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노트(주식)

[머니S리포트-시험대 오른 K-배터리①]‘파우치형’ LG·SK 타격 vs 中 수혜

ngo2002 2021. 3. 30. 16:52

폭스바겐發 배터리 충격, 수세 몰린 K-배터리

 

  • 머니S 권가림 기자|조회수 : 4,462|입력 : 2021.03.30 06:30편집자주|성장가도를 달리던 한국산 배터리가 예기치 못한 암초를 마주했다. 폭스바겐이 한국 기업의 주력제품인 파우치형 배터리 대신 각형 배터리를 탑재하고 장기적으로는 자급률을 80% 수준까지 확대하겠다고 선언하면서다. 폭스바겐을 시작으로 글로벌 완성차 업체가 잇따라 ‘배터리 독립’을 선언하면서 K-배터리의 설자리가 줄어들 것이란 우려가 커진다. 배터리 시장은 전반적으로 커지고 있지만 한국의 점유율 확대에는 빨간불이 켜진 셈이다. 한국이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원재료의 가격 상승도 악재다. 분위기 반전을 위해선 차세대 배터리로 주목받는 전고체 배터리로 초격차 전략을 추진해야 하지만 양산까지는 아직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기로에 선 K-배터리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그래픽=김영찬 기자

“2023년부터 각형 배터리를 도입해 2030년엔 전체 전기차 모델의 80%에 탑재하겠다.” 올해 3월15일 진행된 폭스바겐 ‘파워데이’는 전 세계 배터리시장을 놀라게 했다. 골자는 폭스바겐이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공급하는 파우치형 배터리가 아닌 CATL 등 중국 배터리 업계가 주력하는 각형 배터리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단 각형 외 나머지 20% 물량에 대해선 원통형과 파우치형의 사용 가능성을 열어뒀다. 폭스바겐은 2030년까지 연간 240GWh(기가와트시·배터리 용량 단위) 규모의 각형 배터리 생산 공장을 스웨덴과 독일 등 유럽 내에 6개 지어 생산능력을 확보하겠다고도 선언했다. 

 

‘파우치형’ 주력 국내업체 발등의 불

 

전기차 배터리 제조업체별 배터리 타입.

폭스바겐의 배터리 전략이 공개되자 국내 배터리업계는 당황한 눈치다. 폭스바겐은 자체 전기차 배터리 플랫폼인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MEB)을 순수 전기차 ‘ID3’와 ‘ID4’ 모델에 적용했고 여기엔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가 들어간다. 내년부터 미국에서 생산되는 폭스바겐 전기차도 SK이노베이션 조지아 공장서 생산된 배터리가 탑재된다. 

 

두 회사는 폭스바겐의 수년치 물량을 확보한 상태지만 이후 수주 가능성은 낮아졌다. 배터리업계와 완성차업계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신규발주 물량은 1400GWh에 달할 전망이다. 이 중 폭스바겐그룹(폭스바겐·아우디·포르쉐 등)의 발주 물량은 400GWh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으로선 29%의 폭스바겐 잠재 수주 물량을 잃은 셈이다. 

 

특히 미국 조지아주에 11.7GWh 규모의 공장을 짓고 있는 SK이노베이션 입장에선 더욱 힘 빠지는 소식이다. 파우치형 배터리만을 생산하는 SK이노베이션은 폭스바겐 배터리 공급을 위해 미국 내 1공장에 이어 2공장 건설에 착수했다. SK이노베이션은 LG에너지솔루션의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10년간 미국 내 배터리 수입이 금지될 위기에도 놓인 상황인데 폭스바겐의 노선 변경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SK이노베이션은 ▲현대·기아자동차 ▲다임러 ▲포드 등에도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 2위인 GM과 르노 및 현대차 등을 고객사로 두고 있는 데다 원통형 배터리도 생산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타격이 적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두 회사 모두 ‘슈퍼 발주처’를 놓쳤단 점에선 “타격은 타격”이라고 입을 모았다. 폭스바겐의 지난해 전기차 판매량은 38만대로 테슬라 44만대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공장 신설보단 20% 물량 겨냥

 

LG에너지솔루션 파우치 배터리. /사진=LG에너지솔루션

다만 양사는 각형 배터리 공장 설립에 대해선 신중을 기하는 모양새다. 우선 폭스바겐 각형 전환의 직접적인 영향을 체감하기엔 수년의 시간이 걸린다. LG에너지솔루션은 MEB 수주 계약에 따라 향후 4~5년 동안 폭스바겐에 물량을 더 공급해야 한다. 

 

SK이노베이션은 2022년부터 1년 동안 물량을 공급하게 된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폭스바겐은 한꺼번에 각형 배터리 비중을 늘리는 게 아니라 점차 늘려나갈 것”이라며 “기존 수주 물량을 공급하며 각형 공장 증설에 대해 고민해봐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각형 배터리와 파우치 배터리는 생산공정이 달라 공장 설립에 최소 2~3년이 걸린다. 지금 각형 배터리 공장을 착공하더라도 빠르면 폭스바겐이 각형 배터리 생산을 선언한 2023년에야 가동을 할 수 있다. 업계는 폭스바겐 각형 배터리의 초기 물량을 스웨덴 배터리제조사 노스볼트가 우선 가져갈 것으로 보고 있다. 

 

노스볼트는 폭스바겐이 자체 투자하고 있는 곳으로 중대형 각형과 소형 원통형 배터리를 주력으로 생산하고 있다. 두 회사는 2023년 양산을 목표로 독일에 연간 16GWh 규모의 합작 공장을 세우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미국·중국·헝가리 등에 이미 증설 투자를 진행한 점도 신규 각형 공장 설립에 섣불리 나서지 못하는 이유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당장 공장 증설에 나서도 초기 물량 수주엔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며 “향후 수주를 고려하면 증설에 나설 수도 있지만 배터리 분쟁과 투자 상황 등을 고려하면 관망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두 회사는 폭스바겐이 열어둔 나머지 20% 물량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고 봤다. LG와 SK 측 관계자는 “폭스바겐은 원통형 배터리 탑재 기술력이 없어 각형을 제외한 물량은 파우치형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며 “폭스바겐은 가격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절대 단일 벤더로 가지 않기 때문에 나머지 물량 수주를 노려야 할 것”이라고 했다. 

 

각형 배터리를 주력으로 하는 삼성SDI는 표정 관리를 하고 있다. 삼성SDI는 현재 폭스바겐에도 일부 물량을 납품하고 있다. 삼성SDI가 올해 1조원을 투자한 헝가리 괴드 공장의 중대형 각형 배터리 생산라인 4기 증설이 끝나면 각형 배터리 생산능력은 기존 30GWh에서 50GWh로 확대된다. 

 

이는 연간 전기차 100만대에 배터리를 공급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창민 KB증권 연구원은 “삼성SDI는 국내 업체 중 유일하게 각형 전기차 배터리를 주력 생산하고 있다”며 “폭스바겐이 각형 배터리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경우 반사이익 가능성도 기대된다”고 분석했다.

 

배터리 내재화 시대 고부가만이 살길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셀 연구원이 파우치 배터리를 들고 있다. /사진=SK이노베이션

폭스바겐의 이번 선언을 계기로 국내 배터리업계가 성능과 품질 개발에 더욱 주력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폭스바겐의 각형 배터리로의 전환 속엔 중국 배터리사와의 경쟁구도가 있다. 폭스바겐 매출의 40%는 중국에서 발생한다. 

 

폭스바겐은 중국 5위 배터리 업체인 궈시안 지분 26%를 보유한 최대주주이기도 하다.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사용량 8위 궈시안은 각형 배터리를 생산하고 있다. 1위인 중국 CATL과 4위 BYD의 주력 제품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폭스바겐이 짓겠다고 한 6개 공장이 노스볼트뿐 아니라 중국 업체와 합작해 건설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배터리업체의 입맛에 맞추지 않으면 중국 정부가 보조금을 차별하거나 없앨 수 있다”며 “현지 업체와의 협력 강화 움직임을 보일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배터리업계엔 저렴한 중국산 배터리보다 탁월한 성능과 효율을 갖춘 배터리 개발이 과제가 됐다. 중국 배터리업체의 영토 확대와 함께 배터리의 내재화를 선언하는 완성차업체가 늘어나면 국내 배터리업계의 경쟁력이 점점 뒤로 밀려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박철완 서정대학교 자동차과 교수는 “완성차업체의 배터리 내재화는 예견된 일이었지만 국내 배터리업계는 준비하지 않고 있었다”며 “한국은 중국·일본·유럽에 비해 기술력이 크게 앞선 상황이 아니다. 각 기업이 구조조정과 배터리 생산 로드맵 재정비 등을 통해 배터리 대전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권가림 hidden@mt.co.kr  | 

 

안녕하세요 산업1팀 권가림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