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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389> 한류(韓流)가 달려온 길

ngo2002 2012. 1. 21. 10:51

[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389> 한류(韓流)가 달려온 길

겨울연가·대장금에서 K팝으로 … 파리·베를린서도“쏘리쏘리”

한류(韓流)가 세계 문화판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드라마가 이끌던 한류를 대중음악이 이어받았고, 최근에는 K팝 열풍이 아시아를 넘어 유럽·북미·남미까지 당도했습니다. 그렇다면 한류는 언제 어떤 방식으로 형성됐고, 세계인들에게 전파됐을까요. 한류의 생성부터 전 세계적인 확산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정리했습니다. 세계인의 마음을 훔친 한류의 약사(略史)를 들여다봅니다.

정강현 기자


생성 : 1997년~2000년대 초

‘사랑이 뭐길래’ 중국인 1억5000만 명 시청


드라마 ‘대장금’은 중국과 일본에 국한돼 있던 한류를 동남아·중앙아시아·아프리카·동유럽 등 전 세계 62개국으로 확장시켰다. ‘글로벌 한류’의 신호탄이었다. [중앙포토]

문화계에선 1997년부터 2000년대 초까지를 ‘한류 1기’로 본다. 한류 콘텐트가 해외 소비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었던 시기다. 이 즈음 ‘한류(韓流)’란 용어가 처음 사용됐다. 99년 중국 베이징에서 발행되는 중국 공산주의청년단 기관지 ‘청년보(靑年報)’에서 처음 쓴 용어로 알려져 있다. 당시 청년보에선 한국 대중문화와 연예인에 빠져 있는 중국 젊은이들의 유행을 경계하는 뜻으로 이 말을 썼다고 한다.

한국 대중문화가 본격적으로 수출되기 시작한 건 97년 6월 중국 CCTV에서 방영된 한국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부터다. 중국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자유로운 생활환경과 표현양식 등이 중국인들에게 문화적 충격을 줬다. 이 드라마는 약 1억5000만 명에 달하는 중국인을 TV 앞으로 불러모았다.

한국 드라마에 불어 닥친 열기는 이듬해 대중음악으로 옮겨갔다. 98년 한국 아이돌 그룹 H.O.T의 음반이 중국에서 발매됐다. ‘전사의 후예’ ‘캔디’ ‘행복’ 등 H.O.T의 히트곡이 중국 거리에서 울려 퍼졌고, 한국 음악을 전문적으로 소개하는 라이도 프로그램도 등장했다. 99년에는 남성 듀오 클론이 중국에서 콘서트를 열었고, 한국 드라마 인기에 힘입어 탤런트 안재욱이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한국 드라마 열풍을 타고 90년대 후반 한국 댄스음악이 해외로 확산된 것이다. 중국뿐만 아니라 대만·베트남 등으로 한류가 점점 확산되기 시작했다.


심화 : 2000년대 중반

‘겨울 연가’ 일본서 욘사마 열풍 몰고와


2002년부터 2003년까지 동남아시아, 중국 등에서 한국 드라마와 대중음악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한류 붐’이라고 부를 만한 수준은 못 됐다. 한류 붐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건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대대적인 인기를 끌면서다. 2003년 4월 NHK에서 방영된 ‘겨울연가’는 일본 중년 여성들에게 젊은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욘사마(배용준) 신드롬’을 형성했다. 또 일본인이 한국을 전쟁 폐허의 나라에서 로맨틱한 나라로 인식을 전환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겨울연가’의 흥행은 일본에서 한류가 본격화되는 신호탄이었다. ‘한류 2기’의 시작이었다. ‘겨울연가’를 시작으로 ‘천국의 계단’ ‘가을동화’ 등 한국 드라마 수출량이 늘어났다. ‘겨울연가’가 일본인이 한국 대중문화를 받아들이는 매개 역할을 한 셈이다.

실제로 2004년 NHK가 15~79세 남녀 2200명을 대상으로 ‘겨울연가’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 드라마를 계기로 일본인들의 한국문화에 대한 접촉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겨울연가’를 본 사람 중에 ‘겨울연가’ 이외의 한국 드라마를 봤다는 사람이 34%로 가장 많았고, 한국 영화와 책(13%), 한국 인터넷 사이트 접속(5%) 순으로 조사됐다. 또 ‘겨울연가’를 보고 한국의 이미지가 변했다는 응답도 26%에 달했다.

드라마 한류는 ‘대장금’으로 정점에 이르렀다. ‘겨울연가’가 주로 일본에 국한된 데 반해, ‘대장금’은 중국·홍콩·동남아·중앙아시아·아프리카·동유럽 등 전 세계 62개국으로 퍼져나갔다. 명실상부한 ‘글로벌 한류’가 시작된 것이다. 특히 ‘대장금’은 드라마 자체뿐만 아니라, 외교사절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 정통 사극이란 특징 덕분에 한국의 전통문화를 함께 알렸고, 더불어 한식의 세계화에도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시기 한류를 주도한 것은 드라마였지만, 대중음악에서도 그 씨앗이 자라고 있었다. 2000년에 일본에서 데뷔한 가수 보아가 신호탄이었다. 보아는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통해 일본에 진출했다. 한국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와 일본 소속사인 에이벡스의 합작을 통해 일본에서 신인가수로 데뷔해 차근차근 성장했다. 2002년 일본에서 발매한 첫 정규앨범 ‘리슨 투 마이 하트(Listen To My Heart)’가 일본 톱가수 아무로 나미에를 제치고 오리콘 차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보아의 성공은 훗날 동방신기·소녀시대·카라 등이 일본에 진출하는 데 단단한 발판이 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시기엔 중국에서 시작된 한류가 일본은 물론 동남아 전 지역으로 확산되면서 ‘글로벌 한류’의 기반이 마련됐다.


도약 : 2000년대 중반

동방신기·원더걸스·소녀시대 ‘신한류’ 등장


소녀시대

한류가 중앙아시아·아프리카·유럽·미국 등 전 세계로 확산되는 단계다. 다양한 종류의 드라마가 각국의 환경에 따라 인기를 끌었고, 특히 K팝의 세계시장 진출이 두드러지면서 ‘한류 3기’로 접어들었다.

보아
2000년대 중반 이후 한류 콘텐트의 수출 단가는 크게 올랐다. 한류 콘텐트가 인기를 끌면서 치솟은 단가 때문에 외국 수입업자들의 반발이 이어지기도 했다. 또 한류가 급속도로 인기를 끌면서 중국의 혐(嫌)한류, 일본인의 한류 반대 시위 등 한류의 반작용이 등장했다. 이런 반작용 때문에 2000년대 중반 이후 한류 열풍은 잠시 주춤하는 듯했다.

하지만 한류의 주도권이 드라마에서 대중음악으로 넘어가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K팝 아이돌 가수들이 중심이 된 이른바 ‘신(新)한류’의 등장이다. 신한류는 세계시장에서 K팝의 인기를 공고히 했다.

그 시작은 동남아시아였다. 동방신기·원더걸스·비·슈퍼주니어 등이 동남아에서 인기를 끌면서 아시아 지역에서 한국 대중음악의 장악력이 점차 높아졌다. 슈퍼주니어는 ‘쏘리쏘리’로 대만 음악 차트에서 36주 연속 1위라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동방신기는 2009년 관객 5만 명 규모의 도쿄돔 단독공연을 성사시키면서 일본 내 신한류의 발판을 마련했다.

동방신기
2010년 동방신기의 급작스러운 해체 이후 주춤했던 일본 내 한류는 소녀시대·카라 등 걸그룹이 이어받았다. 소녀시대는 정식 앨범 발매에 앞서 개최한 쇼케이스에만 2만 명의 일본 관객을 불러모았다. 카라 역시 오리콘 차트 1위를 이어가며 일본 내 신한류를 주도했다. 소녀시대·카라가 일본 진출에 성공하면서 다른 K팝 가수들의 진출도 활발해졌다. 시크릿·티아라·씨엔블루·인피니트 등 한국을 대표할 만한 아이돌 그룹 중 대다수가 일본에 진출했거나 일본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2011년 신한류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6월에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SM타운 인 파리(SM town in Paris)’가 기폭제가 됐다. 보아·소녀시대·슈퍼주니어 등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이 한국 기획사로는 처음으로 유럽에서 대형 콘서트를 열었다. 이 콘서트에서 이틀간 1만4000명을 동원하면서 유럽 내에서 한류가 급속도로 확산됐다. 남성 4인조 아이돌 그룹 샤이니는 비틀스의 음악 성지(聖地)로 유명한 영국 런던 애비로드에서 쇼케이스를 열었고, 그룹 JYJ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독일 베를린에서 한국 가수로선 처음으로 단독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K팝 가수들이 주축이 된 신한류는 그간 아시아 지역에만 국한됐던 한류를 본격적인 글로벌 문화로 끌어올렸다. 특히 원더걸스는 미국에 진출해 빌보드 싱글 차트 76위라는 대기록을 세웠고, 소녀시대는 마이클 잭슨의 프로듀서로 유명한 테디 라일러가 작곡한 ‘더 보이즈(The Boys)’로 미국에서 싱글 앨범을 내기도 했다. 한국 대중음악이 아시아와 유럽을 넘어 팝의 본고장 미국에까지 이른 것이다.

‘한류 3기’는 한류 콘텐트가 다양화한 시기이기도 하다. 대중음악이 신한류를 앞에서 끌었다면, 그 바로 뒤에서 게임·만화·캐릭터·한식·한글 등 한국문화 전반이 한류 붐을 타고 확산됐다. 한류 콘텐트가 다각화되면서 한국 콘텐트 산업도 급격히 성장했다. 한국 콘텐트 산업의 수출은 2005년 13억 달러에서 2009년 26억 달러로 4년 만에 2배로 늘어났다.

‘신한류’의 등장으로 2000년대 중반 이후 주춤했던 한류는 지속적인 성장 가능성을 입증했다. 특히 유튜브·트위터·페이스북 등 SNS 등장과 더불어 한류는 그 확산 속도가 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국내 대형 연예기획사들은 유튜브나 페이스북 등에 전용 채널과 페이지를 만드는 등 스마트 환경에 적합한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펼치는 중이다. 2010년 한 해 동안 유튜브를 통해 한국 가수의 동영상을 조회한 건수는 전 세계 229개국에서 약 8억 건에 달했다. ‘글로벌 한류’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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