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문화

[삼성전자 40년] ③ 새로운 40년을 향해

ngo2002 2009. 10. 30. 08:34

"기업에는 역사만 있을 뿐, 나이는 없다. 기업은 끊임없는 신진대사와 자기 혁신을 통해 영원히 변신하고 진화해나가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삼성 이건희 전 회장이 1999년 11월 30년사 발간 기념사로 남긴 말이다.

수많은 기업이 흥망성쇠를 반복하는 현실 속에서 10년 전 이 전 회장의 말은 또 다른 40년을 준비해야 하는 삼성전자의 고민을 현재형으로 담고 있다.

◇ 길을 만들어 가는 리더를 지향한다 = 삼성전자에 지난 40년이 소니와 샤프, 모토로라 등 굴지의 전자기업을 넘어서기 위한 추격의 시간이었다면 다가올 40년은 스스로 길을 만들어야 하는 고뇌의 시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의 한 최고경영자(CEO)는 1등 기업으로서 안고 있는 고민을 다음과 같이 토로한 적이 있다.

"2등은 1등을 넘어서고자 목표를 세우고 따라가기만 하면 되지만, 1등은 새로운 기술을 바탕으로 제품을 창조하고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1등 자리는 금방 남의 차지가 되고 만다."

삼성전자는 1997년 3월 사업구조를 10년 후 열매를 맺을 '씨앗사업', 과수로 자랄 '묘목사업', 현재 회사의 성장을 이끌 '과수사업'으로 구분해 경영전략을 짰다.

이 전략은 삼성전자의 오늘이 있게 한 밑거름이 됐다.

당시 씨앗산업은 이동통신 시스템, 네트워킹, 시스템 LSI(비메모리 반도체)였고, 묘목사업은 디지털TV, 휴대정보 단말기, TFT-LCD였다. 과수사업은 대형 컬러TV, 모니터, 노트북, 휴대전화, 메모리 반도체였다.

당시 묘목사업이었던 디지털TV와 LCD는 현재 과수사업으로 성장했다.

삼성전자는 지금까지 성장을 주도한 반도체, LCD, 휴대전화, TV 등 주력 사업에서 기술력과 시장 리더십을 강화하고, 솔루션 사업과 IT 디바이스, 에너지·환경, 바이오·헬스 분야에서 신수종 사업 발굴을 확대하는 경영전략을 추구해 왔다.

매출 100억 달러 이상을 올리는 주력 사업을 메모리 반도체, LCD, TV, 휴대전화 등 4개 부문에서 프린터, 시스템 LSI를 추가해 6개 부문으로 확대하고, 현재 11개인 세계 1위 제품을 2013년까지 20개로 늘린다는 목표를 좇고 있다.

세계 시장 점유율 40%에 이르는 D램 반도체는 '더 크게', '더 빠르게', '더 미세하게'라는 3대 전략을 세워놓고 후발업체와의 거리를 벌리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차세대 D램인 DDR3 D램은 주력 공정을 30~40나노급으로 미세화하고, 저장장치인 SSD(Solid State Disk) 사업 확대도 진행 중이다.

후발업체가 따라올 수 없는 기술 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극대화하고 시장 지배력을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주목받는 플렉시블(구부릴 수 있는) 디스플레이와 태양광 패널 분야의 기술력 강화, 시스템 LSI 및 MP3 플레이어용 칩 등의 일류화를 목표로 한 제품 육성도 집중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글로벌 1위인 노키아를 맹추격하는 휴대전화 부문에선 500만 화소 이상의 고화소 카메라와 풀 터치폰 등 선진국 시장을 겨냥한 고부가가치 제품을 늘리고, 스마트폰 사업 기반 강화 등 양적, 질적인 면에서도 지속적인 성장을 모색하고 있다.

세계 시장에서 소니의 아성을 깨고 1위에 올라선 디지털 TV 분야에선 대형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TV와 초고화질 UD급 TV, 3차원 영상(3D) TV, 초박형 LCD TV 등으로 진화를 거듭하며 후발 주자들의 추격을 따돌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또 지난달 14일 반도체 신화가 탄생한 기흥사업장에서 결정형 태양전지 연구개발 라인을 가동함으로써 미래에 `황금알을 낳는 사업'이 될 수 있는 태양전지 부문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 도쿄·프랑크푸르트 선언..그 다음은(?) = 삼성전자가 도약을 이루는 고비마다 사운을 건 오너의 결단과 변화에 대한 강력한 주문이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병철 선대회장이 반도체 사업 진출을 발표한 1983년 2월8일 도쿄선언이 있었다.

이건희 전 회장이 '질(質) 중시 신(新) 경영'을 강력하게 주문한 1993년 6월7일의 프랑크푸르트 선언도 새로운 도약의 토대가 됐다.

두 선언 모두 삼성전자 역사뿐 아니라 세계 전자산업에 큰 획을 그은 사건이다.

또 다른 40년을 준비하는 삼성전자가 과연 '제3의 선언'을 내놓을지 재계의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삼성전자의 공식 경영에 오너 체제의 리더십은 빠져 있다.

경영권 편법 승계 문제가 걸려 있던 `에버랜드 사건' 등에 대한 특검 수사로 지난해 4월 이건희 전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 5월 대법원에서 에버랜드 사건에 무죄가 선고되면서 법적으론 오너 경영으로 복귀하는데 걸림돌이 됐던 요소들이 상당 부분 제거됐다.

하지만 탈세 등 일부 유죄로 확정된 것에 대한 여론을 고려해야 하는 등 삼성이 오너 체제를 서둘러 재가동하기에도 여건이 녹록지가 않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 계열사의 독립 경영 체제가 언젠가 이건희 전 회장이나 이재용 전무 중심의 오너 경영 체제로 되돌려질 가능성이 크지만 정확한 시기를 예측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삼성 내부에서도 CEO들을 중심으로 오너 경영의 필요성을 강하게 거론하고 있지만, 밖으로 드러내 놓고 얘기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권오현 삼성전자 반도체담당사장은 28일 창립 40주년을 앞두고 열린 사장단협의회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그는 삼성전자가 글로벌 반도체 기업으로 성장한 배경으로 ▲2라인 건설 때 6인치 웨이퍼 생산라인 채택(1984) ▲반도체 집적방식으로 트렌치(Trench)가 아닌 스택(Stack) 채택(1988) ▲5라인 건설시 세계 최초로 8인치 양산 라인 선택(1989년) ▲낸드 플래시 독자 개발 결정(2001년)을 들었다.

이들 결정은 이건희 전 회장이 오너 경영자로서 던진 승부수로 알려져 있다.

업계의 한 소식통은 "오너 체제의 강력한 리더십이 현재의 삼성전자를 이룬 것을 부인하기가 어렵다"며 "새로운 40년을 여는 삼성전자가 지금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 경영체제의 문제일 것"이라고 말했다.

minor@yna.co.kr

2009.10.29 06:05:20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