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

[하성봉의 중국이야기15] 발해유적지의 경박호(鏡泊湖)를 가다

ngo2002 2012. 5. 18. 14:22

넓은 바다의 매력을 가진 ‘거울 같은 호수’
[하성봉의 중국이야기15] 발해유적지의 경박호(鏡泊湖)를 가다
[0호] 2012년 02월 24일 (금) 하성봉·언론인 sungbongh@gmail.com

1만년전 화산폭발로 높은 산위에 생긴 ‘거울 같은 호수’ 경박호(鏡泊湖)

발해유적지 하면 ‘거울같은 호수’ 경박호(鏡泊湖)를 빼놓을 수 없다. 발해유적지에서 25㎞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중국 동북3성에서 가장 큰 호수인데다 화산호(火山湖)이다. 그래서 풍광이 여느 호수와 다르다.

경박호는 세계2대 고산(高山) 언색호(堰塞湖)이다. 1만년전 화산에서 쏟아져나온 용암이 무단장(牧丹江) 물길을 막아 생긴 호수다. 발해 유적지와 경박호 일대는 1만년전 화산 폭발로 커다란 지각변동이 있었던 지역이다. 이 일대가 온통 표면에 구멍이 숭숭난 현무암으로 뒤덮혀 있는 이유도 이때문이다.

   
경박호(鏡泊湖)는 화산 용암이 무단장(牧丹江) 물길을 막아 생겼으며 남북길이가 45㎞에 달한다.출처=중국포털 바이두
 
경박호는 해발 350m에 위치해 있으며, 가장 깊은 곳은 60m이상으로 호수형태는 좁고 길다. 남북은 45㎞로 길며 동서는 가장 넓은 곳이 6㎞, 면적은 약 91.5㎢로 헤이룽장성(黑龍江省)에서 최대규모다. 경박호는 중국 강남의 대표적 호수인 항저우(杭州) 시후(西湖)와 견줘 ‘북국의 시후’(北國的西湖)로 불린다.

   
여름의 경박폭포 풍경.출처=중국포털 바이두
 
   
가을의 경박폭포 풍경.출처=중국포털 바이두
 
   
겨울의 경박폭포 풍경. 출처=중국포털 바이두
 
배를 타고 호수위의 바람을 가르다보면 넓은 바다의 느낌이 난다. 그래서 이전에는 ‘홀한해’(忽汗海)로 불렸으나 명나라부터 경박호란 이름이 붙여졌다. 저멀리 물위에 동실동실 떠 있는 섬이 마치 남해안의 다도해같다. 이곳 사람들은 육지속에 갖혀있는 답답함을 경박호의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푼다.

발해 왕조때도 마찬가지였다. 발해왕과 귀족들은 끝없이 광활한 만주벌판을 달려 경박호에서 여름철 뱃놀이도 하고 호수에서 건져낸 생선요리를 먹으며 피서를 즐겼다.

   
경박호(鏡泊湖)에서 여행객을 위해 유람선이 다닌다.ⓒ하성봉
 
   
경박호(鏡泊湖)의 풍경은 물위에 뜬 동실동실한 섬이 마치 남해안의 다도해같다.ⓒ하성봉
 
그러나 무단장(牧丹江)의 물길이 흘러드는 경박호는 특히 여름철에 수량이 많으며 물색깔은 아쉽게도 황톳빛이다.

경박호는 홍라녀(紅羅女)에 얽힌 전설로 가득…부여땅으로 고구려 건국 신화의 무대

경박호는 발해때부터 전해오는 아름다운 전설로 가득차 있다. 이곳에는 수정같이 맑고 순수한 ‘홍라녀’ (紅羅女)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경박호에는 한 어부의 딸이 살고 있었다. 그 어부는 우연히 길고 굵은 한 갈대를 얻어 사랑하는 딸에게 작고 깜찍한 피리 하나를 만들어주었다. 어부의 딸은 그 피리를 자기의 생명처럼 아꼈다. 매번 저녁무렵 황혼이 깃들면 호숫가의 돌에 앉아 피리를 불었는데 피리소리는 은은히 수면에 울려퍼져 물속의 고기들이 몰려들었고 숲속의 새들도 다가와 지저귀며 화답했다. “

   
경박호(鏡泊湖)는 ‘홍라녀’ (紅羅女)에 얽힌 전설로 가득차 있으며 호수옆에 손에 피리를 든 홍라녀 동상이 서 있다.출처=중국포털 바이두
 
‘홍라녀’는 경박호에서 태어나 자라고 생활한 소녀였다. ‘홍라녀’에 얽힌 전설은 그 일대에서 여러 변형된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또다른 홍라녀 전설이다.

“아주 오래전에 무단장(牧丹江) 강가(경박호를 이름)에는 한 아름답고 착한 홍라녀(紅羅女)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진귀한 거울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이 어디에서 고통을 겪든지 그녀는 거울만 한번 비추면 재난이 사라지게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소문이 하늘나라까지 나서 서왕모(西王母)의 질투를 불러일으켰다. 서왕모는 하늘의 신을 시켜 그 거울을 훔쳐오도록 했다. 홍라녀는 거울을 찾기위해 하늘로 올라가 실갱이를 벌이다가 거울이 하늘에서 떨어져 바로 경박호로 변했다는 것이다.<출처=중국포털 바이두>

중국 동포학자 송덕윤(宋德胤) 씨는 ‘홍라녀’에 관련된 13가지의 글을 수집해 총서 <발해사연구>에 발표했다. 주로 애절한 사랑이야기가 많다. 이중 세가지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전설 1: 홍라(紅羅)와 녹라(綠羅) :홍라와 녹라는 어부의 딸로 자매간이었다. 어려서 부모를 여읜 두 자매는 경박호에서 고기잡이를 하는데 갑자기 불어온 세찬 풍랑에 배가 뒤집혔다. 이 순간 배를 타고 나타난 한 젊은이가 두 자매를 구출했다. 이 젊은이는 싸부리진(萨布里金)으로 마음씨가 고와 두 자매가 모두 사랑하게 됐다. 어느날 싸부리진이 두 자매를 집에 초대했다. 집에서 두 청년이 걸어나왔는데 생김새가 똑 같은 쌍둥이 형제였다. 동생의 이름은 싸부리인(萨布里銀)이었다. 두 자매는 두 형제에게 시집을 가게 됐다. 뒤에 동단왕(東丹王,거란족의 요(遼)나라가 발해를 멸망시키고 세운 동단국의 왕)이 홍라와 녹라가 절세의 미인이라는 말을 듣고 둘을 입궁시키려 하였다. 동단왕은 사람을 파견해 두 형제를 죽여버렸다. 홍라와 녹라는 너무 슬픈 나머지 동단왕에게 경박폭포 앞에 제단을 세우고 남편들에게 제사를 지내게 했는데 의식을 마친뒤 몸을 솟구쳐 연못속에 뛰어들어 스스로 숨을 거뒀다.

전설2: 홍라(紅羅)와 경박소룡왕(鏡泊小龍王):홍라녀는 발해군왕의 공주였다. 공주는 어릴 때부터 응석받이로 자라다 어느덧 미모의 처녀가 되었다. 귀족의 자제 등 청혼자들이 줄을 이었지만 아무도 그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었다. 공주는 이미 경박호에 사는 한 어부를 사랑하고 있었다. 부왕이 결혼을 완강히 반대하자 공주는 경박호에 몸을 던졌는데 물속의 고기떼들이 그를 용궁으로 데려갔다. 공주가 뜨겁게 사랑한 어부는 경박호 호수밑의 교룡(蛟龍)이었다. 이때부터 둘은 경박호에서 행복하게 살았다.

전설3: 홍라녀를 사랑한 삼형제:홍라녀는 경박호 호수밑 용왕의 딸이다. 홍라녀는 온종일 폭포아래에서 천을 짰다. 어느날 삼형제가 사냥을 하러 이곳에 와서 홍라녀의 용모에 반해 폭포곁을 떠나지 않았다. 홍라녀는 삼형제에게 가난한 백성들을 위해 옷을 다 짤 때까지 그곳을 떠날 수 없다고 했다. 삼형제는 세월이 지나자 모두 노인이 되어 경박폭포밑에서 숨을 거두었다. 홍라녀는 삼형제를 가엾게 여겨 폭포의 맞은편에 매장했는데 사람들은 이를 삼형제무덤이라 부르며 아직까지 전해온다.<출처=발해주요유적을 찾아서(방학봉 저)>

이러한 전설을 배경으로 경박호에는 홍라녀의 동상이 서 있다.

또한 이곳은 원래 부여땅으로 고구려 건국신화의 아름다운 전설이 서려 있는 곳이다.

“국조이신 동명성제께서 태어나 나라를 일으키신 용흥지지(龍興之地)입니다.”

“아니 그럼 태백산(白頭山)을 넘어 목단령 밑에 있는 곤지(현재의 만주 길림성과 흑룡강성 경계부근에 있는 경박호鏡泊湖)로 가잔 말 아닌가?”

곤지는 원래 부여땅이었다. 내륙의 이 호수에는 고구려 건국신화의 아름다운 전설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했다. 부여왕 해부루(解夫婁)는 늙도록 왕자가 없어 명산대천을 찾아다니며 아기 얻기를 소원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곤지를 지나는데 커다란 바위를 보고서 왕이 탄 말이 놀라 앞발을 높이 쳐들며 우는 것이었다. 왕이 괴히 여겨 바위를 치우고 보니 뜻밖에도 금두꺼비를 닮은 아기가 누워 있었다. 이는 하늘이 내려주신 아들이라며 왕은 기뻐서 양자로 삼아 이름을 금와(金蛙)라 했다. 이 아기가 곧 동명성제 고주몽(고주몽)이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었다. 그래서 고구려 사람들은 누구나 그곳을 성지(聖地)로 여기고 있었다. <출처=유현종의 대하 역사소설 大祚榮(대조영) 2권 51쪽>

   
경박호(鏡泊湖)로 통하는 입구에는 조선족 마을과 음식점이 있다.ⓒ하성봉
 
   
경박호(鏡泊湖) 주차장 옆 상점에 한국상품이라 적힌 가게가 있다.ⓒ하성봉
 
발해가 첫 도읍지를 경박호에서 서남쪽으로 150㎞ 떨어진 동모산(東牟山, 현 길림성 돈화시 성산자산<吉林省 敦化市 城山子山>)으로 정한 것과 그뒤 160여년 동안 경박호에서 25㎞ 떨어진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를 수도로 삼은 것도 고구려 건국신화의 무대인 경박호와 무관하지 않다.

경박폭포 다이빙 기네스북 기록자…겨울에도 20m 벼랑 아래로 ‘비류직하’(飛流直下)

   
경박폭포는 여름철 수량이 많을 때 중앙과 좌우 100여m의 넓은 폭으로 폭포수가 아래로 내리꽂혀 장관을 연출한다.ⓒ하성봉
 
경박호의 가장 하이라이트는 경박폭포(鏡泊瀑布)다. 경박폭포는 여름에 수량이 많을 때가 제맛이다. 누런 황톳물이 빠른 속도로 떨어지는데 그래서 조수루폭포(弔水樓瀑布)라는 명칭이 붙었다. 폭포 일대의 지형은 화산활동때 지층이 뚝 끊어져 아래로 내리꺼져 생겼으며 디귿자(冂)형태로 깎아지른 절벽을 세워놓은 형상이다.

폭포는 보통때 40m의 폭으로 폭포수가 20m높이의 벼랑 아래로 수직낙하하는데 수량이 많을 때는 중앙과 좌우로 100여m의 넓은 폭에 걸쳐 물이 빠르게 아래로 내리꽂혀 폭포수가 마치 병풍을 펼쳐놓은 듯 장관을 연출한다. 수량이 많을 때는 디귿자(冂) 삼면에서 물이 중앙쪽으로 몰리며 쏟아져내려 아시아최대이자 세계4대폭포중 하나인 중국 구이저우(貴州)의 황과수폭포(黃果樹瀑布)와는 또다른 웅장한 느낌이 난다.

   
디환란(狄渙然)씨가 20m 높이의 경박폭포에서 뛰어 내리고 있다.ⓒ하성봉
 
   
디환란(狄渙然)씨가 동북지역의 살을 애는 추위에도 아랑곳않고 경박폭포에서 다이빙 공연을 하고 있다. 출처=중국포털 바이두
 
   
빨간색 수영복을 입은 디환란(狄渙然)씨의 다이빙은 경박폭포의 상징물이 됐다.출처=중국포털 바이두
 
이곳에는 자연경관외에 폭포 다이빙 기네스북 기록자가 있어서 인기를 끌고있다. 무단장(牧丹江)출신의 디환란(狄渙然)씨로 올해 나이가 55세이다. 그는 아래로 내리 꽂히는 폭포수와 함께 한마리 새처럼 양팔을 펼친 채 자유낙하에 몸을 맡긴다. 다이빙이 가능한 것은 폭포 아래가 18m정도로 깊은 심연이기 때문이다. 수량이 많을 때는 폭포수의 급물살에 쓸려내려가지 않을까하는 조마조마한 마음마저 든다. 낙하시간은 눈깜짝할 사이다.

●다이빙 장면 보기→http://video.baby.sina.com.cn/v/b/23916411-1459771541.html

디환란씨는 1983년부터 약 30년동안 다이빙을 해왔는데 이전에는 하얼빈의 쑹화장(松花江)대교, 황허(黃河)후커우(壺口)폭포, 톈진(天津) 하이허(海河)대교 등에서 다이빙 공연을 했다. 그는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색인 빨간 삼각 수영복을 입고 오전 10시와 오후 2시 등 하루 두차례 다이빙 공연을 한다. 매번 두차례 뛰어내리는 데 먼저 폭포정면에서 다이빙한뒤 폭포벽을 타고 올라간 뒤 맞은편 절벽에서 또다시 다이빙을 한다. 다이빙전 절벽위에서 맨손체조로 몸을 푼뒤 물구나무 서기를 두어번 한 다음 절벽끝에서 이륙해 공중에 몸을 맡긴다. 그는 겨울철에도 빙폭을 배경으로 절벽을 뛰어내릴 정도로 경박폭포의 상징물이 되었다.

   
폭포 다이빙 기네스기록 보유자인 디환란(狄渙然)씨가 인증서를 들어보이고 있다.출처=중국포털 바이두
 
   
폭포 다이빙 기네스북 기록자인 디환란(狄渙然)씨가 경박폭포에서 다이빙하기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하성봉
 
그는 5년전인 2007년 성수기인 6-8월 3개월동안의 수입이 현재의 중국 대졸 초임연봉보다 많은 3만5천위안(약 630만원)의 고수득이었다고 하니 지금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이전에는 발해 황제들의 여름철 피서지…덩샤오핑 1983년 여름에 다녀가

경박호는 역대 중국 왕조에서 황제들의 피서지였다. 발해왕들도 이곳에 와서 경박호에서건져올린 생선으로 요리한 붕어찜을 즐겼다고 한다.

   
덩샤오핑은 1983년 경박호에 머물면서 ‘경박승경’(鏡泊勝景)이란 친필 휘호를 남겼다. ⓒ하성봉
 
중국의 개혁개방을 이끈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이 1983년 8월 경박호에서 피서를 즐겼다. 경박호는 겨울에 영하 30도까지 내려갈 정도로 춥지만 여름철에는 섭씨 17도 정도로 시원해 최적의 피서지다. 덩샤오핑은 이곳에서 머물면서 경박호 풍광에 감탄해 1983년 8월 11일자로 ‘뛰어나게 아름다운 경박’이라는 뜻의 ‘경박승경’(鏡泊勝景)이란 친필 휘호를 남겼다. 중국 국가중앙군사위 부주석을 지낸 예젠잉(葉劍英)도 “고산위의 경박호 경치가 강남보다 낫다”(高山平湖, 風光勝江南)라고 찬미했다.

북한의 고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도 2011년 5월 20일 중국 영도들과 함께 경박호를 방문해 폭포앞 경박호전쟁터기념비(조중항일연군전적비)와 항연로(抗聯路,항일연군로)를 참관했다. 북한은 경박호를 김일성 전주석의 항일운동 유적지로 설명한다

경박호에서 50㎞에 지하삼림 지대…한국소나무 수종인 조선송(朝鮮松)도 있어

경박호에서 서북쪽으로 50㎞되는 닝안셴(寧安懸) 장광차이링(張廣才嶺)의 동남사면 해발1천m 되는 지점에 지하삼림(地下森林, 정식명칭 화산구국가삼림공원火山口國家森林公園)이 있다.

   
하늘에서 바라본 제3호 화산구 지하삼림(地下森林)의 모습. 출처=중국포털 바이두
 
지하삼림은 1만년전에 경박호(鏡泊湖)가 생길 때 동시에 폭발한 화산군(火山群)이 대량의 용암을 밖으로 뱉어낸뒤 만들어진 깊은 분화구 안쪽에 생긴 삼림지대다. 이곳은 화산활동이 정지한 뒤 산꼭대기 부분이 안쪽으로 내려앉아 내벽이 가파르게 되면서 독특한 지형이 형성됐다. 이곳에는 10개의 화산구가 있는데 길이 40㎞에 폭이 5㎞의 화산지대를 이루고 있다. 개별 화산구의 평균 직경은 400~550m, 평균 깊이는 100~200m이다. 그중 3호 화산구가 직경 550m, 깊이 200m로 가장 크다.

   
경박 지하삼림은 1만년동안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변화과정을 거쳐 현재의 원시림이 만들어졌다.ⓒ하성봉
 
이들 화산구는 1만년동안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변화 과정을 거쳐 현재의 숲이 생겼다. 그래서 낮고 움푹 꺼진 원시림대가 생겨났으며 이로인해 ‘땅아래의 삼림’이란 뜻으로 ‘지하삼림’(地下森林)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경박 지하삼림에서 자라고 있는 한국의 적송과 같은 수종이 하늘을 향해 곧게 자라고 있다.ⓒ하성봉
 
   
경박 지하삼림에는 한국의 적송이 식생대를 이루어 있는데 '조선송'(朝鮮松)이라 표시되어 있다.ⓒ하성봉
 
   
경박 지하삼림에는 한국의 적송이 식생대를 이루고 있다.ⓒ하성봉
 
이곳은 현무암 부식토 지대로 소나무, 낙엽송 등으로 울창한 삼림군을 이루고 있다. 인삼,황기(黃芪), 오미자 등 약재들도 자란다. 산안개가 뒤덮은 원시림속에는 사슴, 곰, 멧돼지, 뱀과 청양(靑羊) 등 희귀동물이 출몰해 ‘지하 동물원’이라고 불린다. 이전 발해의 영토로 한국의 적송인 ‘조선송’(朝鮮松)이 식생대군을 이루어 자라고 있다.

   
제3호 화산구 지하삼림에는 용암이 빠져나간뒤 생긴 커다란 현무암 동굴이 있다. ⓒ하성봉
 
지하삼림은 산림욕을 하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용암이 빠져나간뒤 굳어 생긴 커다란 현무암 동굴을 통과해 산정상에 올라서면 원시림의 시원한 바람이 땀을 씻어 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