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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끈 긴사람 이글 꼭읽으시라

ngo2002 2021. 8. 25.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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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zuak**** 182.221.***.224 |작성자글 더보기2021.08.25 07:46

미국은 20년간 파키스탄을 군사적 허브(hub)로 해,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치렀다. 2002년부터 모두 330억 달러(약 38조원)를 파키스탄에 쏟아부었다. 하지만 같은 시기, 파키스탄이 한쪽으로는 미국의 돈을 챙기면서 미국의 적(敵)인 아프간 탈레반 세력을 지원했다는 것은 국제사회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북서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에, 동쪽으로는 인도 사이에 끼어 있는 파키스탄의 위치

파키스탄은ㅡㅡ 왜 그랬을까. 배경엔 130년 전 영국이 파키스탄(당시 인도)과 아프가니스탄 사이에 그은 국경선인 ‘듀랜드 라인(Durand Line)’이 있다. 이 국경선은 두 나라에 걸쳐 사는 파슈툰족(族) 거주 지역을 두 동강 냈고, 역대 아프간 정부는 이 지역(파슈투니스탄)의 자국 합병을 요구했다. 파키스탄에겐 이런 아프가니스탄에 ‘우호적인’ 세력을 집권시키는 것이 안보의 급선무였다.

◇탈레반의 카불 점령에 환호한ㅡ 파키스탄 정부

아프간의 탈레반 반군이 수도 카불에 입성한 15일,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는 “드디어 아프간인들이 노예의 족쇄를 깼다”고 반겼다.


그의 특별보좌관인 라우프 하산은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이 국외 탈출하고 카불 공항이 아비규환에 빠진 아프가니스탄에서 “부패한 아프간 정부에서 탈레반으로 부드러운 권력 이양이 이뤄졌다”고 칭송했다. 미국의 아프간 대(對)테러전쟁에서 중요한 축이었던 파키스탄 정부는 아프간 탈레반의 재집권을, 미국이 주도한 군사적 모험주의의 패배로 반겼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국경선이 된, 1893년 영국이 그은 듀랜드 라인(붉은색). 이 국경선은 두 나라에 걸쳐 사는 최대 5000만 명에 달하는 파슈툰족 거주지역(주황색)을 두 동강냈다.

◇파키스탄에 ‘안보 딜레마’ 안긴 듀랜드 라인

파키스탄의 이런 ‘이중적 태도’는 지도를 보면 이해할 수 있다. 파키스탄은 북쪽으론 아프가니스탄, 동쪽으로는 인도 사이에 낀 나라다. 아프가니스탄과는 1893년 영국령 인도제국의 외무장관이었던 모티머 듀랜드가 당시 아프간 왕국과 합의한, 2640km 길이의 국경선을 공유한다. 그러나 이 국경선은 당시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을 벌이던 러시아의 남진(南進)을 막기 위해 인도(현재 파키스탄) 북부의 전략적 요충지인 카이버 패스(Khyber Pass)를 확보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결과적으로 듀랜드 라인은 두 나라에 걸쳐 최대 5000만 명이 사는 파슈투니스탄(Pashutunistan) 지역을 절반으로 쪼갰다.

역대 아프간 정부는ㅡ 1947년 8월 독립한 파키스탄에게, 이 파슈툰족 지역의 아프간 합병을 요구했다. 파키스탄이 응할 리가 없었다. 게다가 파키스탄의 ‘원수’라 할 인도는 2001년 미국의 침공으로 수립된 아프간 정부들과 깊은 경제?우호 관계를 맺으면서, 파키스탄을 ‘포위(encirclement)’하는 전략을 썼다. 파키스탄은 인도와 아프간 정부가 협력해 파키스탄 내 파슈툰족과 파키스탄 남부의 발로치스탄 독립세력을 부추겨 내란과 소요를 부추긴다는 안보 딜레마에 빠졌다.

영국 채텀하우스의 파키스탄 전문가인 파르자나 샤이크는ㅡㅡ “파키스탄 외교정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두려움을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파키스탄으로선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흔들어, 친(親)파키스탄 세력을 집권시키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카불 함락 이후, 파키스탄 정부의 기후변화 담당 장관이 “독립기념일을 맞은 인도에게 가장 적절한 선물”이라고 조롱하는 트윗을 게재한 것도 이런 맥락이었다.

◇처음엔ㅡㅡ 미국과 서로 이해관계 맞아

1979년 소련의 아프간 침공 이후, 미국과 파키스탄은 이해관계가 맞았다. 미국은 이후 10년간 소련(1989년 2월 철수)에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고, 파키스탄은 여전히 파슈투니스탄 합병을 요구하는 아프간의 공산 정권을 뒤흔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파키스탄은 미국의 돈으로, 아프간과 아랍 지역에서 몰려든 무자헤딘(이슬람 전사)들을 지원했다.

공산 정권이 무너지고ㅡ, 내전 끝에 1996년 아프간에 이슬람 정권을 세운 탈레반도 친(親)파키스탄 세력이었다. 1980년대 파키스탄 영토 안에 있는 과격 이슬람주의 신학교(마드라사)에서 공부하고 아프간으로 건너간 이들이었다. 당시 이 탈레반 정권을 승인한 나라는 사우디와 UAE, 파키스탄뿐이었다.

◇파키스탄 정보기관ㅡㅡ, “미국 돈으로 미국을 격퇴했다” 자랑

2001년 미국이 이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리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시작하자, 파키스탄은 겉으론 ‘지지’했다. 그러나 미군에 쫓긴 아프간 탈레반 수뇌부는 파키스탄에 근거지를 마련했고, 부상자는 파키스탄 병원에서 치료 받았다. 아프간 탈레반의 지도자 뮬라 오마르도 파키스탄의 한 군(軍)병원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알카에다 두목 오사마 빈라덴도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50㎞ 떨어진 곳에 숨어 있다가, 2011년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Navy SEAL)에 사살됐다.

아프간 탈레반 세력이ㅡㅡ 20년간 미국의 공격에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이렇게 파키스탄 정부의 실세인 군부와 정보기관 ISI가 탈레반을 지원한 덕분이었다.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은 지난 6월 “탈레반 1만 명이 국경 넘어 아프가니스탄으로 들어오는데도, 파키스탄 정부가 방치한다”고 공개 비난했다.

정보기관 ISI의 수장(首長)이었던 하미드 굴은 “역사는 ISI가 미국의 도움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을 격퇴했고, 그 다음에 한 줄 더 보태서 미국도 격퇴했다고 기록할 것”이라고 농담하기도 했다. 미국 평화연구소(USIP)의 최근 보고서 역시 “아프간 탈레반의 한 분파로 알카에다와도 관련이 있는 하카니 네트워크는 ISI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밝혔다.


◇알고도ㅡㅡ 파키스탄에 당해야 했던 미국

미국은 2002년 이후 대테러작전 비용 140억 달러를 비롯해, 330억 달러를 파키스탄 정부에 지원했다. 그러나 미국과 국제사회는 파키스탄의 이런 ‘이중 놀이’를 알고 있었다.

저명한 미 외교관으로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특사를 지낸 리처드 홀브루크(2010년 사망)는 “우리는 엉뚱한 나라(wrong country)에서 엉뚱한 적(wrong enemy)과 싸우고 있는지 모른다”고 했다. 아프간이란 무대 뒤에 숨은, ISI와 파키스탄 군부가 미국의 ‘진짜 적’이라는 얘기였다.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둔ㅡㅡ 대(對)테러 국제기구인 FATA는 지난 6월 “파키스탄 정부에 이슬람 테러단체 지원을 중단하고 국제적으로 합의된 플랜에 따라 행동할 수 있도록 4개월의 말미를 주고, 불이행시 북한?이란 수준의 금융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냈다.

그럼 미국은ㅡㅡ 왜 알고도, 파키스탄에 군사?경제 지원을 했을까. 아프간 전쟁 수행을 위해선 파키스탄의 육로 접근이 필수적이었다. 또 이슬람 국가이며 핵보유국인 파키스탄엔 이슬람 테러집단이 들끓어 정정(政情)이 매우 불안했다. 미국은 파키스탄 정부가 무너지고 이슬람 테러집단이 핵무기를 확보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선, 파키스탄 정부를 지원해야 했다.



파키스탄 정부가 미국의 아프간 대테러전쟁에서 330억 달러의 원조를 받으면서도,미국에 거짓과 기만을 되풀이했다고 비난하는 트럼프의 트윗/트위터 스크린샷
2018년 1월1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은 어리석게도 지난 15년 동안 330억 달러를 줬지만, 파키스탄은 우리에게 거짓말과 사기만 되풀이했다. 더 이상은 안 준다”고 트위터에 썼다.

◇갈수록 깊어지는ㅡㅡ 파키스탄?중국 관계

당연히 미국?파키스탄 관계는 최악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후 지금까지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와 단 한 차례도 통화하지 않았다. 칸 총리는 미국이 인도는 중국에 맞설 ‘전략적 파트너’로 여기면서, “파키스탄은 미국이 남긴 온갖 무질서를 청소할 때만 필요로 한다”고 비난했다.

중국 신장 위구르 지역과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의 남단 아라비아해를 잇는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CPEC) 프로젝트의 고속도로 계획./
2018년 이후 미국의 원조가 끊긴 파키스탄은 무기 수입과 경제협력의 파트너로 중국을 잡았다. 중국 위구르 지역과 아프간, 아라비아해(海)의 파키스탄 항구들을 잇는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CPEC) 프로젝트는 650억 달러 규모로, 도로?항만?공항?교량 건설 등 수십 개 프로젝트를 담고 있다. 중국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파키스탄 채무의 27%를 중국이 쥐고 있다. 파키스탄 증권거래소(PSX)의 지분 40%도 중국 소유다. 하지만, 채텀하우스의 샤이크는 “파키스탄은 중국과의 관계 강화를 통해서, 서방의 입김을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프간 탈레반 지원한 파키스탄, 자업자득될까?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마디하 아프잘 연구원은 파이낸셜타임스에 “탈레반의 득세(得勢)가 결코 파키스탄에 간단한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키스탄에서 끝없이 테러를 일으키며 이슬람 국가 설립을 꾀하는 파키스탄의 탈레반 세력인 TTP가 아프간 탈레반과 마찬가지로 파슈툰족이고 이념과 종교 성향이 같은 ‘한 뿌리’이기 때문이다.

2007년 아프간 탈레반의 지원을 받아 결성된 ‘파키스탄 탈레반(TTP)’은 그간 수많은 내전과 테러를 일으켜 파키스탄에서 6만 명을 살해했다. 2007년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를 암살하고, 2014년 페샤와르의 군인자녀 학교를 습격해 150명을 살해한 테러가 모두 TTP 소행이었다.

파키스탄의 실권자인 육군참모총장 카마르 자베드 바좌는 지난 7월 “탈레반과 TTP(파키스탄 탈레반)은 한 동전의 양면”이라고 말했다. 파키스탄 정부가 TPP를 단속하면, 이들 파키스탄 탈레반은 아프간으로 근거지를 옮겼다. 아프간 탈레반 세력은 최근 TTP 2인자로, 알카에다 수뇌부와도 깊은 관련을 맺었던 파키르 무함마드를 풀어줬다.
브루킹스의 아프잘 연구원은 “TTP는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접수를 이념적 승리라는 큰 그림의 한 부분으로 여긴다”며 “파키스탄에서 이슬람 테러가 더욱 급증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TTP는 파키스탄 인구의 25%를 차지하는 파슈툰족을 기반으로 해, 민족분리주의와 이슬람 율법에 근거한 ‘파슈투니스탄’ 건설을 목표로 한다. 미국 주재 파키스탄 대사를 지냈던 후세인 하카니가 최근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즈에 파키스탄의 ‘탈레반 지원 성공’을 “엄청난 희생을 치른 승리”로 묘사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카불의 아프간 탈레반 세력은 “아프간 영토가 타국을 겨냥한 테러를 저지르는 데 쓰이는 것을 막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한껏 기세등등한 아프간 탈레반이 얼마나 파키스탄 정부의 뜻을 따를지는 알 수 없다.이 탓에, 파키스탄 정부는 아프간 탈레반이 카불 점령 이후 ‘아프가니스탄 이슬람토후국’을 선포했지만,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아예 파키스탄 국가안보위원회는 “탈레반 정부 승인을 서두르지 말라”고 조언했다. 파키스탄은 내륙국 아프가니스탄의 해상 무역루트를 막을 수도 있다.

외교 전문지인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는 “파키스탄과 탈레반의 결탁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이해관계가 맞아 맺어진 혼인이었지만, 파키스탄의 탈레반에 대한 영향력은 계속 줄어들었다”고 진단했다. 영국의 탈레반 전문가인 아흐메드 라시드는 가디언에 “파키스탄에서 이슬람 근본주의와 극단주의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TTP가 파키스탄을 상대로 전쟁을 강화할 것”이라고 가디언에 말했다. 파키스탄이 뿌린 (이슬람 극단주의) 씨의 열매를 스스로 거두게 될 것이란 말이다.



2021.08.24 21:54:45
파키스탄, 중공, 이란의 지원을 받은 탈레반은 북괴처럼 미군철수를 노렸다. 월남 패망이 월맹과 미국의 평화협정 후 미군철수 후 바로 남침해서 월남이 패망했다. 미군이 떠나면 공산침략이나 탈레반과 IS의 침략으로 적화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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