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충기 입력 2021. 04. 16. 05:01 수정 2021. 04. 16. 08:20 댓글 38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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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명당]
심재학당과 함께 하는 풍수답사 (1)
"장흥 묘지는 풍수상 좋은 땅이 아니오"
그녀가 죽은지 1년 만에 이장을 한 뒤
손자부터 줄줄이 임금에 오르는데
대통령들 묘보다 명당인 이곳은 ..
그림=안충기,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서울 동작구에 있는 국립서울현충원. 보통 시민들에겐 ‘동작동 국립묘지’라는 표현으로 더 익숙한 곳이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국가유공자들이 잠들어 있다. 1955년 7월 국군묘지로 조성되었다가, 1965년 국립묘지로 승격되어 군인이 아닌 유공자들도 안장 자격을 얻게 되었다. 그래서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등 대통령들과 각계 저명인사들도 묻혀 있다.
현충원은 그런 남다른 의미를 가진 만큼 국가에 충성을 약속하는 정치인들이 선거 당선 등 특별한 날에 찾아가 마음을 다잡거나 정치적인 메시지를 알리기도 한다. 벚꽃 명소로도 유명해 요즘 같은 봄날엔 참배객뿐 아니라 상춘객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동작대교 남단 노을카페에서 본 현충원 전경. 왼쪽 멀리 관악산이 보인다.
관악산에서 이어지는 산줄기가 한강과 만나는 곳에 있는 현충원은 인근 동작대교 위에서 보면 그 전경이 한 폭의 그림같이 눈에 들어온다. 안으로 들어가면 순국 영령들의 올곧음을 상징하듯 자로 잰 듯 반듯하게 전개된 끝도 없는 묘지 행렬이 보는 이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든다.
셀 수 없이 많은 묘지 중 ‘국가유공자’라는 원래 취지와는 전혀 다른 묘지가 하나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조선 시대부터 있었던 오래된 묘지다. 바로 창빈 안씨(昌嬪 安氏) 묘. 무슨 사연이 있을까.
동작동 현충원에서 최고 명당으로 알려진 창빈 안씨 묘.
경내 한가운데쯤 이승만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 사이에 있는 주차장에 ‘창빈 안씨 묘역’이란 안내표지가 있다. 여기서 30m쯤 올라가면 크지도 작지도 않은 무덤 하나가 단아하게 자리 잡고 있다. 묘지로 가는 오솔길에 서 있는 신도비(神道碑)는 1550년경에 이 묘가 조성됐음을 알려준다. 현충원보다 400년이 더 됐다는 얘기다. 창빈 안씨가 사실상 이 구역의 본토박이 터줏대감임을 말해주는 셈이다.
창빈 안씨는 누구일까. 창빈은 조선 선조 임금의 할머니다. 연산군 5년(1499년)에 태어나 아홉 살 때인 중종 2년(1507년) 궁녀로 뽑혔다. 스무 살 때 중종의 총애를 입어 영양군, 덕흥군, 정신 옹주 등 2남 1녀를 낳았고, 1549년 50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당시는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하던 시기였다. 중종이 죽고(1544년) 다음 임금인 인종이 즉위 1년도 안 된 31세의 나이에 죽자(1545년), 인종의 이복동생인 명종이 왕위에 오르는데 그도 34세에 대를 이을 자식이 없이 죽는다(1567년). 누가 왕이 될지 모르는 어수선한 정국에서 명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사람(선조)이 바로 창빈 안씨가 낳은 덕흥군의 셋째 아들 하성군이다.
창빈 안씨의 입장에서는 손자가 임금이 된 것이다. 후궁의 손자가 임금이 되기는 조선 건국 이래 처음이었다. 이후 임금은 모두 창빈의 후손이다. 어떻게 보면 이때부터의 조선은 ‘창빈의 조선’인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풍수적으로 봤을 때 창빈 안씨의 묘소가 현충원 안에서 가장 좋다는, 이른바 ‘혈(穴) 자리’에 해당하는, 그야말로 명당 중의 명당이라는 점이다.
창빈 묘에 얽힌 풍수적인 스토리는 이렇다. 1549년 10월 창빈이 죽자 아들 덕흥군은 경기도 장흥에 시신을 모셨다. 그런데 그곳이 풍수상 좋지 않다는 말을 듣고 1년 만에 이장을 결심한다. 지금도 이장이 쉽지 않지만, 당시엔 이장한다는 것은 새로 장례를 치르는 것과 같았다. 많은 돈과 시간이 들어가는 까닭에 왕가에서도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덕흥군의 속마음이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이장을 결심한 그는 실력 있는 풍수 지관들을 동원해서 명당자리를 찾았고, 그곳이 바로 지금 창빈 묘역이다. 이장한 지 3년 만인 1552년 하성군이 태어났다. 그리고 1567년에 하성군은 선조 임금이 되었다.
하성군이 임금이 되자 창빈 묘역은 그야말로 ‘임금이 난 명당 터’가 됐다. ‘할머니 묘의 발복으로 임금이 됐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그렇지 않아도 선비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풍수설에 기름을 끼얹었다. 조선의 선비들이 낮에는 유교, 밤에는 풍수를 공부하고 토론했다는 말이 헛말이 아니었던 것 같다.
겸재 정선이 그린〈동작진〉. 동작대교 북쪽에서 지금의 현충원 쪽을 보고 그렸다.
당시 사회 분위기가 이러한데, 감각 있는 화가들의 눈에 이런 절묘한 스토리가 그냥 지나쳤을 리 없다.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이 18세기 중엽에 그린 '동작진(銅雀津)'은 바로 지금의 현충원 일대가 배경이다. 좌우의 산이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고, 그 앞으로 한강이 흐른다. 멀리 보이는 관악산이 든든하다. 명당의 조건을 두루 갖춘 곳으로, 당시 선비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던 터임을 보여준다.
풍수적으로 설명하면 관악산(祖山)의 기운을 이어받은 서달산(主山)이 좌우로 두 팔을 벌려 현충원을 감싸면서 흑석동 쪽의 산이 좌청룡(左靑龍), 사당동 쪽이 우백호(右白虎)가 된다. 서달산 능선 하나가 박정희 묘역을 살짝 비켜 내려오다가 다시 고개를 쳐들어 봉우리 하나를 만든다. 장군봉이다. 장군봉은 풍수상 현무(玄武)정이라 부른다. 주산의 강한 기운을 잠시 머물게 하였다가 다시 조금씩 흘려 보내주는 역할을 한다. 그 기운은 장군봉에서 다시 중심 산줄기(來龍)로 내려와 창빈 묘역에서 멈춘다. 땅 기운이 오롯이 뭉친 곳인데 이런 자리를 ‘혈(穴)’이라고 부른다.
능선의 오른쪽 산이 서달산. 왼쪽 산 아래가 박정희 대통령 묘소.
또한 기운이 좋은 터는 양쪽에서 물길이 흐르다 혈 자리 앞에서 하나로 합쳐(水口) 흘러나간다. 지금은 도로포장 등으로 금세 눈에 띄지는 않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창빈 묘역 양쪽으로 물길이 흐르다 묘역 앞에서 합쳐져 한강으로 흘러나가는 모양새를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 기운의 흐름이 조산(관악산) → 주산(서달산) → 현무정(장군봉) → 내룡(국가유공자 묘역) → 혈(창빈 묘) → 명당(일반 사병 묘역) → 수구(현충원 정문) → 객수(한강)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풍수에서는 ‘산은 인물을 키우고, 물은 재물을 창출한다(山主人 水主財)’고 얘기한다. 풍수의 핵심 화두 중 하나다. 그런 측면에서도 창빈 묘역은 좋은 산(인물)과 생기 넘치는 물(재물)을 다 품어 안고 있는 명당인 셈이다.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창빈 묘역 왼쪽 100m 지점에 이승만 묘역이 있고, 오른쪽 뒤편 10m 거리에는 김대중 묘역이 있다. 그 뒤로는 정일형·이태영 부부, 시인 이은상, 광복군 출신 이범석, 애국가 작곡자 안익태, 한글 학자 주시경, 민족지도자 조만식 등 쟁쟁한 인물들이 안장된 국가유공자 묘역과 장군묘역이 이어지고, 장군봉을 내려다보는 자리에 박정희 묘역이 있다. 김영삼 묘역도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창빈 안씨 묘에서 앞을 볼 때 왼쪽에 자리잡고 있는 이승만 대통령 묘.
창빈 안씨 묘에서 앞을 볼 때 오른쪽에 자리잡은 김대중 대통령 묘.
창빈 안씨 묘 뒤편에 자리잡은 박정희 대통령 묘.
창빈 안씨 묘역에서 앞을 볼 때 왼쪽 건너편 산자락에 있는 김영삼 대통령 묘.
풍수적 관점에서 보면 역대 대통령들과 국가 유공자들이 혈 자리에 있는 창빈 안씨를 호위하고 있는 형국이다. 왕을 낳고, 왕(대통령)들이 쉬는 곳. 바로 현충원이다.
동작동 현충원. 관악산에서 흘러내린 산줄기가 한강을 만나는 지점에 아늑하게 펼쳐져 있다. 그림=안충기
■ 심재학당은 풍수학자 심재(心齋) 김두규 교수와 함께 영역이 다른 전문가들이 모여 공부한다. 고서 강독과 답사를 하며 풍수의 현대적 의미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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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심재학당, 그림·사진=안충기 기자·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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