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

◆ 위기의 인재강국 ③ ◆

ngo2002 2022. 7. 8. 10:08

"폐쇄적인 한국, 살기 힘들다"…국내박사 딴 외국인 60% 해외로
저출산發 인재난 해결 위해외국인력 유치 주장 힘받지만언어·문화 장벽 극복 어려워억대연봉 줘도 인재 못 데려와박사학위 외국인 연구인력기업 300곳 평균 0.3명만 채용"취업해도 영주권 취득 힘들어낡은 고용허가제도 손질 시급"
• 박홍주, 김정석 기자
• 입력 : 2022.06.26 16:33:22 수정 : 2022.06.27 09:13:14

국내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일본인 A씨는 10년 넘게 한국에 머무르고 있다. 한국에서 소규모 디자인 회사를 열었지만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함에도 일감이 들어오지 않아 벽에 부딪힌 느낌을 받았다. 처음에는 국내 기업에 취업하려고 했지만 내국인조차 취업을 하는 게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어려워 창업을 택했는데 결국 귀국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A씨는 "대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친구들과 즐겁게 지냈는데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면서 "여전히 한국은 외국인이 정착하고 돈 벌기 어려운 나라 같다"고 말했다. 저출생 쇼크로 인한 인재난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해외 우수 인재들에게 문호를 열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지만, 정작 외국계 우수 인력은 한국에 정착하지 못한 채 떠나고 있다. 대학과 기업 등이 외국인 인력을 쉽게 유치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이민자에게 우호적인 문화가 뿌리내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기업이 중국·인도 등 외국 출신 우수 인력에게 높은 연봉을 주고 데려온 이후에도 이들이 각종 제도와 문화적 걸림돌로 인해 되돌아가는 사례가 빈번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공계 엔지니어 인력난에 시달리는 기업들은 억대 연봉을 지급하고서라도 외국인 우수 인력을 스카우트하려는 의지가 강하지만, 언어 장벽과 식생활 문제가 해소되지 않아 채용에 번번이 실패하기 때문이다.
이공계 인력풀이 큰 인도가 대표적이다. 한국인도협회 차원에서 중소기업에 인도인 엔지니어들을 연계해주려고 해도 중소기업에서는 영어 면접은커녕 이력서조차 검증하기 어려워해 영입에 난항을 겪고 있다. 협회 관계자는 "인도인의 경우 채식주의자가 많은데 채식 메뉴가 없는 식당이 대부분"이라며 "구내식당에서 밥 한 끼 제대로 먹기 어려워 적응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아직 한국은 외국인을 유치할 사회적·문화적 준비가 갖춰지지 않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 결과 외국인 인력을 유치하는 것은 고사하고, 국내에서 학위를 받은 외국 인력조차 취업을 앞두고서는 절반 이상이 한국을 떠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조사 결과 2017~2019년 국내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외국인 유학생 2767명 중 국내에 취업한 이는 42%에 불과했다. 한국에서 박사 학위를 따고서도 자국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나라에 취업한 이가 58%로 나타났다. 국내 이공계 대학원생이 8만6562명에 달하고, 이 중 약 10%인 8321명이 이미 외국인 유학생인 현실과 비교하면 외국인들이 한국 산업계에 정착하기가 쉽지 않은 셈이다. 최경희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는 "지난 정부에서 신남방정책의 일환으로 외국 학생들의 국내 석사 과정을 지원하기도 했는데, 석사 취득 이후 지원이 끝나면 이들이 일본이나 유럽 등으로 유출되는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KOITA)와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가 국내 3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외국인 연구인력을 채용한 곳은 24%인 73곳에 불과했다. 기업당 평균 외국인 채용 인력은 단 2명으로, 그나마 이 중 1.1명은 학사 학위 소지자였고 단 0.3명만이 박사였다. 국내 기업들이 고학력 외국 전문인력을 쉽게 뽑지 못하는 형국이다. 기업들은 '국내 외국인 유학생에 대한 정보 부족'(43%) '한국어 의사소통 어려움'(15%) 등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외국의 우수 인력이 한국에서 자리 잡지 못하는 것은 다민족 국가보다 폐쇄적인 문화가 한몫했다는 평가다. 단기간에 외국인 출신 우수 인력을 대거 모집하기 어려운 이유다. 국내 한 중견기업의 차장급 직원 이 모씨는 "연구개발팀에 중국인 사원이 일하고 있는데, 주변에서 배려를 하더라도 언어와 문화의 장벽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그나마 가까운 중국이 이렇다면 동남아시아나 인도, 유럽인은 더욱 적응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 역시 우리나라의 글로벌 인재 유치 제도가 후진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태환 한국이민정책학회 명예회장은 "한국에서 공부한 우수한 글로벌 인재가 정착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해야 하는데 이들에겐 취업의 문조차 좁다"며 "취업을 하더라도 한국은 영주권 취득이나 귀화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해외 우수 인재를 유치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이 계속해서 국내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영주권을 주고 귀화까지 이어지도록 프로세스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 교수는 국내 이주노동자 제도가 아세안 국가보다도 뒤떨어진다고 꼬집었다. 아세안에서는 2007년 처음 발의한 이주노동자 보호 법안을 거듭 개정하며 발전시켜왔는데, 한국은 2004년 시행된 고용허가제에서 나아간 게 없다는 주장이다. 최 교수는 "이제는 고용허가제를 넘어 아세안 등의 국가와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며 "우수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제도 개선 등의 장기적인 대응책을 짜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박홍주 기자 / 김정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