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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淸山 윤영근의 십승지(十勝地)와 가거지(可居地) 38.인자가 숨어든 넉넉한 천국- 덕유산(3)향적봉 지킴이는 주목이다

ngo2002 2011. 6. 7. 17:58

소설가 淸山 윤영근의 십승지(十勝地)와 가거지(可居地) 38.인자가 숨어든 넉넉한 천국- 덕유산(3)향적봉 지킴이는 주목이다


2011년 01월 10일 00시 00분 입력


덕유산은 자연적인 요새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넉넉하고 여유가 있는 십승지의 한곳으로 꼽힌다.
싱싱하게 푸른 솔가지 덕유산 정기 듬뿍

거대하고 강인한 주목 일자로 뻗어

향적봉 정상 하얀구름 황홀한 풍경

덕유산은 여유있고 넉넉한 십승지

백련사 대웅전의 마당 가운데에 서서 뒤쪽으로 보이는 산이 국립공원 덕유산의 제일봉인 향적봉(1천614m)이다. 진산 중의 진산으로 자태가 빼어나지는 않지만 시집간 누님 얼굴처럼 듬직한 정이 넘쳐흐른다.

절 앞쪽의 높은 봉우리가 중봉(1천302m)이다. 중봉에는 흰 구름이 정상부분을 가리고 있었다. 백련사에서 보아 정동 방향의 중봉 주변에는 흰 구름이 어느새 빨간 물감을 뿌린 듯 붉게 변하면서, 절대자 태양이 모습을 내밀려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일출이다.

아-아 밝은 하늘! 붉은 태양!

저 태양이 있으므로 지구상의 모든 것들이 존재할 수 있다. 하찮은 잡초 한 포기도, 끝없이 진보를 거듭하고 있는 인류도 태양에 의해 조정되어진다. 한줄기의 긴 햇살을 찾아 태양을 잡으러 정상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백련사에서 덕유산의 최정상 향적봉(1614m)까지는 한 시간 반이 걸리는 난코스이다.

맑은 구천동이 있는 이유는 푸른 덕유산이 있어서 가능하다. 덕유산은 태초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그리고 십승지를 두 곳에 품고 있는 복 받은 산이다.

덕유산(德裕山)은 토산(土山)이다. 부드러운 흙길로 등산화에 밟히는 맛이 순하고 여유롭다. 그러나 백련사에서 향적봉으로 오르는 길은 전혀 달랐다. 가파른 경사가 턱밑까지 차오르고 흐르는 땀이 온몸을 적셨다. 좁은 산길로 늘어진 소나무가지가 행여나 얼굴에 긁히고 부딪칠까 두렵고 위험했다.

싱싱하게 푸르른 솔가지는 덕유산의 정기를 담뿍 담고 있는지 생생하다. 우리나라 남부의 영호남지방을 가름해주는 대표 산이 덕유산이다. 산은 물을 저장하고 있는 엄청난 크기로 만들어진 거대한 저장탱크다. 물은 산에 있고 그래서 산이 곧 물이다. 현직 대통령의 청와대방문 초청을 뿌리치고 오로지 산에 머물며 일심으로 정진하던 성철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북쪽으로는 금강, 동쪽으로는 낙동강의 물 뿌리가 되어주는 거대한 산이 덕유산이다. 기를 쓰며 오르기를 계속했지만 그곳이 그곳 같아 도무지 끝이 없어 보인다. 앉아서 쉴만한 곳도 없었다.

구름이 온몸을 휘감는다. 일행은 구름 속에 갇혔다. 새처럼 구름 위를 걷는 편이다. 이제 우리들은 신선의 세계로 들어선 샘이다. 눈 덩이처럼 피어오르는 물안개의 축축한 실연기가 온 누리를 뒤덮었다. 밀려오는 먹구름이 덮칠 때는 코앞도 분간하기 어렵다. 그럴 때는 걸음을 멈추고 제자리에 서서 구름이 지나가기를 잠시만 기다리면 된다.

아스라이 보이는 동쪽의 산이 가야산이고 서쪽으로는 내장산이다. 올라가는 뒤쪽으로 보이는 남쪽 산이 한반도 제일의 지리산이다. 산길이 굽이지며 돌고 돌면 높고 낮은 산들이 구름위로 떠올라 아롱거린다.

산에 있는 아주 작은 것 하나라도 갖거나 지배하고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 걷기를 계속하자 드디어 향적봉!

거대한 주목 한그루가 반갑게 맞이해준다. 가지에는 사람들의 손에서 나온 기름때가 묻어 반질거렸다. 기념사진 촬영장소가 되어버린 주목은 벌써 죽어버린 고사목이었다. 살아 천년 죽어서도 천년이라는 주목은 이미 죽었지만 자신의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주목은 거대하고 몸통이 일자로 솟아올랐다. 소나무와 비슷한 점도 많지만 강인한 인상은 역시 주목이 더 많은 이미지로 강한 인상을 전달해 준다.

최근에는 깊고 깊은 지리산에서 천년의 나이를 먹은 주목이 발견돼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끌었다. 지리산 칠선계곡에서 발견된 거대한 주목은 가슴둘레가 무려 4.42m나 되고 수종의 높이가 20m나 된다고 한다. 엄청난 크기라 하겠다.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동북부지역 등에 분포하는 상록교목인 주목은 달린 가지와 잎사귀가 처연한 모습으로 많은 이미지와 느낌을 전해주는 나무이다. 화가들의 화폭도 심심찮게 차지하는 나무이기도하다. 희귀한 주목은 학술적인 가치가 매우 높고 아울러 높은 산을 지켜주는 트레이드마크이기도 하다. 단단한 주목은 천년을 넘게 산다지만 죽은 나무도 하얀 색깔의 몸통과 가지가 너무 단단해서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며 오랫동안 버틴다. 그래서 죽은 다음에도 천년을 산다고 전해오는 나무이다.

주목은 살아있을 때보다 오히려 죽은 후에 더 많은 시선을 끌며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다. 덕유산의 살아있는 산지기는 주목이다. 수많은 세월을 이겨온 주목이 향적봉의 상징인 것이다. 포토장소로 사진사들을 모아 들이는 고사목인 주목은 살아있을 때보다 더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죽고 나서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상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으로 갑자기 온몸이 쳐지며 피로해졌다. 시간이 지나자 이제는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최정상 표지석이 꽂혀있는 돌무더기위로 걸어갈 기운도 남아있지 않다. 거의 녹초가 된 상태다. 향적봉을 중심으로 사방이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정상을 쳐다본다. 하얀 구름이 주변을 감싸며 몰려온다.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황홀한 전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덕유산에서는 주목도 사람도 덕이 넘치고 풍성해서 여유가 넘쳤다.

덕유산 국립공원은 북쪽으로 구천동계곡을 이루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심산유곡의 대명사로 불렸다. 속세의 생활과는 인연을 끊은 수도자나 기인들이 은거하며 도를 닦는 곳으로 알려진 은둔지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구십 리에 이르는 구천동 33경을 비롯한 수많은 절경과 유적이 자리하고 있어서 사시사철 찾아오는 이들의 발길이 그칠 날이 없다. 시절의 변화는 아무리 꼭꼭 숨어든 곳에 있더라도 한번 입소문을 타면 관광명소로 돌변하고 인파에 휩싸인다. 덕유산이 그런 곳이다.

그러나 덕유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고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었으며 대전⇒진주간의 큰 길도 뚫렸다. 그러자 관광, 위락지역으로 주목을 받으며 개발에 가속도가 붙었다.

교통망이나 사회간접시설이 크게 개선되면 주민들의 고용 및 소득증대가 늘어난다. 무주는 경제의 활성화로 각광받을 것이다. 개발과 자연환경보존은 서로 상반된 불일치로 결코 양립될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들의 노력으로 상호보완과 조화를 이루며 함께해야 할 것이다.

예언서에 쓰여 있는 그대로 무주가 진정한 축복의 땅이 될 수 있도록 수려한 자연경관을 지켜가야 한다.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은 우리의 미래이자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무주스키장과 리조트의 곤돌라가 둥둥 떠서 하늘을 나는 모습은 환상적이며 몽환적이다. 곤돌라는 땅바닥에서 한순간에 정상까지 올려놓는다. 구름위에 둥둥 떠서 신선놀음을 시작했다하면 어느새 내릴 곳에 도착한다. 설천봉(1천520m) 정상에 자리한 팔각정은 고즈넉한 풍광이면서 문명의 이기인 곤돌라정거장이다. 곤돌라는 산의 높이를 없애버렸다. 누구든지 곤돌라에 오르기만 하면 여유를 즐기며 산을 조망할 수 있다. 최신식 이동하는 요술 상자가 곤돌라다.

격암 남사고는 자신이 쓴 책 '남격암십승보길지지'에서 덕유산이 있는 무주를 일컬어 무풍(舞豊) 북동(北洞) 옆 응달이니 덕유산에서 어디든지 피난할 수 있다고 했다. 골 바깥은 온 산이 기름지고 넉넉해서 살만한 터전이라고 한 것이다. 덕유산을 중심으로 그곳을 복지로 여겼으며 산이 우거져 자연적인 요새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넉넉하고 여유가 있는 십승지의 한곳이라고 했다.

덕유산에서 승지는 한곳에 이궁(離宮)을 지어 왕의 임시거소로 정했던 곳이다. 너무 아까운 터라 왕의 몫으로 삼고 싶었던 곳이다. 오늘날의 지방청와대인 샘이다. 그리고 또 한곳은 조선왕조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실록을 보관하던 곳이라 하겠다. 먼저 국가 비상사태에 대비한 나라님의 안위를 위하여 지방에 머물기 위한 왕의 궁터를 찾아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