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지식/공부미락

박종인의 땅의 역사

ngo2002 2019. 11. 12. 09:55

11년 동안 고종은 일곱 차례 파천을 시도했다

서울 중구 정동에 남아 있는 러시아 공사관은 1896년 2월부터 1897년 2월까지 조선 26대 국왕 고종이 살던 곳이다. 이를 '아관파천(俄館播遷)'이라고 한다. 왕비가 일본인에게 살해되고 국왕 목숨도 위태로웠으니..

2019.11.12

  • 러·일이 대포를 꺼낼 때 고종은 파티를 벌였다

    경상남도 거제시 계도마을 앞바다에 무인도가 하나 있다. 이름은 취도(吹島)다. 면적은 570평 정도다. 섬 서쪽 봉우리 위에는 탑이 솟아 있다. 기단 높이는 270㎝ 정도고 위에는 70㎝쯤 되는 포탄 탄두가 박혀 있..

    2019.11.05
  • 일본 해군은 왜 이순신을 군신으로 존경했는가

    1971년까지 거제시 장목면 장목지서 앞에는 작은 돌다리가 놓여 있었다. 당시 답사 중이던 동아대학교 교수 김동호와 군청 공무원 이승철이 돌다리 아래를 거울로 비춰보니 글씨가 새겨진 비석이었다. '적 함대를 맞아 모..

    2019.10.29
  • 베트남 국부 호찌민이 목민심서를 읽었다? 거짓말입니다!

    장수 가운데에는 이순신이 있고 학자 가운데에는 정약용이 있다. 대한민국 사람 모두가 존경하는 위인들이다. 그런데 존경이 도를 넘으면 자만이 되고 자만이 지나치면 왜곡이 된다. 학자 정약용에 관해 세간에 사실인 양 떠..

    2019.10.22
  • 神의 비밀을 품고 기사들은 수도원 속으로 사라졌다

    1118년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순례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예루살렘에서 템플기사단(Order of the Temple)이 설립됐다. 21년 뒤인 1139년 아폰수 1세가 포르투 칼레 지역에서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고 ..

    2019.10.15
  •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2013)에서 주인공 그레고리우스(제러미 아이언스)가 책을 읽는다. 책에는 이런 문구가 나온다. '어떤 곳을 떠날 때 우리는 우리의 일부를 남긴다. 떠나더라도 그곳에 머무는 것이다.' 이 ..

    2019.10.09
  • 함께 앉아 있었으나, 그 끝은 너무도 달랐다

    서기 1888년 2월 22일 맑은 날 조선국 주미 전권대신 박정양이 일기를 썼다. '서력 1888년 2월 22일은 미국 초대 대통령 워싱턴의 생일이다. 평민으로, 여러 사람 추천을 받아 원수(元帥)가 되어 영국과 전..

    2019.09.25
  • "권력과 왕비는 영원히 서인이 갖도록 하자"

    '세상에 전해 오기를 반정 초에 공신들이 모여 맹세할 때 두 가지 비밀스러운 약속을 했는데, 그것은 '왕실 혼인을 놓치지 말자[勿失國婚·물실국혼]'와 '재야 학자를 추천하여 장려하자[崇用山林·숭용산림]'는 것이다. ..

    2019.09.11
  • "임진왜란 때보다 군사가 더 강하니, 겁낼 것 없다"

    서기 1874년 어느 여름날 아침 창덕궁 중희당에서 어전회의가 열렸다.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새벽 1시 무렵 내린 비는 동이 터서야 겨우 멎었다가 오후까지 또 쏟아졌다. 궐내 측우기 강수량은 3치 5푼, 약 100..

    2019.09.04
  • "우리 편이니, 역적이라도 처벌은 불가하다"

    서울 종로구 서울과학고등학교 교정에는 천재암(千載岩)이라는 바위가 있다. '천년바위'라고도 한다. 바위 위에는 '今古一般(금고일반)' 네 글자가 새겨져 있다. 예나 지금이나 신념은 한결같다는 뜻이다. 과학고에서 나와..

    2019.08.28
  • "나는 의병장 후손이다. 태극기에 의지해 80년 살았다"

    고영준이 창평에 살게 된 내력이제는 기억이 가물가물해, 정확한 연도도 생각나지 않는다. 1939년생인 고영준은 국민학교 1학년 때 해방을 맞았고 중학교 1학년 때 6·25를 당했으며 대학교 4학년 때 4·19를 겪었..

    2019.08.14
  • 히데요시의 狂氣에 대처했던 조선 지도부의 자세

    임진왜란 7년 전인 1585년 7월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스스로 최고위직인 관백(關白)에 오르며 중국 침략 계획을 공개했다. 이듬해 5월 일본을 찾은 포르투갈 예수회 선교사 코엘료에게 그는 "명과 조선 침략을 위해 군..

    2019.08.07
  • 하늘이 도운 게 아니라 완벽한 준비로 이긴 것이다

    울돌목까지 조선 해군이 몰리게 된 속 터지는 경과에 대하여"조선 수군이 수전을 잘하고 선박도 견고하니 어두운 밤에 몰래 나가서 습격하되 조선의 큰 배 한 척에 일본은 작은 배 5~6척 내지 7~8척으로 대적하고 화살..

    2019.07.31
  • 장엄하였으되 처참하게 희생된 애국자들

    앞뒤 말 다 걷어치우고, 전쟁은 이겨야 한다. 1871년 미군과 벌인 신미양요와 1597년 일본군과 싸운 명량해전을 비교해본다. 신미양요는 참패했고 명량해전은 대승을 거뒀다. 이긴 전쟁과 패한 전쟁 이야기다.세상을 ..

    2019.07.24
  • 텅 빈 비석 속에 추잡한 정치인들이 보인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안양판교로 도로 건너 산속에 무덤이 여럿 있다. 조선시대 무덤이다. 그 가운데 '이경석 선생 묘' 표지판을 따라가면 왼편에 작은 공터가 나온다. 그 옆 언덕에 비석이 보인다. ..

    2019.07.17
  • "백성은 세상 일 알려 말고 忠孝하며 살거라"

    서기 1771년 6월 2일, 양력 7월 13일 여름 아침이었다. 태양 볕 아래 경희궁 중간문인 건명문 앞에는 남정네들이 우글거렸다. 사내들은 모조리 발가벗고 두 손을 뒤로 묶인 채 나란히 엎드려 있었다. 아침부터 이..

    2019.07.10
  • 100년 전 서대문에는 왕만 걷는 다리가 있었다

    기찻길 옆 청나라 약방서대문에 다리 하나가 있었다. 구름다리라고도 했고 무지개다리, 홍교(虹橋)라고도 했다. 대략 현 한국씨티은행에서 경희궁 앞 흥화문까지 난 다리였다. 다리 아래에는 전철이 지나갔다.청나라 사람 양..

    2019.07.03
  • 서울과 평양이 함께 추모하는 독립군, 양세봉

    1934년 9월 20일 평안북도 철산 사람 양세봉(梁世奉)이 죽었다. 전날 중국 요령성 환인현 소황자촌 옥수수밭에서 총을 맞았고, 이튿날 죽었다. 일주일 뒤 누군가가 그 무덤을 파헤쳐 작두로 목을 잘라 갔다. 서른여..

    2019.06.26
  • 동굴에 새긴 화랑 이름에서 고구려 멸망사를 읽었다

    어느 나라가 됐건 망국(亡國) 과정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권력이 집중되고, 권력층 판단력이 흐려지고, 그 흐리멍덩한 권력 눈을 가리는 저질 정치배들의 농단과 국력 소진, 그리고 멸망. 조선 망국이 그러했고 고려왕..

    2019.06.19
  • 예천 금당실 솔숲에 숨은 근대사의 비밀

    금당실은 경상북도 예천에 있다. 사람들은 옆마을 맛질과 합쳐서 '금당 맛질 반(半) 서울'이라고 했다. 온전히 서울까지는 못 되더라도 그 위세만큼은 서울 절반은 된다는 말이다. 지금도 금당실 한가운데 난 도로 이름은..

    2019.06.12
  • 또다시 중국이 조선 내정 개입한 전쟁, '6·25'

    올해 여든아홉 살인 한준식은 열다섯 살에 광복을 맞았다. 그가 말했다. "일제시대 그 시절의 혹독한 기억은 그리 많지 않다. 아무래도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해남에서 나고 자라 나랏일에 많은 영향을 받지 않았던 것 같..

    2019.06.05
  • "내 나라여 영원하라"

    1910년 8월 22일 대한국(大韓國) 황제 순종이 대일본 천황 메이지(明治)에게 대한국 통치권을 이양했다. 대한국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과 대일본 통감 자작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전권을 위임받아 '일한합병조약'에 서명..

    2019.05.22
  • 망국의 징조, 부패와 탐욕

    "일찍이 구만리를 돌아다녀 보고 위아래 4000년 역사를 보았지만 한국 황제와 같은 사람은 처음 보았다." 이 말을 한 사람은 구한말 조선에서 활동한 사업가 겸 의사 겸 외교관 호러스 알렌이다. 칭찬인가, 조롱인가...

    2019.05.15
  • 실패한 혁명가에게 목숨은 허용되지 않았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뒤뜰에는 커다란 비석이 있다. 이름하여 '북묘묘정비'다. 1887년에 세운 비석이다. 문체는 웅장하고 글씨는 아름답다. 글쓴이는 조선 왕국 26대 왕 고종이고 글씨를 쓴 사람은 민영환이다. ..

    2019.05.08
  • 그때 일본에는 있었고 조선에는 없었던, '헌신과 희생'

    '죽어야 그친다'일본 야마구치현 하기시에 있는 기도 다카요시(木戶孝允)의 생가 대들보에는 '死而後已(사이후이)'라는 낙서가 적혀 있다. '죽어야 그친다'는 뜻이다. '논어' 태백편에 나온다. 목숨을 건다는 말이다. ..

    2019.05.01
  • 일본의 영웅, 조선의 원흉들이 일어섰다

    서구 제국주의 격랑이 아시아를 덮치던 19세기 말, 일본은 근대화에 성공해 강국(强國) 대열에 합류했다. 조선은 일본의 강국 건설 과정에서 제물(祭物)이었다. 왜 한 나라는 다른 나라의 심장을 도려내 제단에 올려놓았..

    2019.04.24
  • 유학도 전쟁도 협상도 청은 일본에 참패했다

    1867년 11월 9일 일본 도쿠가와 막부가 천황에게 통치권을 반납했다(대정봉환·大政奉還). 임진왜란 직후인 1600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권력을 잡은 이래 267년 만이었다. 두 달 뒤 일본은 왕정 복고를 단행했다..

    2019.04.17
  • 1871년 조선은 척화비를 세웠고 일본은 근대를 향해 떠났다

    경상북도 구미 구미국가산업 2단지에는 석현이라는 고개가 있고 그 고개 옆 언덕 잔디밭에는 큰 바위가 있다. 높이 1m75, 너비 1m86이다. 이렇게 적혀 있다.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양이침범 비전즉화 주화매..

    2019.04.10
  • 조선 도공의 불씨로 일본은 군함을 만들었다

    아편전쟁, 조선 그리고 일본19세기가 왔다. 정치혁명과 산업혁명과 과학혁명이 유럽 대륙을 휩쓸었다. 전 지구를 무대로 시장 개척 전쟁이 벌어졌다. 유럽 전사(戰士)들이 탄 배는 대량 살상 무기로 무장돼 있었다. 협조..

    2019.04.03
  • "이들이 일본의 보물을 만들 것이다"

    〈지금까지 이야기〉서기 1543년에 세 가지 일이 벌어졌다. 폴란드 신부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발표했다. 일본은 포르투갈로부터 철포를 수입해 국산화했다. 조선은 성리학 교육기관인 서원(書院)을 설립했다.이보다 10..

    2019.03.27
  • "노자, 석가, 제자백가 모조리 이단이다"

    "만 갈래 강과 밝은 달의 늙은 주인(萬川明月主人翁·만천명월주인옹)이 말한다. 나는 태극·음양·오행의 이치를 깨닫게 되었다. 사람은 각자 생김대로 써야 한다는 이치도 터득하였다."(홍재전서10권, '萬川明月主人翁自序..

    2019.03.20
  • 1719년 통신사 신유한 "어찌하여 오랑캐가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말인가!"

    일본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 아카마신궁 앞 부두에는 조선통신사 기념비가 서 있다. 정확하게는 조선통신사 상륙엄류지지(朝鮮通信使上陸淹留之地) 기념비다. '엄류(淹留)'는 머물렀다는 뜻이다. 2001년 한일의원연맹이 세웠..

    2019.03.13
  • 인공섬 데지마에서 일본은 근대를 배웠다

    하멜의 추억1666년 9월 4일 억류 생활 13년 만에 조선을 탈출한 하멜 일행은 사흘 만에 일본 규슈 북서쪽 작은 섬 히라도(平戶島)에 도착했다. "풀이나 뜯는 노예로 사느니 죽는 게 낫다"며 감행한 탈출이었다. ..

    2019.03.06
  • 조선이 명을 섬길 때 일본은 세계를 만났다

    선조, "문약해서 망했네"임진왜란 와중인 1593년 음력 10월 22일 선조가 정기 어전회의를 주재했다. 1년 반 전 개전 보름 만에 의주로 도망갔다가 환도한 지 석 주째 되는 날이었다. 왕이 말했다. "경상도 풍속..

    2019.02.27
  • 조선은 은을 버렸고 일본은 은을 손에 쥐었다

    첨단 은 제련법, '회취법'서기 1503년 5월 18일 김감불(金甘佛)과 김검동(金儉同)이라는 사내가 경복궁에 입궐했다. 두 사람은 각각 양인(良人)과 노비다. 벼슬도 없는 사내들이 어전회의에까지 출석했다. 그때 왕..

    2019.02.20
  • 꿈처럼 사라져버린 세종의 '과학 시대'

    1392년 개국한 신생 왕국 조선에서는 50년 만에 찬란한 과학의 시대가 꽃피었다. 천재 집단이 창조한 시대였다. 지도자도 천재였고 그 조직원도 천재들이었다. 15세기 세종과 그 학자들 이야기다. 1543년 코페르니..

    2019.02.13
  • "가뭄 구제보다 중한 것이 교화로다!"

    서기 1543년 코페르니쿠스가 지구를 돌리고(3월 21일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출판), 6개월 뒤 그 지구를 반 바퀴 돌아 포르투갈 철포(鐵砲)가 일본에 상륙했다(9월 23일). 유럽은 중세 암흑기를 탈출해 세계..

    2019.01.30
  • 1543년 9월 열다섯 살 일본 지도자는 총을 수입했다

    1543년 5월 24일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발표하고 죽었다. 지구는 급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4개월 뒤 유럽 기준으로 지구의 동쪽 끝 일본에 유럽인이 상륙했다. 국적은 포르투갈이고 이들이 상륙한 곳은 일본 가..

    2019.01.23
  • 코페르니쿠스는 왜 지구를 움직였는가

    '그 바보가 언덕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네 / 머리에 붙은 눈에는 세상이 회전하고 있다지(But the fool on the hill sees the sun going down and the eyes in his he..

    2019.01.09
  • 서기 1543년, 무슨 일이 벌어졌나

    15세기 유럽은 대항해의 시대였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경쟁적으로 동서로 배를 띄워 무역로를 개척했다. 동아시아에서는 1405년 무슬림 환관 정화가 이끈 명나라 함대가 아프리카까지 진출했다. 세계는 연결되고 있었다...

    2019.01.02
  • 허세의 제국이 문을 닫았다

    제국, 군함을 도입하다1903년 1월 25일 대한제국 군부대신 신기선이 일본 미쓰이물산(三井物産)과 군함 인수 계약을 체결했다. 군함 이름은 훗날 양무호(揚武號)라고 지었다. 석 달 만인 4월 15일 양무호가 인천 ..

    2018.12.12
  • 왕이 宮을 버렸다

    선조, 인조 그리고 고종 500년 조선왕조 역사에서 궁궐을 탈출한 왕이 셋이다. 횟수는 다섯 번이다. 1592년 양력 6월 9일 임진왜란 개전 17일 만에 선조가 폭우 속에 의주로 갔다. 경복궁은 불바다가 됐다. 이..

    2018.12.05
  • 왕비, '노다지'를 팔아치웠다

    왕비가 나선 금광 양도 1895년 7월 10일 조선 왕실 일등상궁이 미국 공사관 참찬 아내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엿새 뒤 열릴 개국기원경절(開國紀元慶節) 초대장이다. 조선왕조 건국을 기념하는 날이다. 참찬 아내 이름..

    2018.11.21
  • 허세 가득한 날들이었다

    황태자, 생일잔치를 청하다 1901년 12월 11일 대한제국 황태자 이척(李坧)이 황제 고종에게 상소를 했다. '부황(父皇) 폐하의 높고 훌륭한 공덕은 선열보다 빛나고, 크고 깊은 혜택은 후세에 전할 것입니다. 하늘..

    2018.11.14
  • 소공동 언덕에 하늘문이 열리다

    1895년 10월 8일 새벽 경복궁 건청궁에서 자고 있던 왕비 민씨가 일본인 무리에게 살해됐다. 남편 고종은 이듬해 2월 11일 아들과 함께 정동에 있는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했다. 아관파천(俄館播遷)이다. 고종은 ..

    2018.11.07
  • "황제 은총에 조선이 살아 있으니!"

    어느 제삿날 어느 제삿날에 서른넷 먹은 젊은 관료 정약용이 시를 쓴다. 청나라 천주교 신부 주문모 밀입국 사건에 연루됐다는 혐의로 좌천됐다가 용양위 부사직이라는 한직으로 복직한 지 석 달 만이다. 내용은 이렇다. '..

    2018.10.31
  • "감시 받고 사느니 대문을 없애겠다"

    적외선 필터를 통해 사진을 찍으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빛으로 세상을 기록하니, 시퍼런 여름 경치가 설국(雪國)이 되고 무심하던 사물도 명징해진다. 충청남도 논산에는 조선 후기 소론(少論) 영수 명..

    2018.10.24
  • "세상이 좁으니 소리 내 울 곳이 없구나"

    오래 기침병을 앓다가 그가 죽으니 나이 서른여덟 살이었다. 벼슬살이는 크게 하지 못하였으나, 문장으로 이름을 떨친 사내였다. 평안도 도사로 취임하러 갈 때 죽은 기생에게 술잔을 올리는 객기, 단종 복위를 꿈꾸다 죽은..

    2018.10.10
  • 벗들은 왜 모두 송시열에게 등을 돌렸나

    조익 묘에서 사라졌던 신도비 충남 예산군 신양면에 포저 조익 묘가 있다. 인조 원년인 1623년 조익은 "백성에게 항산(恒産)이 있게 하기 위해 10분의 1의 세금을 곡물(穀物)로 거둬야 한다"고 상소했다.('포저집..

    2018.10.03
  • 송시열이 北伐을 추진했다고?

    충청북도 괴산 화양동계곡 초입에 복원이 덜 된 유적이 있다. 문 너머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 문이 또 나오고 그 뒤쪽 건물에 현판이 걸려 있다. 만동묘(萬東廟). 명나라 황제 신종과 의종을 모신 사당이다. 사당에서 ..

    2018.09.19
  • 병역 의무 무시하더니 4만 대군이 전멸했다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 대쌍령리 326-4번지 산기슭에 집이 한 채 앉아 있다. 인도도 없는 도로에 홍살문이 솟아 있고 그 너머 한 칸짜리 기와집이 있다. 사당이다. 정충묘(精忠廟)라 한다. 음력 정월 초사흘이면 광주..

    2018.09.12
  • 백 번 무릎을 꿇었다, 나라를 지켰다

    1270년 2월 연도(燕都·북경) 몽골 황제 쿠빌라이 세조는 참으로 난감하였다. 평생을 전쟁터에서 보낸 쉰다섯 먹은 무장이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입만 열면 이런저런 요구를 쏟아붓는 변방 나라 고려 왕 원종이..

    2018.09.05
  • "나를 거스르지 말라, 죽음뿐이니라"

    지하 1000m 막장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분들께는 송구한 표현이지만 연산군은 그냥, 막장이다. 영민한 머리는 국가와 공동체 대신 스스로를 위해 굴렸다. 노력 없이 물려받은 권력은 욕망을 채우는 데에만 썼다. 기준은..

    2018.08.29
  • "장가는 보내지 않겠소이다, 시집오라 하시오"

    사위들의 마을 경주 양동 다음은 경상북도 경주 양동마을 약전(略傳)이다. '고려 말 경기도 여주 땅에 살던 여강 이씨 이광호가 변란기를 피해 경주 땅 양동마을에 숨어 살았다. 그 손녀와 풍덕 류씨 류복하가 결혼을 하..

    2018.08.22
  • 선조가 선언했다 "가짜 도굴범을 진범으로 처형하고 국교를 회복하라"

    선정릉 도굴되다 임진왜란 개전 다섯 달 뒤 왕세자인 광해군에게 이런 보고가 올라왔다. '정릉(靖陵)이 파헤쳐지는 변괴가 있었다.'(1592년 9월 27일 '선조실록') 정릉(靖陵)은 광해군의 증조부 중종의 릉이다. ..

    2018.08.15
  • 그들이 협상을 하는 사이 조선은 철저하게 유린됐다

    이상한 비석 하나 1902년부터 1940년까지 서울 용산구 용산문화원 자리에는 이노우에 요시후미(井上宜文)라는 일본인이 살았다. 고층건물에 가려서 보이지 않지만, 주변보다 높아 옛날에는 한강이 바라보였다. 사람들은 ..

    2018.08.01
  • 뒷구멍으로 종묘에 모셔진 '공신' 이완용

    '…선왕에 공이 많고 덕이 두터운 신하 몇 명을 선택하여 종묘에 배향(配享·위패를 함께 모시는 의식)하는 법이 있다. 순종 부태묘를 앞두고 지난 3일 영친왕으로부터 이왕직 장관을 경유해 박영효 후작, 민영휘 자작 이..

    2018.07.25
  • "그래, 내가 나라의 도둑 김옥균을 죽였다"

    1893년 7월 22일 프랑스 파리에 살고 있던 조선 사내가 친구와 작별했다. 친구인 동양학자 펠릭스 레가메가 그에게 물었다. "프랑스에서 뭐가 좋았어요?" "마르세유에서 본 말들입니다. 아주 커 보이더군요." "나..

    2018.07.11
  • 은행나무는 보았다, 남산에서 벌어진 경술년 치욕을

    100년 전 사진 한 장을 본다. 기모노를 입은 여자 셋이 앞에, 그 뒤로 사내 셋이 언덕을 오른다. 언덕 위 건물이 웅장하다. 왼편에 까치집이 있는 나목(裸木)은 은행나무다. 일제 강점기 조선 명소를 소개하는 사진..

    2018.07.04
  • 그 많던 장영실의 흔적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어느 날 세종이 영의정 황희와 좌의정 맹사성에게 한 기술직 관리 승진 여부를 의논한다. 서기 1433년 음력 9월 16일이다. "장영실이 자격궁루(自擊宮漏)를 만들었는데 그 공이 작지 아니하므로 호군(護軍)의 관직을..

    2018.06.27
  • 그날 조선은 눈 뜨고 모든 걸 도둑맞았다

    양놈들의 난동 1871년 신미년 6월 1일 존 로저스 제독이 지휘하는 미국 아시아함대 군함 5척이 강화도에 도착했다. 군함에는 해군과 해병대 1230명이 승선해 있었다. 미군은 강화도와 김포 사이 염하(鹽河)를 북상..

    2018.06.20
  • 유관순의 魂은 어디에 쉬고 있을까

    1920년 9월 28일 오전 8시 20분, 일본 식민지 조선 경기도 경성부 서대문감옥 여자 8호 감방에서 한 소녀가 죽었다. 나이는 열여덟이고 죄명은 소요 및 보안법 위반이다. 14일 뒤 소녀가 다니던 이화학당으로 ..

    2018.06.06
  • 1907년 남대문, 누가 박승환 대대장을 죽였나

    1907년 8월 1일 대한제국 육군 참령 박승환(朴昇煥)이 서울 남대문 옆 시위대(侍衛隊) 1연대 1대대 사무실에서 권총으로 자살했다. 시위대는 황제 근위부대다. 참령은 현 계급으로 소령이다. 개인 신병 비관이 아니..

    2018.05.30
  • 왜 그는 혁명을 택하지 않았을까

    군인 이순신은 철저하게 무너졌다. 계급장을 떼이고,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고, 무계급으로 전투에 투입되고, 전쟁터에서 죽었다. 그가 겪은 정신적 수모와 육체적 고통은 끔찍하다. 의문이 생긴다. 모두가 군신(軍神..

    2018.05.23
  • "문득 알게 되었다, 세상은 혼자 사는 곳이 아님을"

    고등계 형사 자살하다 1919년 5월 14일 밤 만주 봉천 출장길에서 돌아온 종로경찰서 조선인 고등계 형사 신승희가 남대문역에서 체포됐다. 씌워진 혐의는 수뢰죄였다. 경성 헌병분대에서 이틀간 진행된 심문에서 신승희는..

    2018.05.16
  • 나는 제주의 神, 여자이니라

    송시열, 김정희 그리고 제주 뭍사람에게 제주는 아름답다. 옛날도 그랬다. 육지에서 유배당한 지식인, 권력자 눈에도 그랬다. 1689년 음력 3월 3일 조선 후기 권력자 송시열은 제주 유배 나흘 만에 이렇게 쓴다. '..

    2018.05.09
  • 잊어서는 아니 될 두 사람의 족적을 밟아본다

    상해임시정부 '七可殺(칠가살)'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 기관지 가운데 하나인 '독립신문' 1920년 2월 5일 자 1면은 이렇게 시작했다. '우리의 적이 누구누구뇨. 전시의 적에게는 사형이 있을 뿐이니라. 과거 1년간..

    2018.05.02
  • "은인자중하여라, 우리는 나라를 등진 사람이니라"

    서기 1620년 음력 10월 사여모(沙汝某)라는 무장(武將)이 광해군으로부터 교지(敎旨)를 받았다. 임명된 직급과 직책은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다. 가선대부는 종2품이고 중추부는 무임소 관료 조직이다. 그 이전 직책은..

    2018.04.18
  • 국치 열이틀 뒤 선비 황현 죽다

    봄이 흐르는 구례와 매천(梅泉) 황현(黃玹) 梅花 핀 구례에 살던 구한말 유학자 황현부국강병 신학문 교육 "신학문이 더럽지만 나라 더러움보다는 더럽지 아니하다"경술국치 때 자결"죽을 의무는 없으나 자결하는 선비 ..

    2018.04.11
  • 暴君은 충직한 내시 김처선을 배를 갈라 죽였다

    강직한 내시 김처선과 청도 내시 고택의 비밀고려 국정 농단한 내시조선시대, 권한 대폭 축소… 난세에는 역사 전면에연산군 '비서실장'급 김자원… 온갖 악행 일삼아내시 김처선(金處善)은 목숨 걸고 간언하다 비참한 죽음..

    2018.04.04
  • 떠난 이도, 머문 이도 모두 그리운 和順이었다

    그리움에 대하여 그리운 것이다. 적벽(赤壁) 아래 마을은 모두 사라졌으니, 마을에 살던 사람들은 적벽이 그리워, 강이 그립고 마을이 그리워서 해마다 적벽 앞 정자에 모여드는 것이다. 김삿갓이 그리운 것이다. 팔도를 ..

    2018.03.28
  • 1904년 대한제국 시대, 돈값은 'X값'이었다

    "호텔 사동이 소리쳐서 나가 보니 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돈더미는 둘레가 60피트(18m)에 높이는 3피트(90㎝)였다. 서울에 있는 환전소들이 금고가 바닥나 모두 문을 닫았다."―1904년 5월 미화 150..

    2018.03.21
  • 壬亂 후 부산에 일본 그릇공장이 서고, 기술은 역전됐다

    임진왜란 그리고 국교 정상화 1601년 임진왜란이 끝나고 3년 뒤 한양 사람 박언황이 일본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돌아왔다. 박언황은 조정에 출석해 일본 종군 승려 겐소(玄蘇)로부터 들은 말을 이렇게 전했다. "일본이 ..

    2018.03.14
  • 壬亂 직후 일본은 조선에 그릇 공장을 세웠다

    1913년 어느 날 일본 대마도 제1 도시 이즈하라(嚴原) 경매장에 대마도주 소씨(宗氏) 가문 소장품이 대거 출품됐다. 도쿠가와 막부 시대 역사와 문화 자료는 물론 영화로운 소씨 문중 재화가 쏟아져 나왔다. 그 가운..

    2018.03.07
  • 그리하여 김유신은 王이 되었다

    연전에 신문, 방송에 대서특필된 이야기다. 경상북도 경주 충효동 김유신 무덤 비석에 물을 부으면 陵(릉)이라 새겨진 글자가 짙은 색 墓(묘) 자로 확 바뀐다는 것이다. 물을 부을 필요도 없다. 맨눈으로도 시멘트 같은..

    2018.02.28
  • 茶山의 꿈은 사라지고, 城은 불탔다

    호남 육군사령부 강진 전라남도 강진은 탐진이라고 했다. 제주도로 가려면 으레 강진나루를 통했으니 탐라(耽羅)의 탐(耽), 나루터의 진(津) 자를 써서 탐진이다. 멀고 험한 섬, 원악도(遠惡島) 제주로 유배당한 이들은..

    2018.02.14
  • 지조 있는 기생 산홍, 지조 없는 매국노를 심히 꾸짖더라

    봉알자리와 진주 고려시대 왕실을 주름잡았던 진양 강씨 가문을 꼴사납게 보다가, 조정에서는 진주에 있는 강씨 문중 대봉산(大鳳山)을 비봉산(飛鳳山)이라 개명했다. 봉황이 날아갔다는 뜻이다. 돌아오지 않는 봉황을 위해 ..

    2018.02.07
  • 五福洞에 가보니 탄광시대 잿빛 추억만..

    행복에 대하여 삶의 목적은 행복이다. 플라톤도 그랬고 아리스토텔레스도 그랬다. 공자도 그랬고 맹자도 그랬다. 항산(恒産)에 항심(恒心)이 있다고, 등 따시고 배불러야 정치도 잘된다고 했다(無恒産者因無恒心).〈맹자, ..

    2018.01.31
  • 뭔 일이 있었건대 山이 저리 타는 것이냐!

    1980년대 멀리 떠난 낯선 마을 담벼락에 수시로 보였다. 방첩표어다. '지나가는 저 나그네 간첩인가 다시 보자.' 체제 경쟁이 적대적인 폭력으로 분출되던 냉전시대 여행길이었으니, 역사적인 촌극이라 이해하고 넘어간다..

    2018.01.24
  • 江에게 물어본다, 모진 세월 그들은 어찌 살았냐고

    일제강점기 호남 땅을 꿰찬 일본인들은 여섯 군데 마을을 삼성삼평(三城三平)이라 불렀다. 곡성·장성·보성과 함평·남평·창평이다. 한마디로 "고춧가루 서 말을 먹고 뻘 속 삼십 리를 기어가는" 독한 동네라는 것이다. 앉..

    2018.01.17
  • 그때 왕자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한강 남쪽 관악산에 연주대(戀主臺)가 있다. 주군을 그리워한다는 바위다. 조선 3대 군주 태종 이방원의 두 아들 양녕과 효령대군이 올랐던 절벽이다. 셋째 동생 충녕에게 왕위를 물려주고서 두 형이 올라 한양도성을 바라..

    2018.01.10
  • 우리 선화 공주는 어디로 가 버렸을까?

    일정한 직업도 재산도 없는 시골 노총각이 도시에 예쁜 여자가 산다는 소문을 들었다. 뒷조사 과정에서 부유한 권력자 집안임을 알게 된 사내는 아이들에게 접근해 낭설을 퍼뜨리게 하였다. 금품 제공도 잊지 않았다. '여자..

    2018.01.03
  • 솔숲은 늘 푸른데, 숲에 난 발자국은 모두 다르더라

    대나무가 많은 담양에는 인물도 많다. 인물이 많으니 사연도 많다. 사연 많은 인물만 추려도 글이 한 바가지이니, 비슷한 무렵 살았던 두 사람만 이야기한다. 정철이 살았다. 16세기 정적(政敵)들에게 공포를 안겨준 냉..

    2017.12.27
  • 자식 사랑 지나치니, 역사가 바뀌더라

    조선 4대 임금 세종은 자식 농사에 대풍(大豐)을 거두었다. 세종은 정비와 후궁 합쳐서 부인이 여섯 명이다. 자녀는 스물두 명이었고, 그 가운데 아들이 열여덟 명이다. 열한 살이던 1408년 두 살 연상인 청송 심씨..

    2017.12.20
  • 그때 경성에는 천국이 있었고 악마가 있었다

    나라는 사라졌다. 조선말도 함부로 쓰지 못하게 되었다. 나라를 살리려는 사람들은 줄줄이 끌려갔다. 사는 거 재미없었다. 재미가 아니라 지루하거나 힘들었다. 악의 근원은 일본이었다. 선택지는 몇 되지 않았다. 친일을 ..

    2017.12.13
  • "권력은 너희 것이 아니니, 함께 누리리라"

    어무적(魚無迹)은 조선 연산군 때 사람이다. 무적(無迹)은 흔적이 없다는 뜻이니 본명은 아니다. 그가 이런 시를 쓴다. 제목은 '유민탄(流民歎)'이다. '떠도는 백성을 탄식함'. 백성이여 어렵고 어렵구나/ 갈수록 가..

    2017.12.06
  • "우리는 수입품을 쓰지만, 너희는 사치하지 말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 전시장에는 책장을 그린 병풍이 한 폭 있다. 책가도(冊架圖)라고 한다. 귀한 책들을 꽂은 서가를 그린 그림이다. 차곡차곡 쌓아놓은 책들 사이에 문방사우(文房四友) 또한 그려 넣었다. 사진은 20세..

    2017.11.29
  • 잊힐까 서러워서 땅에 새겨둔다

    망각은 서럽다. 무관심은 두렵다. 그래서 오늘도 사람들은 일기를 쓰고 맑은 가슴으로 옛일을 추억한다. 추억이 기억이 된다. 기억이 모여 역사가 된다. 경상남도 거창에서 만난, 추억 혹은 역사 이야기다. 기억 1 - ..

    2017.11.22
  • 농민 학살.. 왕비 시해.. 사내는 그 어디에든 선봉에 섰다

    전라북도 전주 기린봉 초입에 무덤이 하나 있다. 호석(護石)을 제대로 두른 큰 무덤이다. 그 오른편에 비석이 서 있다. 높이가 2m는 넘는다. 비석에는 무덤 주인공 행적이 가득하다. 몇 자 읽어본다. '벼슬에 나아가..

    2017.11.15
  • 남의 땅에서 벌어진 전쟁, 조선군은 그들을 위해 싸웠다

    1894년 7월 29일 새벽 장맛비가 쏟아졌다. 밀물이 안성천에 밀려들었다. 충남 천안 성환 소사평 벌판은 물구덩이로 변했다. 그 악다구니 속에서 일본군과 중국군이 전투를 벌였다. 일본군이 대승을 거뒀다. 이보다 나..

    2017.11.08
  • '나는 늙은 나무가 될 터이니 편히들 와서 쉬시게'

    그리하여 내가 물었다. "집안에서 숙주나물 먹지 않나요?" "잘 먹습니다. 요번 한글날에도, 매번 다른 나물 안 올라갑니다. 할아버지께서 그 나물 너무 좋아하셔서 꼭 제사상에 올립니다. 대신 녹두나물이라고 하지요."..

    2017.11.01
  • "너희가 팔아먹은 나라, 우리가 찾으리라"

    나라가 사라지고 만 1910년 경술년 겨울이었다. 중국 간도 땅 유하현 횡도촌에 몇 무리 사람들이 모였다. 모인 사람 이름은 다음과 같다. 강화도에서 온 양명학자 이건승과 홍승헌, 정원하 그리고 소론 출신 서울 갑부..

    2017.10.18
  • "비록 세상을 다 보았으되, 나는 그저 여자였으니.."

    세상의 절반은 여자라 했다. 갈 길 아직 멀지만 남녀 평등사회가 오기까지, 그녀들의 삶은 지난하였다. 그 지난한 삶을 발과 눈으로 느껴보려고 강원도 원주로 가본다. 가을 햇살에 반짝이는 두 여자의 옛 삶을 한번 느껴..

    2017.10.11
  • "뒷문으로 다닐지언정, 더러운 꼴은 보지 않겠노라"

    1762년 여름, 창덕궁 실록에 따르면 아비 눈 밖에 난 사도세자는 보름 동안 아버지 영조 부름을 기다렸다. 1762년 음력 5월 23일부터 윤5월 13일까지다. 그동안 밥을 먹었다는 기록도 없고 물을 마셨다는 기록..

    2017.09.28
  • 돌탑이 묻는다, 나는 언제 귀향할 것인가

    서울 남산에는 쌍회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다. 백사 이항복이 지었다. 구한말 이유원이라는 후손이 정자를 두고 흥선대원군과 크게 다투고 이름을 홍엽정이라 바꿔버렸다. 그 정자에서 독립운동가인 아들 이석영, 회영 형제가 국..

    2017.09.21
  • 일 중독자 세종 사후 19년, 그 무덤을 옮겼더니..

    뚱뚱한 우리 임금님 친형제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냉정한 권력자 태종이지만, 아들 건강에 관한 한 그저 아버지였다. 왕위를 물려받은 셋째아들 세종이 육식만 밝히는 데다 운동도 하지 않는 책벌레이니 걱정이 태산 같았다...

    2017.09.14
  • 무능한 정권이 자초한 전쟁.. 백성들의 붉은 피

    1636년 겨울 47일 동안 이 땅에서 벌어졌던 전쟁, 병자호란(丙子胡亂)을 차근차근 살펴보기로 한다. 비현실적으로 무능하고 이기적인 권력자들 탓에 고생한 백성들 이야기다. 강화도 갯벌을 뒤덮은 나문재 풀밭이 저리 ..

    2017.09.07
  • 만주로 갔느니라.. 목숨을 바쳤기에 떳떳했느니라

    이은숙의 혼례 1908년 10월 20일 서울 명동 상동교회에서 열아홉 살 규수 이은숙이 마흔한 살 먹은 사내 이회영과 서양식으로 혼례를 치렀다. 첫 아내와 사별한 이회영은 두 번째 결혼이다. 평안도 암행어사와 이조판..

    2017.08.31
  • 흰 소나무는 보았다, 주인 잃은 집터와 나라를

    재동에 사는 늙은이 18세기 후반, 서울 재동에는 덩치 큰 늙은이가 살았다. 붉은 얼굴에 구레나룻이 듬성듬성했고 귀밑까지 광대뼈가 뻗었는데 이마에 주름을 잡고 입을 열면, 그 목소리가 수십보 떨어진 담장 밖까지 들렸..

    2017.08.24
  • 승전보를 보냈더니 조정은 장수 목을 베어버렸다

    1419년 조선 4대 왕 세종이 왜구 본거지 대마도를 정벌했다. 1449년에는 두만강 유역 여진족을 소탕하고 4군 6진을 설치했다. 국가 안위를 위협하는 무리를 단칼에 처단한 이 나라에 143년 뒤 전쟁이 터졌다. ..

    2017.08.17
  • 사람들이 말하길.. "창덕궁 주인은 무당이라네"

    불우했으되 총명했던 여자가 야반도주해 비루하되 신통력 있는 여자를 만났다. 충주 장호원 아흔아홉 칸짜리 민응식이라는 사람 집에서였다. 지금 그 집터에는 매괴성당이 서 있다. 이후 역사는 기이하게 흘러간다. 135년 ..

    2017.08.10
  • 보아라, 폭군의 흔적이 여기 있다

    우산군 이종 가문의 멸족 조선 3대 임금 태종 이방원과 후궁 영월 신씨의 셋째 아들 온녕군(溫寧君) 이정(1407~1453)은 아들이 없었다. 하여 동생 근녕군(謹寧君) 이농의 둘째 아들 우산군(牛山君) 이종을 양자..

    2017.06.28
  • 그때 우리네 삶은 고단했었느니라

    1945년부터 2017년까지 72년 동안 대한민국은 많은 일을 겪었다. 해방과 전쟁과 전후 복구와 독재와 민주화와 성장. 임진강이 흐르는 경기도 파주와 연천 땅에는 그 격변의 흔적이 남아 있다. 장파리 1960~19..

    2017.06.14
  • 열린 땅 內浦에서 영웅을 만났다

    초능력자 상놈 김복선 토정비결을 썼다는 토정 이지함이 아산 현감이던 시절 얘기다. 어느 날 하늘을 보니 아무날 아무시에 바다가 터져 육지가 사라질 조짐이 보였다. 하여 온 땅을 돌아다니며 주민들을 피신시키고 있는데 ..

    2017.06.07
  • 하늘 바깥 섬나라에서 꿈을 꾸었다

    송시열과 제주도 1689년 음력 3월 3일 노론계 대부 송시열이 제주도로 유배를 왔다. 친족 몇과 함께였다. 나흘 뒤 그가 권치도라는 후학에게 편지를 썼다. '한라산에는 눈이 잔뜩 쌓였는데 산 아래는 꽃들이 화려하게..

    2017.05.31
  • 듣거라 하늘아, 나는 大金의 황제니라

    어느 여자의 무덤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수자봉 기슭 솔숲에 무덤이 하나 있다. 조선 시대 무덤이다. 564년 전 여덟 살 먹은 아이 하나 업고 이곳 상신마을에 숨어든 여자 무덤이다. 주소는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 산..

    2017.05.24
  • 南江이 피로 물들던 날, 선조는 도주 중이었다

    "임금이 이른다. 너희가 처음에 왜에게 잡혀서 다니는 것은 너의 본마음이 아니라 죽을까 여기며 편들었던 것임을 안다. 서로 권하여 다 나오면 죄 주지 아니할 뿐 아니라 벼슬도 줄 것이다." 서기 1593년 음력 9월..

    2017.05.17
  • 萬人義塚에 萬人은 없었다

    역사 교과서에서 이리 배웠다. '정유재란이 벌어진 1597년 추석 무렵 남원성을 공격한 일본 6만 대군에 맞서 싸우던 백성과 의병, 관군 1만 명이 전멸했다. 추석을 하루 넘긴 날이었다. 전후 전사자들을 합장했다. ..

    2017.05.03
  • 완도 청해진 사당에는 장보고가 없었다

    해상왕 장보고가 만든 전남 완도 청해진에는 사당이 있다. 장보고가 아닌 송징이라는 장군을 천년 동안 모신 사당이다. 그런데 30년도 되지 않은 최근에 그 주신(主神)을 송징에서 장보고로 바꾸었다. 아니, 바꾸게 되었..

    2017.04.19
  • 고랑포 좁은 물길에서 1500년 역사를 보았다

    사진 한 장에 1500년 역사가 담겨 있다. 사진 속 강은 임진강이고 양안을 잇는 포구 이름은 고랑포다. 경기도 연천과 파주를 잇는 고랑포와 임진나루에서는 몇백 년에 한 번씩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5세기 광개토왕 ..

    2017.04.12
  • 옛 조문국 의성 땅에는 위대한 여자들이 살았다

    경상북도 의성에 얽힌 이야기는 A부터 Z까지 미스터리다. 특히 여자에 관해서는. 위대한 그녀 '송은 따님' 사촌(沙村)에는 정승 셋이 난다고 했다. 신라 때 나씨 성을 가진 정승이 난 이래 정승이 없었으니 이제 조선..

    2017.04.05
  • 저 절터에서 늙은 이성계는 칼을 갈았다

    틀린 곳을 찾아보자. '아들 이방원이 벌인 행태에 신물이 난 이성계는 함흥으로 떠났다. 아들이 보낸 사신들을 족족 죽였다. 함흥차사(咸興差使)라는 말이 나왔다. 결국 아들 태종과 만나 궁으로 돌아왔는데, 그 만난 곳..

    2017.03.29
  • 日人 갑부 우치다니 집에는 여전히 봄볕이..

    정유재란 초기 조선 해군사령관 이순신에게 닥친 일은 끔찍했다. 모함을 쓰고서 고문을 당했다. 계급장이 뜯긴 채 육군사령관 권율 밑에서 전투에 임하다 모친상을 당했다. 후임 사령관 원균은 칠천량전투에서 병력을 궤멸당하..

    2017.03.22
  • 왜 그들은 가평 땅에 숨어서 명나라를 그리워했을까

    경기도 가평군 옛 이름은 조종현(朝宗縣)이다. 지금은 가평이다. 그 가평에 조종천이 흐른다. 물이 맑고 잔잔해 여름이면 물놀이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조종암(朝宗巖)은 그 조종천변에 있다. 주소는 가평군 조..

    2017.03.15
  • 만주벌 봉오동 승리 뒤에는 최운산이 있었다

    저수지 옆 소나무 중국 지린성 투먼시 봉오동에는 저수지가 있다. 봉오수고(鳳梧水庫)라고 한다. 육중한 철문을 넘어가면 왼쪽 언덕 아래에 탑이 하나 보인다. 이렇게 적혀 있다. '봉오골 반일 전적지(鳳梧溝反日戰迹地)'..

    2017.03.08
  • 그녀가 잠든 곳, 원수의 무덤에서 40리 언덕

    조선 7대 임금 세조와 왕비가 묻힌 경기도 남양주 광릉 옆에는 고찰이 하나 있다. 세조비 정희왕후 윤씨가 남편을 위해 중창한 원찰이다. 이름은 봉선사다. 그 초입 오른편을 보면 비석군이 나온다. 역대 주지스님 부도비..

    2017.02.22
  • 왕릉은 알고 있다, 그때 무슨 일이 경주 땅에 벌어졌는지

    김춘추의 복수극 저 쓸쓸하고 웅장한 왕릉들을 대면하려면 신라의 삼국통일 과정을 읽어야 한다. 서기 642년 음력 7월 신라 대야성 성주 김품석과 아내 고타소가 죽었다. 성을 침략한 백제군은 두 사람 목을 잘라 백제 ..

    2017.02.15
  • 맥국이 사라진 춘천 땅에 무덤이 세 개가 있는 이유는..

    강원도 춘천은 미스터리의 도시다. 멀쩡한 도시에 어느 날 갑자기 호수가 생겼으니 그 첫째 미스터리요, 그 옛날 춘천 땅에 있던 맥국(貊國)이라는 고왕국(古王國)이 마술처럼 사라져 버렸으니 둘째 미스터리다. 그 미스터..

    2017.02.08
  • 석탑은 보았다, 남한강에 흘러간 복잡다기한 역사를

    신라 38대 원성왕이 하루는 걸음걸이 속도가 똑같은 사내 둘을 나라 북과 남에서 걷게 하였다. 이들이 만난 곳에 큰 절을 짓고 탑을 올렸다. 국토 정중앙이라 하여 중앙탑이라 이름하였다. 충북 충주시에 서 있는 칠층석..

    2017.02.01
  • 마이산 그늘에 숨어 있는 '16세기 죽음의 리스트'

    서기 1380년 어느 날 몽골제국 다루가치 가문 출신 무사가 꿈을 꾸었다. 고려에 귀화한 지 24년 만에 꾼 길몽이었다. 꿈에서 수염 하얀 도인이 금으로 만든 자, 금척(金尺)을 주면서 세상을 바꾸라고 말하는 것이었..

    2017.01.25
  • 파락호 핏줄 속에는 선비의 기개가 흘렀다

    1946년 생전에 투전판 들락거리며 신줏단지를 세 번이나 팔아먹은 천하의 파락호(破落戶) 김용환이 죽었다. 그리고 49년 뒤, 파락호의 딸이라 멸시받던 고명딸 후웅이 이리 회상하였다. "자랑스런 우리 아배 학봉 종손..

    2017.01.18
  • 그때 하늘에 해가 솟으니 세상은 빛을 찾았더라

    사진가 서상호는 경상북도 포항시 구룡포에 산다. 3·1 만세운동이 벌어지기 석 주 전인 1919년 2월 6일 구룡포에서 태어나 100년째 구룡포에 산다. 한국 나이로 아흔아홉 살이다. 그동안 세상은 해방이 되었고, ..

    2017.01.11
  • 우수리스크 빈집에서 마주친 한 우국지사의 뒷모습

    안중근 '코레아 우라!'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중국 하얼빈역에서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 그리고 그가 소리쳤다. "코레아 우라!" 서른 살 먹은 의병장 입에서 나온 언어는 중국어도 일..

    2016.12.28
  • 조선 왕실이 500년 동안 찾아 헤맨 왕조의 뿌리, 준경묘

    추억도 역사도 세월 따라 잊히고 사라진다. 일기장 쓰지 않고 기록도 남기지 않으면 그 흔적도 사라지니 할 수 없다. 오직 기억뿐. 강원도 삼척 바닷가에는 그런 아릿한 역사와 아릿한 추억이 몇 군데 있다. 김종오의 추..

    2016.12.14
  • 고구려 땅 만주벌에서 잊고 있던 그들을 만났다

    배달학교 이야기 1920년 11월 3일 중국 길림성 통화현 반라배촌에 있는 배달학교에 일본군 헌병대가 들이닥쳤다. 청산리전투와 봉오동전투에서 참패한 만주 주둔 일본군이 조선인 박멸을 목표로 펼친 경신대토벌 작전의 일..

    2016.11.30
  • 폐허가 된 쌀창고 속에서 역사를 읽었다

    사람들은 숨긴다. 창피한 일을 숨기고 남 손길 탈까 두려워 귀한 일도 숨긴다. 그래서 역사가 은폐되고 왜곡된다. 그런다고 영원히 은폐되는가. 기록이 없어도 다행히 흔적은 남아, 2016년 겨울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즐..

    2016.11.23
  • 왜가리 앉은 소리도 절벽에는 황금이 숨겨져 있다던데

    보물섬 이야기 고려 개국공신이자 승주 땅, 지금 전라남도 순천 지역 호족이던 박영규가 한 섬에 황금을 숨겨뒀다는 소문이 돌았다. 천년 넘게 떠돌던 소문이었다. 1945년 해방이 되고서는 일본인이 해저 금광에서 캐낸 ..

    2016.11.16
  • 섬진강 안개 속에는 골짜기도 많고 전설도 많더라

    섬진강과 대황강 사이 골짜기마다 마을이 들어서니, 이들을 합쳐서 곡성이라고 한다. 곡소리 나게 운다는 곡성(哭聲)이 아니라 골짜기가 만든 성, 곡성(谷城)이다. 전남 곡성군 내 읍, 면, 리 마을 가운데 눈에 띄는 ..

    2016.11.09
  • '당신들의 天國'에서 마주친 서글픈 역사

    소록도와 시인 한하운 함경도 청년 한태영은 열일곱 살 되던 1936년 자기가 나병에 걸린 사실을 알았다. 지주집 아들이라 먹고살 걱정은 없던 청년이었다. 병원에서 의사가 이렇게 말했다. "소록도에 가면 나을 병이니 ..

    2016.11.02
  • 백제 사신 길 떠나던 바위에는 낯선 이름들만 가득하더라

    조선 중기 선비 정온(鄭蘊·1569~1641)은 거창 사람이다. 호는 동계(桐溪)다. 병자호란(1636~1637) 때 조정이 항복을 결정했다. 인조가 남한산성 성문을 나설 무렵 정온은 칼로 자기 배를 찔렀다. 예순일..

    2016.10.26
  • 정선 동굴에 들어가 근대 百年史를 물어봤다

    개마고원에서 단임골까지, 리영광 이야기 1967년 9월 18일 밤 리영광은 강원도 금강군 이포리 용산골 제1집단군 입대 석 달 만에 철책을 넘었다. 한가위 달빛이 배신자 등을 하얗게 비췄다. 동료들은 다른 쪽으로만 ..

    2016.10.19
  • 옛 절터에 서니 먹먹한 역사가 보였다

    흥법사지 거북이 이야기 18세기 실학자 홍양호(洪良浩·1724~ 1802)가 쓴 문집 이계집(耳溪集) 16권에는 '원주 반절비(原州半折碑)'라는 글이 있다. 내용은 이러하다. '원주 영봉산 반절비는 고려 태조가 내린..

    2016.10.12
  • 전우치가 황금을 숨긴 담양 대밭에는..

    여우가 가르쳐준 도술 16세기 조선에는 도사(道士)들이 많았다. 서경덕과 토정 이지함과 남사고와 곽재우가 이때 살았다. 임진왜란을 예언하고 전쟁을 도술로 치른 영웅과 기인들이 이때 사람들이다. 정확한 생몰연대는 모르..

    2016.10.05
  • 지상에 강림한 별빛, 여수 밤바다

    낙안읍성과 이순신과 임경업 1591년 이순신이 전라좌수영에 부임했을 때 처음 한 일은 군량미와 물자 확보였다. 남도를 순시하던 이순신이 순천 낙안읍성에 닿았다. 필요한 물자를 수레에 실은 일행이 떠나려는데, 은행나무..

    2016.09.28
  • 고마나루 언덕에 잠든 백제 부활의 꿈

    꿈, 이상한 꿈―무령왕릉 발견기 1971년 7월 4일 국립중앙박물관 공주 분관 관장 김영배는 꿈을 꾸었다. 산에서부터 쫓아온 멧돼지 한 마리가 집 안까지 난장판을 치는 꿈을 꾸었다. 7월 5일 김영배는 송산리 고분 ..

    2016.09.21
  • 이 장엄한 땅 주인은 러시아인에서 관광객으로 바뀌었다

    '공기를 어떻게 팔 수 있는가'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 있는 틸리쿰 플레이스 광장에는 주점 '5 포인트 카페'가 있다. 창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1929년부터 주정뱅이와 관광객을 등쳐먹고 있나이다.' '틸리쿰'..

    2016.09.07
  • 559년 전 청령포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나

    평온하게(寧) 지나가는(越) 땅, 영월(寧越)이다. 산이 높고 골이 깊어 한번 들어가면 큰 화(禍) 없이 무탈하게 살 수 있는 땅이다. 하나 559년 전 열일곱 먹은 소년이 영월에 가고 살고 죽은 내력은 그 누가 보..

    2016.08.31
  • 고단한 삶은 끝나고.. 사람들은 호숫가를 걸으며 안식한다

    파로호 호숫가 삶은 모질었다. 화전민 부부 장윤일과 김영순도 모질게 살았다. 칠십이년째 장윤일은 생각 중이다. 왜 나는 고단하게 살고 있을까. 뱀도 잡아봤고 송이를 캐고 낚시꾼들 수발 들며 네 아들딸 휼륭하게 키워냈..

    2016.08.24
  • 구룡령과 조침령을 넘어 우리는 방태산으로 숨었다

    풍수학자 최창조는 충격을 받았다. 전화(戰禍)를 피하겠다는 일념으로 황해도에서 경북 풍기로, 풍기에서 신도안으로 떠돌다가 충남 공주 명당골에 자리 잡은 노인이 이리 말하는 것이다. "자본(資本)이 명당이외다. 돈만 ..

    2016.08.10
  • 산에는 달이 머물고 폭포에는 피리소리가 스쳐갔네

    당재터널 이야기 충북 옥천과 영동 사이 경부고속도로 공사 이야기다. 긴 터널을 뚫을 기술이 없던 때라, 산과 산 사이를 골라 굴을 뚫었다. 금강IC와 영동IC 사이는 고속도로라고 부르기에는 쑥스러운 곡선투성이였다. ..

    2016.08.03
  • 가야산에는 권력의 흔적.. 몽산리에는 民草의 돌부처..

    충청남도 북서쪽 홍주, 결성, 해미, 태안, 서산, 면천, 당진, 덕산, 예산, 신창을 합쳐서 내포(內浦)라고 한다. 1751년 이중환이 쓴 택리지에 나오는 말이다. 이 열 마을은 모두 '가야산 앞뒤에 있다'고 했다..

    2016.07.27
  • 바위 속 根源을 찾아 화순으로 갔다

    화순 사내 이영문과 고인돌 전남 화순 땅 도곡면에서 춘양면으로 가는 고갯길 이름은 보검재다. 길이는 5㎞ 정도다. 보검재에는 바위가 많았다. 태곳적 무등산 폭발로 생긴 화산재가 굳은 응회암이다. 효산리 쪽 입구 언덕..

    2016.07.20
  • 금월봉 너머 청풍호반에서 억겁 세월을 보았다

    모든 일은 그리되었다. 처자식 먹여 살리려고 바둥바둥 살다 보니 그 흔적이 혹은 땅에 남아 기념물이 되고 혹은 우주 속 먼지로 변해 천지 만물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딱히 거창한 의도나 계획 없이 살다 보니 생이 만..

    2016.07.13
  • 이순신.. 김옥균.. 이지함.. 아산에서 만나는 세 사내의 꿈

    이지함은 조선 중기 학자요 정치가다. 말년에 두 번 군수를 지냈다. 이순신은 조선 중기 군인이다. 전쟁 때 죽었다. 김옥균은 구한말 정치가다. 1884년 갑신정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고 중국 상해에서 죽었다. 충남 아..

    2016.07.06
  • 새재를 걸었다, 기이한 역사 속을 걸었다

    신충원 이야기 충주 사람 신충원(辛忠元)은 문경새재 한가운데에 성벽을 쌓았다. 지금 조곡관이라 부르는 문경새재 2관문이다. 신충원은 충주에서 군사를 일으켜 왜군과 맞선 의병이었다. 누가 시킨 일은 아니었다. 그저 새..

    2016.06.29
  • 탐진강에서 득량만으로 흐르는 문학의 향기

    이대흠은 시인이다. 전라남도 장흥 사람이다. 창작과 비평을 통해 등단한 지 22년 되었다. '귀가 서럽다' '물 속의 불'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 같은 시집과 산문집 '탐진강 추억 한 사발 삼천 원'을 썼다. ..

    2016.06.22
  • 전쟁 상처 덮으며 江이 흐릅니다

    장파리 이야기 조용필은 가수 레이 찰스와 밴드 벤처스에 빠져 살았다.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교육자 집안이 반대했다. 1968년 서울 경동고 졸업과 함께 조용필은 경기도 파주 파평면 장파리로 가출해버렸다. 장파리 미군..

    2016.06.15
  • 재인폭포 아래로 1000년 역사가 흐른다

    궁수(弓手)에서 궁장(弓匠)으로 올해 쉰다섯 먹은 현중순은 정미소 주인이다. 경기도 연천 전곡에 산다. 정미소는 가업이다. 할아버지도 정미소를 했고 아버지도 정미소를 했다. 이북 땅이던 중면에서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

    2016.06.08
  • 섬과 섬 사이에 사막이 나타났다

    섬 사이 바다가 뭍이 되더니 몇백 톤짜리 날틀이 뜨고 내리는 비행장이 되었다. 인천 영종도와 용유도 이야기다. 영종대교 아래에 있는 운염도 운명도 마찬가지였다. 운염도와 이웃 소운염도, 매도 사이 바다가 메워지더니 ..

    2016.06.01
  • 고창 들녘에 보리가 익어갑니다

    도통(道通)한 전라감사 이서구 실학자 이서구(1754~1825)는 기인이었다. 우의정을 지내고 1793년에 이어 1820년 두 번째로 전라관찰사로 부임한 이서구는 곳곳에 전설을 남겼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보고나 받았..

    2016.05.25
  • 깊은 산속 옛 절에서 인연을 만났습니다

    경기도 양평 지평면에는 망미리(望美里)가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논리와 섬부리와 신대리를 합쳐서 지은 이름이니 오랜 지명은 아니다. 중심 마을은 섬부리다. 섬부리는 '석불리(石佛里)'가 바뀐 지명이다. ..

    2016.05.11
  • 환희산 기슭, 늙은 느티나무가 하늘을 뒤덮고..

    충북 진천은 은둔자의 땅이다. 19세기 천주교도들이 박해를 피해 진천 땅으로 숨어들었다. 경기도 안성과 맞붙은 백곡은 숨어 살기에 좋았다. 사통팔달 길이 뚫려 있으되 얕은 산속에 숨으면 관에서 찾기가 쉽지 않았다. ..

    2016.05.04
  • 마의태자는 인제 땅에서 무엇을 꿈꿨을까

    쓸쓸한 사내 뒷모습 이 사내에 대한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사서(史書)에 한 대목만 나온다. 서기 935년 음력 10월 경주에서 벌어진 일이다. '왕자가 말했다. "나라의 존망은 하늘에 달려 있으니 충신, 의사들과 함께..

    2016.04.27
  • 대평원으로 변한 바다에 생명이 찾아왔다

    화목했던 우음도와 윤수심 윤수심은 목포 여자다. '갯것' 많다는 소문 듣고 한 살 아래 남편이랑 우음도로 왔다. 60년 전이다. 우음도는 지금 경기도 안산과 화성 사이 군자만에 있는 섬이다. 남쪽까지 소문이 퍼질 정..

    2016.04.20
  • 찬란하였으되 너무도 허망하였느니라

    그 마지막 날 풍경 찬바람이 부는 음력 8월 2일, 백제 수도 사비성 왕궁에서 잔치가 벌어졌다. 서기 660년이었다. 대청마루 위에는 당나라 장군 소정방과 신라 태종 무열왕이 앉아 있었다. 마루 아래 땅바닥에는 백제..

    2016.04.13
  • 호수에 봄이 내렸습니다

    올해 쉰여섯 살인 조수경은 춘천 공지천변에서 커피를 볶는다. 커피 볶는 집 이름은 이디오피아벳이다. '벳'은 집이라는 뜻이다. 어머니 김옥희가 1968년 11월 25일 문을 연 커피숍이다. 공지천은 청춘들이 즐겨 찾..

    2016.04.06
  • 갈대밭을 연인들이 걷습니다.. 여자는 그 옆에서 모시를 짭니다

    충남 서천군 금강변에는 갈대밭이 있다. 밑도 끝도 없이 아득하게 크고 넓다. 박예순은 그 갈대밭 옆에서 모시를 짠다. 쉰아홉 살 되도록 평생 바느질을 하고 모시에 물을 들인다. 못 먹고 못살던 시절 갈대밭은 농민들이..

    2015.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