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392> 학술정보의 힘
국내 190개 대학 해외 학술지 보는 값 1년에 1000억 넘는다

강홍준 기자
연세대 도서관에서 학생들이 인터넷을 통해 학술정보를 검색하고 있다. 온라인으로 전자저널을 찾고 연구와 수업에 활용하는 학생들이 늘면서 이 도서관은 전자 저널 구입비로 지난해 18억원을 썼다.네덜란드 엘스비어, 미국 엡스코가 학술시장 주도
서울대 의학도서관은 지난해 말 네덜란드 RBS은행(The Royal Bank of Scotland N.V.)의 계좌에 3억1000여만원을 입금했다. 계좌 주인은 세계 최대 규모의 과학·의학 분야 학술정보제공 회사인 네덜란드의 엘스비어(Elsevier)다. 이 회사가 발행하는 생명과학 분야의 세계적 학술지인 ‘셀(Cell)’을 보거나 의학·과학분야 논문 데이터베이스(DB)인 ‘사이언스 다이렉트’에 접속해 학술정보를 얻으려면 매년 구독료를 내야만 한다. 엘스비어를 포함해 서울대 의학도서관이 해외 출판사에 지불하는 돈은 연간 13억 9800여만원이다.
서울대 의학도서관 서정욱 관장(의대 교수)은 “해외 학술지 구독료가 매년 15%가량 증가하고 있다”며 “해마다 늘어나는 구독료가 도서관 운영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과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의 조사 결과, 국내 190여 개 대학이 국제 학술지에 실린 지식을 얻기 위해 해외 출판사에 송금한 돈만 지난해 1000억원이 넘는다. 이 중 34.9%는 엘스비어가 가져간다. 2위는 온라인 학술정보 DB회사인 미국계 엡스코(28.6%)였다. 두 회사가 60% 넘게 차지하는 것이다.
연세대 작년 전자저널 구독료만 18억5000만원
오픈 액세스를 표방하는 대표적인 리포지터리(인터넷 상의 전자 서고) PMC. 미 보건부 산하 국립의학도서관이 운영한다.배영찬 한양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교수들은 연구를 위해 해외 지식 정보를 검색하고, 논문을 보지 않을 수 없다”며 “국내 회사 수준이 떨어지기 때문에 국내 대학 도서관, 연구소로서는 해외 정보회사의 입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부 학술지 구독료 2년새 29% 올려 … 대학들 비명

엘스비어 한국지사는 지난해 국내 대학들에 사이언스 다이렉트의 연간 구독료를 5.5% 인상한다고 공지했다. 물론 대학이나 연구소마다 구독 조건이 다 달라 일률적으로 5.5%가 인상되는 건 아니다. 엘스비어가 보유한 인쇄학술지를 구독하다 중단한 비율에 따라 재구독 때 인상률이 훨씬 올라간다. 일부 해외 출판사들은 2011년 구독료를 전년 또는 2년 전에 비해 최고 29%까지 올렸다. 이처럼 학술정보의 가격 결정은 공급자 위주로 이뤄지는 게 현실이다. 대학이나 연구기관들은 구독료가 오른다고 해서 구독을 중단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미 전 세계 수만여 종의 학술지 중 60% 이상이 해외 출판사들에 의해 온라인으로 출간되고 있어 구독을 중단하면 당장 학술정보를 얻을 수 없다. 복사마저 힘들다. 저작권이 출판사에 있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도 이런 현상을 학술지 위기(serials crisis)라고 부른다.
하버드, 구독료 인상 맞서 한때 구독중단 발표
미국에서도 대형 다국적 정보제공회사의 학술정보 구독료 인상 때문에 예산 부족으로 학술지 구독을 포기하는 일이 벌어졌다. 미국 연구중심 대학 도서관 협회에 따르면 미국 113개 대는 1986년 학술지 구독료로 150만 달러를 지불했으나 2008년엔 710만 달러를 내는 등 부담이 4배 넘게 늘어났다. 하버드대 등에서 2004년 엘스비어의 학술지 구독료 인상 조치에 맞서 구독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으나 실제 구독 중단이 이뤄지지는 않았다.
최현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정보서비스실장은 “학술 논문 같은 고급 지식은 갈수록 온라인을 통해 유통되고 있는데 중간유통업체가 없다면 당장 지식을 얻을 방법이 없다”며 “국내 대학들의 해외 지식 의존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학술논문 게재한 학자도 논문 내려받기 못 해
교육과학기술부 등 정부 부처가 매년 1조원이 넘는 연구비를 쏟아 부은 결과, 한 해 1만여 건의 논문이 SCI(과학논문인용색인)급 학술지에 실리고 있다. 하지만 정부 지원금으로 연구가 이뤄져 나온 논문이라 하더라도 아무나 쉽게 활용할 수는 없다. SCI급 학술지의 출판·배포 등 저작권이 해외 학술정보 제공회사에 있기 때문이다. 국내 제약업체 소속 연구소에 근무하는 김모(43) 박사가 대표적인 경우다. 그는 자신이 2009년에 쓴 간염바이러스와 관련된 논문 원문을 인터넷에서 마음대로 내려받을 수 없다. 이 논문의 출판· 복사 등 저작권이 엘스비어에 있기 때문이다. 그는 “연구소가 학술지를 구독하지 않아 원문을 다운받을 수 없었다”며 “후배를 통해 대학 도서관에서 복사하려 했지만 이마저도 저작권 위반이어서 포기했다”고 말했다.
국내 유명 학술지 출판·배포권도 외국에 넘어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I) 조사 결과, 한국약학회 등 36개 학회가 학술지의 출판·배포 권한을 외국 학술정보 제공회사에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다국적 출판사인 스프링거는 국내 학술지 21개종을 묶어 1년에 212만~260만원을 내면 온라인 등으로 볼 수 있게 했다. 이들 학회가 각 대학도서관 등에 보내는 인쇄 학술지를 제외하고 온라인으로 학술지를 보려면 국내 연구자들도 똑같이 돈을 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출판·배포 권한을 이들 업체에 넘길까. S대 정모 교수는 “해외 업체가 출판·배포를 맡게 되면 외국 교수나 연구자들이 우리 학술지를 더 많이 보게 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막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갖춘 외국 학술정보 제공회사가 국내 학술지의 출판·배포권을 갖게 되면 국내 학술지의 피인용 횟수가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학술지의 피인용 횟수가 늘어나면 질 좋은 논문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정보 누구에게나 공개 … 오픈 액세스가 대안
전 세계 학계에서는 2000년대 들어 오픈 액세스 운동이 활발하다. ‘모든 학술 논문은 누구에게나 무료로 공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운동이다. 학자들이 자신의 논문을 오픈 액세스를 표방하는 사이트나 리포지터리(Repository· 인터넷 전자서고)에 올려 많은 사람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미국 코넬대가 운영하는 물리학 분야의 대표적 리포지터리인 ‘arXive’, 미국 보건부 산하 국립의학도서관(NLM)이 운영하는 의학분야의 ‘PMC(PubMed Central)’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도 의학 분야의 KoreaMed 리포지터리, KAIST의 KOASAS, 서울대의 S-space 등이 있다. 아직 이 운동에 참여하는 국내 연구자의 논문이 많지는 않지만 그 수는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독자와 함께 만듭니다 뉴스클립은 시사뉴스를 바탕으로 만드는 지식 창고이자 상식 백과사전입니다. 뉴스와 관련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e-메일로 알려주십시오. 뉴스클립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newsclip@joongang.co.kr
'전문지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뉴스 클립] 2011 시사 총정리 ⑫ (11월21일~12월17일) (0) | 2012.01.21 |
|---|---|
| [뉴스 클립] 뉴스 인 뉴스 <185> 한국은행의 역사와 기능 (0) | 2012.01.21 |
| [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391> ‘완소 양념’ 소금 (0) | 2012.01.21 |
| [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390> 영문으로 보는 잡스 어록 (0) | 2012.01.21 |
| [뉴스 클립] 바둑이야기 - 1989년 제1회 응씨배 결승전 ③ (0) | 2012.0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