구로 기금 상당액을 석유 기업 관련 세금과 탐사권 등을 통해 충당하고 있는데, 이 자금을 스스로 운용하는 게 아니라 중앙은행에 위탁한다는 점에서 우리와는 다르다. 중앙은행의 역사가 길고 노하우가 더 많다는 판단에서다. 물론 투자자가 GPFG인 만큼 비용을 제외한 수익 금액은 다시 연기금으로 돌아간다.

`중앙은행 운용-연기금 위탁`이라는 구조는 수익 극대화로도 이어지고 있다. 노르게스방크에 따르면 올 1분기 정부연기금 자산 가치는 3조4960억크로네(약 685조5656억원)로 작년 4분기 대비 1850억크로네(36조2785억원)나 증가했다.

노르게스방크는 "위탁 운용하고 있는 동안 세 번째 높은 수익이었다"면서 "기금으로 환원한 수익 금액만 2340억크로네(45조9037억원)"라고 자평했다. 작년 말 기준으로는 아부다비투자청에 이어 세계 2위 규모로 1위 자리도 노리고 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확고한 윈윈 시스템을 갖춘 배경에는 강력한 투명성과 튼튼한 상호 신뢰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노르게스방크는 위탁된 자산을 중앙은행 산하기구인 투자운영위원회(NBIM)를 통해 굴리고 있는데, NBIM은 자산 현황은 물론 포트폴리오 등 각종 투자지표를 분기마다 일반 자산운용사처럼 외부에 공개하고 있다.

1분기 투자 현황을 살펴보면 국채로는 미국 국채 2748억크로네, 영국 국채 887억크로네, 프랑스 국채 798억크로네 순이며, 주식은 애플에 227억크로네를 투자하는 등 적극적이다. 심지어 NBIM 웹사이트 전면에는 환율 등을 고려한 자산 평가 금액을 실시간 공표하고 있다.

일반 기관들이 비밀이라며 꽁꽁 숨기는 투자지표를 서슴지 않고 공개하면서 수익률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셈이다. 현재 NBIM은 오슬로는 물론 영국 런던, 미국 뉴욕, 중국 상하이, 싱가포르 등 주요 도시에 사무소를 두고 26개국 출신 320명의 직원이 트레이딩룸에서 근무하고 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노르웨이는 인구가 464만명으로 적고 입헌군주제인 데다 북해 인근에서 나오는 석유가 기금의 주요 수입원이라는 점에서 우리와는 다르다"면서도 "다만 천연자원이 떨어진 후 연기금으로 미래를 가꾸겠다는 집념과 노력은 본받을 점"이라고 설명했다.

노르웨이가 일원화 구조라면 싱가포르는 역할 구별로 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사례다. 테마섹홀딩스가 장기 투자, 싱가포르투자청(GIC)이 중기 투자에 각각 목적을 두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래 투자처 변화에 따른 역할 중첩 논란이 있긴 하지만, 테마섹홀딩스가 싱가포르 정부 출자 회사와 해외 자산을 투자하고 관리하는 데 반해 GIC는 정부 외환보유액과 재정잉여금 등을 재원으로 주식이나 채권 등에 투자하고 있는 점이 다르다.

자산 가치는 작년 기준으로 GIC가 2475억달러, 테마섹홀딩스가 1572억달러로 나란히 글로벌 국부펀드 8위와 9위 규모를 달리고 있다. 특히 GIC는 중앙연금 준비기금 관리 기관인 중앙적립기금위원회(CPFB)가 운용하지 않는 자금을 위탁받아 운용하면서 연기금과도 협력 관계를 돈독히 하고 있다. 싱가포르가 동아시아 금융 허브로 부상하게 된 배경에는 이 두 기관의 역할이 컸다는 평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투자공사(KIC) 국민연금 등 한국 국부펀드들도 각자 설립 목적에 충실하면서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신성환 홍익대 교수는 "국민연금과 KIC 등은 돈의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투자 계획은 따로 세우더라도 해외에서의 투자 집행은 일원화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고 밝혔다.

[기획취재팀 = 김인수 차장(팀장) / 이상덕 기자 / 전정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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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CIC `청출어람`…한국 KIC 벤치마킹해 설립
이젠 KIC가 "우리 좀 끼워줘"
기사입력 2012.05.23 17:06:34 | 최종수정 2012.05.23 17:07:35 트위터 미투데이 블로그 스크랩
◆ 따로 노는 국부펀드 ② ◆

중국 국부펀드인 중국투자공사(CIC)는 2007년 9월 설립 전에 한국투자공사(KIC)를 종종 방문했다.

특히 설립 준비가 한창이던 2006년에 집중적으로 KIC를 찾았다. 한국 국부펀드인 KIC의 모델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펀드 자금은 어떻게 마련했고 어떻게 운용하는가, 지배구조는 어떤가 등을 꼬치꼬치 묻고 돌아갔다. CIC가 문을 열었을 때는 인터넷 홈페이지마저 KIC와 흡사했을 정도로 KIC를 벤치마킹했다. 지금 두 기관은 이름도 비슷하다. 한국을 뜻하는 `K` 대신 중국을 뜻하는 `C`가 들어갔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 두 기관의 위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CIC는 3320억달러를 운용하는 세계 5대 국부펀드로 자리 잡았다. KIC 운용 자금(429억달러)의 거의 8배다.

이제는 KIC가 CIC에 매달려야 할 상황이다. 좋은 투자 기회가 있으면 참여시켜달라고 부탁해야 할 처지가 됐다. "좋은 거래는 규모가 큰 국부펀드에 쏠리기 때문"이라는 게 KIC 관계자의 솔직한 얘기다. 제자가 스승보다 뛰어나다는 `청출어람(靑出於藍)`이 딱 들어맞게 된 셈이다.

중국보다 국가 덩치가 작으니까 어쩔 수 없지 않으냐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한국 국부펀드들이 힘을 합치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KIC, 국민연금, 한국은행 외자운용원 등을 합치면 굴리는 돈이 6533억달러에 달한다.

CIC는 KIC를 벤치마킹하면서도 재원 마련 방식은 처음부터 달리했다. KIC와 CIC는 모두 중앙은행에서 내놓은 돈이 투자 재원이다.

그러나 CIC는 중국 정부가 중앙은행에서 빌린 돈을 자기자본으로 출자받는 방식을 택했다. 한국은행에서 위탁받은 돈이 재원이 된 KIC와 다른 점이다.

이에 대해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CIC는 자기자본이 재원이기 때문에 장기 투자하기에 용이하다는 점에서 국부펀드 취지에 더욱 적합하다"고 평가했다. CIC는 KIC를 벤치마킹해 설립됐지만 출발부터 국부펀드 모델에 보다 충실했던 것이다.

[기획취재팀 = 김인수 차장(팀장) / 이상덕 기자 / 전정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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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펀드 단기 급급…스스로 발목 잡는다
주먹구구식 평가에 인센티브도 떨어져 국민연금 7명 줄사표
기사입력 2012.05.23 17:06:43 | 최종수정 2012.05.23 17:07:48 트위터 미투데이 블로그 스크랩
◆ 따로 노는 국부펀드 ② ◆

지난해 말 잘나가던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소속 운용역 7명이 갑작스럽게 사표를 냈다. 대부분 증권ㆍ보험사 고위직으로 위촉됐다. 성과보수는 민간에 훨씬 미치지 못하면서 공공기관이라는 이유로 불필요한 감사ㆍ평가 등 족쇄에 시달렸다는 게 이직 이유였다.

전 국민연금 직원 K씨는 "장기로 자금을 굴려야 할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이 매년 기관 평가를 받고, 직원들도 3년마다 평가를 받아 계약을 갱신하다 보니 제대로 된 투자 판단이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국민연금(3136억달러), 한국투자공사(KICㆍ429억달러), 한국은행(2968억달러) 등 모두 합쳐 6533억달러에 달하는 천문학적 금액을 다루는 세계적 국부펀드지만 기관 평가 시스템은 여전히 후진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국부펀드를 지향하면서도 여전히 평가 기준은 경영 효율성, 예산 낭비 등 일반 공공기관과 같은 취급을 받고 있다. 우선 KIC와 국민연금은 공공기관운영법에 따라 매년 기관 평가와 기관장 평가를 받는다.

기획재정부와 각 기관에 따르면 세부적인 차이는 있지만 기관 평가 배점(100점 만점) 중 성과 평가는 약 40점 수준. 그나마 투자 성과에 대한 평가는 20점에 불과하다. 나머지 60점은 경영 효율성, 리더십 등 조직 관리와 관계된 부분으로 국부펀드의 원래 목적인 자산 운용보다 배점이 더 높다. 평가위원 중 상당수는 전문적인 자산 운용과는 거리가 멀다.

국부펀드인 KIC의 경우 과거 정부투자기본법 시절에는 평가 대상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공공기관운영법으로 법이 바뀌는 과정에서 관련법을 함께 개정하지 못해 일반 공공기관과 같이 평가 대상에 포함됐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정부 관계자는 "국민연금은 전체로 보면 연금보험료와 보험금을 출납하는 기관"이라며 "100여 명에 불과한 기금운용본부에 따로 평가 기준을 적용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기금운용본부를 별도 법인으로 독립시키지 않는 한 국민연금 전체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특히 장기 투자가 기본인 국부펀드들이 매년 평가를 받다 보니 각 기관이 오히려 단기 수익에 집착하는 왜곡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획일적인 기관장 평가는 이 같은 왜곡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기관장 평가는 사실상 공공기관장들의 서열을 매겨 거취와 연계시키는 만큼 기관별로 서로 다른 잣대를 적용하기 쉽지 않다.

한국은행 외자운용원은 별도의 공공기관 평가는 받지 않는다. 하지만 정부기관인 만큼 감사원과 국회의 감사는 불가피하다. 마찬가지로 위법ㆍ낭비 등에 중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3대 국부펀드의 허술한 인센티브 체계도 제대로 된 평가를 어렵게 하는 원인이다.

[기획취재팀 = 김인수 차장(팀장) / 이상덕 기자 / 전정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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