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경제·경영의 화두는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의 경제체제’이다.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강등, 유럽의 금융거래세 도입 움직임 등 변화가 시작됐다는 데는 거의 모든 전문가들이 동의한다. 2007~2009년의 충격적인 사건을 겪고도 일부에선 자본주의에 무한한 신뢰를 보내며 여전히 낙관론을 편다. 반면 이제 자본주의는 본질적인 한계를 드러냈으며 세계경제는 근본적인 전환을 겪을 것이란 (자본주의 입장에서) 비관론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자본주의 4.0>(컬처앤스토리)도 이 같은 논쟁에 가세한 책이다. 저널리스트인 저자 아나톨 칼레츠키는 명목상 비관론과 낙관론을 아우르는 것처럼 보인다. 시장의 실패를 인정하지만 이미 역사적으로 정부의 실패도 입증된 만큼 양쪽 기능의 조화를 제시한다.우선 그럴듯한 도식으로 보이는 자본주의 단계를 살펴보자.
‘자본주의 1.0’은 1776년 미국 독립선언과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출간~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의 패배 이후부터 1932년까지다. 워털루 전투 이후 “미국과 영국에서 수립된 진보적인 정치·경제 시스템이 유럽 전역으로 급속히 퍼졌고” 유례없는 자유방임의 시대였다고 설명한다.
자본주의 2.0’은 1931년 영국이 금본위제를 포기하면서부터이다. ‘자본주의 2.0’체제의 지적 상징은 1936년에 출간된 케인스의 <일반이론>이다. 정부가 보다 강력한 역할을 맡은 큰 정부의 시대이다. 금본위제의 폐지로 정부는 전에는 생각하지 못한 자유를 누리게 된다. 브레튼우즈체제에서 간접적인 모습으로 유지되던 금본위제는 1971년 닉슨이 금태환 중지를 선언하면서 역사에서 종적을 감춘다.
자본주의 3.0’은 1979년 6월 마거릿 대처가 영국 총리로, 1980년 로널드 레이건이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1981~1982년 폴 볼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통화주의 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을 관리하면서 시작됐다. “시장이 자유로워야 국민이 자유롭다”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시대는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을 넘어서면서 권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대처리즘에서 시작해 30년가량 이어진 신자유주의 자본주의는 2007~2009년 서브프라임 경제위기로 짧게 끝났다.
그 다음의 자본주의 단계가 ‘자본주의 4.0’이다.저자는 정치·금융·재정·의료 등 여러 분야에서 ‘자본주의 4.0’의 미래상을 제시했다. 그가 모색하는 ‘자본주의 4.0’의 세상은 전 단계 자본주의들의 분석과 종합으로 구성된 듯하다. 적잖은 지면을 할애한 ‘자본주의 4.0’에서 어떤 영감을 얻을지는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다. 그러나 이전 단계 자본주의에 대한 해석에는 적잖은 반론이 예상된다. 당장 지금의 자본주의를 ‘민주적 자본주의’로 파악한 인식이 문제다. “뭔가 해결책이 나타날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 또한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에 대한 반성의 부재를 시사한다. 그의 용어를 빌리면 ‘자본주의 3.0’은 민주적이지 못해서 위기로 내몰렸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4.0’은 “미국 주도의 민주적 자본주의”의 복원이 아니라 극복이 돼야 한다. (안치용.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지식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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