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347> 러시아 이동파(移動派) 화가
“지배계층 위한 그림은 싫다” 열차로 러시아 누비며 무료 전시회하던 그들
임현주 기자
왕립미술학교 자퇴 수리코프 등 14명
러시아의 이동파 풍경화가 이반 시시킨이 그린 ‘소나무 숲의 아침(1889년 작)’. 이동파 화가들은 귀족뿐 아니라 가난한 농민 등 일반인들도 그림을 감상할 권리가 있다며 열차를 타고 길게는 보름이상 시베리아 등지를 돌아다니며 전시회를 열었다. [모스크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웹사이트]
러시아 미술사의 기원은 18~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표트르 대제(1672~1725·로마노프왕조 4대 황제)는 발트해 연안의 늪지대를 계획도시로 조성해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했다. 대제는 이곳에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보다 더 화려한 여름궁전을 짓고, 유럽 왕족들을 초대해 성대한 파티를 열었지만 유럽 강대국들은 러시아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독일에서 시집온 예카테리나 2세(EkaterinaⅡ·1729 ~1796)는 겨울궁전(에르미타주·Hermitage Museum·프랑스어로 ‘은둔소’를 뜻함)을 세우고 값비싼 보석과 고가의 미술품을 수입해 모으기 시작했다. 영국 대영박물관과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이어 세계 3대 박물관에 꼽히는 겨울궁전은 현재 300만 점 이상의 그림을 소장하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렘브란트 등 유명 화가의 작품 원본이 전시돼어 있다. 하지만 예카테리나 2세가 유럽에서 들여온 고가의 미술품은 러시아 고유의 작품이 아니었다. 여제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왕립미술학교를 세우고 학생들을 이탈리아·프랑스 등으로 유학을 보내 그림을 배워오게 했지만 새로운 무언가를 얻기는 힘들었다. 1870년 왕립미술학교 학생 14명은 유럽 미술만 숭배하는 풍토에 반발해 “졸업작품의 주제를 자유롭게 선택하게 해 달라”고 학교 측에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얼마 후 14명은 단체로 자퇴서를 내고 “더 이상 지배층을 위한 그림은 그리지 않겠다”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미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며 자신들이 그린 그림을 들고 러시아 방방곡곡을 순회하며 무료로 전시회를 개최했다. 이들은 짧게는 5~6시간, 길게는 보름 이상씩 기차를 타고 이동했다. 그래서 러시아어로 이동하는 사람들이란 뜻의 ‘이동파’란 이름이 붙여졌다.
귀족 초상화 대신 서민·풍경 즐겨 그려
영국 대영박물관과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이어 세계 3대 박물관에 꼽히는 ‘겨울궁전’. 유명화가들의 원본이 전시되어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겨울궁전(http://www.hermitage museum.org)이나 모스크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http://www.tretyakovgallery.ru)은 16~17세기 그림부터 전시하고 있다. 이 시기의 작품은 대부분 해외에서 고가에 들여온 것이다. 18세기 그림부터는 주인공이 달라진다. 황제·귀족의 초상화나 고급 드레스, 가슴에 달린 훈장 등이 사라지고 평상복 차림에 바느질을 하는 여성, 밭 매는 아낙네, 기타 치는 소년이 등장한다.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섬이 아닌 러시아 자작나무가 그려지고, 정치사회적으로 모순된 러시아의 현실이 풍자돼 있다. 이동파 화가로는 이반 크람스코이(Ivan Kramskoy· 1837~1887)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풍경화 전문가인 이반 시시킨(Ivan Shishkin·1832~1989)이나 바실리 수리코프(Vasily Surikov·1848~1916), 일리야 레핀(Ilya Repin·1844~1930)도 유명하다. 풍자적인 그림을 그렸던 바실리 페로프(Vasily Perov·1833~1882), 이사크 레비탄(Isaac Levitan·1860~1900) 등도 있다. 이동파 화가의 활동은 반세기가량 지속됐지만 러시아 미술계에서는 이들을 이단아로 취급하면서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았다. 정부의 지원도 없었다. 상인 파벨 트레티야코프(Pavel Tretyakov·1832~ 1898)는 이들의 숨은 재능과 가능성을 알아보고 물심양면으로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11세기 러시아 성화부터 이동파 화가들의 그림에 이르기까지 40년 동안 그림을 모았다. 활동 중인 화가들에게는 경제적으로 도움을 줬다. 그림을 그릴 때 물감 색이 밝을수록 비용이 많이 들었기 때문에 늘 어두운 색으로 그림을 그렸던 레비탄에게는 그의 그림 가치보다 몇 배나 더 후한 값을 쳐주고 그림을 사오기도 했다. 그렇게 모은 그림이 6만여 점이나 된다. 트레티야코프는 자신이 죽으면 집과 그림을 모스크바 시에 기증하겠다고 약속했다. 모스크바시는 그의 이름을 따서 만든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다.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에 6만여 점 소장
(위에서부터) 바실리 페로프의 ‘세남매’, 이사크 레비탄의 ‘볼가강’과 ‘황금의 가을’, 이반 크람스코이의 ‘이름없는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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