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175> 한국전쟁 다룬 소설
민족·이념 중심에서 일상·자본의 시각으로…분단소설, 시대 따라 변했죠
신준봉 기자
한국전쟁은 한국사회를 과거와 철저하게 단절시켰다. 문학평론가 정호웅(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근본적인 지각변동이 발생했다”고 지적한다. 수백만 명에 이르는 인명 피해, 경제적 토대의 붕괴, 전통적인 규율과 가치관의 동요, 이산(離散)과 고향 상실, 분단의 고착 등으로 한국사회는 근본부터 무너졌다는 것이다.
문학사회학은 문학이 현실을 반영한다고 가르친다. 굳이 학문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문학이 체험을 토대로 한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니 한국전쟁 같은 일대의 사건은 되풀이해서 소설로 쓰여 왔다. 더구나 작가들 자신이 직접적인 전쟁 피해자인 경우 소설을 통한 고통의 형상화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 한국전쟁은 우리 민족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다. 삶의 터전은 허물어지고 전통 규율과 질서는 해체됐다. 현실을 먹고 자라는 문학은 당연히 이를 반영했다. 하지만 분단문학은 전쟁과의 시간적 거리에 따라 이전과 다른 양상을 보이며 변화해 왔다. [연합뉴스] |
1960~70년대 분단문학의 주요 성과로는 황순원의 장편 『인간접목』『나무들 비탈에 서다』, 최인훈의 장편 『광장』『회색인』, 이호철의 단편 ‘탈향’ 등이 꼽힌다. 전쟁의 그늘이 짙게 남아 있었다.
80년대 들어서는 전후 한국사회를 강력하게 규율해온 반공 이데올로기를 문제 삼는 작품들이 등장한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이 대표적이다.
90년대 들어서는 전쟁 시기의 일상을 세밀하게 복원한 박완서씨의 장편들이 잇따라 나온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등이다. 중진 소설가 임철우의 장편 『그 섬에 가고 싶다』도 이 시기에 쓰여졌다.
2000년대 분단문학은 뚜렷한 차별화를 보인다. 평론가 김미현(이화여대 국문과) 교수는 “2000년대 들어 전쟁 미체험 세대들이 발표하는 소설들은 민족이나 이념,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일상·욕망·자본의 입장에서 북한을 보다 성찰적으로 바라보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배수아의 단편 ‘은둔하는 북(北)의 사람’, 이기호의 단편 ‘간첩이 다녀가셨다’, 이응준의 장편 『국가의 사생활』 등을 읽어볼 만한 ‘새로운 분단 소설’로 추천했다. 최근 중진 소설가 이경자(62)씨는 전쟁의 상처와 전후 사회상을 여섯 살 소녀의 성장기를 중심으로 풀어낸 장편 『순이』를 펴내기도 했다.
50년 1~10월, 월북한 아버지 둔 가족의 애환
불의 제전 전 5권 김원일 지음, 강, 403∼453쪽, 각 권 1만2000원
장편 『불의 제전』은 스케일과 소설적 총체성 측면에서 김씨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50년 1월부터 10월까지를 시간 배경으로, 경남 진영과 서울·평양 등을 오가며 월북한 아버지를 둔 일가족의 애환을 그리고 있다. 김씨는 『불의 제전』을 20대 초반에 구상했다. 80년부터 쓰기 시작해 ‘문학사상’ ‘학원’ 등 발표 지면을 바꿔가며 18년간 집필한 끝에 97년 7권으로 완간했다. 최근 두 권 분량을 덜어낸 개정판이 출판사를 바꿔 나왔다. 김씨는 개정판 ‘작가의 말’에서 “표현이 어색한 부분, 느슨한 대목 등을 덜어냈을 뿐 새 삽화를 추가하거나 해석을 달리하여 고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인민군이 지배한 서울…50년대 풍경이 생생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박완서 지음, 웅진씽크빅, 375쪽, 1만원
소설은 박씨가 스무 살 되던 51년부터 결혼하는 53년까지 인민군 치하의 서울살이 경험을 풀어낸 것이다. 다리에 총상을 입은 오빠를 대신해 올케와 함께 먹고살기 위해 남의 집 담을 넘었던 경험, 강압에 못 이겨 인민군 위문공연을 보러 갔던 일, 미군부대 PX 초상화부에서 박수근을 만났던 일 등 살풍경한 50년대가 박씨 특유의 명쾌한 어조, 이야기꾼적인 재능에 의해 소설 속에 생생하게 재현돼 있다.
국군 아들 둔 외할머니, 빨치산 아들 둔 친할머니
장마 윤흥길 지음, 민음사, 377쪽, 1만1000원
평론가 정호웅 교수는 “죽음의 기운이 장마철 습기처럼 온 세상을 가득 채운 상황에서 전쟁의 공포에 짓눌린 사람들의 심리를 실감나게 묘사하면서도 타인의 슬픔과 고통을 이해하려는 마음, 같이 아파하는 연민의 마음이 전쟁 중에도 살아있음을 보여준 작품”이라고 평했다.
전쟁 직전 평양서 목사 12명이 총살 당했는데…
순교자 김은국 지음, 도정일 옮김, 문학동네, 328쪽, 1만1000원
주인공인 이 대위의 상관인 장 대령은 목사 처형 사건을 대북 선전전에 활용하려 하지만 살아남은 생존 목사의 입을 통해 드러난 진실은 희생된 목사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신앙에 투철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 때문에 미국 뉴욕 타임스는 “도스토옙스키, 카뮈의 문학 세계가 보여준 위대한 도덕적·심리적 전통을 이어받은 훌륭한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순교자』는 수필가 장영희씨의 아버지인 서울대 장왕록 교수에 의해 64년 처음 번역됐다. 이번에 출간된 개정판은 도정일 경희대 교수가 자신의 78년 번역을 일부 수정한 것이다.
인민군으로 참전했다 국군에 붙잡힌 체험 녹여내
남녘사람 북녁사람 이호철 지음, 민음사, 350쪽, 9000원
책에 실린 첫 단편 ‘세 원형 소묘’에는 남북이 막 갈라지려던 시기인 47년 북한의 상황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남에서 온 사람들’ ‘칠흑 어둠 속 질주’ 등 나머지 단편 4편에는 인민군에 징집돼 밤기차를 타고 전선에 투입되는 장면, 국군 포로로 붙잡혀 생사를 걱정하던 상황 등 50년 7월부터 10월까지 이씨의 전쟁 체험이 소상히 담겨 있다. 10여 개국에 번역 소개된 ‘분단 작가’ 이씨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20년 고정간첩 통해 한국사회의 변화 짚어
빛의 제국 김영하 지음, 문학동네, 391쪽, 9800원
자본주의 체제에 철저하게 동화된 듯하지만 ‘생득’이 아닌 ‘학습’을 통한 것이라는 점에서 방외인일 수밖에 없는 주인공의 인생 궤적을 통해 80년대부터 21세기 초까지 한국사회의 변화를 훑는 새로운 색깔의 분단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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