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넓은 바다의 매력을 가진 ‘거울 같은 호수’ | ||||||||||||||||||||||||||||||||||||||||||||||||||||||||||||||||||||||||||||||||||||||||||||||||||||||||||||||||||||||||||||||||||||||||||||||||||||||||||||||||||||||||||||||||||||||||||||||||||||||
| [하성봉의 중국이야기15] 발해유적지의 경박호(鏡泊湖)를 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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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년전 화산폭발로 높은 산위에 생긴 ‘거울 같은 호수’ 경박호(鏡泊湖) 발해유적지 하면 ‘거울같은 호수’ 경박호(鏡泊湖)를 빼놓을 수 없다. 발해유적지에서 25㎞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중국 동북3성에서 가장 큰 호수인데다 화산호(火山湖)이다. 그래서 풍광이 여느 호수와 다르다. 경박호는 세계2대 고산(高山) 언색호(堰塞湖)이다. 1만년전 화산에서 쏟아져나온 용암이 무단장(牧丹江) 물길을 막아 생긴 호수다. 발해 유적지와 경박호 일대는 1만년전 화산 폭발로 커다란 지각변동이 있었던 지역이다. 이 일대가 온통 표면에 구멍이 숭숭난 현무암으로 뒤덮혀 있는 이유도 이때문이다.
발해 왕조때도 마찬가지였다. 발해왕과 귀족들은 끝없이 광활한 만주벌판을 달려 경박호에서 여름철 뱃놀이도 하고 호수에서 건져낸 생선요리를 먹으며 피서를 즐겼다.
경박호는 홍라녀(紅羅女)에 얽힌 전설로 가득…부여땅으로 고구려 건국 신화의 무대 경박호는 발해때부터 전해오는 아름다운 전설로 가득차 있다. 이곳에는 수정같이 맑고 순수한 ‘홍라녀’ (紅羅女)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경박호에는 한 어부의 딸이 살고 있었다. 그 어부는 우연히 길고 굵은 한 갈대를 얻어 사랑하는 딸에게 작고 깜찍한 피리 하나를 만들어주었다. 어부의 딸은 그 피리를 자기의 생명처럼 아꼈다. 매번 저녁무렵 황혼이 깃들면 호숫가의 돌에 앉아 피리를 불었는데 피리소리는 은은히 수면에 울려퍼져 물속의 고기들이 몰려들었고 숲속의 새들도 다가와 지저귀며 화답했다. “
“아주 오래전에 무단장(牧丹江) 강가(경박호를 이름)에는 한 아름답고 착한 홍라녀(紅羅女)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진귀한 거울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이 어디에서 고통을 겪든지 그녀는 거울만 한번 비추면 재난이 사라지게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소문이 하늘나라까지 나서 서왕모(西王母)의 질투를 불러일으켰다. 서왕모는 하늘의 신을 시켜 그 거울을 훔쳐오도록 했다. 홍라녀는 거울을 찾기위해 하늘로 올라가 실갱이를 벌이다가 거울이 하늘에서 떨어져 바로 경박호로 변했다는 것이다.<출처=중국포털 바이두> 중국 동포학자 송덕윤(宋德胤) 씨는 ‘홍라녀’에 관련된 13가지의 글을 수집해 총서 <발해사연구>에 발표했다. 주로 애절한 사랑이야기가 많다. 이중 세가지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전설 1: 홍라(紅羅)와 녹라(綠羅) :홍라와 녹라는 어부의 딸로 자매간이었다. 어려서 부모를 여읜 두 자매는 경박호에서 고기잡이를 하는데 갑자기 불어온 세찬 풍랑에 배가 뒤집혔다. 이 순간 배를 타고 나타난 한 젊은이가 두 자매를 구출했다. 이 젊은이는 싸부리진(萨布里金)으로 마음씨가 고와 두 자매가 모두 사랑하게 됐다. 어느날 싸부리진이 두 자매를 집에 초대했다. 집에서 두 청년이 걸어나왔는데 생김새가 똑 같은 쌍둥이 형제였다. 동생의 이름은 싸부리인(萨布里銀)이었다. 두 자매는 두 형제에게 시집을 가게 됐다. 뒤에 동단왕(東丹王,거란족의 요(遼)나라가 발해를 멸망시키고 세운 동단국의 왕)이 홍라와 녹라가 절세의 미인이라는 말을 듣고 둘을 입궁시키려 하였다. 동단왕은 사람을 파견해 두 형제를 죽여버렸다. 홍라와 녹라는 너무 슬픈 나머지 동단왕에게 경박폭포 앞에 제단을 세우고 남편들에게 제사를 지내게 했는데 의식을 마친뒤 몸을 솟구쳐 연못속에 뛰어들어 스스로 숨을 거뒀다. 전설2: 홍라(紅羅)와 경박소룡왕(鏡泊小龍王):홍라녀는 발해군왕의 공주였다. 공주는 어릴 때부터 응석받이로 자라다 어느덧 미모의 처녀가 되었다. 귀족의 자제 등 청혼자들이 줄을 이었지만 아무도 그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었다. 공주는 이미 경박호에 사는 한 어부를 사랑하고 있었다. 부왕이 결혼을 완강히 반대하자 공주는 경박호에 몸을 던졌는데 물속의 고기떼들이 그를 용궁으로 데려갔다. 공주가 뜨겁게 사랑한 어부는 경박호 호수밑의 교룡(蛟龍)이었다. 이때부터 둘은 경박호에서 행복하게 살았다. 전설3: 홍라녀를 사랑한 삼형제:홍라녀는 경박호 호수밑 용왕의 딸이다. 홍라녀는 온종일 폭포아래에서 천을 짰다. 어느날 삼형제가 사냥을 하러 이곳에 와서 홍라녀의 용모에 반해 폭포곁을 떠나지 않았다. 홍라녀는 삼형제에게 가난한 백성들을 위해 옷을 다 짤 때까지 그곳을 떠날 수 없다고 했다. 삼형제는 세월이 지나자 모두 노인이 되어 경박폭포밑에서 숨을 거두었다. 홍라녀는 삼형제를 가엾게 여겨 폭포의 맞은편에 매장했는데 사람들은 이를 삼형제무덤이라 부르며 아직까지 전해온다.<출처=발해주요유적을 찾아서(방학봉 저)> 이러한 전설을 배경으로 경박호에는 홍라녀의 동상이 서 있다. 또한 이곳은 원래 부여땅으로 고구려 건국신화의 아름다운 전설이 서려 있는 곳이다. “국조이신 동명성제께서 태어나 나라를 일으키신 용흥지지(龍興之地)입니다.” “아니 그럼 태백산(白頭山)을 넘어 목단령 밑에 있는 곤지(현재의 만주 길림성과 흑룡강성 경계부근에 있는 경박호鏡泊湖)로 가잔 말 아닌가?” 곤지는 원래 부여땅이었다. 내륙의 이 호수에는 고구려 건국신화의 아름다운 전설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했다. 부여왕 해부루(解夫婁)는 늙도록 왕자가 없어 명산대천을 찾아다니며 아기 얻기를 소원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곤지를 지나는데 커다란 바위를 보고서 왕이 탄 말이 놀라 앞발을 높이 쳐들며 우는 것이었다. 왕이 괴히 여겨 바위를 치우고 보니 뜻밖에도 금두꺼비를 닮은 아기가 누워 있었다. 이는 하늘이 내려주신 아들이라며 왕은 기뻐서 양자로 삼아 이름을 금와(金蛙)라 했다. 이 아기가 곧 동명성제 고주몽(고주몽)이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었다. 그래서 고구려 사람들은 누구나 그곳을 성지(聖地)로 여기고 있었다. <출처=유현종의 대하 역사소설 大祚榮(대조영) 2권 51쪽>
경박폭포 다이빙 기네스북 기록자…겨울에도 20m 벼랑 아래로 ‘비류직하’(飛流直下)
폭포는 보통때 40m의 폭으로 폭포수가 20m높이의 벼랑 아래로 수직낙하하는데 수량이 많을 때는 중앙과 좌우로 100여m의 넓은 폭에 걸쳐 물이 빠르게 아래로 내리꽂혀 폭포수가 마치 병풍을 펼쳐놓은 듯 장관을 연출한다. 수량이 많을 때는 디귿자(冂) 삼면에서 물이 중앙쪽으로 몰리며 쏟아져내려 아시아최대이자 세계4대폭포중 하나인 중국 구이저우(貴州)의 황과수폭포(黃果樹瀑布)와는 또다른 웅장한 느낌이 난다.
●다이빙 장면 보기→http://video.baby.sina.com.cn/v/b/23916411-1459771541.html 디환란씨는 1983년부터 약 30년동안 다이빙을 해왔는데 이전에는 하얼빈의 쑹화장(松花江)대교, 황허(黃河)후커우(壺口)폭포, 톈진(天津) 하이허(海河)대교 등에서 다이빙 공연을 했다. 그는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색인 빨간 삼각 수영복을 입고 오전 10시와 오후 2시 등 하루 두차례 다이빙 공연을 한다. 매번 두차례 뛰어내리는 데 먼저 폭포정면에서 다이빙한뒤 폭포벽을 타고 올라간 뒤 맞은편 절벽에서 또다시 다이빙을 한다. 다이빙전 절벽위에서 맨손체조로 몸을 푼뒤 물구나무 서기를 두어번 한 다음 절벽끝에서 이륙해 공중에 몸을 맡긴다. 그는 겨울철에도 빙폭을 배경으로 절벽을 뛰어내릴 정도로 경박폭포의 상징물이 되었다.
이전에는 발해 황제들의 여름철 피서지…덩샤오핑 1983년 여름에 다녀가 경박호는 역대 중국 왕조에서 황제들의 피서지였다. 발해왕들도 이곳에 와서 경박호에서건져올린 생선으로 요리한 붕어찜을 즐겼다고 한다.
북한의 고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도 2011년 5월 20일 중국 영도들과 함께 경박호를 방문해 폭포앞 경박호전쟁터기념비(조중항일연군전적비)와 항연로(抗聯路,항일연군로)를 참관했다. 북한은 경박호를 김일성 전주석의 항일운동 유적지로 설명한다 경박호에서 50㎞에 지하삼림 지대…한국소나무 수종인 조선송(朝鮮松)도 있어 경박호에서 서북쪽으로 50㎞되는 닝안셴(寧安懸) 장광차이링(張廣才嶺)의 동남사면 해발1천m 되는 지점에 지하삼림(地下森林, 정식명칭 화산구국가삼림공원火山口國家森林公園)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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