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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씨소프트의 몰락은 예견된 사태..이대로는 게임산업 미래 없다" [이유진의 겜it슈]

ngo2002 2021. 9. 1. 16:27

이유진 기자 입력 2021. 09. 01. 16:16 댓글 10

[경향신문]

지난달 30일 중앙대 교수연구실에서 만난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중앙대 교수)은 엔씨소프트 신작 ‘블레이드&소울2’에 대한 유저들의 반감은 “예견된 사태”라며 “이대로는 게임산업의 미래가 없다”라고 말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추억이었던 게임에 인생을 갈아넣게 만들었다.’ 국내 최대 게임사 엔씨소프트(엔씨)에 대한 반감이 심상치 않다. 지난달 26일 출시한 신작 ‘블레이드&소울2’(블소2)가 유저(이용자)들의 외면을 받으면서 엔씨소프트의 주가는 한달 사이 약 20% 급락했다. 엔씨는 블소2 출시 이틀 만에 과금 유도 논란이 일었던 게임 시스템을 개편하겠다며 사과했지만, 차기작 ‘리니지W’ 광고를 내보낸 유튜버들이 사과방송을 하는 등 불씨는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리니지 왕국’을 통해 독보적 입지를 굳힌 엔씨가 이토록 거센 비난을 맞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달 30일 서울 동작구 중앙대 교수연구실에서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중앙대 교수)을 만나 블소2 사태와 한국 게임산업의 현주소에 대해 물었다. 게임산업의 대변자인 동시에 국내 게임사들을 향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 그는 지난 3월 엔씨 주주총회에 참석해 확률형 유료 아이템 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한 인물이기도 하다.

■‘리니지 대박’의 역설…“돈 쓰는 게임 질렸다”

게임사 엔씨소프트는 26일 신작 ‘블레이드&소울2’를 출시했다. 엔씨소프트 제공


위 교수는 “이번 사태는 게임산업의 적폐가 누적된 결과물”이라고 진단했다. “게임이 모바일로 넘어오면서 확률형 유료 아이템 도입이 노골화 됐습니다. 게임사들이 돈의 함정에 빠졌죠. 이용자의 행복감보단 게임을 통해 권력을 추구하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아낌없이 돈을 쓰도록 만들었어요. 블소2도 뚜껑을 열어보니 리니지와 다를 게 없었으니, 유저들은 질린 겁니다. 스스로를 ‘개돼지’라고 칭하는 상황에 이르렀어요. 게임을 만드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비참한 거죠.”

리니지 왕국이 흔들리기 시작한 건 올초 게임 이용자들이 확률형 아이템 시스템에 불만을 표출하면서부터다. 위 교수는 이런 시스템의 폐단을 꾸준히 지적해왔다. 그는 “국산 게임은 확률을 끊임없이 소진시키면서 도박성을 강화했다”고 비판했다. “꽝이 나오는 것은 물론 아이템끼리 합성을 하고, 실패하면 처음부터 시작해야 해요. 이건 문제가 있어요. 일본·중국 등 해외에서 확률형 아이템으로 대박을 낼 수 없게 규제한 것과 대조적입니다.”

위 교수는 한국 게임산업이 ‘리니지의 저주’에 빠졌다고 설명한다. “리니지M 시리즈가 너무 큰 성공을 했어요. 리니지2M의 하루 최고 매출이 300억에 이를 정도였으니까요. 국내 과금 이용자 파이를 엔씨가 쓸어가게 됐습니다. 그와 동시에 국내 게임사들은 확률형 아이템 외에는 되는 것이 없다는 절망감에 빠졌습니다. 모든 게임이 리니지의 BM(비즈니스 모델)을 흉내내기 시작했고, 엔씨조차도 리니지 모델을 벗어나지 못하게 된 거죠.”

■우리가 ‘모동숲’을 만들 수 없는 이유

일본 게임사 닌텐도가 지난해 3월 출시한 ‘모여봐요 동물의 숲’은 품귀 현상이 일어나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 닌텐도 제공


위 교수는 게임을 비즈니스의 수단으로만 보는 ‘철학의 빈곤함’을 근본적 문제로 꼽는다. “1세대 개발자 송재경씨가 리니지를 처음 소개할 때 ‘권선징악’의 게임이라고 표현을 했어요. 그때만 해도 철학이 있었습니다. 약한 유저를 괴롭히면 징벌을 받고, 다른 유저를 도울 수도 있었어요. PK(플레이어킬)시스템이 폭력적이라고 비판도 받았지만, 개발자가 본인이 생각하는 좋은 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장치를 심어놨던 겁니다. 지금 리니지는 그런 정신이 다 잊혀졌어요. 소위 ‘장비빨’로 이기는 것은 권선징악도 아니고, 게임도 아닙니다.”

위 교수는 철학의 중요성을 설명하며 일본 게임사 닌텐도를 예로 들었다. “게임 ‘동물의 숲’ 시리즈는 좋게 말하면 평화롭고, 나쁘게 말하면 지루한 게임이에요. 그런데도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뒀어요. ‘누구나 즐길 수 있게’라는 게임 철학이 뒷받침됐기 때문입니다. 게임 ‘리듬 천국’을 개발하기 앞서 개발자들을 상대로 수개월 간 음악교육을 하기도 했어요. 국내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게임사들이 이미 관료화됐거든요. 기존 IP(지식재산)와 BM에 머물러 있고,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지 않습니다. ‘동물의 숲’ 같은 게임이 나올 수가 없어요.”

■“1세대 동력 다했다” 변곡점에 선 게임산업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 확산에 게임업계와 손 잡고 ‘플레이어파트투게더(#PlayApartTogether)’ 캠페인을 벌였다. 유니티 제공


2021년, 게임산업은 변곡점을 돌고 있다. 10년 만에 강제적 셧다운제가 폐지됐으며, 코로나19 이후 게임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위 교수는 “두 가지 외적 요인이 작용했다”며 “하나는 세계보건기구(WHO)의 태도변화였다. 게임이용 장애를 질병으로 지정한 WHO가 사회적 거리 두기를 위해 게임 이용을 권장하는 캠페인을 벌이면서 게임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란 인식이 퍼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동물의 숲의 흥행도 중요한 변수였다. 리니지류의 게임에 익숙하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게임, 게임의 긍정적 가치를 알게 했다”고 설명했다.

위 교수는 “코로나19는 게임이 가진 긍정적 가치를 보여줄 기회였음에도 국내 게임사들은 기회를 활용하지 못했다”며 “중국산 게임이 시장의 우위를 차지하는 데 대한 위기의식도 없다. WHO가 게임을 질병코드로 지정했다는 사실도 변함이 없는데, 개별 게임사들은 팔짱만 끼고 산업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위 교수는 “결국엔 좋은 게임을 만드는 것밖에는 대안이 없다”며 게임산업의 세대교체를 주문했다.

“이대로는 한국 게임산업의 미래가 없어요. 여러 번 실패를 하더라도 끊임없이 도전해 새로운 IP를 만들고,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게임을 선보여야 하는데 1세대 개발자들의 동력은 다한 것처럼 보입니다. 새로운 게임을 원하는 유저들은 계속해서 표류하고 있고, 이들이 원하는 게임이 나온다면 분명 큰 호응을 받을 거예요. 지금은 그 역할을 해줄 게임사가 등장하길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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