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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367> 서울의 재래시장

ngo2002 2011. 10. 26. 11:09

[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367> 서울의 재래시장

전국 원단 80%는 동대문시장, 안경 50%는 남대문시장 거쳐가요


요즘 ‘장보러 간다’고 하면 대형 마트를 간다는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쾌적한 시설이 갖춰진 마트에서 카트에 물건을 담는 것이 ‘장보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재래시장을 찾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생선 한 마리, 파 한 단을 흥정해 가며 정(情)을 나눌 수 있는 곳입니다. 한국 경제의 동맥 역할을 해온 서울 도심의 대표적인 재래시장 5곳의 어제와 오늘을 들여다봤습니다.

정원엽 기자

청계천의 ‘광교’와 ‘장교’ 사이에 위치한 광장시장. 싸고 다양한 먹거리가 많아 인근의 직장인이나 대학생이 많이 찾는다. [시장경영진흥원 제공]



시장이라는 말은 우리말로는 ‘저자’라고 합니다. 백제 때 가요인 정읍사(井邑詞)에 ‘져재 녀러신고요’라는 표현을 기억하는 분이 많을 것입니다. ‘시장에 가 계십니까’라는 뜻이지요. 서울에 시장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조선시대입니다. 태종 때 처음으로 시전(市廛)이 종로거리와 남대문로에 자리했습니다. 일명 ‘운종가(雲從街)’로 불리던 시장이지요. 17세기 후반부터 남대문과 동대문 일대에 칠패시장과 이현시장이 생겨나고, 서울 외곽 지역에서도 경강·송파·누원 시장이 생겨났습니다.

개항 이후 서울의 재래시장은 외국인에게 개방되며 청(淸)과 일본의 상인에 의해 입지를 많이 잃었습니다. 이 시기에 칠패시장이 남대문시장으로 재편되었고, 이현시장은 동대문시장으로 바뀌었죠. 이후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남대문·동대문 시장이 1호 시장이 되었고 2, 3, 4호 시장이 생겨났습니다. 해방 후에는 분단과 전쟁의 와중에서 부침을 많이 겪었습니다. 당시 남대문·동대문·자유시장 등 30여 개의 재래시장이 명맥을 유지했습니다. 그러다 1960년대 이후 서울의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61년 44개였던 서울의 시장은 79년 334개로 늘어났습니다. 다시 재래시장이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지만 80년 이후 대형 할인점과 수퍼마켓, 편의점 등이 등장하면서 재래시장은 경쟁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2002년부터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아케이드를 설치하거나 주차장을 조성해 주는 ‘시설 현대화 사업’을 진행 중입니다. 2004년부터는 ‘재래시장특별법’을 통해 정부가 재래시장 살리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현재(2011년 8월 31일 기준) 서울시 재래시장은 326개(등록 158개, 인정 85개, 상점가 36개, 무등록 47개)이고, 시장에 종사하는 상인은 12만 4000여 명에 이릅니다.

남대문시장 1414년에 생긴 가장 오래된 시장

대형 패션몰과 원단 도소매 상가가 몰려 있는 동대문시장.

남대문시장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입니다. 조선 태종 14년(1414년) 새 도읍지인 서울의 남대문 근처에 상점가를 만들어 상인들에게 빌려주면서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조선 중기 이후 저잣거리로 자리 잡았고,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이 독점으로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63년에는 서울시에서 당시 법에 의해 ‘개설허가 취소 공고’를 발표해 350여 개 점포가 폐쇄 위기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시장 상인과 시민들의 반대로 위기를 극복한 남대문시장은 1970~80년대에 부흥기를 맞이했습니다. 수입품을 취급하는 ‘도깨비 시장’이 유명했지요. 인천·부산 등에서 올라온 수입품들이 집결되는 C·E동 지하에는 “없는 것이 없다”는 이야기가 있었을 정도입니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규모도 큽니다. 대지 7만 2600㎡에 건물 규모도 22만 4400㎡에 이릅니다. 해운대 백사장 전체(7만 2000㎡)보다 큰 셈이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시장 내 점포 수만 해도 1만여 개를 넘고 판매 물품도 이쑤시개부터 의류·액세서리·사무용품 등 모든 물품을 총망라합니다.

낮에는 한국 재래시장의 매력을 경험해 보기 위해 외국인 관광객들이 찾고 밤에는 전국에서 도·소매상인들이 찾아 불야성을 이룹니다. 시장 안에 그릇 도매상가와 군수품·유명 브랜드 청바지를 판매하는 ‘양키골목’, 가방 전문 상가인 자유상가, 혼수상가, 전국 유통량의 50%를 차지하는 안경 상가, 문구용품 상가, 등산용품 상가 등이 있습니다. 맛집도 빠질 수 없습니다. 남대문시장에서 유명한 메뉴는 갈치조림과 쫄깃하며 부드러운 족발, 꼬리곰탕과 닭곰탕입니다. 재래시장에서만 볼 수 있는 길거리 음식 판매점이 모여 밤이 되면 야시장을 이루기도 합니다.

동대문시장 한때 재산세 납부 1위 의류 전문 시장


동대문 시장은 종로5가의 동대문시장과 종로6가의 동대문종합시장·동대문쇼핑타운을 총칭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종로4가 인근에 배나무가 많아 ‘배오개장’이라고 불렸습니다. 당시 종루 앞과 남대문 밖 칠패시장과 함께 서울의 3대 시장으로 이름을 떨쳤지요. 예전에는 동대문시장과 광장시장이 하나의 상권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1970년 동대문종합시장이 문을 열면서 자연스럽게 예지동의 전통시장이 광장시장, 종로5가 시장이 동대문시장으로, 종로6가의 시장이 동대문종합시장으로 구별되게 되었지요.

동대문시장이 얼마나 번영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습니다. 75년 동대문종합시장은 1분기 재산세 3327만원을 납부해 서울시 전체에서 재산세 납부 1위를 차지했었습니다. 방리방적과 흥국생명이 그 뒤를 이었지요. 80년대에 동대문시장은 전국 최대 규모의 의류 도소매시장으로 커졌고, 의류수출까지 하면서 의류 전문 시장으로 입지를 굳혔습니다. 90년대에는 ‘밤 12시 새벽장’ 시대를 열고 남대문시장과 치열한 주도권 싸움을 벌이기도 했지요. 현재 동대문시장에는 대형 패션몰은 물론이고 원단, 의류 부자재, 혼수용품 등의 도소매 시장이 밀집해 있습니다. 상인들에 따르면 국내에서 거래되는 원단의 80%는 동대문시장을 거쳐 간다고 합니다.

광장시장 먹거리 가득한 국내 첫 상설시장

광장시장은 1900년대 초 종로 일대의 상권을 일본인들이 장악한 뒤 상권을 되찾기 위해 설립한 시장으로 1905년 설립돼 올해로 106년째를 맞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상설시장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재래시장의 깊은 맛이 있는 곳입니다. 청계천의 ‘광교’와 ‘장교’ 사이에 위치해 광장시장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의류 원단으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의류 상권이 많이 위축됐고요. 예단과 한복 시장이 명맥을 잇고 있습니다.

광장시장은 젊은이들이 흔히 ‘빈티지’라고 부르는 멋스러운 수입 제품을 구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주로 작은 골목길의 건물 2, 3층에 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가게 규모는 크지 않지만 100여 개의 점포가 입점해 있습니다.

광장시장 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먹거리입니다. 시장 한가운데 줄지어 선 노점에는 시골 장터에서나 볼 수 있는 음식부터 지역 특색을 물씬 풍기는 음식까지 다양합니다. 가격이 저렴하고 양도 많아 대학생부터 인근 직장인, 막걸리를 한잔 하러 오시는 어르신까지 다양한 시민이 찾습니다. 빈대떡은 북2문 쪽이, 족발이나 순대는 남1문 쪽이 맛있다고 합니다. 육회도 빼놓을 수 없지요. 서문 근처에는 명물 ‘마약 김밥’이 있습니다.

평화시장 실향민이 일궈 … 전태일 분신의 현장

평화시장은 한국전쟁 당시 피난 온 실향민들이 1954년부터 청계천 일대에서 옷을 만들어 팔며 생겨난 무허가 시장이었습니다. 당시 상인의 60%가량은 북에서 내려온 실향민으로 ‘평화’란 이름에는 실향민의 염원이 들어가 있습니다. 한때 청계천 복개공사로 철거 위협에 놓였으나 62년 건물을 새로 짓고 허가를 받으며 본격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평화시장은 봉제공장들이 들어서 직접 의류를 생산하면서 경쟁력을 높일 수 있었습니다. 70년대에는 평화시장 일대에서 생산된 기성복이 전국 기성복의 70%에 이를 정도였습니다.

평화시장은 전태일 열사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습니다. 전태일 열사가 봉제공장에서 혹사당하던 어린 ‘시다’들을 위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외침과 함께 분신했던 현장입니다. 전태일은 2005년 9월 평화시장 앞 청계천 버들다리에 흉상으로 세워졌습니다.

서울 중앙시장 한때 서울시민 양곡 80% 거래

지하철 신당역 앞 황학동 일대의 서울 중앙시장은 1946년 처음 문을 연 뒤(1962년 시장등록) 한국전쟁을 겪으며 미곡 거래와 축산시장으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1970년대에는 서울시민의 양곡 소비량 가운데 80% 이상이 이곳에서 거래될 만큼 번성했습니다. ‘전국의 시장 시세는 중앙시장을 기준으로 삼는다’는 말도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중앙시장은 남대문시장, 동대문시장과 더불어 3대 시장으로 불렸습니다.

이후 중앙시장은 대형 백화점과 할인점에 상권을 잃어오다 2004년 재래시장 현대화 사업을 계기로 600여 개의 점포를 갖춘 쇼핑 명소로 도약하고 있습니다. 재래시장과 대로변 의류상권, 가구단지 등이 결합하고 ‘신당창작아케이드’가 재래시장 지하에 자리하면서 쇼핑에 더해 관광까지 가능해진 것입니다. 서울 중앙시장에는 음식점에 필요한 모든 것이 있다는 ‘주방기구 골목’과 ‘보리밥집골목’, 그리고 중고용품을 판매하는 벼룩시장이 유명합니다.

※도움 : 시장경영진흥원, 서울시청 경제진흥본부 생활경제과, 서울특별시 문화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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