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이 북한 퍼주기?.."5% 주고 95% 퍼오기"
입력 2019.02.07. 10:06 수정 2019.02.07. 10:26
핵 폐기 때 상응조처로 재개 가능성
정치권 일부서 '퍼주기론'다시 고개
실제 경제효과 실증적 분석 필요
공단지원재단 실익 분석자료 내
"가동 12년간 20~30배 투자가치
우수한 저임노동력에 무관세
90%이상이 임가공 하청업체로
국내 협력업체 3800개 가동
일자리 8만개 만들어낸 효과"
오는 10일이면 박근혜 정부가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에 대응해 개성공단 문을 닫은 지 3년이 된다. 오는 27~28일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의 영변 핵시설 폐기 등에 대한 미국 쪽 상응조처의 하나로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올해 들어 이 가능성이 거론되고 남북 정상이 개성공단 재개 관련 언급을 하자, 국내에서는 해묵은 ‘북한 퍼주기’ 주장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달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개성공단 만들어 기업들 이전시켜 국내 일자리 없애고, (개성공단 노동자) 임금 중 일부가 핵 개발에 쓰였을 것으로 강하게 의심되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도 자신의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북한 퍼주기’였고, 이 돈이 북한 핵무기 개발 자금으로 쓰였다는 주장을 폈다. 개성공단 북한 노동자 임금 등이 북한 핵 개발로 이어졌다는 주장은 추정일 뿐 누구도 객관적 근거나 증거를 제시한 적이 없다. 하지만 이른바 퍼주기론은 ‘대량 현금’(벌크캐시)이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의 미사일과 핵 개발에 유입될 것이란 국제사회의 추정으로 이어져, 개성공단 재개를 막는 장벽이 되고 있다.
개성공단의 경제적 효과와 남북관계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정확한 평가와 공감대가 국내에서 먼저 형성돼야, 국제사회에 개성공단 재가동 필요성을 설득하는 데 힘이 실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한용 개성공단기업협회장은 지난달 24일 한반도평화포럼 주최 토론회에서 “국회에서 여야가 충분히 대화를 해서 ‘어떤 조건이 갖춰지면 개성공단 재개를 하겠다’고 먼저 만들고 국제사회를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지원재단)은 ‘개성공단, 퍼주기가 아닌 퍼오기’란 자료를 내어 “개성공단의 가치가 정확하게 공유되지 못한 채 개성공단의 경제적 실익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가 가열되고 있다”며 “개성공단 재개를 퍼주기란 규정에 대한 반론으로 실증분석을 통해 개성공단이 ‘퍼오기’ 임을 제시한다”고 설명했다. 이 자료와 통일부, 연구기관들의 자료와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개성공단은 북한 퍼주기’란 주장의 허실을 살펴봤다.
■ “5% 주고 95% 퍼오기” 개성공단은 2004년 생산을 시작해 2016년 문을 닫기까지 누적생산액이 총 32억3천만달러에 이른다. 하청업체의 원청업체에 대한 납품단가(본사 납품가)를 기준으로, 개성공단에서 남쪽 기업은 1달러를 투입해 4.6달러의 산출물을 얻었다. 최종소비자가격을 기준으로 하면, 20~30배의 투자가치를 거뒀다.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물과 공기를 뺀 모든 원·부자재는 물론 구내식당에서 쓰는 채소와 양념까지 남쪽에서 공급했다. 개성공단 생산액 중 임가공료인 5%가량만 북한에 줄 뿐 나머지 95%는 남쪽 몫이었다”고 설명한다.
■ “개성공단의 압도적 비교우위” 개성공단 가동이 중단된 지 3년이 됐지만 입주기업 대부분이 다시 개성공단에 들어가려고 한다고 지원재단 쪽은 설명한다. 경제적 측면의 비교우위가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개성공단의 비교우위로는 먼저 우수한 저임금 노동력이 꼽힌다. 북쪽 노동자 한달 임금은 2015년 기준 168.5달러였다. 중국(647.9달러)과 베트남(261.7달러)에 견줘도 매우 낮다. 북쪽 당국이 인력을 공급하는 특성상 북쪽 노동자들은 이직이 거의 없어 대부분 5~10년 이상 일한 숙련 노동자였다. 이들의 임금 인상 상한은 5%로 제한돼 있었다. 북쪽이 제공한 개성공단 땅값은 ㎡당 1달러였고, 연간 토지사용료는 ㎡당 0.64달러였다. 토지사용료는 중국 허베이성(34.8달러), 베트남 하노이(2.28~2.64달러)에 견줘 매우 낮았다.
개성공단은 무관세 지역이고 서울과 개성공단 간 거리는 60㎞에 불과해 오전에 원·부자재 차량이 개성공단에 들어가서 오후에 그 차량으로 제품을 싣고 나올 수 있다. 북쪽 노동자는 남쪽과 언어와 문화가 같아 생산성이 높다. 외국에서는 없는 개성공단만의 경쟁력이었다.
■ “국내 일자리 빼앗기가 아닌 만들기” ‘개성공단을 만들어 기업들 이전시켜 국내 일자리 없앴다’는 일부 주장과 달리 개성공단은 사라지는 국내 일자리를 되살리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었다고 지원재단은 설명한다. 개성공단 기업의 90% 이상이 임가공 하청업체였다. 주로 한계업종의 영세기업인 이들은 국내에서 경쟁력을 잃어 중국으로 갔다 다시 동남아시아로 공장을 옮겨야 했다. 섬유 봉제 기업이 외국에 공장을 세우면 자체 원·부자재 공장을 현지에 만든다. 이 경우 국내 원·부자재 업체는 물량이 사라져 문을 닫아야 하는 위기에 내몰린다.
개성공단에 기업 120여곳이 자리 잡으면서 국내에서 원·부자재 공급 협력업체 3800곳이 가동됐고, 일자리 8만개가 생겼다. 기업들이 중국과 동남아로 빠져나가면 국내 협력기업들이 문을 닫아야 하지만 개성공단에 있어서 국내 일자리를 유지하고 만들어왔다고 지원재단은 설명한다. 지원재단 쪽은 “개성공단에 대한 무지에 가까운 몰이해 때문에 개성공단이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사실과 전혀 다른 주장이 퍼지고 있다”고 밝혔다.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대기업과 중견기업도 큰 이익을 봤다. 개성공단에 하청을 줬던 남쪽 원청기업은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이었다. 2015년 개성공단 임가공 단가가 1995년 국내 임가공 단가와 비슷했다. 20년간 임가공 단가가 오르지 않은 셈이라 원청업체가 큰 이득을 본 것이다.
■ “누구에게 무엇을 퍼주나?” 국내 기업이 경제적 가치 면에서 개성공단과 비교할 수 있는 공단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지원재단은 강조했다. 개성공단의 경제적 가치를 따져보면 북한 퍼주기가 아니라 압도적 퍼오기란 설명이다. 개성공단은 내수 부진, 제조업 경쟁력 약화, 청년 실업 같은 어려운 국내 경제에 숨통을 터주는 구실도 할 수 있다고 한다. 지원재단 쪽은 “개성공단 재개를 퍼주기라고 규정하는 쪽에 묻고 싶다. 과연 무엇을 누구에게 퍼준다는 말이냐. 퍼주기 주장은 실체가 없고 무의미한 소모적 논란”이라고 주장했다.
권혁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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