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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淸山 윤영근의 십승지(十勝地)와 가거지(可居地) 35.소백산(5)- 비로봉에서 바라본 하늘정원

ngo2002 2011. 6. 7. 17:56

소설가 淸山 윤영근의 십승지(十勝地)와 가거지(可居地) 35.소백산(5)- 비로봉에서 바라본 하늘정원


2010년 11월 08일 00시 00분 입력


국립천문대 돔 지붕 둥근 원형 독특

훈훈하게 마음 녹여주는 능선길

천문대-희방사 길 편하지 않지만

희방폭포 물소리 소백산 휘감아

비로봉에서 천문대 정산까지의 능선 길은 연장 4.5㎞로 약 1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이곳 소백산에서 발원하여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소백산맥의 웅장한 봉우리들을 조망할 수 있는 훈훈하게 마음을 녹여주는 능선길이다. 가는 길에 공수부대원들의 천리 행군 팀을 만났는데 그들은 강원도 가리방산에서 출발해 백두대간을 따라 익산까지 도보로 간다고 했다. 그들의 걸음걸이가 어찌나 빠른지 한참을 따라가다 결국에는 동행하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청년의 늠름한 모습이 뻗어나갈 미래를 보장해 줄듯 듬직하다.

등산로 옆에 서있는 이정표에는 천문대까지 3.5㎞가 남았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천문대 뒤쪽의 인공위성 관측 안테나가 높은 기둥에 단추를 단 듯해서 묘하게 보였지만 능선이 반반한 곳에는 헬기장이 만들어져 있었다. 능선 길은 시야가 터져 있어서 좌우를 살필 수 있고 지루하지 않았지만 흐르는 땀은 주체할 길이 없었다.

많은 등산객들로 인해 같이 등정을 시작한 광주의 자연답사팀 산우들이 눈에 안보여 불안하고 찾을 수가 없었지만 걷기를 게을리 할 수 없었다. 통나무계단 길을 한 시간쯤 걸었을 무렵에 드디어 제일 연화봉(1천304.4m)에 오를 수 있었다.

연꽃은 진흙탕 물속에 뿌리를 박았지만 고고한 자태의 꽃을 피워내기 때문에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며, 산봉우리 전체를 연꽃으로 이름 지은 조상들의 지혜가 무서우리(?) 만치 날카롭다. 더구나 정상을 비로봉이라 하지 않는가? 부처님의 높은 뜻을 받들어 자아성취Self Actualization의 길을 가고자 하는 슬기를 배워야 할 것이다.

바닥난 물통대신 배낭속의 오이한 개를 꺼내어 씹었더니 갈증이 가신 듯 개운해졌다. 능선 길 따라 활짝 핀 철쭉의 연분홍 꽃잎이 은근한 색깔로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아 예쁘기만 하다. 비단길 아닌 꽃길Flower road이란 이런 경우를 말한다.

꽃향기에 취해서 가다보니 어느새 연화봉(1천383m)에 도착 할 수 있었다. 해마다 이맘때쯤 연화봉에서는 소백산 철쭉제가 열린다고 하는데 자지러질 듯 활짝 핀 연분홍 빛 철쭉이 두 눈을 맑게 씻어 주었다. 사흘 후의 소백산 철쭉축제를 알리고 있는 듯 철쭉의 예쁜 자태는 자연이 그려내는 신비로운 예술이라 하겠다. 연화봉이라 쓴 표지석 뒤편에는 노산 이은상 시인의 ‘산악인 선서’가 내 마음을 한 번 더 가다듬게 해주었다.



산악인은 무궁한 세계를 탐색한다.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정열과 협동으로 온갖 고난을 극복할 뿐 언제나 절망도

포기도 없다. 산악인은 대자연에 동화되어야 한다.

아무런 속임도 꾸밈도 없이 다만 자유, 평화, 사랑의

참 세계를 향한 행진이 있을 따름이다.



연화봉 옆에 자리한 국립천문대는 첨성대처럼 지어진 건물의 돔 지붕은 둥근 원형으로 독특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60㎝반사 망원경을 비롯한 20㎝태양관측 망원경 등 최첨단의 관측기들이 설치되어 별자리의 움직임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평소 잘 알고지내는 이 변호사의 아들이 이곳에서 근무한다기에 무거운 발걸음을 마다 않고 찾았더니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정문에는 가마솥처럼 커다란 자물통이 채워져 있어서 돌아 설 수 밖에 없었다.

천문대에서부터 희방사로 가는 길은 내리막길이기에 편할 줄 알았는데 주변의 자연석을 이용한 계단 길이어서 오르는 길 보다 더 어렵고 힘들었다. 계단 길에서는 한 발짝만 잘못 떼었다는 굴러 넘어진다.

중간쯤 내려왔을 때 50대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등산객이 119구조대원 4명이든 들것에 실려 있었다. 하얗게 변한 얼굴색으로 보아 위급해 보였다. 입에 문 흰 거품이 다급해 보였지만 눈동자는 멀쩡해서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듯했다. 원래가 등산이란 심판이 없는 자기만의, 자기의 즐거움으로, 자신의 능력에 맞추어 하는 운동이 아니던가.

조심! 또 조심!

희방사는 신라시대에 창건(643년)한 고찰로 여태까지 성쇠를 거듭해온 소백산이 품고 있는 비로사와 함께 유명한 사찰이다. 희방사 약수터에서 빈 물통에 물을 가득 채웠더니 공연히 배가 불러오며 포만감이 생겼다.

대웅전에 걸려 있는 범종(경북유형문화재 제226호)은 새겨진 무늬의 비천상이 어찌나 또렷한지 금방이라도 하늘로 날아오를 듯했다. 청동으로 만든 종을 매달기 위한 고리를 용으로 조각했으며 종소리를 크게 하기위한 음통의 구멍이 탁구공 정도의 크기로 뚫려 있었다.

상상의 동물인 용은 울기를 잘한다. 용뉴라고 하는 걸고리는 꼭 용의 머리처럼 만들어 붙였다. 종각에 종을 걸기위한 걸림 자리라 무개의 힘이 집중되는 곳으로 단단해야한다. 웅건한 조각으로 된 용뉴에는 두 마리의 용이 범종을 붙들어 움켜잡고 있는 모양이다.

종 가운데의 당좌는 조금위로 볼록하게 튀어나왔다. 나무망치처럼 다듬은 당목에 맞아서인지 미끌미끌하며 회색으로 변해 있었다. 웅혼한 범종소리는 소백산에 퍼지는 메아리로 매일 사용하는 종임을 알 수 있었다.

동양과 서양에서 종은 너무도 차이가 극명하게 갈라진다. 서양의 종은 튤립형의 내부에 둥그런 추를 달아 종 전체를 흔들어서 소리를 낸다. 종의 역사가 더긴 동양에서는 종의 바깥표면을 당목으로 두들겨서 소리를 내는 외타식이다.

그러므로 종 전체를 움직여야하는 서양종은 범종처럼 크게 만들 수 없다. 희방사의 범종과 서양종을 비교한다면 서양종은 종의 축에도 끼지 못한 작은 새끼방울에 불과하다. 그 대신 서양종은 여러 개를 한데 묶어 각각 다른 음계의 소리를 다양한 멜로디로 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우리의 범종은 매달아 놓고 치기 때문에 얼마든지 크게 만들 수가 있어서 울림 자체를 거대한 소리로 먼 곳까지 은은하게 퍼지게 한다.

"디~잉, 디~잉….”

새소리 물소리도 그치고 바람도 일지 않는 조용한 소백산에서 귓전을 씻어내고 마음의 평온을 얻을 수 있는 소리로는 범종소리가 으뜸이다. 고운 울림은 소백산 골 깊은 희방사와 골짜기 숲 속의 적막을 깨고 긴 여운으로 희망을 밝혀준다. 희방사에서는 청정한 범종소리를 아침저녁으로 듣고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가다듬어 어지러워지려는 마음 속을 깨끗이 씻어내야 한다.

생긴 모양이 짜임새 있고 아름다운 종이다. 종의 어께부터 종구에 이르는 종신의 긴 곡선은 은근하면서도 단아한 기품이 넘치고 있어서 소위 말하는 한국적인 선의 아름다움이 풍겨난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범종은 고대 한국미술사에 나타난 비상한 아름다움으로 만드는 방법과 주금술, 어울리는 조형미가 빼어난다. 마치 영겁의 세월에도 끄떡없이 소백산 비로봉을 지켜온 아름다운 범종의 소리는 국제적으로도 수준급의 소리로 한국범종의 우수함과 요염한 자태를 자랑한다.

철사다리 길을 내려가자 영남 제일의 희방폭포가 30m의 물줄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극심한 물 부족으로 밭작물이 타들어 가는 봄 가뭄인데도 저렇게 기다란 폭포수가 쏟아지다니!

천하절경이란 이런 경우에 하는 말로 틀림없는 말이다. 청량한 물소리가 뼈 속까지 씻어낸 듯 상쾌하기만 하다. 희방폭포는 눈으로 보아서는 양이 차지 않는다. 천지를 진동하며 울려 퍼지는 물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지그시 두 눈을 감소 쏟아지는 폭포수가 토해내는 의미를 새겨들어야 한다. 자연의 소리 속에 우리의 인생이 담겨있다.

"쏴~아 쏴~아”

폭포수 떨어지는 소리가 맑은 하늘을 찌르고 소백산을 뒤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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